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오르겠다고 사다리를 세워두는 이는 없다.

그것이 사다리로 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by 발검무적
陳子禽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子貢曰: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
진자금(陳子禽)이 子貢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스승을〉 공경할지언정 仲尼가 어찌 그대보다 낫겠는가.” 子貢이 말하였다. “君子는 한 마디 말에 지혜롭다 하며 한 마디 말에 지혜롭지 못하다 하는 것이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夫子를 따를 수 없음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 夫子께서 邦家(나라)를 얻으신다면 이른바 ‘세우면 이에 서고 인도하면 이에 따르고 편안하게 해 주면 이에 따라오고 고무시키면 이에 和하여, 그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게 여기고 죽으면 슬퍼한다.’는 것이리니,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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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진자금(陳子禽)이라는 사람이 자공(子貢)에게 대놓고 스승 공자가 그만 못하지 않냐는 식으로 마치 자공(子貢)을 칭찬하듯이 공자를 디스하고 있다. 앞서 자공(子貢)의 귀에 스승 공자의 험담을 들어가게 했던 것과는 형태만 다를 뿐, 자공(子貢)은 일정 경지이상이 되지 못하면 스승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이 딱하다며 다시 비유를 통해 성인 공자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본문에 사용된 ‘爲恭(위공)’이라는 생경한 표현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爲恭(위공)’은 공경하여 그 스승에게 겸양〔推遜(추손)〕함을 이른다.


자신을 칭찬하는 듯한 어투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읽은 자공(子貢)은 점잖게 군자는 말 한마디로 지혜롭다고도 칭송받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폄하될 수도 있다는 말로, 그의 표현자체가 신중하지 못함을 타이르듯 설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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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 ‘말을 신중히 하라’는 이 자공의 가르침은, 남을 비판하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과도한 칭송을 경계하는 말로 전성되어 후대의 학자들에게도 널리 사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퇴계(退溪; 이황)가 자신을 칭찬하는 유희춘(柳希春)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며 “군자는 한 마디 말에 지혜롭다 하며 한 마디 말에 지혜롭지 않다 하는 것이거늘, 그대가 남을 허여함을 이렇게 신중하지 않게 하시니, 비단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저 그저 남들이 그대를 비웃고 비난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한 인용이 그와 같은 겸양의 용법으로 사용된 사례이다.

이 장에서 행간의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핵심을 해설한다.


자금(子禽)이 말을 삼가지 않음을 꾸짖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자공(子貢)은 다시 스승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낮은 수준의 이들에게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다는 비유를 사용하여 일침을 가한다. 사다리는 위로 올라가기 위한 도구이나 그것은 사람이 눈에 보여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수준정도인데, 사다리를 타고서 하늘을 오를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감히 없다는 말로 주자는 이 비유를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階(계)’는 사다리이다. 大人(대인)은 〈억지로 힘써〉 될 수 있지만 化(화)는 억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다리로 오를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위 주석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대인(大人)의 표현에 대비되는 뒷절의 주어가 없는 형태에 초심자들이 당혹스러워할 수가 있는데, 생략된 주어를 넣어 위 주석을 다시 해설하면, ‘大人은 억지로 해서 될 수 있지만 성인(聖人)의 경지로 化하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없다.’라는 의미가 된다. 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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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대인과 성인을 대조 비교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대인(大人)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가 의아하다면, <맹자(孟子)>의 ‘진심(盡心)下’에서 ‘충실하면서 빛남이 있음을 일러 大人이라 하고, 大人이면서 저절로 化하는 것을 聖人이라 한다.’라는 한 표현을 참고하면 조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공(子貢)이 자신의 수준과 스승의 경지를 비교하되, 스승에게 미칠 수 없음이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다고 한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서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夫子之得邦家者’라는 표현으로 스승이 정말로 제대로 세상에 등용되었다면 어떠했을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참고로, 후대의 몇몇 학자들은 이 표현에서 ‘邦’은 제후의 지위를 ‘家’는 대부의 지위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 애매모호하게 쓴 표현을 통해 자공(子貢)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되 스승이 제후가 되었어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풀이하기도 하였는데, 통상 일반 명사화하는 과정에서 각기 범주가 다른 명사를 붙여 하나의 일반적인 의미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음을 감안하면 너무 천착한 의견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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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통해 그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


‘立之(입지)’는 그 삶을 세워줌을 이른다. ‘道(도)’는 인도함이니 가르침을 이른다. ‘行(행)’은 따름이다. ‘綏(수)’는 편안함이요, ‘來(래)’는 歸附(귀부)하는 것이다. ‘動(동)’은 고무시키는 것이요, ‘和(화)’는 이른바 ‘於變時雍(아! 변해서 이에 화하다)’이란 것이니, 그 感應(감응)의 묘가 신속함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榮(영)’은 높이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음을 이르고, ‘哀(애)’는 考妣(고비, 부모)를 잃은 것과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은, ‘斯立斯行’은 백성들이 命令을 추종하는 것을, ‘斯來斯和’는 백성들이 敎化(교화)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설명하였다. 이 장에서 사용된 ‘其生也榮, 其死也哀’는 亡人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일컬어지는 표현이다. 옛사람들은 이 문구를 남을 위한 묘비와 묘지에 사용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그러한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이라 여기며 기대했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던 <논어(論語)>의 편집을 맡았던 후대의 제자들이 의도했던 스승 공자에 대한 존숭과는 별개로, 모든 제자들이 3년상을 통해 스승의 장례를 치렀음에도 스승을 존숭하는 의미를 담아 3년을 더 시묘살이 했던 자공(子貢)의 진정성이 그야말로 이 편의 마지막에까지 깊이 있는 비유와 함께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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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라는 의도에서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의미를 새긴다.

