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국익을 위한다면 그 결론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네 밥그릇 챙기기보다 공익(公益)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by 발검무적
堯曰: “咨! 爾舜! 天之歷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舜亦以命禹. 曰: “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周有大賚, 善人是富. “雖有周親, 不如仁人. 百姓有過, 在予一人.”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 四方之政行焉.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 所重, 民·食·喪·祭. 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
堯임금이 말씀하셨다. “아! 너 舜아, 하늘의 曆數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中道를 잡아라. 四海가 곤궁하면 하늘의 祿이 영원히 끊길 것이다.” 舜임금 또한 이 말씀으로써 禹에게 명(훈계)하셨다. 〈湯王이〉 말씀하셨다. “나 小子 履는 검은 희생〔玄牡〕을 써서 감히 거룩하신 上帝께 밝게 아룁니다. 罪가 있는 자를 제가 감히 용서하지 못하며, 上帝의 신하를 제가 감히 엄폐하지 못하여, 인물을 簡擇함이 上帝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또 제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몸에 罪가 있음은 萬方 때문이 아니요, 萬方에 罪가 있음은 그 책임 (죄)이 내 몸에 있다.” 周나라에서 큰 줌이 있으니, 善人이 이에 부유하게 되었다. “비록 지극히 가까운 친척〔周親〕이 있더라도 어진 사람만 못하며, 백성들의 과실은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 權과 量을 삼가고 法度를 살피며 폐지된 관직을 다시 닦으시니, 四方의 政治가 제대로 행해졌다. 멸망한 나라를 일으켜 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 주고 逸民을 등용하시자, 天下의 民心이 돌아왔다. 소중히 여겼던 것은 백성의 食(식량)과 喪禮와 祭禮였다. 너그러우면 民衆을 얻고 信義가 있으면 백성들이 신임하고 민첩하면 功이 있고 公正하면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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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논어(論語)>의 20편 중에서 마지막 편인 ‘요왈(堯曰) 편’이다. ‘요왈(堯曰) 편’은 20편 중에서도 가장 짧은 3장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어(論語)>, 그 대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식하는 편으로는 그야말로 짧고 굵은 임팩트를 주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논어(論語)>를 끝까지 정독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요원한 마지막 편이라 끝까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한 이들도 없지만 그나마 공부했다고 하는 이들에게도 이 마지막편의 첫 번째 장은 <논어(論語)>스러운(?) 느낌이라기보다는 <서경(書經)>을 읽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요왈(堯曰) 편’은 <논어(論語)>의 본편이 아니라는 학설이 후대 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설처럼 유력한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論語)>의 첫 번째 편인 ‘학이(學而) 편’이 배우는 이들에게 學規(학규; 배우는 규칙)이었다면 마지막 편인 ‘요왈(堯曰) 편’은 정치 강령과 군자의 要訣(요결)을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여 설명해주고 있어 공자가 의도했던, 배우는 이가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미(首尾)가 일관되게 조응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첫 장에서는, 공자가 도(道)의 적통(嫡統), 그중에서도 연원에 해당한다는 堯임금이 舜임금에게 제위 하면서 남겼다는 가르침으로 시작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직설적이라기보다는 <서경(書經)>을 읽는 듯한 뭔가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심오하고도 무거운 표현을 담고 있다.


