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로 흘러드는 것이 오물임을 진정 몰랐더냐?

하수구에 처해 있으면서 웬 오물투성이냐고 투덜거리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子貢이 말하였다. “紂王의 不善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으니, 이 때문에 君子가 下流에 거하는 것을 싫어한다. (下流에 있으면) 天下의 惡이 모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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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물을 비유한 특성 때문인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8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이른바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훌륭한 선은 물과 같다.)’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해당 장의 내용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러 있는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이 장과 비슷한 내용의 물과 관련한 자공(子貢)과 공자의 일화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삼서(三恕)’에 언급되고 있어 자공(子貢)이 이 장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공자의 어떤 가르침을 복기하고 있는지를 참고할 수 있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가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는데, 자공이 이렇게 묻는다.


“군자께서 큰 물만 보시면 반드시 오랫동안 바로 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쉬지 않고 흘러가며, 또 모든 생물을 길러 주면서도 그 덕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물이란 덕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도 반드시 그 이치를 따르니 이것은 의리인 것 같고, 또 넓고 넓은 것이 굽히고 다하는 때가 없으니 이것은 도(道)와 같고, 백 길이나 되는 골짜기를 돌아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것은 용맹스러운 것 같고, 도량(度量)은 반드시 평면을 가지니 이것은 법과 같고, 아무리 가득 차더라도 기울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정직한 것 같고, 곱고 가늘게도 통하는 것은 잘 살피는 것과 같고, 근원(根源)을 떠나서 반드시 동쪽으로만 가는 것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 같고, 나아가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데 만물(萬物)이 여기에 따라서 깨끗해지니 이것은 변화도 잘하는 것 같다. 물의 덕이 이와 같은 까닭에 군자는 물을 만나면 반드시 오래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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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보면, 공자 역시 앞서 살펴보았던 <도덕경(道德經)>의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그 비유의 맥락을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은, 자공(子貢)이 단순히 스승의 가르침을 반복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더한 것인지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 장의 독특한 전제는 모든 학자들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고 비난에 마지않는 천하의 망나니로 지칭되는, 은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紂王)에 대해 ‘不善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라는 모호하고 유여한 표현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물에 대한 비유는 앞서 <도덕경(道德經)>이나 공자의 가르침에서 도(道)를 물에 비유한 것의 안 좋은 사례를 극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紂王(주왕)이 평소 밥먹듯이 惡行(악행)을 저질러왔기 때문에 지대가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면서 온갖 오물이 모여들듯이 모든 악행들이 紂王(주왕)에게 모여들었다는 묘한(?) 논리를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하류에 해당하는 그런 더럽고 천박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 자체가 악행을 자처하는 것이 되니 嫌惡(혐오)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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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자는 그 비유와 의미에 대해 배우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下流(하류)’는 지형이 낮은 곳으로 모든 물이 모여드는 곳이니, 사람의 몸에 더럽고 천한 실제 행실이 있으면 또한 악명(惡名)이 모여듦을 비유한 것이다. 자공이 이를 말한 것은 사람들이 항상 스스로 경계하고 살펴서 한 번이라도 그 몸을 불선(不善)한 곳에 두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요, 주왕이 본래 죄가 없는데 헛되이 악명을 뒤집어썼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한다고 설명한 낮은 곳이라는 표현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실로 인해 몸이 汚賤(오천)한 것을 비유한 의미라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오물에 해당하는 악행이 하류로 쏠린다는 표현은 ‘한번 악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면, 천하의 모든 악한 일들을 죄다 그가 저지른 듯이 간주해 버린다’는 세간(世間)의 냉엄한 평가방식(?)을 더욱 강조한 표현이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은 이것이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한 부연을 덧붙였다.


전해 들은 것은 모두 꼭 사실일 수가 없거늘 어느 한 사람이 악명을 얻게 되면 어리석은 세속 사람은 대개 예전에 귀담아들었던 다른 사람의 악행도 모조리 들추어 그 사람에게 들씌우고 또 덧붙여 허위를 조작하여 거짓말을 전파하고 그 말이 오래되면 실제의 사실로 탈바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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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공(子貢)은 이 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은나라를 마지막 왕으로 나라를 패망시켰다는 폭군(暴君)의 대명사 주왕(紂王)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나 새로운 시각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은 명확한 공부가 부족한 초심자들이 흔히 범하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오는 혼란일 뿐이다.


그러한 선입견과 편견을 교정하기 위해 주왕(紂王)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주왕(紂王)은 하나라의 폭군 걸왕(桀王)과 더불어 전형적인 폭군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사기(史記)>에 보면, 걸왕(桀王)에 대한 악행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나 묘사는 등장하지 않은 채 그저 덕을 닦지 않고 무력으로 백성을 폭압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것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기록한 반면, 주왕(紂王)에 대한 포학(暴虐)은 비교적 구체적이고 상세히 기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주왕(紂王)은 본래 왕으로서의 자질과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두뇌도 명석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듣거나 보고 그 진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 날카로웠고, 체력과 용맹함도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녹화 동영상이 없었음에도 사마천(司馬遷)이 그렇게 표현한 것은 물론 그 당시의 기록들을 참고로 한 객관적인 평가이기도 하였겠으나 무엇보다 주왕(紂王)이 그러한 재능과 자질을 선한 쪽으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역으로 강조하기 위한 서술방식의 묘를 살린 것이라 봐야 타당할 것이다.


