모든 일에는 판단의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그 판단의 기준이 그 사람을 어떤 자인가 알게 한다.

by 발검무적
子張曰: “士, 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子張이 말하였다.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이익을 보고 義를 생각하며, 제사에 恭敬함을 생각하며, 喪事에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다.”

이 장은 ‘자장(子張) 편’의 첫 번째 장이다. ‘자장(子張) 편’에서는 공자의 제자들이 한 말들을 정리한 내용으로 주를 이루고 있는데, 시기상 공자와의 대화가 아닌 공자가 세상을 뜬 후에 이루어진 것들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편의 첫 장, 첫 문장에 등장해서 편명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자장(子張)의 경우 <논어(論語)>에 총 20회나 등장하지만, 이 편에서는 고작(?) 다섯 번만 등장한다. 다섯 번도 적지 않은 횟수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자하(子夏)는 무려 11회나 등장하고 자공(子貢)도 6회나 등장하며, 증자는 4회, 자유(子游)도 3회나 등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횟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대사형에 해당하던 자공(子貢)과 자하(子夏)가 무려 13살 차이였고, 증자(曾子)는 자하(子夏)보다 두 살이나 어렸으며, 자장(子張)이 자하(子夏)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는 것을 알고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공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와 역책(易簀)을 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자공(子貢)은 42살이었던 것에 반해, 자장(子張)이 고작 25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자장(子張)은 공자가 살아생전에 그렇게 주인공 급으로 등장할만한 제자 항렬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렸던 자장(子張)의 가르침(?)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언급되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이 편에서 편집된 제자들의 언급들이 대개 공자의 사후(死後)에 이루어졌다는 학설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공자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한참의 세월이 지나 스승의 가르침을 온몸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며 어엿한 중견 학자가 되었던 자장(子張)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총 네 가지의 항목으로 나뉜 이 가르침 중, 전반부의 두 가지 항목에서는, 앞서 공부했던 ‘헌문(憲問)편’의 13장에서, 공자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는 자로(子路)의 질문에 일러준 가르침의 말 가운데에서 나왔던, ‘見利思義 見危授命’의 의미를 다시 재확인하는 것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제사를 지낼 때는 공경해야 할 것을 생각한다.’는 내용은 ‘위정(爲政) 편’의 5장과 ‘팔일(八佾) 편’ 12장의 가르침, ‘祭如在, 祭神如神在’을 다시 복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항목의 ‘상사(喪事)에는 슬픔을 생각한다.’ 역시 ‘팔일(八佾) 편’ 4장의 가르침, ‘喪與其易也寧戚(상례를 치를 때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하라고 했던 가르침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요컨대, 자장(子張)이 말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그 가르침의 내용은 이전에 자장(子張)이 스승에게 배웠던 스승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는 복습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어(論語)>를 편찬한 후대의 제자들은 굳이 왜 이런 스승의 가르침과 중복되는 복습의 내용을 다시 제자들의 입을 빌어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 복습(?) 장에 대한 주석을 주자가 어떻게 앞에서와 다르게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致命(치명)’은 목숨을 바침을 이르니, 수명이란 말과 같다. 이 네 가지는 몸을 세우는 큰일이니, 한 가지라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으면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선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거의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네 가지 항목을 구체적으로 하나로 묶어 제시하며 공자가 그것이 선비로서의 자세라고 설명한 바는 아니다. 다시 말해, 주자는 이것이 단순한 복습의 형태가 아님을 배우는 자들에게 살짝 일러준다. 즉, 이 모든 내용들이 자장(子張)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똑같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온전한 자기만의 것으로 이해하고, 소화시켰는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음을 주목하라는 것이다.

똑같은 스승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들었음에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성향이나 이해정도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실천에 적용하는가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자장(子張) 편의 편집의도를 조금이나마 유추하여 이해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앞서 ‘미자편(微子篇)’의 10장에서 공자가 주공(周公)이 아들에게 해주었던 가르침을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풀이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기도 하다.


참고로 원문에서 ‘선비(士)’라고 번역한 문구를 그저 군자(君子) 정도의 개념으로 대강 이해하고 이 장을 빤한 내용의 반복으로 풀이하고 넘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우를 범해서는 이 장이 갖는 의미를 100% 파악하기 어렵다. 자장(子張) 굳이 군자(君子)라고 하지 않고, 기존에 공자가 많이 언급하지 않았던 ‘선비(士)’라는 개념을 대두시킨 것에는 자장(子張) 나름대로 강조하고 싶은 방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비(士)’는 위정자의 밑에서 국가의 녹을 받으며 나라의 일을 하는 ‘공무원’을 지칭하는 의미가 크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첫 번째 항목에서 명확하게 방점을 찍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문의 ‘見危(위급함을 당했을 때)’라는 용어 자체가, 본래 군주나 부친의 위급한 상황을 목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일 때 위정자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다 그래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인 상식에서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책임과 의무의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지위의 사람이라면 나라의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논어(論語)>의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스승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가져와 재정리하면서 굳이 그 대상 목표를 배우는 자로 확장시켜 일반화하지 않고,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이 갖춰야 할 항목이라고 콕 짚어 강조한 것에는 분명히 나름의 의도와 행간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논리적 유추이긴 하지만, 특정 대상을 가리켜 이러한 항목을 모두 지키고 실천해야만 진정으로 그 지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파하는 경우는, 그들이 그 해당 항목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방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자가 70여 년이 넘는 일생을 통해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하였고, 책을 저술하고 제자들을 직접 양성하는 것에 힘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을 배우고 책을 통해 그 지식을 이용하여 국가의 녹을 먹게 된 자들이 스승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못하여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음을 보았다면 제자인 자장(子張) 입장에서는 분명히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장은 그러한 자장(子張)의 생각과 공자의 사후에도 딱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 갔던 당대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성현(聖賢)이 살아 있을 때 세상을 올바름으로 인도하고자 노력했던 과정들이 인정받아야 하겠으나 성현(聖賢)이 자신의 생각과 가르침을 저술과 제자양성으로 가르침을 남겼음에도 세상이 올바름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탓만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나 가르침이 있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없다면 공허한 지식의 나열만으로 전락되어 폐기될 쓰레기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살아 있으려면 공자가 내내 강조한 바와 같이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자가 솔선수범을 보여야만 하고, 그것은 명령의 형태가 아닌 전범(典範)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진실로 움직이는 계기를 마련해야만 한다.


