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특별한 스승을 따로 둔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 배우는가보다 어떻게 배우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by 발검무적
衛公孫朝問於子貢曰: “仲尼焉學?”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衛나라 公孫朝가 子貢에게 물었다. “仲尼는 어디에서 배웠는가?” 子貢이 말하였다. “文王 · 武王의 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賢者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不賢者(어질지 못한 자)는 작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文王 · 武王의 道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夫子께서 어디선들 배우지 않으시며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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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뚜렷하게 스승을 두지 않은 채 성현의 경지에 오른 공자의 스승을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였을까? 衛나라의 대부였다고 주자의 주석에서 소개된 공손조(公孫朝)라는 인물이 자공(子貢)에게 ‘당신의 스승, 仲尼(중니)는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가?’라고 묻고 있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그가 누구의 문하에서 학위를 받았는지 지도교수를 묻는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이는 공자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학통(學統)’을 중시해서, 그가 누구에게서 그 학문을 배우고 익혔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공자의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이 이 ‘자장(子張)편’에 나열되는 것도,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공자의 제자임을 알고서 그 제자들을 가신(家臣)으로 불러들인 것도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공자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나 <사기(史記)>의 기록을 찾아보더라도, 공자가 周나라에서 노담(老聃)에게 禮를 물었다거나 음악을 물어 배웠다는 언급 등이 나오기는 하지만 특정한 스승을 두고서 학문이나 무언가를 배웠다고 하는 증거는 찾아보기도 어렵거니와 약간의 언급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한 확증 역시 없다.


이 장에서의 핵심은 공손조(公孫朝)의 질문이 아니다. 공손조(公孫朝)의 질문으로 대신되어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배우는 자들에게 있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그 당연한 학풍에 대한 사례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공자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인데, 그것에 대해 가장 명확하고도 확실한 대답으로 자공(子貢)의 답변으로 꼽아 이 편에 실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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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子貢)은 학통(學統)이 아닌, 스승 공자가 그토록 강조에 마지않았던 정통유학의 적통(嫡統)을 文王 · 武王의 道를 언급하며 그대로 복기하고, 현명한 이(賢者)와 현명하지 못한 이(不賢者)의 차이를 대조적으로 설명하였다.


자공(子貢)의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공자의 적통(嫡統)에 관한 설명을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일깨워준다.


‘文武(문무)의 道(도)’는 문왕 · 무왕의 교훈과 功烈(공렬), 그리고 모든 주나라의 예악과 문장이 모두 이것이다. 사람에게 있다는 것은 사람들 중에 이것을 기억하는 자가 있음을 말한다. ‘識(지)’는 기억함이다.


자공(子貢)이 대답의 마지막에 ‘夫子께서 어디선들 배우지 않으시며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시겠는가!’라고 끝을 맺은 부분은 호학(好學)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공자를 가장 잘 표현한 설명으로 꼽힌다. 다시 말해, 공자는 好學한 탓에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라도 배웠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스승을 따라 한 사람에게 오로지 매달려 배울 필요가 없는 존재였음을 역설한 것이다.


공자가 늘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도(道)의 적통(嫡統)’을 강조하고 그 적통(嫡統)을 자신이 계승한 이였음을 은미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도(道)의 적통(嫡統)’이라고 시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관계가 세간(世間)에서 말하는 학풍(學風)으로 이어진 사승(師承) 관계가 아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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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스승이 없이 그저 태어날 때부터 아는(生而知之) 신(神)적인(?) 자라 일컬어지는 것을 공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술이(述而) 편’의 19장에서 공자는 스스로 자신을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애써 구하는 사람’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비슷한 문답은 ‘위령공(衛靈公) 편’의 2장에서도 나온다. 아마도 이 장에서의 자공(子貢)의 설명은 그 문답과정에서 정리된 것이 아닌가 유추할 수 있는 밀접한 내용이 등장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사자성어가 언급되면서 유명해진 그 대화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스승 공자는 자공(子貢)에게 자신이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자공(子貢)은 너무도 당연하게 그렇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차분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한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었을 뿐이다.(一以貫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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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현대 해설서에서는 이 ‘일이관지(一以貫之)’의 해설을 하면서, 배우는 이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고 나면 한 가지 이치로 모든 일을 꿰뚫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는데 나는 그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해설이 맞다면, 그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오르기 위한 배움의 과정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이란 말인가?


