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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23. 2023

눈먼 나랏돈을 챙겨 먹는 지자체의 민낯 보고서

'균특회계'라는 이름으로 제 주머니 채우기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590


4월 28일, 4월의 공식적인 마지막 날까지 시간을 잡아먹었던 문제의 J시청 담당자에게서 분명히 내게 통보전화가 왔었다.


"저희는 교수님이 제출하신 사업 기획안에 대해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 말단 주무관의 한참 위의 상관에게 항의를 하고 시장실에 전화를 걸어 비서실장과의 한판을 뜨고 나서 문득 그 금요일 저녁에 상위 지자체인 충북도청에서 연락이 왔다.


"아주 늦은 시간에 교수님이 제출하신 기획안이 저희에게 정식 제출되었습니다."


'뭐라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자기네가 부적합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수용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멀쩡히 상위 기관에 제출했다니? 게다가 그들은 제출했다는 통지조차 내게 공유해주지 않았다.


막 나가는 충북 촌구석의 개판 신공은 그게 정점이 아니라 막 시작이라는 사실을 나만 눈치채지 못했다. 


5월 15일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J시청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5월 18일에 충북도청에서 사업 심사평가회를 갖는다고 공문이 왔는데요. 교수님이 참석을 하실 건지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이봐요. 4월 28일에 나한테 마지막으로 전화해서 부적합하다고 위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듯 전화한 게 마지막인데, 뜬금없이 전화해서 이제 심사평가회에 나오겠냐고 하는 게 정상적인 업무처리입니까?"

"..."

"만약 4월 28일에 그렇게 전화를 하고서 내가 감사원이나 충북도청 감사실에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하겠다고 고지한 게 겁이 나서 그제야 정신 차리고 위에 낸 거라면 최소한 나에게 제출되었다고 다시 연락을 담당이 취해줘야 맞습니까? 아닙니까?"

"......"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요? 당신이 담당이면서 부적합하여 제출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놓고 다시 제출했으면 제안서 제출자에게 연락을 해주는 게 옳지 않냐고 묻잖아요?"

"그건... 그러니까... 제가 연락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유체이탈 화법이야? 그리고 당신이 연락하지 않은 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아, 지금 묻고 있는 건 사실관계 확인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사실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잘못이라면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추궁하는 거 아닙니까?"

"......"

"왜 대답을 못합니까? 다시 제출하면서 연락을 해줬어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연락을 못 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인 줄 누가 몰라서 묻습니까? 그게 잘한 일이냐고 묻잖아요?"

"......"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그의 그 무식함이 과연 충청도 촌동네에서 주무관이랍시고 공무원 놀이를 하는 젊은이의 알량한 자존심인가 싶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야지. 그게 그렇게 려운 일입니까?"

"......"

"그래서 지금 18일 목요일에 충북도청에 나보고 오라는 거지요?"

"아, 아니요. 오라는 게 아니라 참석을 하실 건지...."

"그러니까 내가 가서 설명해야지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보나 마나 또 멋대로 방해하고 망칠 거 아닙니까?"

"......"

"다시 제출했다는 건 제대로 발표를 그날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저희는 부적합 의견을 그대로 첨부해서 냈습니다."

"뭐라고요???"


뚜껑이 확 열리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떤 지자체에서 중앙정부와 연계된 사업을 신청하면서 자신들이 그 사업이 부적합하니 하지 않겠다는 의견으로 상위 지자체에 사업 기획안을 내며, 또 당일 출장까지 내가면서 가서 발표를 한단 말인가?


"아니, 다시 물어봅시다. 그러면 지금 그 사업이 부적합하다고 시행하지 않겠다는 의견으로 상위 기관에 심사를 받겠다고 일부러 발표하러 간다는 거지요?"

"그건, 저희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충북도청에서 발표하러 오라고 해서..."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뱉는 거요? 당신들 그날 하루 출장여비까지 청구해서 청주 가서 발표하고 올 거면서 지금 그 사업에 대해서는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견으로 발표를 하겠다는 거잖아? 내 말이 틀립니까?"

"그건... 맞, 맞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지차체의 공무수행이요?"

"저희는 충북도청에서 발표하러 오라고 하니까 준비해서 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가 정말로 머리에 뇌가 들어있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그렇게 말했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그러면 최소한 발표하고 심사를 한다면 심사규정에 맞춰 자료가 요구되어야 하잖아요?"

"네? 아 받은 게 있는데 그 평가표에 대해서 보내드릴까요?"

