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미덕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정치인이 물리쳐야만 해야 되는 네 가지 惡도 잊지 말도록.

by 발검무적
子張問於孔子曰: “何如斯可以從政矣?” 子曰: “尊五美, 屛四惡, 斯可以從政矣.” 子張曰: “何謂五美?” 子曰: “君子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子張曰: “何謂惠而不費?” 子曰: “因民之所利而利之, 斯不亦惠而不費乎? 擇可勞而勞之, 又誰怨? 欲仁而得仁, 又焉貪? 君子無衆寡, 無小大, 無敢慢, 斯不亦泰而不驕乎? 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斯不亦威而不猛乎?” 子張曰: “何謂四惡?” 子曰: “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 慢令致期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 謂之有司.”
子張이 孔子께 묻기를 “어떠하여야 정사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하니, 孔子께서 “五美를 높이고 四惡을 물리치면 정사에 종사할 수 있다.” 하셨다. 子張이 “무엇을 五美라 합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君子는 은혜롭되 허비하지 않으며, 수고롭게 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하고자 하면서도 탐하지 않으며, 태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하셨다. 子張이 “무엇을 은혜롭되 허비하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인하여 이롭게 해 주니, 이것이 은혜롭되 허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고롭게 할 만한 일을 가려서 수고롭게 하니, 또 누가 원망하겠는가. 仁을 하고자 하여 仁을 얻으니 또 무엇을 탐하겠는가. 君子는 〈상대방이〉 많거나 적거나 크거나 작거나에 관계없이 감히 교만하지 않으니, 이것이 태연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君子는 衣冠을 바르게 하며 瞻視(봄)를 존엄(공경)히 하여 엄숙해서 사람들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이것이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셨다. 子張이 “무엇을 四惡이라 합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미리〉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虐이라 하고, 미리 경계하지 않고 成功을 책하는 것을 暴라 하고, 명령을 태만히 하고 期日을 각박하게 하는 것을 賊이라 하고, 똑같이〔猶之〕 남에게 주면서도 출납할 때에 인색하게 하는 것을 有司라고 한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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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논어(論語)>에서 뭇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공자에게 부단히도 묻고 또 물었던 ‘어떻게 해야만 제대로 정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굳이 마지막 한 장을 앞두고 앞서의 내용들이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설명해주고 있다. 자장(子張)의 질문에 대해 공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五美)을 높이고 네 가지 악함(四惡)을 물리쳐야만 한다고 일러준다.


이미 묻는 사람마다의 눈높이와 그 상황에 맞춰 다양한 가르침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장을 앞두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있던 자장(子張)의 이 질문을 다시 실은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이제까지의 정사(政事)에 대한 정리판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항목을 정리하듯 명확하게 하나하나 나누어 설명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도 이 장은 단 세 장으로 이루어진 이 ‘요왈(堯曰) 편’의 첫 장에 백성을 다스리는 妙訣(묘결)을 말한 뒤에 바로 뒤이어 순서에 맞게 王政(왕이 된 자의 다스림)에 대해 말한 기록을 다음에 실은 것이라 분석하였다.


공자가 五美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은 내용도 그 설명하는 문법의 방식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질문을 던진 자장(子張)의 경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주어를, 배우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君子’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앞에 두고 그것이 경도되어 반대급부로 흐를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향해야 할 바를 먼저 제시하되, 일반인들이 보고 그것을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경계하라는 방식인데, 논리구조로 보면 공자가 강조에 마지않았던 ‘중도(中道)’와 ‘시중(時中)’의 개념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내일이면 <논어(論語)>공부를 마치는데 다시 이 개념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있다면 얼른 다시 첫 장부터 돌아가 공부하기를 권한다.)


