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위인이 될 것까지는 아니나 사람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by 발검무적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子夏가 말하였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현실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仁이 이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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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가르침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권학편(勸學篇)’에도 실려 있는 내용으로,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해 구체적인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궁극의 목표로 인(仁)이라는 개념도 적시하고 있다. 다만,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는 자하(子夏)가 아닌 공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子夏曰’이 아닌 ‘子曰’로 되어 있는데, <논어(論語)>의 표기가 옳은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네 가지 항목은 博學, 篤志, 切問, 近思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표현은. 이 네 가지의 학문태도를 강조하면서 ‘이 네 가지의 가운데에 仁이 있다’고 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네 가지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앞서 공부하면서도 설명한 바 있다시피, ‘박학(博學)’은 고문(古文)에서 文學의 범주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자하(子夏)가 독보적이라고 인정받은 부분이 문학(文學)이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이 편의 공통된 언급을 통해, 자하(子夏)의 시그니처로 ‘博學(박학)’이 자리 잡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 가르침 역시 오리지널리티는 공자의 ‘박문(博文)’에게 있다. 그 근거는 앞서 공부했던 ‘옹야(雍也) 편’의 25장, ‘자한(子罕) 편’의 10장, ‘안연(顏淵) 편’의 15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지(篤志)란, 뜻을 독실하게 한다는 의미인데, 현대에 와서도 연말이 되면 뉴스에서 자주 듣게 되는 ‘독지가(篤志家)’라는 단어의 연원이 된 말이기도 하다. 독지가(篤志家)란, 사회사업에 뜻을 두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즉, 공자의 학문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단순히 학문이란 모르는 것을 익히고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생활에서 실천으로 배어 나오도록 수양하는 것, 그 실천의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한 개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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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절문(切問)이란, 사전적으로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절실하게 묻는 것, 혹은 일상생활의 일로부터 유추(類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앞의 두 가지 개념과 같은 흐름에서 본다면, 경세(經世) 의식이나 실천의지와 연결되어 현실에서의 절실한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인지하려는 행위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실하게 갖고 궁구하는 과정에서 원인에 대한 분석이 나오는 것이기에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근사(近思)라는 것은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이니 그 대상은 역시 현실문제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목적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정자(明道(명도))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은 類(류)로써 미루는〔類推(유추)〕 것이다.”


이 ‘근사(近思)’라는 용어는 이 장에서 유래하여 주자가 주희는 제자인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편찬한 책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는 우리가 현재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는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등장한 주석의 주인공들이었던, 주무숙(周茂叔),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장재(張載) 등의 저서나 어록에서 일상 수양에 긴요하고 절실한 장구(章句) 622조목을 추려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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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의 책이름을 이 장에서 따올 정도로 마음에 담고 있던 주자는 이 가르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 네 가지는 모두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는 일이니, 힘써 행해서 仁(인)을 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 종사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않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저절로 익숙해진다. 그러므로 인이 이 가운데 있다고 말한 것이다.


위 주석에 따르면, 이 장에서 자하(子夏)가 강조한 네 가지는 모두 學問思辨(학문사변), 즉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힘써 仁을 실천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주석에 언급된 學問思辨이라는 용어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博學, 審問(심문), 愼思(신사), 明辨(명변)의 네 가지를 줄여서 지칭한 것으로 모두 앎의 공부에 속한다.


즉, 현실에 대한 의지가 있을 뿐, 아직 이 네 가지가 기본자세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것은 아님을 구분한 것이다. 이 앎의 공부에 힘쓰면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않아 마음을 보존하는 데 익숙한 예열(?) 과정을 마치고 기본을 갖추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궁극적인 완성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仁)을 행하는 행위’라 설명하지 않고, ‘仁이 그 가운데 있다’고 설명한 것이라 풀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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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子夏)가 스승 공자의 가르침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강조하기 위한 이러한 수사법의 의미를 정자(明道(명도))는 다시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 것을 어찌하여 인이 이 가운데 있다고 말하였는가? 배우는 자들은 이것을 생각하여 알아야 하니, 이것을 알면 바로 위로 통달하고 아래로 통달하는 방법이다.”


스승은 이미 가르침을 통해 그 기본이 되는 마음자세와 학문을 하는 태도를 일깨워 그다음을 비춰보여주었으나 그것의 중요성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스승의 의도이자 학문을 하는 궁극의 태도는 이 다음 실천의 단계에 있음을 자하(子夏)가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연이어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네 가지 항목 중에서도 앞서 두 항목보다 뒤의 두 항목이 보이지 않는 다음 단계를 열어주는 것임을 일러준다.

“배우기를 널리 하지 않으면 지킴이 요약되지 못하고, 뜻이 독실하지 못하면 힘써 행할 수 없으니,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은 이 가운데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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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 자하(子夏)가 다시 배우는 이들을 위해 풀이하고 정확한 스승의 가르침이 강조한 바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한 것을 모두 이해한 소동파(蘇軾(소식))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의미를 정리한다.


