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백성들을 도둑으로 만드는가 꼼꼼히 따져보라.

결국 그 책임은 위정자를 비롯한 바로 당신에게 있었음을.

by 발검무적
孟氏使陽膚爲士師, 問於曾子,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 則哀矜而勿喜!”
孟氏가 陽膚(양부)를 士師로 임명하자, 〈陽膚가〉 曾子에게 〈獄事의 처리에 관하여〉 물으니, 曾子가 말씀하였다. “윗사람이 도리를 잃어 백성들이 이반(離叛)한 지가 오래되었다. 만일 〈이반한〉 실정을 알면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이 장은 증자(曾子)가 말년의 공자 나이가 되었을 즈음의 상황으로, 증자(曾子)의 제자 양부(陽膚)가 맹손씨 가문에 의해 獄官(옥관)의 長인 士師(사사)로 임명되었을 즈음 맹 씨(정확하게는 맹경자(孟敬子)를 지칭한다)가 증자(曾子)에게 사법관이 어떠한 자세로 獄事(옥사)를 처리해야 하는지 물으니 증자(曾子)가 그 핵심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윗사람이 도리를 잃어 백성들이 離叛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드라이한 묘사는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이 지나 다시 공자의 나이와 위치가 된 증자(曾子)의 시대에도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뒷구절인데, 소위 배운 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안다면 불쌍히 여겨야지 기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 미묘하다. 그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이 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다.


한편, 앞서 공부할 때 수차례 살펴보았단 제자들이 임지(任地)로 떠나기 전에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했던 상황이랄지 이 장과 똑같이 공자의 제자들을 임명하여 데리고 가면서 위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한 가르침을 구하던 상황의 대화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역책(易簀)하였을 당시 27살밖에 되지 않던 증자(曾子)가 다시 스승의 나이와 상황이 되어 자신의 제자가 큰 벼슬을 하게 되고 그 스승이 된 입장에서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답하는 입장이 된 것이니, 공자의 시대로부터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없이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기 그지없는지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주자는 간략하게 이 장에서 묘사한 상황에 대해서만 다음과 같이 부연하는 것으로 해설을 대신하였다.


陽膚(양부)는 증자(曾子)의 제자이다. ‘民散(민산)’은 情義(정의)가 괴리되어 서로 維繫(유계, 끈으로 맺듯이 서로 맺어짐) 하지 못함을 이른다.


위 주석에서 주자는 원문의 의도를 위정자와 백성 사이의 情義가 멀어짐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하지만 한나라 때 학자 마융(馬融)은 백성이 생활난 때문에 離散하여 떠돌게 됨을 뜻한다고 보았고 다산(茶山; 정약용) 역시 이 설을 따랐다.


마융(馬融)은 이 장의 의미를 ‘백성이 서로 흩어져 가볍게 법을 범하게 된 것은 윗자리에 있는 자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백성의 허물이 아니므로 당연히 이를 가엾게 여겨야 하지 그들의 실정을 얻었다고 기뻐해서는 안 된다’라고 풀이했는데, 다른 나라의 위정자가 실정(失政) 한 것을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왜 자기 나라의 백성이 흩어져버려 법을 가벼이 여기고 어기는 것을 기뻐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쾌한 해설을 해주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현대어의 문법과 고문의 문법이 큰 간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오해(?)이다. 증자(曾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법관의 입장에서 범죄를 저지른 백성들의 죄를 따짐에 있어 백성들이 犯法(범법)을 저지르게 된 실정(實情)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먼저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서 스스로 功名心(공명심) 때문에 함부로 기뻐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시비(是非)를 구분하지 못했던 백성들의 범죄행위의 원인이 모두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위정자들의 책임임을 통감하라는 엄중한 지적이다.


이것은 앞서 공자가 ‘안연(顏淵) 편’에서 말했던 ‘송사를 처리함은 나도 남과 같겠으나, 반드시 송사함이 없게 하리라’라고 한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이니 이 원문의 의도는 역시 공자의 가르침을 증자(曾子)의 방식으로 복기한 것이다. ‘片言折獄(편언절옥; 한 마디 말로 송사(訟事)의 시비를 가린다.)’의 능숙한 재판보다 ‘無訟(무송; 재판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의 상황을 이르도록 만드는 正道政治(정도정치)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공자에서부터 증자에게 이어진 가르침이고 그 근본이 되는 정수를 증자(曾子)가 다시 맹경자(孟敬子)에게 일러준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의미를 모두 이해한 사 씨(謝良佐(사양좌))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의미를 정리한다.


