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고 나서 힘이 남는 경우란 언제일까?

최선을 다했다면 도대체 남은 힘이란 게 어디 있나?

by 발검무적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弟子가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仁한 이를 친근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함에(행하고서) 餘力(餘暇여가)이 있으면 그 여력을 이용하여 글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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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공자의 학문(學問)에 대한 인식과 그 가르침의 기본이 무엇을 중시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이 학문(學問)의 본질이 아님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장의 가르침에 다름 아니란 의미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책을 통해, 스승과의 수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 장에서 일러준다. 몸소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먼저 실천한 뒤에도 여력이 있거든 그때가 되어서야 글을 공부하라(行有餘力 則以學文)고 말한다.


이 가르침에 대해 주자는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謹(근)’은 행실에 일정함이 있는 것이요, ‘信(신)’은 말에 실제(성실함)가 있는 것이다. ‘汎(범)’은 넓음이요, ‘衆(중)’은 衆人(중인, 여러 사람)을 이른다. ‘親(친)’은 친근히 하는 것이요, ‘仁(인)’은 仁者(인자)를 이른다. ‘餘力(여력)’은 暇日(가일)이란 말과 같다. ‘以(이)’는 이용함이다. ‘文(문)’은 詩書(시서)와 六藝(육예)의 文(문)을 이른다.


入(들어오다)과 出(나가다)의 의미는 본래 집안으로 돌아왔을 때와 공무를 위해 나갔을 때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앞서 ‘제자(弟子)’라고 대상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아직 자리를 얻지 못한 배우고 있는 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적인 업무에 나서는 것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사적인 집안의 공간과 공적인 집을 나선 이후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그 대상의 범주를 규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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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장의 핵심은 일반인들이나 배우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여기는 학문이라는 것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갖춰야 할 공부가 따로 있음을 강조한 데 있음을 정자(伊川(이천))가 다음과 같이 다시 정리하여 설명한다.


“제자가 된 본분은 힘이 남음이 있으면 글을 배우는 것이니, 그 본분을 닦지 않고 文(문)을 먼저함은 爲己(위기)의 학문이 아니다.”


위 주석에서 ‘본분’이라 지칭한 것은, 배우는 자로서의 본분이 배우는 것 이전에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효제충신에 있다는 이 장의 가르침을 강조한 설명에 다름 아니다.


한편, 이 장에서 공자가 굳이 대상을 규정하지 않고 설명해도 되었을 부분에 굳이 ‘제자(弟子)’라고 대상을 규정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래 ‘제자(弟子)’란, 배우는 학생을 일컫는 의미이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자신의 아우와 자식을 가리키는 뜻으로 구분하기도 했었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내 아우, 내 자식에게 스승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형으로서 부모로서 제공해야 할 본보기가 고스란히 교육의 형태로 비친다는 사실을 공자는 강조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왜냐하면, 스승이 학문을 전수하는 제자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학문‘만’을 가르치는 직업적인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든 삶의 자취들이 거울이 되어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고스란히 교육의 형태로 전수되는 부모이자 형이라면 그 책임감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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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그것이 단순한 책임감 때문임을 넘어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 나를 보고 내 발자취를 보고 그대로 따라오는 아우와 자식에게 사리사욕을 챙기는 모습이거나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기 위해 도리를 저버리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끄러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우와 자식이 어느 순간 그런 행태를 저지르는 것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업보에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가르침의 핵심을 이해한 윤 씨(尹焞(윤돈))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을 풀이하였다.

“덕행은 本(본, 근본)이요 문예는 末(말, 지엽)이니, 그 본 · 말을 궁구하여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덕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논어(論語)>를 시중 현대해설서의 적당한 의역만 적당히 훑어 읽은 이들은 위 주석을 그저 고리타분한 덕행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책을 파고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덕행을 강조한 가르침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조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초심자들이 그런 오독(誤讀)과 헛발질을 할까 싶어 저 유명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쓰윽 지나치고 마는 마지막 문장을 넣은 것이다.


‘덕행을 실천하고 나서도 힘이 남으면’이라는 문구는 덕행과 학문을 대조의 개념으로 비교한 것이 아니라 순서의 개념으로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가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서가 잘못된 당대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고, 결국 공부의 목적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부귀영화의 도구정도로 여기는 배우는 자들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의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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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홍 씨(洪興祖(홍흥조))는 그 의미를 간과하고 넘어갈 초심자들을 위해 공자의 우려를 다음과 같이 콕 짚어 다시 설명해 준다.


“여력이 있지 못한데 文(문)을 배우면 文(문)이 그 질(質)을 멸하게 되고, 여력이 있는데도 文(문)을 배우지 않으면 질에 치우쳐서 비루해질 것이다.”