"지금? 발표 3일 앞두고? 계획서 다 냈는데?"

"그럼 보내드리지 말까요?"


어이가 없었다. 겨우 그에게 받은 자료에는 이전 기획서에 평가 기준으로 들어가야만 할 내용들이 심사위원들의 평가기준표로 작성되어 있었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이전에 통화했던 충북도청의 예산심의관실과 농업정책과의 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지자체에서 자기네가 이 사업을 부적합하다고 결론 내리고 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심사평가일에 참석하라고 하니 준비해서 발표를 한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러니까, 그 시에서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도청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심사를 진행하는 도청에서 해당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견으로 발표를 하러 온다는 지자체를 걔들이 그렇게 한다는 걸 뭐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저희에게 뭐라고 하시면...."


J시의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고 해당 지역구에서 빨간당의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국회의원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보좌관은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나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상황은 이해를 했는데, 저는 시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이런 촌구석 지자체하고는 처음 일해 보시죠?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의 뜻 모를 마지막 헛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상식적인 부분은 이해했다고 하니 그에게 제대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본래 해당 사업을 진행하던 중앙부서의 사무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공유했더니 여자 사무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떻게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지 저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데요. 아무리 저희 부서에서 진행하던 사업을 균특예산으로 분류해서 지자체에서 선발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건지.... 제가 지금 담당이 아니라서 담당 사무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교수님에게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주로 회의에 참석하러 가기 전까지도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도청옆의 연구원이라는 심사회장 건물에 들어서니 1층에 J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촌스러운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친구가 주무관일 테고 나이가 좀 든 쪽이 발표를 맡았다는 팀장인 듯 보였다.


"팀장님이신가요? 나 누군지 알죠?"

"아, 예."

"오늘 발표하신다고요?"

"아, 예."

"시에서 부적합하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면서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 내렸다면서 발표를 하러 온다는 게 앞뒤가 맞습니까?"

"으음.... 사실 저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처음이라니요?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J시에서 여기까지 왕복 5시간에 오늘 출장여비 따박따박 청구하고 놀러 와서 맛있는 거 먹고 가는 거예요?"

"정 그렇게 말씀하시니 출장비는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이 사람이 장난하나! 지금 출장비가 문제요? 이게 도대체 무슨 블랙코미디란 말입니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심사회장에 들어가셔서 교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요. 저희는 준비된 설명을 하겠습니다."

더 이상 그와 의미 없는 실랑이를 하는 것이 에너지 낭비인 듯싶어 속을 삭이다가 심사회장으로 들어섰다. 위원이라는 이름표를 앞에 둔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뒤쪽에 도청 담당 직원들인지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신기하게 보던 이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마치자 그들은 신기한 눈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하루 전 도청 담당에게 이 블랙 코미디에 대한 진상의 간략한 정리와 함께 본래 심사표의 기준에 들어갔어야 할 내용들에 대해서 정리한 참조자료가 그들에게 나누어졌다.


내가 작성하여 제출했던 계획서를 대강 정리해서 읽어 내려가는 방식을 취하던 팀장은 그 마지막 장에 J시의 의견이라는 항목에서 자신들의 시에서 이미 농촌협약사업의 일환으로 해당 지역에 복합커뮤니티센터 및 다목적 보건시설을 건립할 계획이 있으며 그것이 2026년 완공 예정으로 93억의 예산이 투자되기 때문에 사업비 중복투자 및 이용량 저조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을 포함시켰다.


머리를 촌스러운 포마드 기름으로 넘긴 끝자리의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내가 돌리라고 했던 예의 참조자료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건 지자체에서 자기네가 부적합하다면서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견 아닙니까? 이게 뭡니까?"


그의 말을 내가 바로 받았다.


"제가 사업 제안자의 입장으로 답변을 드려도 될까요?"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고개를 일제히 돌리며 시선이 모아졌다.


"보신대로입니다. 그리고 제가 배부한 참조자료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J시에서는 제 사업 기획서에 대해서 아예 시행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 이 발표를 참가하고 진행한 것입니다."

"아니, 이거 다 읽어봤는데요. 이런 민원성 내용을 심사위원들에게 전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알아야 잘못을 바로잡던가 공정한 평가를 할 거 아닙니까?"

"아니, 그리고 평가표에 대해서 일일이 이렇게 내용을 다 채워가지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원래 평가는 기존에 제출한 계획서만 가지고 평가하는 거예요."

"청주에서는 그런가요?"