핵심에 해당하는 ‘允執其中(진실로 그 中道를 잡으라)’는 가르침의 의미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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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요 임금이 순에게 명하여 제위를 선양해 주신 말씀이다. ‘咨(자)’는 嗟歎(차탄, 감탄)하는 소리이다. ‘曆數(역수)’는 제왕들이 서로 계승하는 차례이니, 歲時(세시)와 節氣(절기)의 先後(선후, 차례)와 같은 것이다. ‘允(윤)’은 ‘진실로’이다. ‘中(중)’은 과하거나 불급함이 없는 명칭이다. 四海(사해)의 人民(인민)이 곤궁하면 군주의 祿(녹) 또한 영원히 끊길 것이니, 이는 순을 경계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 舜임금이 다음 왕위를 선양(禪讓)하며 그 내용을 그대로 禹에게 훈계했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순 임금이 뒤에 禹(우)에게 제위를 선양하실 때에도 이 말씀으로써 명하셨다. 이 내용은 지금 〈虞書 大禹謨(우서 대우모)〉에 보이는데, 이에 비하여 더 자세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경(書經)>이 연상되었던 것은 그저 느낌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임을 주자는 일러준다. 핵심 가르침에 해당하는 ‘允執其中’이라는 언급이 <상서(尙書)> 虞書(우서)의 ‘大禹謨(대우모)’에 나오는데, 원문의 글과는 약간 다른 ‘允執厥中(윤집궐중)’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지시대명사인 其가 厥로 되어 있지만 역시 같은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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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에서부터 내려온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湯王은 다시 그 가르침에 대해 인재등용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추가하여 정리하며 제후들에게까지 그 가르침을 잇는데 이 내용 역시 오리지널 버전은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음을 주자는 다시 한번 정리하여 배우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것은 《商書(상서)》〈湯誥(탕고)〉의 말을 인용한 것이니, 탕왕이 이미 걸왕을 추방하고 제후들에게 말씀한 것이다. 《書經(서경)》의 글과 大同小異(대동소이) 하니, ‘曰(왈)’ 자 위에 마땅히 湯(탕) 자가 있어야 한다. 履(리)는 탕왕의 이름인 듯하다. 검은 희생을 쓴 것은 夏(하) 나라가 黑色(흑색)을 숭상하였으니, 아직 그 禮(예)를 변하지 않은 것이다. ‘簡(간)’은 簡閱(간열, 살펴보아 선발)함이다. 이는 “걸왕이 죄가 있으니 내가 감히 용서해 줄 수 없고, 천하의 현인들은 모두 上帝(상제)의 신하여서 내가 감히 엄폐하지 못하여, 간열함이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어 오직 상제의 명을 따른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는 맨 처음 상제에게 명을 청하여 걸왕을 칠 때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다.


탕왕이 상제에게 제사 지낼 때 검은 희생을 쓴 것에 대한 설명으로, 앞서 夏나라가 흑색을 숭상하였으므로 그 禮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간락하게 정리하면, 夏나라는 전쟁 때 흑마를 타고 희생은 흑색을 사용했으나 은나라는 전쟁 때 백마를 타고 희생은 백색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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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 탕왕이 걸(桀)을 정벌한 후 제후에게 했던 말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또 설명을 덧붙였다.


또 “임금이 죄가 있음은 백성들의 소치가 아니요, 백성들이 죄가 있음은 실로 임금이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으니, 자신을 책함에 후하고 남을 책함에 박한 뜻을 볼 수 있다. 이는 제후들에게 말씀한 것이다.


옛날 군주는 천재지변이나 내란, 외침 등이 있으면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위와 같은 문장의 글을 지어 공표하였다. 천자의 경우라면 그것을 ‘罪己詔(죄기조)’라 하고 제후왕의 경우라면 그것을 ‘罪己敎書’ 혹은 ‘罪己書’라 불렀다.


본래 좋은 의도로 작성되었던 이 방식에도 불구하고, 혹 어떤 군주는 정세를 모면하려는 전환용 카드로 罪己를 가장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그 정치적 의도를 모두 읽을 수 없는 수준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기 일쑤였다. 조선시대 성호(星湖; 이익)의 ‘王言’이란 글을 보면, “도리를 어기는 온갖 행위는 모두 어지러운 말에서 지어진다.”라고 지적하면서 “군주가 말을 냈다가 번복하고 앞에 한 말은 좋고 뒤에 한 말은 악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準信(준신)할 수 없게 한다면 어찌 옳겠는가!”라고 경고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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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이 했던 아니면 말고식의 공약을 정치적인 맥락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여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방송사와 싸움질을 하는 전 미국 대통령이나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참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다음으로 武王이 은나라 紂(주)를 정벌하고 하늘에 맹세한 말 가운데의 일부를 인용한 구절이 나오는데 주자는 이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이하는 무왕의 일을 기술한 것이다. ‘賚(뢰)’는 줌이다.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시고 四海(사해)에 크게 준 것이니, 이 내용이 〈周書 武成(주서 무성)〉에 보인다. 이는 부유하게 된 자가 모두 善人(선인) 임을 말한 것이다. 〈詩序(시서)〉에 “賚(뢰)는 선인에게 주는 것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여기에서 근본 한 듯하다.


