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망각한 자들에게.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子夏가 말하였다. “날마다 없는(모르는) 것을 알며, 달마다 능한 것을 잊지 않으면 學問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이 장에서는 이른바 공자의 호학(好學)에 대한 가르침을 자하(子夏)가 복기(復棋)하고 있다. <논어(論語)>의 가장 첫 번째 장에서부터 구체적인 호학(好學)과 인(仁)에 대한 가르침을 펼쳤던 ‘옹야(雍也) 편’의 5장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내용이 모두 정리된 듯하다. 특히 눈에 익은 표현을 유추해 보면, 은나라 시조인 성탕(成湯) 임금의 반명(盤銘)에 새겨져 있던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는 글귀를 떠오르게 한다. 이후 전성되어 현대에도 많이 원용되는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이다.
물론, 이 장에서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부분은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배움을 새로이 하듯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이 ‘호학(好學)’이라 이를 수 있다는 강조점에 있다.
무엇을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 주자는 원문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亡(망)’은 없음이니,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른다.
새로운 지식을 채우고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것들을 매번 깨쳐나가는 즐거움, 그 노력을 통해 이전에 자신이 갖추지 못하고 있던 것을 새롭게 갖추고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함을 강조한 설명에 다름 아니다.
날마다 달마다 새로워진다는 의미에 대한 어떻게 호학(好學)과 연관되는지가 이 장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실마리임을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정리한다.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날로 새롭게 하고 잃지 않는다.”
여기서 원문과 주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자하(子夏)가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했던 진정한 행간의 핵심을 부연해야겠다. 원문의 ‘月無忘其所能(달마다 이번 달은 지금까지 능히 실천한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문에 그 의미가 상세히 부연되어 있지는 않다. 이 의미에 대해, 자신이 배운 것을 까먹지(?) 않고 온전히 갖추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오독하고 넘어가는 이들이 많은데, 이 문구의 의미는 공자가 모든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에 마지않았던 ‘실천’을 의미한다.
모르는 것을 찾아 배우고 익혀 깨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자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은 그 배움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배우는 것과 실제 생활에서의 적용과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배움은 결코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없다는 가르침에 대해 자하(子夏)는 반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그것이 진정으로 지식을 잊지 않는 방법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파악하고 나서 이 장의 의미를 다시 풀이하자면, ‘날마다 달마다’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알아나가고 또 지금까지 ‘알아서 실천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후대 학자 황간(皇侃)은 자하(子夏)의 이러한 학문 태도를 두고 ‘溫故知新(온고지신)’이라 평가한 바 있다.
한편, 이 장의 본래 의미가 그러한 것임을 파악하고 깨달음을 얻은, 청나라 초기의 고증학자 고염무(顧炎武)는 30년간 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그 이름을 <日知錄>이라 이름 짓는다. 바로 이 장의 ‘日知其所亡’에서 따온 것임을 오늘 이 장을 제대로 공부한 이들이라면 당연히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명 왕조가 망한 뒤 많은 지식인이 변절하고 청나라에 귀의(?)하는 과정 중에도 명나라 유민(遺民)으로서의 지조를 잃지 않고 지켰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말 두 필과 노새 두 필에 책을 싣고 떠돌면서 경학, 역사학, 언어학,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고증을 하고 그러한 배움을 통한 경세(經世)의 의지를 자신의 글을 통해 드러냈다.
고염무는 자신의 연구자세에 있어 두 가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째, 기록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면 그때그때 고친다. 둘째, 남이 나보다 먼저 같은 견해를 표명했으면 내 기록을 없앤다. 즉,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같은 의견이 시기적으로 먼저 나왔다면 그것을 애써 고치거나 아닌 것처럼 바꾸지 않고 과감하게 덜어낸다는 의미였다.
