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강조한 진짜 이유

네 품행이 잘못되면 그 말이 옳더라도 공감해 줄 수가 없단다.

by 발검무적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曾子가 말씀하였다. “終(초상)을 삼가서 치르고 돌아가신 분(先祖)을 추모하면 백성의 德이 후함에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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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바로 앞의 8장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궁금할 총명한(?) 학도가 있을까 싶어 그 이유를 일러주자면, 동일한 내용이 뒤에 한쪽만을 남기고 중복 게재되어 뒤에서 이미 해제를 한 관계로 생략된 것이니 원문을 찾아서 확인하기를 권한다.


이 장은, 증자(曾子)의 입을 통해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예법(禮法), 그중에서도 상례와 제례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치도구로서 전락해 버린 성리학이 유학을 유교로 변질시키면서 현대 세대들에게 상례와 제례는 마치 고리타분한 격식만을 강조하는 허례허식으로 곡해된 바 있는데, 본래 공자가 강조했던 가르침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이 장을 통해 약간이라도 그 오해를 불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장의 결론은, 상례와 제례를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의 덕(德)이 후해질 것이라는 공효를 강조한다. 도대체 그 둘 간에 어떤 상호과정이 있어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주자는 이 장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愼終(신종)’은 초상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요, ‘追遠(추원)’은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民德歸厚(민덕귀후)’는 下民(하민)이 교화되어서 그들의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감을 말한다. 초상은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인데 능히 이를 삼가고, 멀리 돌아가신 분은 사람들이 잊기 쉬운 것인데 능히 이를 추모한다면 후한 도이다. 그러므로 〈위정자가〉 이것을 자신이 하면 자신의 덕이 후해지고, 아래 백성들이 교화되면 그들의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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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뜬금없는 설명이라 느낄 수도 있겠으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주석이다. 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슬픔을 담아 정성껏 상례(喪禮)를 치르는지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맞춰 왜 매년 제례(祭禮)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설명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상례와 제례의 본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에게 자연스러운 교화를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 백성들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해주는 말처럼 주자는 상례는 소홀하기 쉽고, 멀리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잊기 쉬운 것이라 당시 사람들의 세태를 그대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러한 세태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것 자체가 후한 도(道)라고 강조한다.


단 아홉 자로 축약된 이 장에 대한 주어는 사실상 생략되어 있다. 정확하게 분류해서 말하자면, 배우고 익혀 상례와 제례를 제대로 갖추어 시행할 줄 아는 위정자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그 엄중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그 행위의 본질을 백성들이 되새기고 따르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교화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과 본질을 백성들이 깨닫게 되고 그것이 사회적 분위기로 완성된다면 그 덕 자체가 다시 위정자를 존경하고 따르려는 것으로 선순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조상의 묏자리를 명당을 써야 나와 내 자손이 덕을 본다는 둥, 조상에게 후하게 제사 지내고 잘 모셔야만 그 음덕(陰德)이 나와 내 자손의 일에 보이지 않는 도움을 준다는 둥 어떻게 해서든 큰돈을 뜯어내기 위한 삼류 무당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 장의 가르침이 사용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굴욕적인 것이고 오독(誤讀)의 정도가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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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부모가 자신에게 잘해주지 않는다고 자식을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또, 어떤 부모가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자식들을 보이지 않게 돌보았으면 돌보았지 자신의 묏자리를 명당으로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돕지 않고 명당이라 해서 더 돕고 한단 말인가? 그 논리의 출발점에서부터가 아무리 배우지 못한 자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궤변을 배태하고 있지 않은가?

앞서 조금 뜬금없다고 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가져온 것은 바로 그런 허황되기 그지없는 비논리로 흐르는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다. 주자도 주석을 통해 결국 돌아가신 분에 대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억하지 않고 추억하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게 되는 인간의 본성을 지적하면서 그 추모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새길 계기를 마련하라 완곡하게 일러준다.


역사공부는 지난 과거를 통해 앞으로 일어난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다. 반복되는 듯이 벌어지는 유사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과거에 사람들이 보였던 행태에 대한 공부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결정을 하려면, 일종의 실험 데이터로서의 과거는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독약이 드는지 안 드는지 마셔보고 죽어볼 수 없다는 이유를 포함하여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실증적으로 실험하고 체험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탓에 인간은 과거라는 학습 데이터를 통해, 동일한 혹은 유사한 상황과 인간 유형들이 어떤 결정을 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역사를 통해 배우고 그것이 실패이든 성공이든 교훈을 삼고 자신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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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들은 과거이다. 그분들이 살아온 시대나 행위자체가 모두 과거이자 역사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그저 데이터로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의 가족이었고 조상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객관적인 데이터로서의 가치를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DNA가 내재되어 있음을 느낀다. 심지어 조상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태어난 손주와 후손들조차도 제대로 된 제례(祭禮)를 통해 조상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추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마치 조상님들이 살아서 함께 살았던 것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모두가 공유하게 된다.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추모하고 마치 살아계신 듯 추억하며 섬기는 제례(祭禮)는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부모님에 대해 결코 소홀할 수 없음을 온몸의 세포로 인지하게 한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에 대해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추모의 마음을 가족과 나누는 이들이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함부로 대하고 자식들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할 리가 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順理)이다.


