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효자는 무조건 부모님을 따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子遊問孝子曰 今之孝者是爲能養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曾子가 말씀하였다. “내가 夫子께 들으니, ‘孟莊子의 孝는 그 다른 일은 〈다른 사람이〉 능히 할 수 있으나 아버지의 신하(가신)와 아버지의 政事를 고치지 않은 것은 능하기 어렵다.’ 하셨다.”
이 장에서는 앞장에서와 같은 구조로 증자(曾子)가 스승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는 간접인용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앞장의 내용이 효(孝)에 한정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사례가 부모에게 자식이 가져야 할 마땅한 본질, 즉 효(孝)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이 장에서의 사례가 같은 효(孝)를 주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사례는 맹장자(孟莊子)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장의 가르침이 과연 효(孝)에 한정된 것인지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해설로 그 행간의 의미를 찾아보라 한다.
맹장자(孟莊子)는 노(魯) 나라 대부이니, 이름이 速(속)이다. 그 아버지는 獻子(헌자)이니, 이름이 蔑(멸)이다. 헌자가 훌륭한 덕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버지의 신하를 등용하고 그 정사를 그대로 지켰다. 그러므로 다른 효행들도 비록 칭찬할 만한 것이 있었으나 모두 이 일의 어려움만 못한 것이었다.
본래 증자(曾子)가 이 장에서 인용한 내용만으로 보자면, 공자의 가르침은 맹장자(孟莊子)가 어떻게 효를 실행하였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만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 전부이다. 실제로 맹장자(孟莊子)는 그의 아버지 맹헌자(孟獻子; 이름은 蔑(멸))가 세상을 뜬 후 무려 4년 동안이나 아버지의 가신(家臣)이던 인물들을 바꾸지 않고서 그대로 이어받아 아버지가 쓰던 정책조차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였다고 한다. 4년이라 표기한 것은 4년 뒤에 바꿨다는 의미가 아니라 4년 뒤에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과연 증자(曾子)가 공자의 어떤 가르침을 복기하고 있는지를 유추해 보면, 앞서 공부했던 ‘학이(學而) 편’의 11장에서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어버이의 뜻을 삼 년 동안 바꾸지 않아야 효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해당 장에서는 마융(馬融)이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책은 비록 좋지 못하더라도 차마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학이(學而) 편’의 언급이나 이 장의 내용을 토대로 보면, 자칫 초심자들의 입장에서 ‘무조건 부모가 했던 바를 감히 바꾸지 않는 것이 진정한 효’라는 오독(誤讀)을 하기 쉽다. 그러한 오독(誤讀)을 우려했던 탓이었는지 공자는 ‘위정(爲政) 편’의 7장에서 자유(子游)가 효(孝)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설명해 준 바 있다.
今之孝者, 是爲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요즘의 효라는 것은 오로지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이른다. 개와 말까지도 모두 잘 기르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는가?”
이 내용을 굳이 다시 설명하는 이유는, 어린 제자들을 비롯하여 초심자들의 오독(誤讀)할 여지에 대해 공자가 모르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소개하기 위한 것과 이 편의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진정성’에 대한 부분을 바로 효(孝)를 통해 강조하려는 증자(曾子)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힌트를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장에서 언급된 맹장자(孟莊子)의 일은 공자가 태어날 즈음에 일로 공자가 직접 듣거나 확인할 수 있는 동시대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맹장자(孟莊子)의 아버지 맹헌자(孟獻子)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주군으로 모셨던 맹손씨 가문의 5대 종주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모셨던 군주라는 점 때문이었는지 이후 노나라의 세 가문이 노나라를 좀먹는 원인이었다고 비난함에도 맹손씨 가문에 대한 부분이 노골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의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공자가 ‘위정(爲政) 편’에서 강조했던 그 근본이 되는 마음, 즉 ‘진심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은 앞장에서 살펴보았단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서야 진심으로 느껴지는 슬픔과 후회와 그 상실감의 근본을 가리킨다. 맹장자(孟莊子)의 효를 공자가 강조했던 이유는, 바로 해당 문장의 앞 구절에 새겨져 있다.
‘다른 사소한(?)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겠으나’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서 그 다른 일이라고 가리킨 것은, 구체적으로 곡을 슬프게 한다거나, 좋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 같은 상을 치르며 자식 된 도리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리킨다. 즉, 그저 형식을 갖추고서 장례를 치르는 일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겠으나 진정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효를 실천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에서 구별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등용하여 썼던 가신(家臣)을 그대로 바꾸지 않고 쓰는 일이나 정책을 바꾸지 않고서 유지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어 비교 최상급으로 강조하는 방식을 쓴 것이다. 이는 간단하게 부모가 이미 정한 것을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서 마융(馬融)이 설명과 같이, 부모가 살아계실 때부터 그 방식에 옳지 않다고 여기거나 부족하다고 여겼다 하더라도 그저 효율을 강조하여 바로 내 사람으로 바꾸고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은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닌 설명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진정한 효(孝)가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부모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개선하여 오히려 더 훌륭한 정치를 이루는 것이 부모를 높이고 공경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은 원문의 ‘難能(능하기 어렵다)’는 원문을 해석하며, ‘어진 아버지가 어진 신하로 하여금 좋은 정치를 세웠는데, 그 아들이 고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이 없다. 단지 신하들이 반드시 다 어질지 못하고, 정책이 반드시 다 좋지 못하더라도 큰 잘못이 없으면 그들을 계속 쓰고, 큰 폐단이 없으면 그대로 따르는 것, 이것을 일러 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바 있다.