주왕(紂王)은 그 기질과 성품이 포학(暴虐)하였고 특히 감정의 기복이 극단적인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달기(妲己)가 주왕(紂王)을 사로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절세의 미인이기도 했지만 좀처럼 보기 드문 그 롤러코스터 같은 주왕(紂王)의 감정기복을 맞출 수 있는 독보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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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은왕조에는 천자의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貢)이라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인물은 서백창(西伯昌; 이후 주나라의 문왕), 구후(九侯), 악후(鄂侯)의 세 사람이었다. 주왕(紂王)이 나쁜 사람이지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던 탓인지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격적으로나 능력면에서 출중한 인물이었다. 구후(九侯)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왕의 부인이 되었는데 나중에 주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으며, 아버지인 구후(九侯)도 사형에 처해지는 것도 모자라 그 시체가 젓갈로 담가지는 잔인함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악후(鄂侯)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군주에게 직언(直言)을 간하였다가 역시 죽음을 당하여 그 시체가 포(脯)로 떠지는 잔혹함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홀로 남게 된 서백은 이 모든 잔혹함의 끝을 보고서 주왕의 행동에 탄식을 마지않았다. 그런데 그 탄식하는 모습조차 밀고한 자가 있어 서백은 유리(羑里)의 옥에 갇히게 된다. 이에 서백의 가신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녀와 진기한 보물 등을 모두 모아 바치는 조건으로 포락의 형을 겨우 사면받아 서백을 자신의 봉토(封土)로 데리고 돌아오게 된다.


주왕(紂王)이 그 모든 잔인함을 저지른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달기(妲己)라는 원흉이 있었다. 왕을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고 싶었던 달기(妲己)의 입장에서는 자기 멋대로 할 수 없게 직언하는 삼공의 존재가 눈엣가시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던 삼공이 그 정도의 인격을 갖춘 충신들이었다면 그 밑에 충신들이 없었을 리 없다. 달기(妲己)의 전횡에 멸망의 길로 추락해 가는 은왕조를 살리겠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언한 이들은 적지 않았다. 여기서 앞서 우리가 공부하고 공자가 언급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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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庶兄)인 미자(微子)는 간하여도 주왕(紂王)이 전혀 듣지 않자 그 길로 떠나버렸고, 숙부였던 기자(箕子)는 거짓 미치광이가 되어 노복(奴僕)이 되었다가 주왕에게 발견되어 옥에 갇히게 된다. 또 다른 숙부였던 비간(比干)은 목숨을 걸고 간언 하다가 주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비간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알아보자.’는 대상이 되어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결국 서백창의 아들이던 발(發)은 아버지를 문왕(文王)이라 추존하고 태공망 여상(呂尙)을 사부로 삼아 상부(尙父)라 부르며 모든 일에 자문을 받으며 수많은 제후들의 세력을 모아 주왕을 몰아내고 무왕(武王)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주(周) 왕조를 세우게 된다.


새로운 왕조가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전 왕조를 폄하하거나 그 흔적과 자취를 지우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이루어진 역사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물론 주왕(紂王)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지 3천여 년이 지난 뒤에야 중국의 저명한 사학자 곽말약(郭沫若)에 의해 주왕(紂王)이 그저 폭군이었던 것이 아님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이미 3천여 년에 걸쳐 모든 학자들과 기록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언급되어 인식되었던 사실에는 지금까지 크게 변화가 없다.


승자 독식이라는 역사의 기본 기록원칙을 감안하면, 이 장에서 자공(子貢)의 언급은 아마도 당대 학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인식들이 어느 정도 공유되었음을 시사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우는 자들이 다시금 이러한 부분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여 조금은 길게 설명을 부연하였다.


그러나 주왕(紂王)이나 연산군(燕山君)이 받았을지도 모를 그 억울함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견해와는 별개로, 자공(子貢)이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점은 악행은 한번 저지르게 되면 하류로 모여들 듯 모두 하수구로 흘러들어 자신의 악행이 아닌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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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대한민국에는 자질이 뛰어나고 현명한 대통령도 없지만, 삼공에 해당하는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부족한 대통령에게 직언하며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일러줄 만한 인물도 결코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그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의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이 눈물겹게 매일처럼 펼쳐지고 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8년이나 베이징에서 유학을 할 정도로 북한에서는 금수저에 해당했던 인물이 자신이 최고의 위치인 유럽에서 외교관을 하며 VIP를 측근에서 담당하는 최고의 지위였다고 거들먹거리다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망명을 하고 역시 한국에서 VIP대접을 받으며 빨간당의 국회의원으로 강남 한복판에 깃발을 꽂은 이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간략하게나마 그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기가 막히게 자신의 삶을 위로 끌어올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번 해프닝을 마지막으로 그 행보를 끝낼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자신을 보좌해야 하고 믿음으로 결성되어있어야 할 보좌진과의 지극히 은밀할 수밖에 없는 회의 내용이 버젓이 녹취되었고, 그것이 언론에 생중계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그가 당황해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내가 그냥 과장된 거짓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라고 손사래를 젓더라도 북한에서라면 모를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바보는 여의도의 정치꾼들을 비롯해서 대한민국의 어떤 개돼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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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바보가 자신을 보좌해야 할 보좌진에게 청와대 수석과의 대화를 간접인용하면서 공천을 받으려면 최고위원의 자리에 있을 때 마이크에 대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가 끝이라고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그를 감싸고 몸을 바쳐 보좌해도 부족해야 할 측근이 그의 등에 칼을 꽂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 녹취를 언론사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미 하수구로 흐르는 오물은 그 아래에 있을만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뒤집어 씐다 자공(子貢)이 조심하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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