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을 욕한다고 당신이 감히 손절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숙손무숙(叔孫武叔)이 仲尼를 훼방하자, 子貢이 말하였다. “그러지 말라. 仲尼는 훼방할 수 없으니, 他人의 어진 자는 丘陵과 같아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仲尼는 해와 달과 같아 넘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고자 하나 어찌 해와 달에게 손상이 되겠는가. 다만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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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앞장에 이어 계속해서 스승 공자에 대해 뒷끝 작렬하며 험담을 하는 숙손무숙(叔孫武叔)의 언행에 대해 자공(子貢)이 다시한번 정확하게 스승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설명함으로서 그런 자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선긋고 있다.


바로 앞에서 보여주었던 스승의 가르침을 아이디어로 했던 담장의 비유에 이어, 이번에는 해와 달에 비유하는 표현을 보여주었는데, 그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無以爲(무이위)’는 이러한 짓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땅이 높은 것을 ‘丘(구)’라 하고, 큰 언덕을 ‘陵(릉)’ 이라 한다. ‘해와 달’은 지극히 높은 것을 비유한다. ‘自絶(자절)’은 훼방하여 스스로 공자와 끊음을 이른다. ‘多(다)’는 祗(지)와 같으니, 適(적, 다만)의 뜻이다. ‘不知量(부지량)’은 자신의 분량(분수)을 스스로 알지 못함을 이른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자신의 스승을 해와 달로 비유한다는 것은 지극한 존경의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담장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경지를 어깨정도 높이의 담장이라고 표현한 바와 같이 해와 달로 스승을 비유하기 전에, 丘陵이라는 표현을 먼저 사용하여 비교하도록 배치한 것은 아무리 높은 언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구체성을 띠고 있어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여, 日月은 극한이 없이 높음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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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子貢)은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스승 공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크게 숭앙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근거들 중에 가장 명확하고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가장 먼저 앞서 상례를 주재했으며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3년상을 치르고서도 홀로 3년상을 더해 무려 6년이나 홀로 상을 치르며 스승에 대한 예를 각별하게 보였던 일이다.


지금도 중국 곡북(曲阜)의 성 밖에 가면 공자의 묘가 있는데, 그 묘의 왼쪽에 자공(子貢)이 공자를 애도하면서 여막살이를 했다는 ‘子貢結廬之所(자공결려지소)’가 있다. 자공(子貢)은 앞서 몇 번 설명한 바와 같이 탁월한 외교능력으로 이름을 날렸고, 재정적인 관리 능력도 뛰어나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제자였다. 공자는 그가 말재간을 부린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지만 사리에 통달하였다고 인정하여 季氏에게 추천했다.


앞장에서도 그랬지만 이 장과 연결해서 보면, 스승에 대해 험담하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에게 당당하게 일침을 가하는 그의 태도는, 그저 형식적인 스승에 대한 존숭의 태도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인품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공야장(公冶長)편’에서 스승이 대놓고 “너와 回는 누가 더 나으냐?”고 물었을 때 “賜(사)가 어찌 감히 回와 같기를 바라겠습니까? 回는 하나를 들어 열을 알지만 賜는 하나를 들어 겨우 둘을 압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저 스승의 앞이라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닌, 지극히 스스로에게 겸손하고 객관적인 배움을 통한 분석에서 오는 순종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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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의 핵심은 그저 스승 공자를 해와 달과 같은 존재로 비유하며 넘어설 수 없는 존재이니 함부로 험담하거나 폄하하지 말라는 일침만이 아니다. 원문에서 ‘自絶(자기 쪽에서 絶交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이채로운데, 이 의미는 단순히 비방만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 쪽에서 스승 공자와 절교하고자 결과를 택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꿔말하면, 사람이 해와 달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욕하고 어떤 짓을 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해와 달의 빛에 손상을 입힐 수 없듯이 혹자가 공자를 비방하여 공자와의 관계를 끊는다고 해도 공자의 덕에는 결코 손상을 입힐 수 없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이 장을 포함하여 총 3장에서 공자를 표현하며 ‘仲尼’라는 다소 폄하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나 편집되면서 의도적으로 삽입된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본래대로라면 앞서 설명했던 ‘부자(夫子)’라는 표현이 경칭이고, 가장 일반적인 것은 그저 ‘자왈(子曰)’에서처럼 공자(孔子)의 고유명사를 차마 그것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자(子)’라고 줄여서 사용한 것인데, ‘중니(仲尼)’라고 자(字)를 그냥 부르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이를 표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이례적이자 무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표현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표현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고 분석하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대개 그 표현이 들어간 장의 내용을 보면 다른 이의 입을 빌어 언급되는 경우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 공통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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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제자들은 큰 스승이던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기 위한 방식으로 존경받을만한 위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을 등장시켜 뜬금없이 공자를 폄하하고 비판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남아있는 제자들 중에서 스승에게 지극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받던 자공(子貢)의 입을 통해 그 버릇없는 대상을 가차없이 한방에 날려버리는 오버액션을 연출한 것이다.

어제 공부에서도 설명했지만, 당대 최고의 권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에 대한 가볍기 그지없는 비난과 경거망동에 대해 자공(子貢)은 절대 직접적인 분노나 똑같은 비난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스승 공자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완곡하게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듯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라면 심각한 내상을 입어 뭐라 함부로 대꾸조차 할 수 없는 묵직한 한방을 양심의 급소에 꽂아 넣는다.


