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聖賢)의 위대함은 일상의 사소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應對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子游가 말하였다. “子夏의 門人小子(弟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應對하고 進退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지만 이는 지엽적인 일이다. 근본을 미루어보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子夏가 듣고서 말하였다. “아, 言游의 말이 지나치다. 君子의 道가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하겠는가. 草木에 비유하면 종류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君子의 道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오직 聖人이실 것이다.”
이 장에서는 자유(子游)와 자하(子夏)의 너무도 다른 교육방식이 충돌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어느 한쪽이 잘못된 의견이라는 가치판단은 들어있지 않다. 배우는 이들이 그 내용을 읽고서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취한 셈이다.
이미 앞서 본편의 3장에서도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의 벗 사귀는 법에 대한 충돌(?)을 보여준 바 있는데, 이 장에서도 서로 간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子游)가 자하(子夏)의 방식에 대해 비판하며 시비를 거는 듯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자하(子夏)의 쇄소응대(灑掃應對)를 강조하는 기본 강화방식의 교육을 비판한 것인데 이 내용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상황과 내용을 정리한다.
자유(子游)가 자하(子夏)의 제자들이 威儀(위의)와 容節(용절, 용모와 예절)에 있어서는 괜찮으나 이는 小學(소학)의 지엽적인 일이요, 그 근본을 미루어 본다면 大學(대학)의 正心(정심) · 誠意(성의)와 같은 일은 없다고 기롱 한 것이다.
자유(子游)가 자하(子夏)의 교육방식에 대해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子游)의 비난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그 비난(?)의 핵심 포인트는 자하(子夏)의 교육방식이 지엽말단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어, 근본에 필요한 핵심에서 멀어졌다는 점에 있다.
왜 자장(子張)도 그렇고 자유(子游)도 그렇고 자하(子夏)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방식에 대해 비난의 날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유(子游)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자하(子夏)는 결코 수긍하지 않고 그 말이 지나치다는 말로 반박을 시작한다.
자유(子游)의 의견에 대해 ‘틀리다’라고 하지 않고 ‘지나치다’라고 한 것은 쉽게 넘겨버릴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자유(子游)는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이 따로 구분된 것처럼 예절 공부와 실천의 기본이 되는 쇄소응대(灑掃應對)에 대해 지극히 지엽말단적인 것이라 폄하(?)하였는데, 그 지적을 아주 틀린 것이라 할 수 없겠으나 지나치다고 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스승 공자의 논리를 강조하기 위함이고, 그것은 예절교육은 물론 모든 학문과 실천에 있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논리임을 역설하기 위한 안배에 다름 아니다.
특히 설명의 마지막에 기본이 되는 처음부터 마지막의 응용과 근본적 대의를 실천하는 것을 완성한 이는 스승 공자밖에 없다고 강조한 설명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자는 자하(子夏)의 이 설명에 대해 아주 상세한 부연과 함께 그의 교육방식이 왜 다른 제자들과 다른 결을 갖는지 그리고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倦(권)’은 (‘述而(술이)〉편의)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誨人不倦(회인불권)〕’의 倦(권) 자와 같다. ‘區(구)’는 類(류, 종류)와 같다. 군자의 도는 지엽인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는 것도 아니요, 근본인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기를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배우는 자의 이른바(경지)가 저절로 천심이 있으니, 마치 초목에 대소가 있어 그 종류가 진실로 구별됨이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이른바의 천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익힘의 生熟(설익음과 능숙함)을 따지지 않고서 한결같이 높고 원대한 것을 가지고 억지로 말해 준다면 이는 속이는 것일 뿐이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와 같겠는가. 始(시) · 終(종)과 本(본) · 末(말)이 一以貫之(일이관지)하는 것으로 말하면 이는 오직 성인만이 그러한 것이니, 어찌 門人小子(문인소자)들에게 바랄 수 있겠는가.
자하(子夏)가 문단의 마지막에 그러한 형태를 온전하게 구비하고 실천한 사람은 오직 성인(聖人)인 스승 공자일 뿐이라고 말하며 끝을 맺은 것은 단순히 스승을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어떤 비난도 내쳐낼 수 있는 치트키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근본을 완성하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성인(聖人) 공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그 가르침을 따르는 범인(凡人) 제자들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최선을 다해 그 단계를 하나씩 이루는 방식을 취해야지, 그저 범인(凡人)은 다다를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고 포기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음을 반면교사하는 방식으로 승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하(子夏)가 앞서 보여왔던 설명방식과 같이 자신이 왜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는지 그리고 자신의 방식이 왜 조금은 눈높이를 낮춘 보다 현실적인 구체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설명한 바에 다름 아니다.