다산(茶山; 정약용)도 동의했던 위 주자의 주석과는 별개로 몇몇 후대 학자들은, ‘善人是富’을 해석하며 ‘착한 사람이 이에 많아졌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것이 곧 하늘이 주나라에 부여한 큰 선물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주자나 다산(茶山)의 의견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학설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늘의 역할과 권위에 대해서 모두가 수긍하지 않는 모습이었음을 비교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천도(天道)를 논하며 천하의 도둑놈 도척(盜跖)이 천수(天壽)를 누린 것을 한탄하며 지적한 것이 좋은 사례이니 참고하면 이해의 깊이가 더욱 깊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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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무왕(武王)의 인척과 백성들의 과실을 모두 자신의 것이라 천명하는 부분은 조금 상세한 부연이 필요한데, 주자는 그 상세한 내용의 설명을 출처를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것은 〈周書 泰誓(주서 태서)〉의 말이다.


그 내용이 너무 광대하여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 넘어갈 것을 우려했는지 공 씨(孔安國(공안국))는 다음과 같이 세부적인 설명을 곁들인다.


“‘周(주)’는 지극함이니, 주왕이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 비록 많더라도 주나라에 어진 사람이 많은 것만 못함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周親’은 ‘지극히 가까운 친척’이란 뜻인데, 孔安國의 해설에 따르면 ‘주나라 姬氏의 친척’을 의미한다. 은나라 紂(주)에게 微子(미자) 箕子(기자) 比干(비간)과 같이 至親(지친)이 있었지만 紂의 貪惡을 구제하지는 못한 사실을 의미한 것이다. 뜻한다. <상서(尙書)>의 문맥에 따르면, ‘不如仁人’은 ‘어진 사람이 있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니 周나라에 어진 賢臣이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자부한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孔安國의 해설에 따르자면, 무왕이 전쟁을 마치고 수레에서 내리기 전에 黃帝, 堯(요), 舜(순)의 후예를 封하고 수레를 내려서는 微子를 봉한 후 箕子를 풀어주고 比干을 旌表(정표)했으나 친척을 分封(분봉)하는 일에는 겨를이 없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산(茶山; 정약용)도 주자의 설명보다는 공안국의 설명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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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장의 마무리에는, 성군이 정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 謹權量, 審法度, 修廢官을 우선 중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權量을 삼간다는 것은 度量衡(도량형)의 기준을 일정하게 하여 물물교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審은 審議로 분명히 밝혀서 存廢를 제대로 판단하는 일을 말한다. 修廢官은 앞서 폐지된 관직을 다시 살펴서 賢人을 등용하는 일이다. 四方은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畿內(기내)의 바깥 사방을 말하는데 諸侯의 영지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부터를 武王의 정치에만 해당한다고 풀이하는 학설도 있으니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이 부분에서 주자는 간략하게 단어의 해석만을 덧붙였다.


‘權(권)’은 저울과 저울추이고, ‘量(양)’은 말〔斗(두)〕과 휘〔斛(곡)〕이다. ‘法度(법도)’는 예악과 제도가 모두 이것이다.


도량형을 엄밀하게 규정하게 하는 것은 물자 유통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가져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불필요한 불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 예악과 법제를 상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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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무왕(武王)이 취했던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실천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興滅, 繼絶(멸망한 나라를 일으켜 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 주었다.)’는 것은 황제 · 요 · 순과 하 · 상의 후손을 봉해줌을 이르며, ‘逸民(일민)을 등용했다.’는 것은 갇혀 있던 箕子(기자)를 석방시켜 주고 商容(상용)의 지위를 회복시켜 줌을 이르니,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람들이 원하는 바였다.


내용은 길지만, 결국 위정자가 소중히 해야 할 것은 오직 백성이었음이라는 가르침이 이 장의 귀결이다. 그래서 양씨(楊時(양시))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論語(논어)》 책은 모두 성인의 은미한(깊은) 말씀인데, 제자들이 전하고 지켜서 이 도를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편에 요 · 순이 불러서 명하신 말씀과 湯(탕) · 武(무)가 군사들에게 맹세한 뜻 및 정사에 시행한 것들을 자세히 기재하여 聖學(성학)의 전하는 바가 이에 한결같을 뿐임을 밝혔으니, 《논어》 20편의 大旨(대지)를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 《孟子(맹자)》도 마지막 편에 요 · 순과 탕왕 · 문왕 · 공자가 서로 계승한 순서를 차례로 서술하였으니, 모두 이러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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