훅 하고 들어간 내 공격에 그가 움찔하며 얼굴이 단번에 붉어지며 대들듯 외쳤다.


"중앙기관에서도 다 그렇게 해요."

"저도 심사위원을 수십 년간 해왔지만, 본래 계획서 외에 발표하는 당일에 참조자료를 제출하고 보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닌데요."


내 대꾸에 민망했던지 그가 움찔하며 말을 돌렸다.


"음... 발표하러 온 사람이 자기네가 이 사업이 부적합하니 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표명하는 건 내가 30년 동안 본 적이 없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내 태도가 의아했던지, 아니면 심사위원자리에 앉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들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맞설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지 그의 빤한 속내가 얼굴에 모두 드러났다.


"게다가 지금 이 물건지의 주인에게 받은 승낙서는 시와 계약이 된 게 아닌데... 이건 우리가 심사할 대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이 사업의 가이드라인과 취지설명에 보면, 실제로 이 사업의 주체는 지자체의 직영방식과 또 하나 비영리 법인이나 재단법인등 개인이 운영주체가 되어 진행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이걸 심사할지 말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지금 공정하게 심사만 할 뿐이라고 얘기하시던 분이, 심사를 할지 말지 따져야 한다고 바람 잡는 겁니까?"

"아니. 지금 말꼬리를 잡고...."


그가 뭐라고 더 대꾸하려다가 더 이상 말을 하는 것이 자신의 손해임을 깨달았는지 입을 닫았다.


"그러면 제가 이 사업 주무부서의 사무관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이 자리에서 확인을 시켜드릴까요?"


내 도발에 심사위원장이 중재하듯이 말렸다.


"이건 도청 주무관이 주무부서 사무관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세요."


전화기를 들고 주섬주섬 기어나가는 주무관이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멍하니 기다리고 있느니, 본 기획안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대쪽에 굳은 떡진 머리의 시골 아저씨가 시비를 걸며 나섰다.


"아니. 저간의 사정은 알겠지만, 격조를 지켜주세요. 우리도 지금 말할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좀 그렇게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격조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지금 나보고 손들고 발언권을 얻고서 말하지 않았다고 격조를 논하는 겁니까?"


성질 같아서는 지방대 교수 출신으로 보이는 이 자의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논박하여 무릎 꿇게 하고도 싶었지만 이곳에 온 소기의 목적을 위해 알겠다고 꿀꺽 분노를 삼키고 기다렸다. 그러자 블랙코미디를 찍듯 5분도 못 기다리고는 그 자가 위원장에게 내가 5분 전에 했던 대사를 그대로 발언권도 얻지 않은 채 반복했다.


"이거 통화가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그냥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몇 분이나 시간이 지난 뒤 주무관이라는 젊은 친구가 꾸물거리며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일단 주무부서 사무관은 어제 교수님과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하고요."

"내가 어제 통화한 건 그 전임자 사무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본건과 상관이 없어요. 지금 건물 승낙서가 시와 바로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네. 일단 본격적인 사업 진행 전까지는 승낙서만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그 사실 하나 확인하는데 그렇게 오래 전화를 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군요."


겨우 시작된 회의에서 형식적인 저마다의 지적들이 이어졌다. 처음 포문을 열었던 위원이 다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이건 계획서에 이 건물이 최소한 목조건물인지 콘크리트 건물인지 토지대장조차도 첨부가 되어 있지 않고, 아까 승낙서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지자체에서 아무리 부적합하다고 했다 하더라도 이건 대놓고 너무 막가자는 식도 아니고 무슨 준비가 이렇게 허술합니까?"

"맞습니다. 이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고 지적하신 안전성 등급도 C등급 이상임을 이미 감리업체로부터 확인받았습니다."


지적은 J시에서 나온 팀장과 담당자에게 쏟아졌는데 정작 모든 답변과 보충을 하는 것은 내쪽이었다.

그 위원의 말처럼 지방에서는 발표 3주 전에 제출된 계획서만으로 판단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굳이 발표를 하고 잘못된 수치를 교정하며, 보완자료를 통해 질의응답에서 심사위원들의 지적을 모두 해소해 주었다면 그 역시 평가에 반영될 부분이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기어코 그 바람잡이 위원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또 튀어나왔다.


"올해 안될지도 모르지만 다음에 다시 준비한다면 이런 부분들을 모두 서류로 보충해서 내세요. 누가 발표 당일에 참조자료를 참고해서 평가를 합니까?"


