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이 눈먼 돈이라며 해 먹는 자들도 국민이라고?

국민을 위하라고 했더니 나도 국민이라고 헛소리하는 자들에게.

by 발검무적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하며, 〈재물을〉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되 철(농한기)에 맞추어하여야 한다.”

이 장에서는 드디어 위정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부려야 하는지에 대한 다스림(政事)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등장한다. <논어(論語)>에는 다양한 가르침들이 녹아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배우고 익혀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종국적인 목표지향점은 결국 제대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 모두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실천의 완성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신을 다스려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나라에 도가 통하지 않고 군주가 간언을 듣지 않는 지경에 된다고 하여 그저 은자(隱者)를 자처하는 행태조차 공자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신을 수양하고 완성하는 이유조차도 더 배우고 더 익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면 결국 백성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군주를 도와 사회와 국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다스림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그 다스림에 대한 첫 가르침인 만큼 이 장에서는 다스림이 지향해야 할 목표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고 있다. 주자가 이 가르침에 대해서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道(도)’는 다스림이다. ‘千乘(천승)’은 제후의 나라이니, 그 땅이 兵車(병차) 千乘(천승)을 낼 수 있는 곳이다. ‘敬(경)’이란 一(일)을 주장하여 다른 데로 감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한다.’는 것은 그 일을 공경하고 백성에게 믿게 하는 것이다. ‘時(시)’는 농사짓는 틈의 때(농한기)를 이른다.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이 이 다섯 가지에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또한 근본을 힘쓰는 뜻이다.

원문에서 굳이 일반적인 표현으로 ‘나라’라고 쓰지 않고 ‘千乘의 나라’라고 한정한 듯한 표현을 쓴 것은, 공자의 봉건제 당시 나라의 규모에 따라 제후국으로 규정하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원문에서 말하는 천승지국(千乘之國)이란, 말 4필이 모는 전차 1,000대를 운용할 수 있는 규모의 나라, 다시 말해 제법 봉토가 큰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을 의미한다. 참고로, 천자는 만승(萬乘)의 나라로, 제후는 천승(千乘)의 나라, 대부는 백승(百乘)의 나라로 그 규모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 1승(乘)에는 말의 유지비용만 막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병사의 수도 엄청났다. 갑사(甲士) 3명, 보졸(步卒) 72명, 취사병 10명, 피복담당 5명, 말 담당(수송) 5명, 땔나무와 물 담당 5명까지 모두 100여 명의 병사가 전차 1승을 보조하기 위해 출전해야만 했다. 그런 전차가 1,000대라고 하였으니 당시 제후가 차지하고 있는 봉토(封土)와 경제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장에서의 방점이 제후국의 규모를 강조하기 위한 것에 찍혀 있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천자의 제국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그만한 규모의 나라임을 강조한 것인데, 그 정도 나라라면 천자국까지는 아니어도 신하들의 체계를 갖춤에 있어 결코 천자의 나라와 비교하여 허술하다거나 소략하지 않음을 역설하기 위한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장에서 가르침의 방점은 그 뒤에 있는,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설명에 찍혀있다.


첫 번째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하라’는 것은 앞서 살펴보았던 기본이 되는 사람 간의 신뢰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 ‘(재물)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사안도 물자를 절약해야 하는 이유가 사람, 즉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한다. 자신의 물자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것을 아껴주라는 설명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으로 ‘백성을 부리되 철(농한기)에 맞추어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은 백성들에게 공역을 시킬 때에도 먹고살도록 농번기를 피해 적절한 시기를 골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자의 ‘애민(愛民) 의식’이다. 이 장과 연계하여 뒤에 공부하게 될 ‘안연(顏淵) 편’의 7장에서는 백성들을 챙기는 애민의식에 입각하여 구체적으로 먹을 것과 군사력, 그리고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을 마지막에 남겨야 하냐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대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서는 정치란 존재할 수 없다고 공자는 단언한다.

그래서 다스림에 대해 첫 포문을 여는 이 가르침이 가장 기초적이지만 공자가 가리키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정자(伊川(이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이 말씀은 지극히 淺近(천근)하다. 그러나 당시 제후들이 과연 이에 능하였다면 또한 충분히 그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성인은 말씀이 비록 지극히 천근하나 上下(상하)에 모두 통하니, 이 세 말씀을 만일 그 지극한 데에까지 미루어 나간다면 요 · 순의 정치도 여기에 지나지 않는다. 常人(상인, 보통 사람들)의 말로 말하면 가까우면 천근할 뿐이다.”


정자는 ‘천근(淺近)하다’는 표현으로 형이상학적인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자의 방편설법(그 사람의 눈높이와 상황에 맞춰 알려주는 방식)에 의거하자면, 다스림이라는 것이 대단하고 어려운 용어로 애매모호하게 형이상학을 찾을 것도 아니고 지극히 단순함을 보여준 것이고 그 부분을 더 강조하기 위해 언급한 역설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정자의 표현에 의하면 지극히 지엽말단적인 천근한 이 장의 가르침에 대해서 세 사람의 학자에 대한 견해를 주자가 편집하여 실어놓은 것만 보아도 이 부분에 대해서 배우는 자들에게 생각할 거리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두 번째 학자인 양 씨(楊時(양시))의 설명을 살펴보자.


