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수는 한다, 바로잡는 자가 없을 뿐이다.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子貢이 말하였다. “君子의 허물은 해와 달이 먹히는 것(日食 · 月食)과 같아서 잘못이 있을 적에 사람들이 모두 보고, 허물을 고쳤을 적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이 장에서 자공(子貢)은 군자의 잘못을 일식과 월식에 비유한다. 원문에는 잘못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고, 허물을 고쳤을 때는 사람들이 우러러본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뒷구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하더라도 앞구절에서, 잘못이 있을 적에 사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이 일식과 월식의 어떤 점과 같다는 것인지 조금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아쉽게도 이 장에 대한 주자의 주석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위의 비유에서 말끔하게 해석되지 않는 의아함을 푸는 것이 이 장에서 자공(子貢)이 의도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열쇠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일식과 월식의 어떤 점이 군자의 잘못과 닮아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이 장의 모호함을 해결할 수 없다. 이 장의 비유는 일식과 월식이 맞지만, 자공(子貢)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부분은 그 천체현상이 아닌,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된 현재에도 그렇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일식이나 월식을 보고 놀라 기이하게 여겼다. 흔히 볼 수 있는 현상도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그러한 현상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 알고서 이해하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일식에 대한 현상적인 과학적 분석은 이미 명확하게 이루어진 바 있어, 배우는 자들에게 있어 일식이 신의 메시지와 연결 지을 정도의 무지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일식이나 월식을 보면서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한 일반인들의 반응이 바로 군자가 잘못을 했을 때의 상황과 꼭 닮아 있다는 것이 자공(子貢)의 고차원적인(?) 비유에 다름 아니다.
군자나 소인이나 인간이기에는 매한가지인지라 실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군자는 소인과 달라서 자신의 과실(過失)을 숨기려 들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존경에 마지않는 완벽해 보이던 군자의 과실(過失)을 보고서 마치 일식이나 월식을 보고 놀란 것과 같이 기이하게 여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군자는 자신에게 과실(過失)이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그것을 dls인정하고 고치려고 하는데, 군자가 그렇게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군자를 우러러보고 감복(感服)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굳이 ‘감복(感服)’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대단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감탄하고 존경의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적인 실수를 하되, 그다음에 보이는 행동이 자신들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 모습이 자신을 반성하게 하고 다시금 자신도 군자의 그러한 점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을 들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자공(子貢)의 이러한 비유는, 앞서 공부했던 ‘학이(學而)편’의 8장에서 공자가 강조에 마지않았던 ‘過則勿憚改(잘못을 저질렀다면 고치기를 꺼려서는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또 다른 신박한(?) 비유로 일궈낸 것이다.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앞서 자하(子夏)는 ‘小人之過也, 必文’이라 하였는데, 이 장에서 군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보이는 태도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소인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소인은 군자와 달리 자신의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은 물론, 자기 자신을 속이고 말재주로 번드르르하게 꾸며 은폐하려고만 한다는 적나라한 직설로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앞서의 완곡한 표현만으로는 강조로 부족하다 여겼는지 ‘위령공(衛靈公)편’의 29장에서 ‘過而不改, 是謂過矣.(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허물이다.)’고 보다 준엄한 목소리로 강하게 군자인척하려는 대부분의 소인들을 질책한다.
앞서 설명했던 자하(子夏)의 가르침에서, 그가 소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한의 행태를 벌이는 점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마지않는 포인트는 다른 이들에게 실수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꾸며대고 은폐하는 것보다도, 그 행위가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사실에 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장에서 자공(子貢)의 가르침이 보여주려 했던 가장 큰 포인트는, 군자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깨닫는 순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행위보다 그러한 군자의 행위가 그것을 보고 듣는 일반인들에게 감복(感服)하게 만드는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소인에 대비되는, 모든 배우는 자들의 절대적인 목표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군자(君子)’라 하더라도 과실(過失)이 없을 수 없다고 자공(子貢)은 전제한다. 다소 논리적으로 모순이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군자도 인간이기에 스승 공자 같은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군자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둔 것이다.
역대의 현명한 군주라고 하는 이들이나 정통 유학에서 도(道)의 적통(嫡統)을 이어왔던 인물들을 보더라도 그들이 그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이들이었기에 존경에 마지않는다는 비현실적인 종교적 숭앙은 스승 공자는 물론이고 자공(子貢)이나 자하(子夏)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부를 강조했던 스승에게 공부를 배운 제자들이니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형이상학적인 개념어로 범벅을 해버리는 공부방식은 공자학파에게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렵다. 이후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정치꾼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포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조선시대의 유교(儒敎)만이 그러한 기괴한 헛짓거리를 해댔을 뿐, 본래의 유학은 직접 눈에 보이는 가르침과 그 배움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주로 여길 뿐이다.
