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왜 그토록 많은 위정자들을 만났던가?

큰 스승을 곁에 모셨던 큰 제자의 묵직한 가르침.

by 발검무적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子禽이 子貢에게 물었다. “夫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셔서는 반드시 그 政事를 들으시니,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군주가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 子貢이 말하였다. “夫子는 온화하고 어질고 공경하고 검소(절제)하고 겸양하시어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夫子의 구하심은 他人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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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공자의 말씀이 아닌 자금(子禽)과 자공(子貢)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승 공자와 제자의 문답이 아닌 자공(子貢)의 제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子禽)의 질문에 대해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의 가르침과 그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답변해 주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원문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자에게 직접 사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자금(子禽)이 공자의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공자가 직접 답하는 방식보다는 공자의 측근이었던 자공(子貢)의 설명이 훨씬 더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주자는 먼저 처음 등장한 두 사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인다.


자금(子禽)은 성이 陳(진)이고 이름이 亢(강)이며, 자공은 성이 端木(단목)이고 이름이 賜(사)이니, 모두 공자의 제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진강은 자공의 제자이다.” 하니,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抑(억)’은 반어사(말을 뒤집는 말)이다.


사실 원문에서는 자금(子禽)의 질문이라 하지만, 이 질문은 당대 배우는 자들 중에서 공자의 명성을 들었던 이들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이고 심지어 그 내용을 비틀어 공자를 비아냥거리는 빌미로 사용했던 내용이 이 질문에는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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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해석에서는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군주가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는데, 현대어로 조금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자면, 다스림과 관련된 대화자체가 공자가 위정자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위정자들이 공자의 훌륭한 고견을 듣기 위해 직접 찾았다는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사실 공자나 공자를 존경에 마지않던 자공(子貢)의 입장에서는 그 질문 자체만으로도 모멸감을 느끼고 굴욕을 느낄만한 질문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하물며 자신의 제자가 세속에 도는 말을 가져다 물었으니 자공(子貢)이 화를 낼만도 한데, 자공(子貢)은 스승 공자를 떠올리며 자신의 제자에게 그 스승이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수많은 위정자들이 그 진실을 알고서였던지 아니면 명성만을 듣고 그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차치하고 모두가 스승이 자리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들의 자발적 요청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만약 공자가 먼저 구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낮 부귀나 명예 따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님을 또한 확실히 구분한다.


자공의 이와 같은 대답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은 정리와 설명을 통해, 자공(子貢)이 단순히 스승에 대한 변호나 주관에 입각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닌, 스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묘사하는 것만으로 제자를 비롯한 배우는 자들이 공자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溫(온)’은 和(화)하고 후함이요, ‘良(양)’은 마음이 평탄하고 곧은 것이요, ‘恭(공)’은 莊敬(장경)함이요, ‘儉(검)’은 절제함이요, ‘讓(양)’은 겸손함이다. 이 다섯 가지는 夫子(부자)의 훌륭한 덕의 광채가 사람들에게 접하는 것이다. ‘其諸(기제)’는 어조사이다. ‘人(인)’은 타인이다. ‘부자(夫子)가 일찍이 구하지 않으셨으나 다만 그 덕스러운 용모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당시의 人君(인군)이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政事(정사)를 가지고 찾아와서 물었을 뿐이요, 타인이 반드시 구한 뒤에 얻는 것과는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성인이 지나가면 교화되고 마음에 보존하면 신묘해지는 묘함을 쉽게 엿보아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그 덕이 성하고 예가 공손해서 몸 밖에서 원하지 않으셨음을 또한 볼 수 있으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潛心(잠심)하여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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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위정자들과 매번 만남을 갖고 자리를 가졌던 것은 위정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공자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만은 없다. 다만, 공자가 조국을 버리고 천하주유까지 해가면서 만나고 대화했던 그 수많은 위정자들과의 대화가 서로의 목적에 합치하지 못했던 이유는 동상이몽(同床異夢) 탓이었다.


공자는 덕치(德治)를 펼치기 위한 기반이 필요했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족집게 과외가 필요했지, 이제까지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을 지적받고 그것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공자의 개혁의지에 동조해 줄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어찌 보면, 서로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도 그런 자리를 반복하며 그런 대화를 이어나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여길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자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단 한 사람의 위정자라도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전의 수천수만의 만남이 갖는 덧없음을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고, 공자 같은 성현인 왜 굳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지에 대해 만나보지 못한 위정자들은 호기심과 궁금함,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치가 그 허망한 만남과 대화를 계속 만들어냈던 것이다.