천하를 움직일 수 있고, 배우지 않은 자들도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한 움직임, 그 솔선수범의 실천을 위해 공자가 타깃으로 삼았던 것은 위정자였고 군주들이었으며 나름 머리에 먹물을 집어넣었다는 배운 자들이었다. 그들이 배웠다고 거들먹거리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기에 사회가 좀먹어 들어간다고 공자는 일갈하고 또 목이 터져라 외쳤던 것이다.


누구보다 스승의 가르침이 갖는 가르침의 지향점을 이해했던 이들의 써머리 노트가 바로 이 ‘자장(子張) 편’의 내용에 해당한다. 자장(子張)이 스승의 가르침을 돌이켜 당대의 세태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젠 군주에 해당하는 위정자를 움직이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아니 최상은 위에서부터 전체가 변하는 것이지만, 결국 70년이 넘도록 노력해 왔던 스승이 이루지 못한 방식이었으니 보다 현실적으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나랏일을 한다고 하는 자들이 어떤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장의 내용이다.

네 가지 항목 중에서도 후반부 두 항목은 본래 공자의 가르침대로 제사나 상사(喪事)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함에 있어 형식이나 격식을 갖추는 것보다 그 일과 행위의 본질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왜 그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본질과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권계를 담고 있다.

자칫 전반부의 엄중한 분위기의 내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장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필요한 두 번째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반부의 두 항목이 공직을 가진 자들의 본분이 무엇임을 강조하고 나서 후반부의 두 항목으로 구체적인 세부방식을 서술하지 않고 동일한 위상으로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 그 행동이 가져야 할 본연의 목적의식을 간과하지 말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이 장을 분석하고 나면 이 네 가지 항목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분석되는 것과는 별개로 점차적인 강조를 통해 결론적으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본래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그 본연의 책무를 잊거나 방기 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그 가르침을 배우지 못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배우고 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제 이익을 이해 의로운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 투성이다.

강남 한복판의 학원가에 등장한 마약 담긴 음료가 등장한 사건이, 왜 뜬금없이 검수완박의 깔때기로 들어가 법무부의 수장이라는 검찰출신의 인물이, 헌재의 판단이 담긴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러니까 헌재의 검수완박에 대한 판단은 잘못된 것이며, 검찰이 마약수사를 해야 한다,’며 되레 악다구니를 쓰는 상황으로 이어지는지 나는 도무지 잘 알지 못하겠다.


수년간을 끌어오던 현역목사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고발인 입장(유아에 해당하는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는 유아가 직접 고소를 진행할 수 없기에 형사적으로 아동학대를 신고한 사람은 무조건 고발인 신분일 수밖에 없다)의 긴 싸움은 결국 대검찰청에 검사장급에 해당하는 작자에게 재항고까지 했지만 결국 기각한다는 종이쪼가리 한 장으로 엊그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부패경찰들이 뒷돈을 챙겨 적당히 사건을 뭉개고 진실을 은폐하고 나서, 무혐의 처분 혹은 불송치 처분에 사건 당사자들이 항변할 때면 늘 입에 다는 같잖은 변명이 있다.


“수사 종결권이 경찰에 없을 때는 당연히 검찰에 송치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검찰에서 다시 지휘해서 재수사든 뭐든 바로잡을 수 있구요. 이제 수사종결권이 경찰에게 왔다고 해도 신고한 고소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하면 저희가 다 경찰에서 이의를 받아들여 재검토하고 검찰에도 송치해서 다시 확인합니다.”

수사종결권이 검찰에게 그대로 있을 때에도 정인이 사건에 대해서 뭉개던 경찰이 마지못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무혐의 처분도장을 찍어준 것도 검찰이었고, 검수완박이 시행되기 전에 계곡까지 악처에게 끌려가 살해당했던 불쌍한 남편의 사건은 검찰까지 송치되었음에도 단순 사고사라며 도장을 찍었을 뿐 그 어떤 검토나 재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겨우 방송사의 고발프로그램에서 사건의 부당함을 재조명하자 부랴부랴 여론에 밀려 수사해 놓고 마치 검찰에서 재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힌 것처럼 기레기들을 동원하여 검수완박이 시행되면 이렇게 사건을 놓칠 수 있다고 SNS에 떠들어 댄 것은 그 사건을 단순 사고사라고 도장 찍고 자신의 사건이라고 기억도 하지 못하는 여자 검사였다.

이 장에서 자장(子張)이 강조에 마지않았던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본문을 망각한 공무원에 대한 탄식이다. 하긴 그게 어디 공무원뿐이라 한정 지을 문제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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