스승의 오미(五美)에 대한 설명에 대해 자장(子張)은 첫 번째 아름다움이라 설명했던 부분을 묻는다. 뒤의 내용을 모르는 초심자라면 ‘아! 다섯 가지를 하나씩 모두 물을 셈인가?’라고 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을 들어보면, 항목으로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라 표기하였지만 결국 그것은 연쇄적으로 구분과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정리하면,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되 재화를 낭비하지 않는 것, 백성을 수고롭게 하되 백성이 원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 욕심을 지니지만 남의 것을 결코 탐하지는 않는 것, 태연한 자세를 취하지만 교만하게 굴지 않는 것, 위엄을 지니고 있지만 사납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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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결국 자장(子張)은 첫 번째 항목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이 단계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그것이 어째서 다섯 가지이면서도 어느 하나를 깨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두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 설명함으로써 결국 여러 가지로 복잡해 보이는 공부와 실천도 결국은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참고로 원문에서 ‘不費’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설명하면서 나온 설명들은 대개 앞서 설명된 바 있는 것들이다. ‘勞而不怨’은 ‘이인(里人) 편’의 18장에 언급되기도 했고, ‘자장(子張) 편’의 10장에서, 子夏가 위정자들이 주의할 점을 지적하여, ‘君子 信而後 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군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백성을 수고롭게 하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수고롭게 하면 백성들은 군자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긴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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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泰而不驕’는 ‘자로(子路) 편’의 26장에서 공자가 ‘君子 泰而不驕, 小人 驕而不泰.(군자는 여유 있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여유가 없다.)’라고 했던 부분에서의 내용이 정리된 것이고, ‘威而不猛’은 ‘술이(述而) 편’의 37장에서 공자의 태도를 서술하여 ‘子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공자께서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공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의 의미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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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원문의 ‘欲仁’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미묘해 보이는 문구 사용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은 퍽이나 흥미로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산(茶山)은 欲仁을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지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는 그 欲仁을 ‘大貪(큰 탐욕)’이라고 재미있는 비유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淸廉(청렴)은 천하에서 가장 큰 장사이므로 큰 탐욕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다. 사람이 청렴하지 않은 이유는 지혜가 짧아 그러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논어(論語)>의 ‘이인(里仁) 편’에서 ‘仁者 安仁, 知者 利仁.’이라는 구절을 활용하여 ‘廉者 安廉, 知者 利廉.(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렇게 비유한 것에 대해 다산(茶山)은 자답(自答)하길, ‘재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욕망한다. 하지만 재물보다 더 크게 욕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재물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군자는 청렴을 통해서 仁道를 이루려는 ‘큰 탐욕’을 지니고 있기에 남의 재물을 탐내는 ‘작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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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장(子張)이 네 가지 악함(四惡)에 대해 다시 묻자, 이번에 공자는 虐, 暴, 賊, 有司라는 네 가지 개념어로 명확하게 명명하며 설명한다. 개념에 대한 규정과 함께 설명하고 있지만 다소 혼란스러워할 초심자들을 위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虐(학)’은 잔혹하여 仁(인) 하지 못함을 이르고, ‘暴(폭)’은 갑작스럽게 하고 차츰차츰 하지 않음을 이른다. ‘致期(치기)’는 기일을 각박하게 하는 것이다. ‘賊(적)’은 절박하게 해친다는 뜻이니, 앞서는 느슨하게 해 놓고 뒤에는 급하게 하여 백성을 그르치게 하고서 반드시 형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猶之(유지)’는 均之(균지, 똑같음)라는 말과 같다. 남들과 똑같이 물건을 주더라도 출납할 때에 혹 인색하여 과감하지 못하면 이는 재정을 맡은 有司(유사)의 일이요 정치를 하는 체통이 아니니, 주기를 비록 많이 하더라도 사람들이 또한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다. 項羽(항우)가 사람을 부려서 공로가 있어 封爵(봉작)하게 되면 印章(인장)을 새겨놓은 것이 닳아 망가지는데도 차마 주지 못하다가 끝내 이로써 패망을 취하였으니, 이것도 그 한 징험(실례)이다.