세계적인 외교무대에는 나서본 적도 없고, 그저 취조실로 사람들을 불러 호통치고 겁박하는 것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술자리도 조직관리의 연장이라며 보스역할을 하며 폭탄주 술잔을 연신 내밀면서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를 마네키네코의 손마냥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개똥같이 이야기해도 보스가 그리 얘기하니 알아서 다 이해하던 문화에 젖어 있던 이는 그가 평생 했던 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평생을 몸담았던 조직에서 그 와중에 발생한 말실수를 수정해 주는 것은 감히 상사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이고, 선배의 말을 끊는 예의 없는 짓이라는 문화였기에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넘어갔다 하더라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통수권자로 세계 외교 무대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가는 매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생 몸담았던 조직에서 보고 듣고 익힌 바와 같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피의자의 자백과도 같은 효과를 갖는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반사식 반응은 사실을 보도한 방송사를 조작방송사니 국익을 해치는 방송사니 하는 비난으로 공격하기에 이르렀고, 사실을 듣고 본 국민들은 물론 인터뷰를 직접 진행한 외국 언론사의 기자에 이르기까지 ‘니들이 잘못 듣고 오해한 거야.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야’라는 블랙코미디를 하루가 멀다 하고 양산해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대놓고 로비를 하고 불법 정치자금까지 대주었다고 커밍아웃했던 함바왕과 그 아들에 대해, 자신의 선거를 돕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며 보좌관선에서 꼬리를 자르며 구속의 기로를 넘어 사지(死地)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온 4선의 국회의원이 어제 방송을 통해 떠드는 같잖은 인터뷰에 그의 평생이 어떠했는지 여실히 복기할 수 있었다.
사이비 목사를 찾아가 헤헤거리며 마치 자신이 여당을 대표한다는 식으로 알랑거리는 것도 모자라, 그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미국까지 날아가 사이비 목사가 우파를 통일하셨네 어쩌네 하질 않나 연이은 망언을 저지른 자나 북한에서 내내 금수저로 대접받다가 빨간당의 특수성에 편승하여 강남 한복판에서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서 그것을 계속 유지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더 자극적인 말을 꺼내는 것으로 연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다가 자기 식구의 등에 칼이 꽂히는 녹취록이 터져 더 큰 무언가가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최고위원이라는 자들을 옹호하며 나온 말이었다.
“정권교체를 하는데 모두가 힘을 싣고 함께 노력해 온 동지들인데 그 정도 잘못을 했다고 하여 중징계를 논하며 내년 총선에까지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전국을 뒤흔드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일어났고, 그 피의자가 이미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했음에도 그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데에 있어 국회정론관을 빌려주는 일조차도 하지 않고 하다못해 피해자들의 모임에 얼굴을 내놓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그들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어도 못할 판에 그는 한가로이 방송에 대고 그따위 말을 내뱉고 앉아 있었다.
그가 함바왕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을 때에도 그는 버젓이 유튜브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저는 우리 지역의 민원이 들어왔을 때 그 민원인을 직접 만나고 달려가서 그 민원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을 뿐입니다. 제가 지역 민원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인데요.’라며 호들갑을 떨어댔었다.
과연 미추홀 전세사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3명이 넘어갈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가 적극적으로 민원인들과 독대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는지 우리는 해당 사건으로 울부짖는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나 그 어떤 모임에서도 그의 등판을 볼 수 없었다.
청와대에서 끌려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감옥으로 직행한 전직 대통령을 유일하게 ‘누나라’고 부른다는 것이 자랑인 듯 홍보하는 그가 4선의 국회의원이라는 점이 의아하기 그지없다. 그 지역구의 투표권자들은 정말로 이런 꼴까지 봐야만 그가 더 이상 정치라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왜 이제까지 결행하지 못했는지 결국 그들은 그 지역의 대표를 잘못 뽑아서 그런 힘겨운 횡액을 맞아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 와중에 기레기 언론에 대고 ‘이게 모두 전 정권이 잘못해서 빗어진 예견된 재앙’이라는 헛소리나 듣게 된 것이다.
그가 선거과정에서 함바왕과 결탁하고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범죄사실을 결국 그의 보좌관이 했다는 식으로 꼬리를 자른다면, 파란당의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돈잔치 역시 전 당대표는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밑에 있던 권력욕에 눈이 시뻘건 자들이 벌인 일이라는 억울한(?) 토로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꾼이랍시고 뒷돈을 받아 챙긴 여자의 핸드폰을 포렌식해서 나온 3만 건 이상의 녹취는 당연히 그 핸드폰을 압수해서 포렌식 한 검찰에서 가지고 있는 특수한 증거일 것이다. 그 녹취내용이 버젓이 기자의 손에 들어가 방송을 타고 나와도 그 내용이 충격적이니 그 특수증거가 어떻게 기레기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대강 넘어가는 것이 정상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연일 터지는 빨간당의 얼굴 팔리는 사건사고에 마치 균형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듯이 일반 국민(a.k.a. 개돼지)들이 가장 흥분할만한 코인으로 이익을 본 파란당의 국회의원을 저격한 것의 시작은, 역시 검찰만이 알 수 있는 특수한 증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수사를 하는 주체가 되는 자가, 피의사실을 타인 혹은 언론에 흘리는 짓은 명백하게 현행법령에서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받은 검사는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규정하고 기소할 수 있는 이가 검찰이라는 조직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리도 만무하지만, 만에 하나 그 첫 번째 기소가 이루어지고 그 범죄행위를 한 검사가 단순히 옷을 벗는 의원면직이 아닌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까지 가게 된다면 검찰은 두 번다시 이제까지의 그 어마어마한 무기를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검찰의 수장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자의 임기 내에 자신들에게 그런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가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라 자신하고 있기에 최근에 벌어지는 일과 같은 그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이 장의 가르침을 적용하며 군자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일갈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국민 모두가 안다. 하지만, 당신들이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당신이 사는 사회는, 이 나라는 당연히 쓰레기통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쓰레기통 안에 든 것들은 한 가지 명사로밖에 불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