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볼 수 없으니 진실이 없다고 우길 셈이냐?

탁하고 썩은 네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by 발검무적
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以告子貢. 子貢曰: “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竅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조정에서 大夫들에게 말하기를 “子貢이 仲尼보다 낫다.” 하였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이것을 子貢에게 말하자, 子貢이 말하였다. “궁궐의 담장에 비유하면 나(賜)의 담장은 어깨에 미쳐 집안의 좋은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夫子의 담장은 여러 길이어서 그 문을 얻어 들어가지 못하면 宗廟의 아름다움과 百官의 많음을 볼 수가 없다. 그 문을 얻는 자가 혹 적으니, 夫子(叔孫)의 말씀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 장에서는 노나라에서 중용되어 활약했던 자공(子貢)의 위상이 당시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과 대화가 오고 간다. 이 장에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중용되지 못하고 천하를 주유하던 스승 공자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재라고 자신을 칭찬한 노나라 실권자였던 숙손무숙(叔孫武叔)의 평가를 전해 들은 자공(子貢)의 대답이다.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통해 간략히 소개한다.


무숙(武叔)은 노나라 대부이니, 이름이 州仇(주구)이다.


성씨에서 알 수 있다시피 숙손무숙(叔孫武叔)은 노나라의 실권 가문이던 삼환 중에서 숙손(叔孫) 가문의 대부였던 숙손주구(叔孫州仇)를 말한다. 그가 실제로 숙손가의 수장노릇을 했던 시기는 <춘추(春秋)>와 <좌전(左傳)>의 기록을 참고하건대, 정공 10년부터 애공 11년까지 17년간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공자가 노나라 정공에게 발탁되어 노나라 조정의 대신으로 일했던 시기가 정공 10년부터 13년까지였으니 최소한 4년 이상은 공자와 함께 조정에 섰던 경험이 있던 인물이다.


실제로 정공이 인정하여 등용했던 공자를 지근거리에서 확인하고서도 위와 같은 평가를 통해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훨씬 낫다고 노골적인 표현을 한 것을 보면, 아마도 공자와 함께 조정에 섰을 때부터 공자가 자신의 근본을 꿰뚫어 보고 보였던 언행에 스스로 찔려서 열등감을 느꼈을 확률이 낮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대개 스승이 공자정도 되는 인물의 제자를 칭찬할 때는 그 근거를 제대로 가르친 스승을 격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명백하게 공자와 자공을 비교하면서 대놓고 자공(子貢)이 훨씬 훌륭하다고 표현하였으니 아마도 공자에 대한 묵힌 뒤끝이 묻어난 것이라 여길만한 근거로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명백한 증거는 내일 공부할 내용에도 또 드러난다.

그나마 자공(子貢)이 있는 면전에서 그런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 자리에 있던 자복경백(子服景伯)이라는 이가 자공(子貢)에게 달려가 그 이야기를 전한다. 비슷한 상황을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앞서 공부했던 ‘헌문(憲問)편’의 38장에서 공자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쪼로로 달려가 공자에게 고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역시 이 장의 자복경백(子服景伯) 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그러한 말을 공자나 자공에게 전했던 의도가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다른 쪽에서 있었던 일을 쪼로로 반대쪽에 달려가 옮기는 것은 설사 그것이 좋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권장할만한 행위라 할 수 없다.


어쩌면 자복경백(子服景伯)은 공자에게도 그랬지만, 자공(子貢)에게도 그 말을 전해서 대가라고 평가받는 인물이 그러한 험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직접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했던 것일까? 자공(子貢)은 저 유명한 궁궐 담장에 대한 비유로 자신과 스승의 명백한 경지의 차이를 규정한다.


궁궐의 담장이 낮아 어깨정도의 높이일 때는 누구나 궁궐 안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 그 궁궐 안의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자신의 지금 경지가 딱 그 어깨정도에 달해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빤히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 자신의 재주에 대해서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담장은 물론이고 집 자체가 낮은 것이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담장이 낮고 집이 얕은 것이다.


그런데, 스승 공자의 담장은 어지간한 수준의 사람들은 결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의 ‘몇 길(數仞)’이나 되는 높은 담장의 경지인지라 제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지 못한 자들은 결코 그 宗廟의 아름다움과 百官의 많음을 볼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몇 길(數仞)’이라는 표현이 다소 어려울까 싶었는지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강조된 의미인지를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배우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일곱 자〔尺(척)〕를 仞(인)이라 한다.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니, 담장이 높고 궁궐이 넓음을 말한 것이다.


그 비유만으로 끝나도 알아들은 이들이라면 정신이 번쩍 들고 부끄러워지게 만들 정도인데, 그것도 알아듣지 못할 수준일까 싶어 자공(子貢)은 마지막 문구에서 어리석고 속까지 좁은 숙손무숙(叔孫武叔)에게 가서 알려주라는 듯이 다음과 같이 표현으로 말을 끝맺는다.

“그 문을 얻는 자가 혹 적으니, 夫子(叔孫)의 말씀이 당연하지 않은가.”