그렇다면 굳이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뭐 하려 하느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겨우겨우 평가를 마치고 서울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어제 월요일 오전 J시의 주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이 제출한 제안서가 미추천되었다는 결과 통지를 받아서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깔아놓은 판대로 결과를 통보했다. 그대로 수긍할 리 없는 내 성질이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 통보서류를 나한테 공유해 주세요."

"네? 이거 비공개 서류인데요?"

"내가 제안서를 낸 당사자인데 평가 결과 서류를 내가 받는 게 안된다고 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그럼 내일 결제받고 다시 보내드릴게요."

"한 가지만 더. 지금 구두로 말한 이유가 맞다면 계획서에 증빙과 설명이 부족했다는 이유와 지자체의 노력 부족이라는 사유인데 만약 내년에 다시 준비해서 제출할 의향이 있나요?"  

"팀장님..."

주무관은 곤란한 듯이 옆의 팀장을 불렀다. 팀장이 전화기를 받아 대답했다.

"올해 환경이 내년에도 바뀔 게 없는데 저희의 의견이 달라질 리가 있을까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아, 그게 저어...."


다시 전화를 받은 주무관에게 되묻자 그가 준비했는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 내년에도 제출해 주시면 그 계획안을 저희가 심사해서...."

"이봐! 당신들이 심사하는 곳이 아니라 이 사업은 당신들이 제출하고 뽑아달라고 하는 입장이라고 몇 번을 말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말귀를 알아듣는 듯 동조했던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러자 그는 결과를 듣고 나서 지난번과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요, 교수님. 제가 시청에 알아봤더니, 그쪽에서도 재정자립도 때문에 돈이 부족한데, 이런 사업지원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거부했답니다."

"이봐요. 내가 지원한 사업의 최대 지원금액은 4억 5천입니다. 심사위원조차도 왜 4억 5천을 모두 지원해 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묻습디다. 그래서 50%는 중앙정부 예산이지만 50%는 시에서 부담해야 해서 그렇다고 부담된다고 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 그 시에서는 93억을 지원받아서 자기네 보건시설 및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답니다. 내가 운영하려는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 와서 시골을 경험하게 하는 한국학 배움터인데, 그게 컨셉이 겹쳐서 사업비가 중복 투자되고 효율성이 떨어진답니다."

"그건 그러니까.... 저는 자세한 내용을 잘 몰라서...."

"모르면 그 시 시장을 두 번이나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는 곳에서 알아보고 바로잡아야 할 거 아닙니까? 내가 그들과 같이 술 마셔가며 형님동생하지 않는다고 그들과 뒷돈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1억 들어가는 사업에 재정자립도가 약하네 마네 하면서 93억을 들이는 돈잔치를 한다는데 그게 정상이요?"

"교수님. 사실 국회의원실에 민원이라는 건 이런이런 게 있는데 그걸 좀 추천하게 해 달라, 하는 요청이 대부분인데, 교수님처럼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으니 사실관계를 조사해서 잘못을 바로잡아라,라고 하시면 국회의원실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요? 지역구 국회의원이 그 시의 시장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 그 시에서 벌어진 잘못을 바로잡는 걸 할 수가 없어요?"

"아니 꼭 비리라고 밝혀진 것도 없잖아요?"


그와의 대화가 더 이상 무의미했다.




그 시골에서 더 많이 배운 자들은 이미 서울로 모두 상경해서 한 자리씩을 하고 있되, 그 지역에 남은 자들은 대개 그렇고 그런 자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기네들끼리 해 먹는 돈잔치가, 중앙정부 예산이라는 눈먼 돈을 챙겨서 자기들 주머니가 터져라 집어넣는 것에 혈안인 것까지도 잘 알았지만, 아직 해당 지역에 도시가스조차 제대로 매설하지 않은 지역에서 93억을 들여 돈 잔치를 하면서 1억을 들여 폐건물을 리모델링한다는 본래의 정부사업이 중복되니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짓거리를 반복하는 이상 그들은 촌구석의 무지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곳이 촌구석이라고, 그들의 가방끈이 짧다고, 혹은 지방대 출신이라고 그들이 비난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등급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폄하한다고 내내 피해의식을 내보일 뿐이다.


중앙정부 부서의 사무관은? 여의도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었다는 보좌관은?

그들은 뭐가 다르던가?


사회가 저급한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좀먹는 일은 어느 한 사람만의 그릇된 판단과 행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배우고 깨닫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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