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마지막장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결국 마지막이라 특별할 것이 없음이 당연하지 않은가?

by 발검무적
孔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命을 알지 못하면 君子가 될 수 없고, 禮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이 장은, 드디어 <논어(論語)>의 총 498장을 마무리하는 최종장이다. 최종장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공자가 앞서 497장들에서 강조하였던 온전한 인격을 갖춘 군자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으로 知命, 知禮, 知言를 제시하고 그것이 부족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제대로 설 수조차 없고,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강조를 더하고 있다.

순서와 상관없이 모두 중요하다 여기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知命을 가장 먼저 꼽은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 점을 눈치챈 정자(伊川(이천))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해준다.

“命(명)을 안다는 것은 명이 있음을 알고서 믿는 것이다. 명을 알지 못하면, 해를 보면 반드시 피하고 이익을 보면 반드시 달려갈 것이니, 어떻게 군자가 될 수 있겠는가.”


知命이란, 天命을 알고 그것에 편안하게 거처한다는 의미이다. 天命은 하늘이 명하는 것이니 스스로 규정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운명(運命)인 것이다. 때문에 天命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本性이자,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의의(意義)라 할 수 있다. 물론, 운명론적으로만 이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겠지만 공자가 말하는 천명(天命)은 절대적 숙명론은 결코 아니다.

이른바,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으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자세를 공자는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이해를 갖고 삶에 적용한다면 宿命論(숙명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인간 본성과 삶의 의의를 깨닫는 일은 현실을 살며 고난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그래서 위 주석에서 정자는 군자로서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을 知命으로 꼽은 이유로 ‘見利思義(견리사의)’를 풀어 설명한 것이다.


앞서 공부한 내용들에서 천명(天命)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구절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술이(述而) 편’에서 공자는 ‘不義하면서도 부귀한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고 했다. 부귀재천(富貴在天)의 천명관(天命觀)에 근거하여 모든 不義와 결별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팔일(八佾) 편’에서는 衛나라 大夫, 왕손가(王孫賈)가 ‘집안 서남쪽의 신에게 아첨하기보다는 부뚜막 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라 하여 실세(實勢)인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겠느냐고 완곡하게 찔러보자, 공자는 ‘그렇지 않다. 하늘에 대해 죄를 얻으면 더 기도할 곳이 없다’고 했다. 공자가 명시한 天命의 의미란 하늘의 뜻을 존중하기에 그 누구에게도 아첨할 필요도, 또 그렇게 하지도 않겠다고 공식적인 선언을 한 것에 다름 아니다.

공자의 천명(天命)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복습을 하려면, ‘위정(爲政) 편’의 4장, ‘자한(子罕) 편’의 첫 장, ‘선진(先進) 편’의 18장, ‘헌문(憲問) 편’의 38장, ‘계씨(季氏) 편’의 8장을 살펴보면 도움이 되겠다.

두 번째로 언급된, 知禮에 대해 공자는, 인간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명기하였다. 앞서 공자는, ‘태백(泰伯) 편’에서 ‘詩에서 도의적 감흥을 일으킨 후 禮에서 인륜의 규범을 바로 세워 인격체로서 독립하고서 樂을 통해 품성을 완성한다.’는 3단계 학습론을 제시한 바 있었는데, 이 장에서 말하는, 立於禮이 그 두 번째 단계로 설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禮)에 대해서는 이제까지의 공부를 통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였지만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통해 공자의 예(禮)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간략하게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안연(顔淵) 편’에서는 克己復禮가 곧 仁이라 했고, ‘헌문(憲問)편’에서는 ‘윗사람이 禮를 좋아하면 백성을 다스리기 쉽다’라고 할 만큼 공자에게 예(禮)는 중요한 핵심 개념이었다. 그렇다고 강조일변도로 우선시하기보다는 극단으로 흐를 수 있는 권계 역시 잊지 않고 일러주었는데, ‘팔일(八佾) 편’에서, 예의 형식에 구애되는 것을 경계하여 ‘繪事後素(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다.)’라고 하여 忠信의 내용이 우선이고 예법은 뒤라고 설명하여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강조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공자는 모든 행위의 과정에서 예(禮)의 절제를 받지 않으면 어떤 덕목도 바르게 구현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태백(泰伯) 편’에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고달프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려우며, 용맹스럽되 예가 없으면 문란하고, 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박절하다)’라고 강조한 것이 바로 그런 가르침이다. <예기(禮記)>의 ‘중니연거(仲尼燕居) 편’에서도, ‘공경하되 예에 맞지 않으면 野이고, 공손하되 예에 맞지 않으면 給(아첨함)이며, 용감하되 예에 맞지 않으면 逆이다.’라고 한 의미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주자는 이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禮(예)를 알지 못하면 耳目(이목)을 加(가)할 곳이 없고 手足(수족)을 둘 곳이 없다.


마지막으로는 공자가 그렇게 많이 말하고 강조했던 말에 관련된 知言에 관한 내용이다. 知言이란, 상대방의 말이 어떤 마음으로 나온 것인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일을 통칭하는 의미이다.