“이것은 성인의 신묘한 교화가 上下(상하)에 천지와 함께 유행하는 것이다.”


성현이 성현일 수 있는 이유는 모두가 그를 성현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막연하게나마 이 장에서 자공(子貢)이 스승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낮은 수준의 이들이 행여 자신의 수준에서 보이는 정도만으로 감히 자신이 스승 공자보다 낫다고 하는 참람됨을 왜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설명했는지를 사씨(謝良佐(사양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준다.

“자공(子貢)이 성인을 칭찬한 이 말을 보면 晩年(만년)의 進德(진덕)이 마침내 高遠(고원)함에 지극함을 알 수 있다. 부자께서 국가를 얻으신다면 여러 백성들을 고무시킴이 북채로 북을 두드리는 것과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를 것이다. 사람들이 비록 그 변화함은 볼 수 있으나 그 변화하는 所以然(소이연)은 엿보지 못한다. 이는 성인의 경지를 떠나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묘한 것이 존재해 있는 것이니, 성인이면서 알 수 없는 神人(신인)의 경지에 나아간 것이니, 이는 자못 생각과 노력으로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이 장에서 물색없이 자공(子貢)의 앞에서 감히(?) 스승 공자를 디스하는 무식한 용맹을 보인 진자금(陳子禽)은 이미 앞서 ‘학이(學而)편’의 10장에서 자공(子貢)에게 공자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는 인물이다. 후대 학자들은 아마도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학문을 배운 제자였기에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자기의 스승을 존숭하는 의도로 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나 정말로 자신의 스승이 어떤 이었는지를 인지할 수준이었다면 이와 같은 참람된 질문을 던지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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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시작이 자장(子張)이었기에 ‘자장(子張) 편’이라 명명되기는 하였으나 그 대단원의 피날레를 연이은 자공(子貢)의 가르침으로 끝맺는 편집을 한 것은 그야말로 자공(子貢)이 공자의 제자로서 갖는 입지와 세간의 평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스승의 것과 비슷하게 닮아 있으면서도 묘하게 자공(子貢)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청출어람(靑出於藍)식의 비유, 그리고 그 비유를 통해 어쭙잖은 이들을 묵직하게 압도하는 표현력은 그가 가지고 있던 겸손함과 스승에 대한 지극한 외경심이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중급자 이상의 수준의 배우는 이들이라면, 성현(聖賢) 공자가 세간의 기준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는 초라한 일생을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세간에서 모두가 숭앙하고 존경에 마지않는 자공(子貢) 같은 이가 스승을 평가(?)함에 있어 ‘나 같은 존재는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경지에 이르신 분이다’라는 표현만으로도 스승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갖췄다는 반증을 보여준 셈임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것 아닌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읽은 책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문구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수준도 대단해 보인다고 여기는 정도가 있다면, 뭔가 대단한 책이나 저자, 이론 등등을 주저리주저리 꺼내놓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이 단기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과 같은 것이라면 모두가 적당히 집중해서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테니 공자의 경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공자가 왜, 그리고 어떻게 성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에 한문 원문은 고사하고 제대로 번역조차 되어있지 않은 <논어(論語)>해설본을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인문학을 공부합네하며 거드름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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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읽은 책이름이나 저자의 이름을 적당히 섞어 말해줘야만 있어 보이고 더 유식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초보자 수준은 그나마 책도 읽지 않으면서 대화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만이라고 여기는 불통(不通)의 아이콘들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문자로 된 것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하여 그 책을 읽었다고 여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은 누구나 하고 글 역시 누구나 쓰지만 개나 소나 작가나 학자라고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층차가 수천수만으로 나뉘어 높고 낮음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급사회의 층차처럼 타의에 의해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노력과 수양을 통해 갖춰지게 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것을 수능성적이나 대학입학 점수처럼 확연하게 점수화하여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바닥과 민낯을 너무도 쉽게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말보다 정련된 형태로 구현되는 글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슷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강의와 강연은 확연히 다르다. 비슷한 제목의 비슷한 주제인 것 같지만 더 높은 수준의 학회나 대학에서 나온 논문들이 그렇지 못한 대학이나 학회의 논문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당연히(?) 알지 못한다. 맞춤법이나 글쓰기 논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가 자신의 일상을 일기로 쓸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대중에게 내놓고 심지어 자신이 글쓰기 전문가랍시고 싸구려 강연을 하고 다니며 어느 사이엔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정 경지에 오른 무언가나 되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밥벌이를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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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차마 글이라고 명명하기에도 부족한 낙서 수준의 사념 긁적이는 수준의 아마추어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프로인 양 마케팅과 자기 PR의 일환으로 글을 쓰고 떠들어대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며 이젠 눈살을 찌푸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말과 글도 그럴진대,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진 정치인이라는 이들 중에서 어느 한 명이고 진정으로 훌륭하다 칭찬해 줄 만한 모범을 보이는 자를 찾을 수 없으니 더 높은 곳에 있는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 허접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 가운데에서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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