“배우기를 널리 하기만 하고 뜻이 독실하지 않으면 크기만 하고 이룸이 없으며, 범연히 묻고 멀리 생각하면 수고롭기만 하고 공효(효과)가 없다.”


네 항목의 구조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엮되 그 두 가지의 균형과 중도(中道)를 이루어야 함으로 풀이한 것이다. 역시 방점은 그 모든 공부의 기본자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배움과 익힘이 실제 실생활의 실천과 적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재차 역설한 것이다.


배움은 사람을 바꾼다. 글을 전혀 읽고 쓰지 못했던 성인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쳐 익히게 하면 그들의 생활은 그 이전과 완전히 판이한 세계가 되어버린다.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맨 얼굴에 로션만 바르던 여자에게 1년간 꾸준히 전문 메이크업을 가르쳐주게 되면 그녀의 얼굴과 인생은 화장을 배우기 전과 그 이후가 판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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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이제는 너무도 흔해버린 재난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게 되면, 의술을 가진 의사나 나무를 다룰 줄 아는 목수나 생존기술을 군에서 익힌 용병들이 저마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배우고 익힌 기술로 자신은 물론, 주변의 약자들을 보호해 주고 살아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평소 배우고 익힌 그 기술이 없었다면 결코 급박한 상황 속에서 활용할 수조차 없었던 배움의 결과물들이다.


평상시 전혀 운동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회사의 월급을 도둑질하다가 힘들다며 내내 소파와 일체가 되어 주말 내내 뒹굴기만 한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겼거나 위기의 상황에 자신의 한 몸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들의 게으름은 손가락만 까닥거리며 맛집을 찾아 기어코 그 가게 앞에서 웨이팅은 몇 시간이고 할지언정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일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중년이 넘어간 이들은 모두가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노화를 늦춘다거나 프로필 사진을 찍을 정도로 멋진 몸을 만들겠다고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파지기 시작하고 생활하는데 여러 장애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년의 운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라고 공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10대에 국가대표를 꿈꾸며 운동밥을 먹었던 사람일지라도 운동을 멀리하고 그저 숨쉬기 운동만으로 찌든 생활에 묻혀 지내게 되면 운동을 아예 하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몸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왜 학문에 대한 자세와 실천을 이야기하다가 뜬금없는 운동 이야기를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이 유사시에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갑자기 사자에게 쫓겨 달려야 한다거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여 수영해서 한강의 끝에서 끝까지 건너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적을지라도 긴 해외여행에 묵직한 여행 케리어를 옮기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도 체력이 지지치 않아야 하며, 하다못해 유럽의 소매치기가 버젓이 내 가방을 채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지 않으려면 자신의 몸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필수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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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이는 운동도 그러할진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부에 대한 부분은 어떠하겠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몸을 확인하자며 바디프로필을 보자고 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이 속한 분야의 지식을 상사나 동료가 뜬금없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눠 시험 보자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시의 순간 당신은 당신의 분야에서 갖춰야 할 상식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을 받고 있다. 당신이 그저 똑같은 업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조차 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그것을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고 성과를 내는 이들에게 뒤처져 당신만 승진이 늦어지거나 심지어 갑작스럽게 권고해직이라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오십도 되기 전에 높은 연봉 탓에 젊은 신입직원 셋을 뽑을 연봉이라며 갑작스럽게 사오정이 되어 퇴직을 강요받았다고 하는 이들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까지는 담겨 있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접근해 보자. 그가 없으면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능력과 카리스마와 인적 네트워크까지 가지고 있어 그를 해고했을 경우 그가 바로 자신의 회사를 차려 본사를 위협할 정도의 존재임에도 회사에서 그가 신입사원의 세 배나 되는 연봉을 받고 있으니 이제 쓸모없다고 버릴 것이라 생각하나?


현재 대기업이 아니면서 최근 10여 년 전부터 급성장한 회사들을 보면 대개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자신의 업무분야에 눈을 뜨면서 창업의 길을 모색하고 선택하여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케이스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대기업에 들어갈 때부터 그 안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면서 기술과 인맥, 경험까지 충실하게 쌓아 창업을 준비해야지,라는 간악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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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저 월급 도둑으로 있다가 오십도 되기 전에 짤린 사람과 그전에 자신의 기업체를 세워 창업한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그들이 대기업 내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영업마케팅 방식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안목을 키우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비전을 마련하는 등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이 그러하고, 먹고살기 위해 한다면서 자기 계발이나 이후 더 큰 발전을 위해 자신의 백세 인생을 어떻게 꽃 피울지에 대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그러한데, 사람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사회에서 존재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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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가르치고 자하가 다시 강조한 바와 같이, 당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그리고 당신의 아이가 살아간 사회가 더 나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바꾸는 것에 당신의 배움과 수양이 쓰여져야 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당신은 왜 모른 척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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