“윗사람이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태만하고, 〈윗사람이〉 미덥게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의심하니, 아랫사람들이 태만하고 의심하면 일이 성립되지 못한다.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한다는 것은 자신이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제도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손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쓰기를 사치하게 하면 재물을 손상하고, 재물을 손상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침에 이른다. 그러므로 백성을 사랑함은 반드시 節用(절용)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을 부리기를 농한기에 하지 않는다면 본업(농업)에 힘쓰는 자들이 스스로 다할 수가 없어서 〈윗사람이〉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위정자가〉 마음속에 두어야 함을 논하였을 뿐이요, 정사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만일 〈위정자가〉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비록 훌륭한 정치제도가 있더라도 시행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마련하고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근본은 그것을 실행하는 위정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근본을 되새기라는 해설이다. 이 주석에서는 원문에서 조금 더 부연이 필요했던 절약절검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나라의 돈은 결국 눈먼 돈이라며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물론, 그 돈을 개인의 주머니에 쑤셔 넣기 위해서는 그 돈을 집행하는 자가 동의하거나 동조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즉,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랏돈을 가지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고 평안하게 만들어야 할 자들의 전횡과 일탈이 없고서는 나랏돈이 눈먼 돈이라며 키득거리고 자기 주머니에 그 돈을 욱여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장에서 말하는 절약절검, 즉, 나랏돈을 아끼는 이유는 그것이 집행하는 자들이 아닌 바로 백성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노동력이 언제고 동원할 수 있는 위정자의 특권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제각각 개인에게 속한 고유한 자유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씨(胡寅(호인))는 그 절약절검의 근본이 되는 것에 이 장의 첫머리에 왜 공경의 의미가 들어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무릇 이 몇 가지는 또 모두 敬(경)을 위주로 한다.”

그래도 그 의미를 혹여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한 주자는 다시 한번 이 장의 의미와 더불어 주석에서 살펴보았던 다양한 의견들을 참조하여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라고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다섯 가지는 반복하여 서로 원인이 되어 각기 차례가 있으니, 읽는 자들이 마땅히 세세히 미루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돈을 쓰는 자기 카드를 사용할 때와 회사의 돈을 쓰는 법인카드(a.k.a 법카)를 쓸 때의 행태가 현저히 다른 자들이라면 그들은 이미 잠재적 횡령범으로서 감옥에 갇히기에 손색이 없다.


하물며 공직자라는 이름을 달고 공무수행을 빙자하여 회의비에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이의 사인을 나중에 받는 방식으로 자신의 돈으로는 가보지도 못할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돈을 펑펑 쓰는 자들의 이야기는 쌍팔년도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당신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사립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립대에서 정부 지원사업을 네 하면서 지원금이나 연구비를 받아서는 마치 대학원생들에게 월급을 준 것처럼 꾸미고 그들의 통장을 교수라는 작자가 직접 관리한다면서 다시 착복하여 개인 용도로 거침없이 사용하여 적발되는 경우는 너무 비일비재하여 특별한 범죄사례 축에도 끼지 못한다.

2018년 보도자료이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 것 같은가?

외교부의 대사나 국장급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과 영합하여 이제 막 공직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무직 여직원과 경리담당 새내기 외무행정원들이 그것이 관례라며 팀 회식을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고급 와인까지 시켜 비싼 스테이크를 남겨고 나올 정도로 즐겨놓고서 마치 중요한 대규모 회의가 있었다는 식으로 서류를 꾸미는 것은 그들에게 익숙한 공무(?)가 되어버렸다.


그들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들이 내는 여러 명목의 세금들이 모아져 국고에 들어가고 그 돈이 다시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펑펑 쓰는 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예산으로 떨어진 돈은 눈먼 돈이라고 하여 위에서부터 국장이나 대사가 시키는 대로 명목만 적당히 달고 문서만 그럴싸하게 꾸며 그들의 개인 용품을 구매하고 그들의 가족들이 비싼 곳에 가서 먹고 마시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래서 윗사람이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들도 적당히 해 먹어도 된다는 의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저 윗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외교관들에게는 각종 특혜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외교관 자녀들의 현지 국제학교에 대한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 학비가 그들이 받는 월급과 집값을 더한 것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아니다.그 혜택이 정상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그들의 권리라고 여기기 시작하였다. 매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아무리 비싼 현지 최고급 국제학교를 다니더라도 차액을 개인이 내면서 학교를 보내는 경우는 없다.

https://www.ajunews.com/view/20200322101114284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들이 말단일 때, 대사와 영사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보아왔던 그 관례라는 이름의 전횡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규정이나 법으로 막아버리는 순간, 이전에 그것을 전횡하며 누린 자신들의 불법과 전횡이 언론을 통해서 봇물 쏟아지듯 터져 나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식 외무고시도 아닌 현지에서 현지인 채용이나 국내에서 외교부 행정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뽑는 포지션의 처우를 보게 되면, 200여만 원 남짓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부가혜택으로 그들에게 월급만큼의 집값이 실비로 제공된다. 외교관의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를 따라다니며 현지 최고급 국제학교를 나와 제대로 된 직장도 잡지 못하고 다시 그 부모의 후광으로 외교관이 된 자들은 도련님과 아가씨이기 때문에 민원업무나 거친 현장의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잡대 출신이면서 시험으로 들어온 이들을 방패삼거나 잡무는 행정직원이라는 이들에게 모두 시킨다.


열정페이에 무시당하며 일하지만, 그나마 200여만 원의 월세집에 살며 외교부 행정직원이라는 특권을 누려보겠다며 발버둥 치는 이들도 역시 국민이다. 그리고 그 골 빈 자들이 펑펑 쓰는 돈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십시일반 거둔 세금이다. 왜 공자가 절약절검이 국민을 공경하고 신뢰를 주는 일이라 했는지 이제 좀 알아듣겠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