늘 이 장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기도 하지만, 공자의 인생은 자공(子貢)과 같은 제자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결코 실패한 인생이라고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공자가 일생에 걸쳐 실패했기에 지금의 성현(聖賢) 공자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간에서 말하는 실패가 실패인지, 그리고 공자가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실패한 인생이라 스스로 자평하였을지를 생각하면서도 그 모든 것과 별개로, 스승을 이토록 마음 깊은 곳에서 존숭하며 추억할 수 있는 자공(子貢)정도의 제자를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공자의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이었는지를 감탄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존경하고 칭송하기보다는 비난하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것이 자신들의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일 경우, 그러한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이들이 겪어왔던 길을 보더라도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다. 잘해도 못해도 욕을 먹는 것은 변함이 없는 자리라고 덮어버리려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저 말장난에 그치지 않을 뿐, 동서고금 역사를 보면, 모든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욕을 먹은 것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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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고는 정치검찰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가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났다고 한다. 대선을 치르면서도 언론사의 토론에 나가봐야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고 입을 열어봐야 자폭 아니면 실언뿐이니 꼬리가 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며 입맛에 맞는 기레기 언론사의 토론만 쏙쏙 빼먹던 버릇은 집권 1년차가 지났음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책방을 열었다고 하는 전대통령이나 파란당이 지난 5년동안 훌륭하게 나라를 운영해왔다고 여기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국민들에게 칭찬 들을만큼 훌륭하게 나라를 운영했다면 결코 아마츄어 칼잡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반발을 그렇게 대단위로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당시 양보(?)하며 출마를 접기 전에 안 모씨가 했던 예언(?)처럼 칼잡이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발하여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다며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까지 그들이 예견할 정도의 지적수준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 장에서 자공(子貢)이 보인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10년같은 1년의 집권을 실수와 실언의 연발로 점철한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묻고따지지도 않고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끝이 결코 좋지 못할 것이라는 데자뷔를 보게 된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촉발하며 감옥으로 끌려들어간 군바리 딸의 케이스에서 학습된 장면들이다.


멀쩡한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배 안에서 그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바다에 수장되는 사건이 벌어져도 제대로 정신차리지 못하고 유감따위를 표명하던 대통령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연쇄적으로 무지한 국민들에게 촛불을 들게 했다. 그녀의 뒤에 비선실세라는 탐욕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세대때부터 권력자의 등에 빨대를 꼽고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사실들은 이미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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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가 누구 것인가?’라는 어이없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역시 감옥으로 기어들어갔던 MB와 서로 먼저 대통령이 되겠다고 당내 경선을 하던 시절 두 사람이 서로 찔러대던 그놈의 ‘새빨간 거짓말’은 명백한 진실로 모두 밝혀지며 두 사람 모두를 감옥에 넣는 증거 자료로 그대로 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빨간당 내부의 사람들은 어느 캠프쪽이든 두 역대 대통령이 되었다가 감옥에 간 자들이 감옥에 갈만한 충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그들은 여전히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며 진실에 눈감고 다른 이들의 눈을 가리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진실을 외면하며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자들이 지금까지도 회전문 인사를 반복하면서 빨간당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익을 나눠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정말로 이 장에서 자공(子貢)이 보여주는 존경의 마음으로 용비어천가를 불러댔을까?


빨간당의 정권에서 댓글조작 혐의로 그 죄가 소명되었던 전직 국방장관이 이번에 다시 중요보직을 임명받으며 권력의 중심으로 컴백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뉴스도 아니다. 정권의 민낯을 보도하지 말아달라며 언론사 데스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박과 회유를 서슴지 않았던 그 추악한 정치인이 버젓이 다음 총선에 다시 여의도 입성을 노린다며 당당하게(?) 인터뷰를 해대는 상황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전직 기레기라고 말해주는 것조차 아까운 언론사 출신의 정치꾼은 MB정권 때부터 시작하여 여전히 대통령실에서 정권의 나팔수노릇을 하며 권력에 기생하고 있다. 당신이 가만히 지금 그들이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판단해보라. 그들이 과연 정말로 인간적으로 누군가를 존경해서, 그들과 세상을 제대로 바꿔보자는 대승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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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당에서 수구꼴통들의 지지를 받겠다며 탄핵당시 동조했던 자들을 배신자로 몰아세우며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권력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존버하겠다고 악착같이 버티는 꼴을 보며 한심스러움을 넘어 과연 저런 자들을 다시 도지사로 뽑아주는 국민들이라는 자들이나 장관으로 임명하는 칼잡이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연이은 두 장에서 자공(子貢)이 보여주는 스승에 대한 존숭과 그 큰 가르침의 계승을 보면서 과연 학문분야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이나 어떤 식으로든 자산과 교훈을 남겨준 전임자에 대한 인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학문분야에서는 이전 세대의 연구를 두고서 그 당시에는 그저 주먹구구식이어서 제대로 된 연구가 이행되지 못하였고 자신이 지금 내보이는 연구야말로 진정한 연구라며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아야 하는 것은 제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 하였다. 학문과 기예의 일정한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先學을 비방하고 先學의 업적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다만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조악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은 언제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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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한 지 1년이나 지나, 지금 우리 현실에 일어나는 모든 잘못이 전 정권이 망가뜨린 5년간의 산물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나머지 4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꾸준히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아니다. 실수가 잘못으로 확정되는 순간은 실수를 저지른 순간이 아니다. 자신의 실수를 실수라고 인정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오히려 뻔뻔하게 다른 이때문이라고 탓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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