이미 바로 앞 장에서 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지엽말단적인 사소한 사례에 대한 적용방식은 근본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변용이 용인된다고 했던 자하(子夏)였기에 이 장이 바로 그 뒤에 나온 것은 편집하는 후대 제자들이 이미 그의 교육방식과 그 깊은 행간의 의미를 파악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 장에서 누가 옳고 누가 잘못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듯하면서 사실관계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앞장의 내용까지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왜 자유(子游)의 지적이 논리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자하(子夏)의 교육방식이 가진 초점이 왜 쇄소응대(灑掃應對)를 중시하였는지 그렇게 기본 중의 기본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그저 성인(聖人)이었던 스승의 거대한 빛에 억눌려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포기하거나 불가능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토닥여주는 교육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자유(子游)의 비판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시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하(子夏)의 교육방식이 추구하는 바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한 정자(明道(명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군자가 사람을 가르침에는 순서가 있어 먼저 작은 것과 비근한 것을 가르친 뒤에 큰 것과 먼 것을 가르치는 것이니, 비근한 것과 작은 것을 먼저 가르친 뒤에 먼 것과 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설명에 이어 자하(子夏)가 제자들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방식에 대해 이렇게 부연한다.
“灑掃(쇄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곧 形而上(형이상)의 일이니, 이치는 대 · 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다만 謹獨(근독)에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거대담론의 근본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반인들에게 있어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자하(子夏)의 가르침대로 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상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먼저여야 하는지를 정자(伊川(이천))는 다시금 아래와 같이 강조하여 설명한다.
“성인의 도는 다시(애당초) 精(정)과 粗(조)가 없으니, 쇄소하고 응대하는 일로부터 의리를 정밀히 연구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관통(통달)하면 단지 한 이치일 뿐이다. 비록 灑掃應對(쇄소응대)의 일이라도 다만 그 所以然(소이연)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여기서 설명의 방점은 ‘所以然(소이연)’에 있다.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그저 행하는 것과 그것이 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와 그렇게 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고 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유(子游)가 말하고자 했던 근본이 관통된 배움이자 실천이라는 설명이다. 혹여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싶었는지 그는 다시 아래와 같이 상세한 부연설명을 곁들인다.
“모든 사물에는 本(본)과 末(말)이 있으니, 본과 말을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쇄소응대가 바로 그러하니, 〈여기에도〉 반드시 소이연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으로 자하(子夏)의 교육방식이 가리키는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다시금 명확히 한다.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올라가면 곧 성인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자하(子夏)의 가르침을 부연하는 정자의 긴 주석에 대해 왜 그렇게까지 긴 주석과 설명이 이어졌어야만 했는지를 자신이 다시 한번 정리함으로서 이 장의 의미를 통해 배우는 자들이 무엇을 익히고 깨달아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정자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조항은 이 장의 글 뜻을 설명한 것이 가장 자세하고 극진하며, 그 뒤의 네 조항은 모두 精粗(정조)와 本末(본말)이 그 나뉨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동일하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순서를 따라 점점 나아가야 할 것이요, 지엽을 싫어하고 근본만을 찾아서는 안 됨을 밝히셨다. 이는 첫 번째 조항의 뜻과 실로 서로 표리가 되니, ‘末(말)이 곧 本(본)이어서 다만 말을 배우면 본이 곧 여기에 있다.’고 말씀한 것은 아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보이는 교육방식의 가장 큰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방편설법’을 들 것이다. 이른바 그 사람의 수준과 상황과 성향을 모두 분석하여 그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방식으로 똑같은 개념을 설명하더라도 매번 설명의 방식이나 예시가 달라지는 천변 무쌍한 가르침을 배태하였다.
스승의 교육방식에서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을 그 밑에서 공부한 제자들이 더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성현(聖賢)을 스승으로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제자는 공부를 헛한 것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공자가 그와 같은 방식을 취했던 가장 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같은 스승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배웠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화시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것을 만드는 인간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장의 대화만을 보고 자유(子游)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하(子夏)는 자유(子游)가 자신의 교육방식을 비난(?)한 근거와 그 생각을 ‘지나치다’라고 완곡히 지적했을 뿐, 그것을 ‘틀렸다’라 비난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子游)의 입장에서는 같은 스승의 가르침이 보여주는 정수는 심오하기 그지없는 도리와 학문적 진리에 중점을 둔 근본적인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여기에 자하(子夏)는 그 부분을 강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을 아직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소화도 시키지 못할 것을 이미 빤히 알면서 입안에 욱여넣는 것보다는 지금 그들이 이해한 정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단계를 올라올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권 찌르기부터 수련하지 않은 이가 1080도 발차기부터 연습하겠다고 할 수 없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해서 고문(古文)의 문리(文理)조차 트이지 않은 자가 <장자(莊子)>나 <노자(老子)> 다소 파격적인 문법방식을 유학의 경전(經典)과 비교하여 논하겠다며 나서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어불성설(語不成說) 일뿐이다.
제 자식이 아무리 사랑스럽다 하더라도, 자신의 부와 권력을 총동원하여,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대학을 보내 더 나은 사회적 위치를 점하게 하려고 편법을 자행해 놓고서는 그 정도는 다들 하는 관행이라고 떠드는 자들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답시고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는 자리에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님을 굳이 설명해야만 알아듣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