결국 공자의 가르침에 있어 상례와 제례의 중요성, 그것도 그 본질을 공부해서 깨닫고 그것을 실천으로 행할 수 있는 한정된 위정자에 해당하는 자들은 결국 뭇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서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소 억지를 부리고 공포정치를 통해 강압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인 데이터를 종합해서 보건대, 자신의 군주를 부모님처럼 여겨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나라를 지키고 군주를 지키기 위해 내 가정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전쟁터에 자발적으로 달려간 나라와 강압에 못 이겨 전쟁터에 끌려 나온 백성들 간의 전쟁은 언제나 한결같은 결과를 맺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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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강압에 못 이겨 인해전술로 약소국을 짓밟고 전쟁이 이기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는 결국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 오래 존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順理)였다.


그래서 공자는 위정자들에게 한결같이 백성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는 군주라면 그 백성도 당연히 내 군주를 군주가 아닌 어버이처럼 생각할 것이라 일러주었던 것이다. 이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논리는 실제로 역사적 사실을 검증해 보면 실현했던 군주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장은 겉으로만 보면 상례와 제례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공자가 무엇보다 강조에 마지않았던 예법(禮法)이 어떻게 백성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왜 그렇게 공자가 예법을 강조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초를 제공한다.


앞서 전쟁에 백성을 동원하는 방식에 대해 예를 들었던 것처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의 노동력을 그리고 그의 충성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에 합당한 이익을 공유하거나 제공할 것을 전제로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공포도 있을 수 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체감하게 하는 것 또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라 폄하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 외에도 쾌락을 제공한다던지 가족으로 엮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들은 다른 이의 행동화의 동인(動因)을 만들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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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중에서 으뜸은 그 어떤 동인(動因)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그렇게 하고자 움직이는 것이라고 공자는 설명한다. 그것이 으뜸임을 안다면 그가 스스로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드는 방식과 상황을 조성하면 되는데, 그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공자는 자신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제자들에게 설명한다.


자신이 먼저 그 모습을 실생활에서 솔선수범해 보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왜 옳은 것이고,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풀리도록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그것을 행하는 자는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공자처럼 세상을 바로잡고 옳은 방향으로 끌고 나가고자 함이 목적인 성현(聖賢)은 지극히 한정된 예외적 경우이고, 대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위정자에 해당하는 배운 자들이기 때문이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중세봉건제의 경우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들을 다스려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자,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여 정치를 수행해야 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에 해당한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고 전 세계는 대의민주주의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강대국들마저도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국민여론을 살피고 그들의 지지가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의 인식과 행태는 수천 년 전 공자가 바라보고 한탄에 마지않던 세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우리는 <논어(論語)>를 읽으며 신기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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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한 자리씩 하던 고위 간부들이 능력도 안 되는 자기 자식들을 지방 공무원 9급으로 먼저 앉히고 나서 중앙직에 해당하는 선관위 경력직에 하나같이 응모시켜 신분상승(?)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자진사퇴니 수사를 해야 하니 세간이 시끄럽다. 연이은 뉴스보도 내용에 따르면 그런 행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력직에 대한 정원이 출산휴가로 인한 결원이 많다는 핑계로 더 늘어나 아예 추천직의 자리를 만들 듯이 행해졌다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십수 년 전 외교부 장관이 자신의 백수 딸을 외교관으로 만들기 위해 있지도 않은 경력직을 만들어 채용하려다가 수사를 통한 형사처벌이 논의되기 직전 자신이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면서 전수조사라는 것이 이루어지며 다른 외교부 고위 간부들이 비슷한 행태로 자신들의 능력 없는 자식을 대를 이은 외교관으로 만들려 했음이 백일하게 밝혀진 바 있다.


썩은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명을 달성하겠다며 칼을 뽑아 들었던 전직 법무부장관이자 경성제대 법학과 교수는 자기 아들의 온라인 시험에 자신과 자기 아내까지 동원하여 도움을 줘놓고서도 해당 대학에서 금지하는 사항에 가족이 도와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었다는 궤변을 토하지 않나, 심지어 부정한 스펙을 주저리주저리 달아서 의전원을 보낸 자신의 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는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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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이 말세를 향해 치닫고 있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어퍼컷을 휘두르며 뒤로는 불공정과 몰상식을 주도하는 이가 대통령을 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에는 수천 년 전부터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질 수가 없다.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내 위에 앉아 내게 따르라고 한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과연 모르는 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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