“백성들이 이산됨은 부리기를 무도하게 하고 평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법을 범하는 것은 부득이 함에 핍박당해서이거나 이것이 아니면 무지에 빠져서이다. 그러므로 그 실정(實情)을 알면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그래서 무조건 법대로 죄를 벌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이 장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조선시대 학자였던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飢寒作盜(기한작도; 어리석은 백성이 춥고 굶주리다 못해 도적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만한 면이 있다고 했던 것이다.


부모인 자신이 무능하여 자식들이 배가 고파함에 라면을 훔치다가 절도죄로 체포된 이가 당연히(?) 그 정상을 참작하여 죄를 탕감받아야 한다는 것은 법의 공평성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없는 서민들의 등을 쳐가며 사기를 쳐서 수십억 수백억의 이익을 얻어 전관 변호사를 철옹성처럼 쌓아서 집행유예나 고작 몇 년정도의 감옥살이, 심지어는 범죄 수익을 은닉하여 황제노역을 하겠다고 자청하는 인간쓰레기들의 행태를 뻔히 알면서도 전관들과 형님동생하며 고무줄 기소하는 검사들이나 그에 영합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여전히 확인하고 있다.


전관예우 같은 것은 없다고 겉으로 말하면서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자신들이 마지막에 어디에서 일했는지를 벽에 박아서 광고하는 법비들이 전관으로 개업해서 1년 이내에 100억 이상 땡기지 못하면 검찰이나 법원에서 했던 고생의 의미가 없다고 술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것을 들으며 어이가 없다 못해 역겨워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3심제라고 떠들어대지만, 결국 대법원에 항소해서 2심의 판결을 뒤집는 경우를 정확한 통계자료로 따져보면, 대법관 출신의 전관이 도장만 찍어주고 이름을 넣어줌으로써 성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관은 고사하고 그저 로스쿨 출신의 일반 변호사가 대법원까지 항소해서 2심의 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형사건에서 검사가 이미 불기소했던 사건을 뒤집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확률을 보여준다.

검찰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검사는 기소하지 않는 것으로 부를 챙기고, 기소함으로써 명예를 챙긴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풀이하자면, 유죄가 되는 사건임에도 그들을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뒷돈을 챙기고, 국민과 여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의 경우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통해 멋지게(?) 기소를 해서 이름을 드높인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기소독점권이 검찰에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인데, 검찰만 썩어빠진 것인가 오해하기가 좋은데, 실제로 사법고시로 법비의 자격증을 갖출 수 있게 되던 시절, 사법연수원의 성적이 높은 순으로 보면, 검찰이 1순위가 아니라 법원이 1순위였음을 감안하면, 기소조차 하지 않는 사건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상세히 보면,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사에게 검찰에서 유죄인 사건을 덮어주려 하니 다시 한번 살펴달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가 있기는(?) 있다.


‘있기는 있다’라는 가볍기 그지없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당신이 이제까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검사는 쓰레기가 많지만 판사는 그나마 좀 공정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깨뜨려주기 위함이다. 썩은 사과가 들어있는 상자에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썩어있는 부분이 맞닿은 부분이 먼저 썩어 들어갈 뿐 혼자서 깨끗하게 썩지 않으며 혼자서 독야청청함을 자랑하는 사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주인공 빈센조가 강직한 검사라고 항변하는 자에게 반이 썩은 사과를 보이며 묻는다.


“이 사과는 썩은 사과일까요? 아니면 썩지 않은 사과일까요?”


반쯤 썩은 사과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썩은 사과라 부를 뿐이다. 그런데, 그런 평가는 영화나 드라마의 악질 검사나 부정한 판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작금의 현실이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극적임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보는 아이러니를 경험한 지 오래이다.

