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은 직업에 있지 않고 품격에 있다.

그리고 그 품격은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by 발검무적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子夏가 말하였다. “여러 工人들은 공장에 있으면서 그 일을 이루고, 君子는 배워서 그 道를 지극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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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장인(匠人)과 군자(君子)를 등장시켜 대비되는 듯 대비되지 않는 공통적인 부분을 통해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해 있는 이들이 집중해야 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쉬운 듯 보이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이 애매모호한(?) 가르침은 앞서 4장에서 살펴보았던 내용과 배치된다고 오독(誤讀)하는 현대 해설서도 있을 정도로 만만하게 볼 내용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장은 4장과 배치되는 내용이 아닌 4장과 안과 밖을 이루는 지평의 확장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장의 가장 마지막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두 가지 개념을 등장시킨 이유를 정리하고 있다.


내가 살펴보건대, 위의 두 說(설)이 서로 보완이 되어야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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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원문의 의미가 정확하게 어떤 의도로 쓰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자가 원문을 어떻게 풀이하고 했는지 주석을 먼저 살펴보자.


‘肆(사)’는 관부(관청)의 물건을 만드는 곳을 이른다. ‘致(치)’는 지극히 함이다. 공인이 공장에 있지 않으면 다른 일에 마음이 옮겨가 業(업, 일)이 精(정)하지 못하고, 군자가 배우지 않으면 外物(외물)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 뜻이 독실하지 못하다.


여기서 물건을 만드는 장인(匠人)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이가 아닌 관청에서 사용할 물건을 전용으로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하는 이를 의미한다. 즉, 원문에서 장인(匠人)과 군자(君子)를 등장시킨 것은 둘의 대비되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 분야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본래 정진해야 할 자신의 본업이자 그 분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다면 장인(匠人)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고 군자(君子)는 외물(外物)에 현혹되어 그 독실한 뜻(道)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군자가 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장인(匠人)이 물건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뭉뚱그려 설명하는 현대 해설서도 있는데, 이는 비슷한 듯 하지만 또 완전히 다른 것임을 이 장에서는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전일(全一) 하지 않고서 다른 것에 휘둘리는 순간 그 목적하는 바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게 될 것이고 도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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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씨(尹焞(윤돈))는 이 장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배움은 그 도를 지극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百工(백공)이 공장에 있을 적에 반드시 그 일을 이룰 것을 힘쓰니, 군자가 배움에 있어 힘쓸 바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둘의 비교인 듯 하지만, 위 주석을 자세히 다시 읽어보면, 너무도 당연하게 군자가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장인(匠人)과 대비시켜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개념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관청에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장인(匠人)의 일도 온전히 전일하게 그것만을 생각하고 다른 것에 현혹되어 딴마음을 품거나 해서는 안될 것인데 하물며 배우는 것을 업으로 삼아 군자를 목표로 삼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 아니냐는 설명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방식을 가지고, 군자에 대비하여 장인(匠人)을 폄하하는 의견이라고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이른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아 설명한 것으로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도 그러할진대 눈에 보이지 않는 도를 이루는 것은 더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조의 방식일 뿐이다.


<예기(禮記)>의 ‘학기(學記)’에 보면, ‘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장인(匠人)은 관청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이 그가 사회적으로 자신이 가진 가장 기본이 되는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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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집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그리고 부모님의 자식으로 자기 자식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도덕적인 본분은 당연히 갖춰야 할 사람으로서의 도덕이다. 이 장에서 말하는 것은 그 기본을 무시하고 오로지 신분으로 정해진 직업으로의 본분을 먼저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행간에는 자신의 직업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온 마음과 몸을 쓰는 이가 그러한 기본을 지키지 못할 리가 없다는 믿음 또한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군자(君子)는 사회적인 위치를 가진 직업으로서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지위를 지칭하기 위한 장인(匠人)과 군자(君子)가 아니라 군자의 본분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전문적인 일을 하는 대표적인 직업인으로서 장인(匠人)을 비유의 대상으로 내세웠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다시 원문을 다시 보면, 장인(匠人)이 성사(成事;일을 이루는 것)를 위해 한 행동은 ‘공장에 있는 것’이 표현의 전부이다. 어디에도 오로지 마음과 몸을 전일(全一)할 것이라는 표현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마찬가지로 군자가 치도(致道;도를 이루는 것) 하기 위해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것은 오로지 ‘배운다(學)’말고는 없다.