담장이 너무 높아 어깨높이여서 간단히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면 스승 공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한 방을 날린다. 다시 말해 숙손무숙(叔孫武叔)가 한 말이 틀리지 않다는 표현은, 그가 자신을 스승보다 낫다고 표현한 것을 보건대, 숙손무숙(叔孫武叔)의 수준이 고작 자신의 훌륭함을 칭찬할 정도의 낮은 눈높이여서 저 거대하고 높은 스승의 경계를 알아볼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는 어마어마한 비아냥이자 풍자인 셈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夫子라고 지칭한 것이 행여 공자를 가르치는 것이라 오독할까 걱정스러웠는지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여기의 夫子(부자)는 무숙(武叔)을 가리킨다.


이 마지막 ‘夫子’라는 표현이 위의 내 설명대로 무숙(武叔)을 가리킨다는 주자의 의견에 대해 후대의 학자들은 모종의 시비(?)를 걸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 문구의 내용에서 ‘不亦宜乎(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여 강한 동의를 구한 대상이 무숙(武叔) 일 수 없다는 의문에서 이견은 발생한다. 즉,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 적도다.’라고 말하는 것이 자공(子貢)의 설명이 아닌 공자의 말이라고 보고 자공이 스승의 말에 대해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스승의 의견에 동조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견해이다.

그렇게 보자면, 두 번에 걸쳐 언급된 ‘부자(夫子)’라는 표현은 모두 공자이지 않느냐는 의견인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후대 학자들의 근거는 ‘득문(得門)’이라는 독특한 표현 자체가 ‘선진(先進) 편’의 14장에서 언급되었던 ‘승당입실(升堂入室)’이라는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해석한 바대로 주자의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고 보이고, 무엇보다 뜬금없이 공자가 등장하는 것도 어색하거니와, 화려한 자공(子貢)의 비유가 완결을 맺으며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루는 부분이 무숙(武叔)을 뭉개는 풍자에 있는데 그 완결성을 흩뜨리는 구조를 애써 만들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후대 학자들의 이견에 대해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소개했던 이유는, 그들이 근거로 삼았던 ‘승당입실(升堂入室)’이라는 구절을 공자의 직접 인용이 아니더라도 자공(子貢)이 그 가르침을 배경에 깔고서 이 궁궐 담장의 비유를 했음을 학도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다.


앞마당에만 이른 자에게는 마루에 올라서보지도 못하였으니 방 안이 보일 리가 없다는 공자의 비유는, 이 장에서 자공(子貢)에 의해 보다 강력한 한 방으로 패러디된 셈이라는 멋진 사승관계의 완성을 명확히 살펴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의 베이징(北京)에 있는 文廟의 柱聯(주련;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문구)에는 ‘齊家治國平天下, 信斯言也布在方冊.(제가, 치국, 평천하는 책(대학)에 실려 있어 정말 말 그대로이다.)’라는 글귀와 ‘率性循道致中和, 得其門者譬之宮墻.(솔성, 순도, 치중화는 담장에 비유하면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후자에 적혀있는 문구의 ‘담장’에 대한 언급은 바로 이 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이들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조금 간략하게나마 그 속뜻을 풀이하자면, <중용(中庸)> 1장의 ‘하늘이 명한 것을 性, 성을 따르는 것을 道, 도를 닦는 것을 敎라 한다.’라는 명제와 ‘中和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생육한다’는 가르침은, 담장이 높아 안이 보이지 않듯이 터득하기 어려우므로, 문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담장이 높아 자신이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안이 보이지 않고 담만 보이니 볼 것이 없다고 폄하했던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자공(子貢)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 얼마나 얼굴이 붉어졌을지, 아니면 그 말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옆에서 누군가 해석을 해주었어야 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이 비유는 처음 공자가 했던 ‘승당입실(升堂入室)’의 가르침처럼, 단순히 학문의 경지를 완성하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을 넘어 학문의 과정 전반을 아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 자신이 어디까지 볼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안을 파악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뇌피셜의 부분이 아니라 묻고 따지고 직접 듣고 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즉, 더 많은 ‘정확한’ 정보가 입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 골머리를 앓으며 생각만 한다고 해서 해당 사안의 보이지 않는 진실의 저 너머가 보일 리가 없다.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눈에 보이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행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황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들이 필요하다. 그것 역시 뇌피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뇌피셜만 작동해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추정하거나 추리하는 것은 자신만의 편견이나 독단으로 흐를 위험성이 많기 때문에 역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알고 나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충분한 자료수집과 분석의 시간을 찾는 것은 그만큼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그릇으로 파악할 수 없는 정도의 큰 그릇을 마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힐난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소인배들로 그런 자들은 금세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극대화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기 마련이다.


자신들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리고 자신의 추악한 민낯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양심이 가슴을 쥐어짜는 뜨끔한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부정하고 악당으로 만들어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만 내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더 배우고 익혀 수준이 올라가게 되면 단순히 가방끈이 길어질 뿐이 아님을 공자는 누누이 제자들에게 강조한 바 있다. 경성제대 출신이 이 나라를 말아먹는 것을 당신이 목도한 바와 같이 가방끈이 길다고 하여 인격적으로 훌륭하다는 정비례 공식은 애초부터 성립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배우는 편법이라면 그 따위를 공부라 부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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