다시 말해 네 가지 죄악에 대해 풀이하자면, 虐은 백성을 교육시키지 않고서 범죄를 저지르자마자 죽이는 일, 暴는 백성에게 평소 주의를 주어 지도하지 않고는 실적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일, 賊은 명령을 제때 내리지 않고서는 백성에게 기한을 지키라고 재촉하는 일, 有司의 吝은 내주어야 할 官物(관물)을 아깝게 여겨서 내주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


주자의 주석 말미에 有司처럼 인색하게 했던 사례로 언급한 항우(項羽)의 경우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 이들을 위해 조금 부가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항우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封爵(봉작)을 내릴 때 허가해 주는 印章(인장)을 바로 찍어주지 않아 인장의 글자나 테두리가 문드러질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항우가 패망했다는 설명은 조금 과할 수 있겠으나 작금의 대한민국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국민생활에 긴급하고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정책을 제때 실행하지 못하면서 대통령의 권위나 내세우고 국회의원들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행태들이 바로 이 사례에 해당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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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간의 <논어(論語)>에서 배웠던 정사(政事)에 대한 총괄 정리를 해주는 듯한 이 장에 대해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정치를 묻는 질문에 말씀해 준 것이 많으나 이와 같이 구비된 것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록하여 제왕의 정치에 뒤이었으니, 그렇다면 夫子의 정치하심을 알 수 있다.”


정사(政事)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동지침이라는 의미로 ‘요결(要訣)’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은 글이나 책은 다양한 형태로 서가(書架)에 넘쳐날 정도로 쏟아져 나왔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탄식에 마지않던 그 시대부터 수천 년이 지난 작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조금도 나아진 기색에 없어 보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만큼이나 사악해져 버려 오히려 국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연기와 편법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방법들을 구현해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와 제도의 발전을 거듭하며 완성되었다고 하는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치면에서는 대한민국을 필두로 어느 나라 하나 제대로 된 깨끗한 정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다 썩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가? 물론 이 장에서 공자는 궁극적으로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무엇보다 백성을 우선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신분제가 옹고하던 봉건시대에도 민심은, 정치인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최우선의 척도였지만 지금의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그 중요성이 투표라는 의미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그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이 당신이 내는 세금을 꽁돈으로 받아먹고,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더 큰돈을 챙기는데 혈안이 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올려주고 가슴에 배지를 달아준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말이다.

search.pstatic.jpg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 그 말뜻대로 실행하는 자 역시 없다.

정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며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의 짧지 않은 인생을 관찰하고 그가 어떤 자인지 보고 들었던 눈과 귀가 과연 그들의 감쪽같은 연기에 속아서 그들이 선량하기 그지없고 국민들을 위해서만 불철주야 노력하는 이라고 믿고 표를 던져주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당신들은 이미 그들의 민낯을 듣고 보고 심지어 곁에서 경험했으면서도, 그들과 이익을 함께하고 당신의 사리사욕에 그들이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젊은 층이 의외로 빨간당에 표를 던진 배경을 분석해 보면 그 허망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꼴은 현재의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알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이 영끌하여 마련한 부동산 전성시대의 막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의 개혁의지가 고착화된 검찰과 자리 잡고 여전히 해 먹는 삶에 익숙한 공무원사회에 막혀 허망하게 막을 내리자마자 국민들은 드라마처럼 대기업의 장사꾼 출신의 대통령을 뽑으면 그가 대기업을 전설로 만들고 서울에 청계천광장을 만들어 연기했던 것처럼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줄거라 착각하고 몰표를 몰아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던가? 그는 자신의 배를 채우겠다고 정점의 권력을 무한대로 휘둘렀고, 다스가 누구 것인지를 끝까지 부인하다가 기어코 감옥으로 들어갔다. 사회에 모든 재산을 다 내놓겠다는 둥 헛소리를 하면서 따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데에만 혈안이던 그를 감옥에 보내고 추징금을 매겨놓았음에도 지금의 대통령과 그의 오른팔 법무부장관은 그를 사면해 주는 것도 모자라 그가 내야 할 추징금도 모두 무효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search.pstatic.jpg 범인은 바로 너!!!

최근 시끄러운 주식사기를 보면, 범인은 이익을 얻은 자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한다. 범인들끼리 싸워서 누군가가 손해를 입었다고 하여 범인이 피해자로 돌변하는 일은 결코 없다. 썩은 정치인은 뽑아주는 공범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결코 그들의 욕망을 달성할 수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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