사법고시를 보거나 수천만 원의 학비를 쏟아부어 로스쿨을 졸업하여 겨우 법비 자격증을 받은 이들만이 사회를 썩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검찰의 사건 종결권을 나눠 갖겠다고 검경의 날 선 알력을 드러냈던 그 해프닝을 통해 경찰은 드디어 자신들이 사건 종결권을 나눠갖는 영광(?)을 얻었다.


일반인들 입장에서 보면 사건종결권이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싶겠지만, 전술했던 바와 같이 검찰에서 유죄가 되는 건을 돈 많이 가진 자가 덮고자 할 때 덮어주고 챙길 수 있던 돈을 경찰에서도 공식적으로(?) 챙길 수 있는 특권(?)을 나눠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의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서는 종결할 수 없다는 기존의 방식이 바뀌었는가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경찰은 여전히 자신들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신고하거나 고소하고 고발한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하게 되면 경찰에 한번, 그리고 다시 검찰에 그 사실을 따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그 형태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경찰이 얻은 것이 없지 않냐며 의아하게 여길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수사종결권이 경찰에 없을 때에도 경찰은 자신들이 뒷돈을 받고 여전히 사건을 덮으려고 하면 덮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대단하신 검사나리께서 경찰에서 혐의 없음이나 증거불충분을 의견으로 송치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산처럼 쌓인 사건 파일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검토해서 솎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사건을 검찰에 쳐올리는 경찰은 경험상 검찰의 그러한 생리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부터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건을 덮기도, 혹은 더 크게 부풀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지갑도 부풀려왔더랬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서민들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처리했냐고 따지면, “저희가 검찰에 송치했으니까 제 사건 처리가 잘못되었다면 검사님이 바로잡으시겠지요. 만약 검찰에서도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면 제 수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증거인거구요.”라는 인간이하의 뻔뻔한 변명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던 것이다.

거기서 전관도 아니면서 경찰서에 기생하며 사는 삼류 변호사도 등장한다. 경찰의 수사단계에서 변호사가 붙는 경우는 경찰과 형님동생하면서 수사단계에서 이러한 생리를 이용하여 경찰이 검찰에 송치할 때 법적으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전문적인 내용의 초고를 작성해 주는 수고(?)를 대신해 줌으로 해서 거액의 밥값을 한답시고 사건을 무마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경기도에서 땅값으로 최고를 자랑한다는 Y시에서 공공기관 마을 공동 보조금을 유용한 욕심 많은 무지렁이 사기꾼이 주민들에게 덜미를 잡혀 고소를 당했다. 마을 공동 보조금을 자기 쌈짓돈처럼 자기 지인들과 꿍꿍이로 고기를 몇 10킬로 사 먹고, 버스까지 대절해서는 여행을 가서 가장 비싼 회식을 공공 자금으로 턱턱 하질 않나, 심지어 마을회관의 기름보일러를 채웠다고 하면서 정작 최대 용량이 200L였는데, 350L를 결제해 놓고서는 자기 지인의 집 기름보일러를 채워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버텼다.


더 심한 것은 공동 보조금으로 이루어진 마을 주민 건강검진에 마을에 살지도 않는 자기 동생내외를 비롯해서 한 집에 부부 2명만 된다는 사실까지 무시한 채 자기 자식과 조카까지 한 사람에 50여만 원이나 주는 고급건강검진을 전횡한 사실이 병원 사무장의 자백으로 드러났다.


고소를 당한 그는 겁이 났는지 경찰과 친하다는 삼류 변호사를 고용해서 경찰조사에 응했다. 삼류 변호사라서가 아니라 전관이 오더라도 영수증이 버젓이 남아 있는 공금유용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맞다. ‘증거불충분’이라고 검찰에 송치되었고 검찰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도장 하나 찍어서 불기소를 결정해줘 버렸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어린 정인이가 몇 번이나 살 기회가 있었음에도 경찰과 검찰은 그와 같은 짓을 반복하여 사건을 뭉개버리는 바람에 지옥 속을 걸어야만 했고, 억울하게 악처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계곡에서 물속에 빠져 죽은 소심한 이의 죽음은 사고사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뻔했다. 그 실정(實情)은 검사나 판사도 신경 쓰면 알 수 있을뿐더러 정작 그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서민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뭉갠 것은 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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