‘안연(顔淵) 편’에서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무릇 통달이란 質直하고 義를 좋아하며,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觀察하며, 잘 헤아려 남에게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達하며 집에 있어도 반드시 達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언급된 찰언(察言)이 바로 이 장에서 일컫는 知言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공자가 언어를 규정하되, 내면의 진실을 담아내야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은 것은 너무도 많이 강조하여 더 강조할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예컨대, ‘학이(學而) 편’에 ‘말 잘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자 가운데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고 하여 내실 없이 말만 잘하는 자를 경계한 가르침이나 ‘선진(先進) 편’에서 ‘言必有中(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들어맞는다)’라고 한 것, ‘헌문(憲問)편’에서는 ‘내면에 덕을 지닌 사람은 善言을 하지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내면에 덕을 갖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들이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知言의 관건에는, 상대방의 말이 巧言인지 아닌지, 그 말이 사리에 맞는 것인지, 말하는 사람이 有德者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일, 모두가 포함된다.


그래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이 부분에 대해 부연하였다.


말의 잘잘못에 사람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논어(論語)>를 한 마디로 정리하는 것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마지막 편의 세 장의 논리적 흐름으로 보건대, 도통(道統)과 정사(政事)의 올바름에 이어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아주 작은 정리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 보인다.


그래서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논어(論語)>의 마지막 장의 갖는 의미를 정리한다.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군자의 일이 갖추어진 것이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록하여 편을 마쳤으니, 어찌 깊은 뜻이 없겠는가. 배우는 자가 어려서부터 이 책을 읽었으나 늙어서 한 마디 말씀도 쓸만한 것이 됨을 알지 못한다면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에 가깝지 않겠는가. 이는 夫子(부자)의 죄인이니,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論語)>는 수험서의 기본이었기에 공부를 한다는 이들에게 있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시작하는 첫 번째 필독서였다. 정치적인 도구로 악용하여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이름의 유교(儒敎)를 내세웠던 그 썩어빠진 정치꾼들로 점철된 조선시대의 학자라고 불리던 자들 역시 모두 <논어(論語)>로 학문에 입문하였다.


유학(儒學)의 도통(道統)을 바로 세웠다고 숭앙받는 공자의 말씀을 먼저 익히는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논어(論語)>를 통해 고문의 문법을 배워 문리(文理)가 트이고 그 내용을 몸에 익혀 실천으로 이어나갔다면 <논어(論語)>를 공부한 이들이 정치에 나서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했던 부끄러운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나마도 공부하지 않고서 배우지 않았으니 제멋대로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자들은 말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으니 논외로 내팽개쳐 두기로 하자.

위 주석에서 강조한, ‘배우는 자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이 책을 읽었어도 쓸 만한 말씀을 한마디도 알지 못한다면,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에 가깝지 않겠는가. 이는 공부자의 죄인이니,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마지막 장의 주석에 담길만하다고 감탄하며 다시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논어(論語)>를 2년을 꽉 채워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한 장씩 강독하듯 써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또 절감하였다.


<논어(論語)>를 제대로 번역하고 풀이한 책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웬만한 제2외국어보다도 훨씬 어렵고 습득하기 어려운 고문이기에 조금이나마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처음 간략한 시나 에세이처럼 시작된 설명이 체계를 갖추고 A4 4장의 분량으로 확정된 이후로, 한 달 평균 두꺼운 책 한 권의 분량을 쏟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고 보니 실제로 이 아침공부는 고문이 생소한 이들에게 보다 쉽게 풀이하여 수천 년 전 중국땅에 살았던 공자의 가르침을 일러준다는 의도에서 확장되어, 결국은 부족하기 그지없는 내 공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자가 수없이 강조한 바와 같이 공부는 결국 모르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과 의지에서 출발하되,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해 주고, 나아가 배우고 익힌 대로 생활에 실천하여 그른 것을 고쳐 올바름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으로 나를 둘러싼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논어(論語)>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완독 하지 못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사회를 좀먹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급속화되고 있음을 한탄하여 객쩍은 탄식과 직설적인 표현들이 과격하게 쏟아져 나옴을 순화하지 못한 여전히 수양이 부족한 내 모습을 확인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누군가의 강의와 강독에 의해 배우는 것은 온전한 내 공부가 될 수가 없다. 인강에서 술술 풀어가는 수학 강사의 풀이과정을 눈으로만 보는 것은 내가 어디를 이해했고 어디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결코 확인할 수 없다. 내가 내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며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하고서 시험장에 가봐야 영화 보듯이 재미있게(?) 보았던 수학 인강은 그저 훌륭한 수학 강사의 수학실력을 관전한 것뿐이다.


인문학의 열풍이 언제 그렇게 뜨거웠는지 모르겠으나, <논어(論語)>라는 책 한 권을 가지고서 대형 서점의 한 서가가 가득 차있을 정도의 한우충동(汗牛充棟)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어(論語)>를 완독하고 그 가르침이 자신의 현실에, 그리고 자신의 삶에 직접 적용되는 그 깨달음의 순간을 느낀 이들은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사법고시를 공부하며 한자어에 익숙하다며 동양고전을 좀 읽어봤다고 거들먹거리는 법비들이나 이제 고위공직자의 자리에 올랐다며 혹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며 서가(書架)에 <논어(論語)>를 꽂아두고, 공자의 가르침을 노년의 길목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고구마 수십 개를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고 사이다 한 잔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작금의 이 복마전 같은 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지 않는 자는 논할 가치조차 없되, 배웠다고 하는 자들이 그것을 올바름으로 나아가야 할 지침이 아닌 사리사욕을 챙기는 도구로 악용할 뿐이라면, 그 사회와 국가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여기까지가 <논어(論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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