어찌 보면, 학생이 학교에 있다고 해서 학문을 전일한다고 볼 수 없는데, 그저 장인(匠人)이 일터인 공장에 있는 것만으로 어떻게 그런 전일함으로 파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 문법적 구조를 띠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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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문의 ‘이(以)’가 갖는 목적으로서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왜 위 주석을 달았던 학자들이 행간의 의미에서 전일한 노력이라 풀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목적의 의미로 해당 글자를 번역하게 되면, 장인(匠人)이 공장에 있는 이유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인 것이고, 군자가 배우는 이유는 그 도를 지극히 하기 위해서라고 풀이된다. 특히 치도(致道)라고 쓴 치(致)라는 글자는 <대학(大學)>에서 다시 강조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사용된 치(致)와 의미가 같아서 ‘궁극에 이르기까지 다한다’는 의미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자하(子夏)가 증자(曾子)나 안연(顔淵)과 달리 학문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자하(子夏)가 이해한 스승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은 선인의 언행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밝혀서 군자로서의 덕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 분야에서 기예를 끊임없이 노력하여 일가를 이룬 이들은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나날들을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굳이 그 과정을 일일이 검증하고 확인하지 않더라도,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 혹은 기네스 기록 등을 통해 그들이 이룬 성과를 보게 되면 그들이 그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나날을 피와 땀으로 채워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설명한 바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어느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반드시 내적으로도 군자(君子)가 일컬어질 만한가를 따져보면,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서도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을만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거나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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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수양하여 군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은 어떠할까? 전술한 바와 같이 군자(君子)는 특정 직업이 아니고 특정 분야로 한정 지을 수도 없다. 게다가 다른 기예에 해당하는 분야처럼 경쟁이나 대회를 통해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군자다움을 완성했다고 검증해 줄 만한 단체나 기관 혹은 사람들이 있지 않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전부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들뿐이라고 하는 설명은 그래서 무게감을 갖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로바로 확인되지도 않고 그것으로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나 이익으로 연결 지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몇백 킬로나 되는 역기를 드는 역도선수는 그것이 자신의 직업이지만, 돌연 차사고로 인해 무거운 차량에 깔린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차를 드는 시민들에게 뛰어 들어가 그 차를 올릴지 말지는 그의 의무가 아니다. 아무리 신의 손이라고 불리며 수술을 잘하는 의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직업이기에 그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거액의 돈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절대 수술을 해주지 않겠다고 가난한 환자를 내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그들의 선택의지에 따른 자기 선택이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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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하(子夏)가 이 장을 통해 군자로서의 전일함을 위해 배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배경에 깔린 당대의 폐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덕책에서 배운 것과 같은 사명감이나 실천의지에 의해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향해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히 동네마다 아파트마다 어린이집이 있고 그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도 추첨을 해야 할 정도로 들여보내기 어렵다고 하는데, 소아과 의사들은 아이들이 줄어들었고, 의료 수가는 자신들의 기본적인 경제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며 거리에 나와 소아과를 없애버리겠다며 시위 아닌 선언을 해버렸다.


얼마 크지도 않은 땅덩어리에 지방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의사들이 없다며 지방에서 수억 연봉을 제시해도 가서 진료할 사람이 없다는 뉴스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레기들에게 그러한 자극적인 뉴스를 내보내며 의대 정원을 더 많이 뽑으려는 정부의 의도는 의사협회의 이익과 충돌했다.


경제학 이론으로 보자면 아주 이해하기 쉬운 상황이다. 만약 소아과 환자들이 의사들보다 훨씬 많다면, 즉 수십 년 전 소아과 의사들이 하루에 수백 명의 환자들을 쳐내고 돈을 현찰 세는 기계로 세던 시절에는 어느 소아과 의사도 의료수가가 적어서 자신들이 수입이 없네 뭐 하네 하는 헛소리를 떠들어대지 않았다. 지방에 내려가려는 의사가 없는 것은 전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에서 돈벌이를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의사들의 욕심이 집중되어서이지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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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몰려 소아과를 차려놓고 너무 많은 경쟁 때문에 환자를 나눠가져야만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수익이 줄어드는데 정부가 의료수가를 올려주지 않아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들어 더 이상 소아과를 지망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여러 모순적인 요소들과 자기 아집과 사욕이 녹아들어 가 있음을 그들 자신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특정 과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를 많이 고용하지 않은 탓에 해당 병원에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을 받지 못해 이원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그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압구정이 논밭에서 오렌지족을 양산하는 곳으로 변신하여 성형외과밭으로 변신하고 그 자본주의 논리의 전쟁으로 중국어나 러시아어 간판까지 달아가며 돈돈 하는 것은 그저 비난할만한 일이 아니다. 어느 성형외과의사도 왜 성형외과에 대한 수요가 줄어가는데 진료수가를 정부에서 올려주지 않느냐고 시위하거나 기자회견을 갖지 않는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소아과 의사들보다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식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성형외과를 선택했을까?


소아과 의사들은 다른 과를 전공하면 훨씬 더 많은 돈과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아이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신 한 몸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소아과를 선택했을까? 소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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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갔다가 전문직으로 더 많은 돈을 평생 벌 수 있다고 여겨 그놈의 의대와 치대, 심지어 이젠 끝물이 되어버린 한의대와 약대에까지 아직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는데 가장 합당한 일이라 판단하여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수익은 물론 사회적 지위마저 떨어져 버린다고 하는 의사들이나 이미 로스쿨로 1년에 2천 명이나 가까운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어 회사원보다 못하다며 울상인 법비들이 과연 공장에서 일하는 장인(匠人)보다 무엇이 나은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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