공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 무조건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부모가 등용했던 가신(家臣)들이 부족하고 잘못된 인물임을 알고서도 그저 바꾸지 않는 것으로 일관하라는 가르침을 준 바는 아니라는 말이다. 공자가 맹장자(孟莊子)의 효(孝)를 강조한 이유와 이 장에서 증자(曾子)가 다시 그것을 복습하며 강조한 의도, 아울러 이 대를 이은 가르침을 논어의 이 편에 편집해넣은 후대 제자들의 의도까지 종합해서 본다면, 이것은 단순히 효(孝)의 근본을 일러주는 가르침에 그치지 않는다.
어떠한 행위를 함에 있어 왜 그 행위를 하는가에 대한 동기와 목적은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요소들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행위는 타인과의 교감과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행동화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가장 유념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그 행동의 취지가 대상에 대한 배려와 결코 유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장은 다각적인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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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맹장자(孟莊子)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아버지의 정책이 문제가 있었고, 그 가신(家臣)들이 전부 잘못 뽑아놓아 엉망인 상태임에도 효성이 지극하여 그냥 바꾸지 않는 것을 주로 삼았다면 그것은 효에 앞서 이치에 맞지 않는 어그러짐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만약 효를 행하기 위해 부모의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잡지 않는 폐해가 역으로 얼마나 돌아가신 부모의 유지(遺志)를 받들지 못한 불효인지를 현실주의자인 공자가 부정한 적은 없다.
맹장자(孟莊子)의 행위가 효라 칭찬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맹헌자(孟獻子)가 했던 주요한 인재등용과 그 정책의 운용이 결정적인 결함이 될만한 것이 없었음을 그것을 아버지 사후에 바꾸지 않는 것으로 반증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그가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의 뜻을 받들면서도 면밀하게 문제점이 없는지 예의주시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결정적으로 가신(家臣)을 물갈이한다거나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꿀 절실한 필요까지는 없다는 사실을 전제해야만 진정한 효라 칭찬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맹헌자(孟獻子)가 현군(賢君;현명한 군주)였음을 역사가 반증한다.
한편, 앞장의 형태와 같이 이 장에서도 증자(曾子)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원용하는 간접인용의 형태를 쓴 것은, 그러한 점에서 증자(曾子)의 성향을 보여준다. 과연 위에서 설명했던 저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스승 공자의 의도를 증자(曾子)가 행간까지 남김없이 모두 읽어낸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증자(曾子) 스스로는 언제나 그 뜻을 모두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 늘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증자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편집이 바로 앞장과 이 장에서 보이는 간접인용에서 표현방식인 것이다.
자신은 맹장자(孟莊子)처럼 물려받을 가문이 대단히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을 물려받은 재벌 2세도 아닌데, 이 장의 가르침을 통해 부모님의 결정이나 방식을 내가 스스로 바꾸는 것이 있고말고 할 것이 없다고 거리를 두는 어리석은 이가 있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이 장의 감춰진 효(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약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모의 결정이나 판단되었던 것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부모님이 살아생전에는 그것이 사리에 어긋나 있더라도 그저 따르는 척하다가 부모님이 세상을 뜨시게 되면 제멋대로 하는 것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결정하고 판단한 부분들에 대해 나중이라도 바꾸지 않고 그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현명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소통하고 그 뜻을 이해하고 충분히 공부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 편에서 일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진정성’이라는 것이고 효의 근본이라 예시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공부했던, ‘남의 입장에서 내 마음을 상대에게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라 공자가 강조에 마지않던 ‘서(恕)’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그것은 부모님에게 하는 효(孝)에도, 군주에게 마땅히 향하는 마음일 충(忠)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그것이 이 편에서 제자들의 복기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되고 있는 효나 충은 ‘진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된다.
공자가 늘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이 가르침에서 진정성이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그렇거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라서 그 방편으로 마치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척만 하는 인간들이 사회를 망치고 국가를 망치는 주범이라 여겨 엄중하게 꾸짖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기록을 통해 그 옛날부터 작금에 이르기까지 공자가 비난에 마지않던 그러한 존재들을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이른바 ‘백성을 위해’, ‘국민을 위해’ 정치행위를 한다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꾼들이 바로 그들이다.
잘못된 사회를 바꾸겠다며 젊은 혈기에 화염병을 들고 최루탄 사이를 뛰고 달리던 20대 초반의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들이 여의도에 기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정말로 젊은 당시의 초심을 유지하며 사회를 위해, 아니 최소한 자기 지역구에서라도 진정한 약자를 위한 노력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정치행보를 통해 일관해왔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절대 잊지 말라며 사회정의를 구현한다고 경찰서의 건물마다 붙여놓고, 검사가 되어 자신과 사회에 선서를 하면서 정말로 사회악을 없애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했던 검찰이 정말로 그들의 본분과 책무를 다했는지, 굳이 묻지 않더라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목숨이 2개가 있어 감옥에 가는 대신 옷을 벗고 죄과를 의원면직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의 목숨을 사는 검찰은 단번에 목이 잘리는 경찰의 부러움마저 사고 있다.
그런 이들을 비난하며 마치 사회를 위해 활동한다고 하는 변호사나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한다던 노조 대표나 그들의 잘못된 부분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자부하는 언론인들이 아등바등 여의도에 기생하겠다며 공천을 받아 배지를 달고나서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우리는 결코 모르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그리고 정말로 없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무언가를 행동했다면, 그들이 보도자료나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설레발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약자들이 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같이 사회를 바꾸자고 힘을 보태줄 것이다.
그들과 이익을 함께 할 때만 손을 잡고 등을 밀어주는 자들은 언제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손절하는 것을 넘어 혼자서 살겠다고 죽이겠다며 달려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게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