위 주석에서의 질(質)은 본질(本質)이자 본래 학문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부분을 의미한다. 이쯤 되면 ‘힘이 남으면(餘力)’이라고 한 표현조차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넘어갈 단순한 표현이 아님을 어슴푸레하게나마 감지하게 된다.


무언가를 행하고 힘이 남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이 내가 가진 힘에 비해 별것 아닌 일이거나 내가 그 일을 최선을 다해 남은 힘이 없을 정도로 모두 쏟아붓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맞다. 이 간단해 보였던 표현에는 무시무시한 공자의 죽비가 이미 당신의 머리를 몇 번이고 후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책을 읽고 알량한 지식을 쌓아 그것으로 시험점수를 높게 받아 벼슬자리를 얻거나 한 자리 얻겠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그 공부를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기본적으로 행할 수 있는 효제충신(孝弟忠信)을 먼저 생활에서 충분히 실행해 보이고 나서 그 이후에 그 행위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나면 그다음에 학문을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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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느 순간에도 완성이란 있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 나 스스로의 다스림(愼獨)을 의미한다. 조금 깊이 들어가서 설명하자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절한 고민과 목표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따위의 적당한 혹은 그릇된 마음가짐으로 출발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가르침이 바로 이 장의 핵심이다.


이 내용이 <논어(論語)>의 첫 편의 앞부분에 실린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이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를 공부하고 나서 혹은 공부하면서 생각한다는 것은 순서상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하다못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기술조차도 그것이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에 대한 원리와 해당 물체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한 자와 그렇지 못하고 그저 무작정 배운 대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자와의 차이는 당장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판연히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강연을 하러 다닌 이가 강연에서 사람들에게 감동 포인트를 만들겠다며 부모님에 대해 소홀한 자식들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며 강변하고 부모가 되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된다면서 자기 자식들에게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니 효가 고스란히 답습되는 것처럼 불효가 그러하다고 열변을 토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치자.


그렇게 열변을 토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힘들다며 먹을 것을 챙겨주는 노부모님에게 귀찮다 소리 지르고 자식이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는 전화를 담임에게 받고 다짜고짜 자식에게 언성을 높이며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며 강연하고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성질을 피운다면 그의 강연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삶은 이미 어그러져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은 고사하여도 의미전달조차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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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척할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연기자에 지나지 않기에 그 가식 어린 민낯이 어느 순간 밝혀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그를 걱정하는 부모나 그래도 부모라고 그에게 악플 달리는 것을 걱정하는 자식이 그의 민낯을 아는데, 그의 민낯이 언제까지 연기로 감춰져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공자가 <논어(論語)>의 가르침을 통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 그리고 이 장에서 간략하지만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겨있는, ‘효제충신(孝弟忠信)을 몸소 행하되, 그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仁한 이를 친근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야말로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마음가짐과 목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행하는지에 대한 배움이 있지 않고서 무작정 행하는 것에만 경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중도(中道)의 가르침도 잊지 말라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힘써 행하기만 하고 文(문)을 배우지 않는다면 성현이 만들어 놓은 법을 상고하지 못하고 사리의 당연함을 알지 못하여 행하는 바가 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올 것이요, 단지 비루함에 잘못될 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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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비유한 바와 같이, 기계를 만들고 고친다고 하더라도 기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래 그 기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서 그 부분들이 어떤 목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한다면 그것을 그저 똑같이 만들거나 이전의 형태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목적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물건을 발명하거나 현재의 상태를 훨씬 더 나은 형태로 개선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물리적인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일에도 그러할 진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복잡다단한 일에 있어서랴?


지금 자신의 호주머니에 돈을 욱여넣기 위해 비리를 저지른 자들도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거나 법을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도덕시간에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배웠을 것이며, 불쌍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대변하여 힘이 있으면서 약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도리이고 우리가 이뤄야 할 목표라고 배우고 익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삶이 아내가 젊은 남자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자식이 자신의 지위와 부를 이용하여 힘없는 친구들을 괴롭히고 배후에서 집단린치를 하고서도 아비의 권위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무마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망나니로 자라게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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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어렵게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부모라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능력도 안 되는 자식을 자신이 속한 조직에 꽂아주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기관이나 대기업에 밀어 넣는 식의 행태가 이젠 빨간당 파란당을 넘어 정부 각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에게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마는 자식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공정과 상식을 논하고 삐뚤어진 사회를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식의 온라인 시험에 자신이 함께 시험을 치르는 행위를 하고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의 정의는 어떤 식으로 포장하더라도 대의명분을 결코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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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없는 제 자식을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꽂아주겠다고 부정을 저지른 것이 세상에 밝혀지고 나서도 버젓이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국민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자들이 기생하는 것은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겠다며 표를 던져주는 개돼지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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