때문에 나는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는 근원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행하는 데 있어 명확한 기준이라 풀이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분야를 기초부터 응용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스승은 없다. 그것은 공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결코 무엇이든 알고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누차 설명했거니와 뭐든 배우지 않고서도 일정 정도의 경지를 통달한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도사(道士)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이 장에서도 공자의 배우기를 좋아했던 천성적인 호학(好學)을 바탕으로 설명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배움에 있어 확고한 자신만의 기준이 바로 ‘도(道)의 적통(嫡統)’을 규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가장 기본에서부터 출발하자면,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라는 대의명분이 바로 그 기준인데, 그것은 처음에는 명분이자 이유가 되지만 그렇게 배움을 쌓아하고 어느 한 분야를 통달하게 되면 그 원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됨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파악하기 위해 공부하지만, 그것을 공부하게 되는 과정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운다는 것의 기본원리가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시비(是非)를 가리는 안목과 자기 기준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릴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다.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면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 파악하게 되는 명확한 기준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모든 것에 있어 배움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시비(是非)를 따질 것은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공자가 설명하고 있는 시비(是非)를 가리게 되는 구분은 보다 깊고 높은 차원의 공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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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공자가 악기를 배우며 음악을 배울 때, 분명히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음악에 조예가 있는 이에게 배웠지만, 공자는 음악의 저 너머에서 그 음악을 만든 이의 생각을 읽는 단계에 아주 단시간 내에 도달하여 오히려 악기를 가르쳐 준 선생님, 사양자에게서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것은 공자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엄청나게 뛰어난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깨치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는 그 배움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자 목적에 도달하고자 그 근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그것을 궁구하는 배움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며, 어떻게 공부해야만 그 진리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도(求道) 의식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 장에서 자공(子貢)이 자기 스승 공자에 대해서 대답하는 구절구절에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이 녹아들어 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그저 스승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 그런 스승에게 배워 자신도 그 ‘도(道)의 적통(嫡統)’을 계승하고 있음을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스승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를 배우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본을 궁구하여 다른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더라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그것을 어떻게 배워야 할 지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그것을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목적의식을 갖추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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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버이날은 지나, 스승의 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의 달력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였다가 어버이가 되었고 직업상 스승의 날의 수혜자가 되어버렸다. 되었다가 아니라 되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월이라는 타의에 의해 준비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명확히 하고자 함이다.


평생을 공부하고 가르쳐왔으면서도 존경할만한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이를 단 한 명도 두지 못한 입장에서 나만큼은 그런 이가 되고자 했던 노력이 어떤 성적표를 받았는지 아직도 그것을 펼쳐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나의 부족함에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그것은 굳이 스승으로서도 그렇지만 부모로서도 자식으로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행보를 하고 이제까지 배운 내용에 맞춰 살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부모님에게는 늘 부족한 자식일 뿐이고,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존경에 마지못할 부모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만 같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무엇하나 이룬 것이 없구나 싶어 늘 후회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한다.


전술한 것과 같이, 세월은 자의와 상관없이 후회를 하든 반성을 하든 아니면 그냥 제멋대로 살아가든 똑같은 시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밀어내듯 흘려낸다. 반성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눈이 멀어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여 짐승 쪽에 가까워있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논할 계제도 되지 않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연신 반성만 하고 후회하면서도 전혀 그 잘못을 개선하지 못하는 이의 문제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더욱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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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잘못해서 교무실에 끌려와 꾸지람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며 반성문을 쓰는 것은 과정일 뿐, 그 반성의 완성은 그다음부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여 그 윗 단계로 올라서는 것이다. 매번 똑같은 지적을 받고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회초리 맞는 것에 타성이 생긴다면 그것은 체벌의 의미조차 희석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세월의 거침없는 흐름은 금세 어린이를 부모로 만들고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것은 다시 말해, 부모님이 당신이 엄청나게 잘 풀려 대박이 나서 효도할 것이라는 부도수표를 기다려줄 만큼 세월이 멍하니 당신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벌어서 먹고살기가 어려우니 조금 더 자리를 잡게 되면 아이들에게 이층침대를 사주고 멋진 장난감을 사줄 것이라고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구차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미 모두 자라서 당신이 준비가 되었다고 할 즈음에는 이미 모두 자라서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들지도 않게 된다는 말이다.


굳이 내가 ‘스승을 두지 않고서 배움을 쌓아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인물이 나의 스승이고 내가 배운 가르침의 근본’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낸 자공(子貢)의 대답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에게 더 잘해주고 싶고 더 풍족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 상황을 무시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럴 수 없는 나중에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자공(子貢)이 뼈에 새긴 스승의 가르침이 보여준 핵심은, 바로 근본이고 그 근본을 통해 배우고 익혀 실천에 배어 나온 목적이라는 점이다.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자고 스스로가 법을 어기고 초법적인 행동을 해가면서 악을 처단하는 인물들이 히어로로 묘사되는 영화와 드라마가 통쾌할지는 모르겠으나 그 행동화가 결코 합리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범법을 통해 사리사욕을 챙긴 자들의 그것과 크게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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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음의 위기에 몰렸을 때도 하늘을 우러러 ‘하늘이 결코 이 문(文)을 정녕코 버리지 않으신다면 제까짓 놈들이 나를 어쩌랴!’라고 외칠 수 있는 당당함은, 공자가 스스로 ‘도(道)의 적통(嫡統)’을 잇는 계승자임을 자부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 사리사욕 채우기에 혈안이 된 자들이 국익을 위한다고 입으로만 떠들어댄다고 그것이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을 왜 4년이 될 때마다 잊고서 그들의 사탕발림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잘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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