자하(子夏)가 공문십철(孔門十哲)중에서도 文學의 범주에서 뛰어난 제자로 손꼽혔다는 점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문학(文學)이라 함은, 현대에 말하는 글을 창작하는 시나 소설 등으로 한정된 문학의 의미가 아니다. 고문(古文)에서 말하는 문학이란 이른바 박학(博學; 넓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 한문학의 시대에 학문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학문은 당연히 문학(文學), 역사(歷史), 철학(哲學)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 문사철(文史哲)이라 일컬어졌던 것도 이러한 박학(博學)의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온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쓰는 데에도 그 시대를 드러내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대정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알량한 주먹구구식 개똥철학이 아닌, 충분한 공부를 통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정치하고 예리한 판단의 결과물들이 있어야만 한다. 인문학의 특성상 그것은 하루 이틀에 걸쳐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거나 여나문 권의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을 대강 읽어 외우는 것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현재를 알기 위해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 역사이고, 과거의 잘못을 공부하여 현재에 교감으로 삼아 미래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역사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안목과 의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천으로 연결시키기까지는 한두 해의 공력으로는 쉽게 이뤄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그러기 위해 고전 원전(原典)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문리(文理)가 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글을 읽고 공부하여도 수십 년이 걸리는데, 현재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언어를 그렇게 익혀서 문리(文理)가 트여 그나마 책 속에 담긴 문자적 의미를 해독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형이상학적인 철학(哲學)을 통해 사람의 사상을 궁구히하는 것, 그리고 성현들과 석학들의 저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 고요한 가운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다시 재해석하여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도 역시 수십 년에 걸친 노력으로도 얻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다시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온통 어려운 과정들뿐이지만, 굳이 배우는 자들이 그것을 궁구 하려던 이유는 알량한 지식을 쌓아 남들보다 더 낫다고 인정받아 그것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함이 아니었다. 굳이 <논어(論語)>의 마치는 말미에 와서, 공자의 입이 아닌 제자의 복습과정을 보여주며 공자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것은 동일한 문구를 그대로 답습하고자 함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공자의 가르침이 성현이 아닌 공자의 제자를 통해 어떻게 재해석되어 다만 반 걸음이라도 진보를 이루고 일반에게 보다 더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이루게 되었는가를 이 편에서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공자가 혼내기도 하고 어루기도 하면서 가르치고 궁극적으로 배움의 완성이 실천에 있다고 했지만, 배우는 것조차도 버거워하던 제자들에게 실천은 까마득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금씩 뭔가를 배워나가고 채워나가면서도 그것을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뿐 그것이 정말로 현실에서 적용되어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고난의 연속인지를 스승의 삶을 통해 여과 없이 목도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하(子夏)는 스승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실천의 의미가 궁극의 목표여서가 아니라 그간 공부하고 익힌 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켜 잊지 않기 위한 행위임을 깨닫고 후학들을 위해 풀이해 준 것이다.
하다못해 논리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수학조차도 일타강사의 인강을 보며 풀이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술술 내려가는 것이 ‘그렇지.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하다. 그런데, 다시 연필을 쥐어주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처음부터 막혀버리거나 엉뚱한 수리의 영역으로 한참을 날아가다가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내가 풀어보고 내가 막힌 곳에서 그 풀이를 해결해내지 않으면 그 문제는 내가 푼 것이 아니다. <논어(論語)>를 읽고 공부했다고 하면서 그것도 절반이상은 이상한 오독(誤讀)으로 점철된 현대 해설서를 통해 대강 읽은 이들에게 2년간에 걸친 나의 <논어(論語)>읽기는 그야말로 괴팍하기 그지없는 전혀 다른 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굳이 부족하기 그지없는 짧은 안목으로 한 장 한 장의 가르침을 오늘날 우리 현실에 비추어 풀이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하(子夏)는 이 장에서 밝히고 있다. 수천 년 전의 중국땅에서 집약된 성현의 지혜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지없이 100% 적중하며 그 당시의 사람 속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사특해진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그 가르침을 왜 배우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깨우침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공자는 이미 수차례 일러주었고, 자하는 다시 한번 가르침을 환기시켜 준다.
인쇄기술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지도 못했던 공자의 시대에도 이미 읽고 익혀야 할 공부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고 했었는데, 이제 인터넷을 통해 수천 년을 살며 입력해도 모두 익히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가 흘러넘치다 못해 폭주하는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매일같이 무엇을 익히고 달마다 무엇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하다못해 처음 듣는 신조어들이나 새로운 개념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식들을 접할 때마다 그저 남이 적당히 설명하는 내용을 주워듣고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고 여기거나 스마트폰의 초록창을 열어 초등학생이 절반이 넘는 지식인에게 물어봤으니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착각하거나 더 심각하게는 출처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유튜브나 SNS의 짤을 보고서 그것의 진위여부조차 파악하지 않고 ‘내가 어디서 봤는데~’라고 떠들어대는 풍토가 조금도 낯설지 않은 이 세태는 심히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면서 사전을 찾아보는 일조차 귀찮아하며 대강 책에 설명된 부분만을 그대로 외우는 것으로 대신하는 자세는 결코 그 언어의 정확한 의미를 올바르게 익힐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로 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매일 같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것을 더 알려고 노력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것을 공부하며 익히는 것은 학생들만이 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이들은 물론이고, 배우는 것이 직업인 학생들조차 더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현재의 세태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런데 왜 그런 풍조가 일반화되었는지 가만히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그 역시 하루아침에 악화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참 세상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당신의 아이들이 너무도 당연한 무언가를 계속 물을 때 당신이 취했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처음 부모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세상에서 살아갈 대개의 지식의 루트를 유치원에서 익히게 된다. 당신이 적당히 손사래를 치고 넘어가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박봉을 받으며 애들을 지겨워하는 유치원 선생이 해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가?
선행학습이 유행이라며 묻고 따지지도 않고 보내놓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정작 학교에 가서 배우는 수업시간에 학원숙제를 하고 이미 다 배운 내용이라고 무시하면서도 내신에서 1등급을 받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를 다시 학원선생이 제대로 내신 준비를 해주지 않아서라고 탓하고 당신은 뒷짐을 진 채 비난만 할 것인가?
나라가 이 꼴이 되도록 사회를 좀먹은 것이 그저 여의도에 기생하는 국회의원이고 서초동에 기생하는 법비들 때문이라고 언제까지 욕만 할 셈인가? 그들이 당신과 정말로 다른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