때문에 세속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반복된 행위들이 공자의 끊임없는 구직활동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그렇게 포기하지도 않고 수십 년에 걸쳐 천하를 떠도는 공자를 상가집개라며 놀리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상황은, 왜 부족하고 능력 없어서 매번 차이고 잘리는 것 같은 공자를 끊임없이 위정자들이 찾고 만나려고 안달을 부렸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의 질문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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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공자를 스승이라 믿고 따르며 그 가르침으로 능력을 갖추고 대성한 자공(子貢)을 필두로 한 제자들이 그 상황과 사실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런 스승을 과연 제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대답이 바로 이 장에서 보인 자공(子貢)의 태도와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공자정도의 성현(聖賢)에게 가르침을 직접 받고 곁에서 모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을 감사하고 행복해했던 자공(子貢)의 삶과 학문의 태도는 이렇게 행간에서 묻어난다.


그래서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스승 공자를 곁에서 모실 수 있었던 자공(子貢)을 부러워한 사 씨(謝良佐(사량좌))는 이 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배우는 자가 성인을 威儀(위의)의 사이에서 관찰한다면 또한 덕을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니, 자공으로 말하면 또한 성인(공자)을 잘 관찰했다고 이를 수 있을 것이요, 또한 덕행을 잘 형용하여 말했다고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성인과의 거리가 천 5백 년인데,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그 형용을 상상해 보면 아직도 사람들로 하여금 興起(흥기)하게 하는데, 하물며 직접 성인에게 親炙(친자; 受業(수업))한 자에 있어서랴.”


장경부(張栻(장식))는 당대 위정자들과 공자가 왜 동상이몽(同床異夢) 탓에 그런 속세의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로잡는 공효(功效)를 넘어 자공(子貢)의 가르침에서 배어 나온 것처럼 배우는 자들이 왜 하나같이 위정자가 되어 사특함에 빠져버리는가에 대한 일침을 가하며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부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셔서는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를 들으셨으나 능히 나라를 맡겨서 정권을 맡겨준 자는 있지 않았으니, 이는 성인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좋아한 것은 秉彝(병이)의 덕을 좋아하는 양심이었으나, 사욕이 이것을 해쳤기 때문에 끝내 쓰지 못하였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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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대의 위정자들이 현명한 의견을 듣겠다며 공자를 초청하고 초빙하여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그를 어떻게 해서든 영입하여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 득이 되겠다고 했던 목적은 매우 단순했다. 위 주석에서 사욕(私慾)이라는 한 마디로 장경부가 단정 짓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말로 국익(國益)을 위한 것이고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면 감히 장경부가 그런 단어로 그들의 몰지각함과 속좁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분석해 보면, 그것을 사욕(私慾)이라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근거는 다름 아닌 위정자들의 진심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발견된다. 위정자들이 듣고자 했던 것이 사실 성현의 고견이 아니라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혹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지지해 준다는 공식적인 표명일 뿐이었다는 것임을 감안하면 그들이 공자를 찾은 이유는 더욱 명료해진다.


결국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고서 단 사람의 멀쩡한(?) 위정자를 만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직접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소망을 접어야만 했다. 혹자는 공자가 진정으로 현명했다면 먼저 위정자들의 비위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처럼 신뢰를 얻은 뒤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현실정치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던가 천상 사상가이자 교육자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들과 약간 다르다. 공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공자가 고지식했다거나 정말로 현실적인 정치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면 공자는 자신을 끊임없이 살핀 사람으로서 자신이 직접 정계에 투신하여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진작에 바꾸어 말년에 집중했던 저술과 제자양성에만 집중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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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당대 평균 수명을 훨씬 넘어서까지 제대로 된 위정자를 만나 자신의 사상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이미 자신에게 배운 제자들이 각 나라의 주요한 자리를 맡고 유명세를 떨치던 상황에서 굳이 자신이 아주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쏟겠다고 했던 것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나라이고 아무리 이름 없는 위정자라 하더라도 그것을 표본으로 천하의 모든 이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자신의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자는 매번 그들에게 그 곳의 정치를 들으며 <시경>의 시를 편집하듯 천하의 정치를 또 배우고 익히며 데이터를 업데이트하는 공부를 지속해왔다. 공자의 학문과 가르침은 그 완성을 실천으로 본다. 아무리 인(仁)과 예(禮)를 강조하고 덕치(德治)를 이루라고 하더라도 결국 위정자들과 세속의 사람들은 그것이 구현된 현실화된 정치를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따라 순화되지 못한다는 점을 공자는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만약 공자가 살아있을 때 그 꿈을 이루어 성공했다면 공자는 성현으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상의 존숭을 받는 인물로 남아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무엇보다 공자는 그 인생 전체를 통해 실패했기에 그의 실패가 그의 노력으로 부각되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그 가르침의 울림을 훨씬 더 크고 깊게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세속의 기준에서 명백한 실패를 했던 스승이 정말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자공(子貢)처럼 현명하고 학문이 높았던 인물이 굳이 스승의 시묘살이를 그렇게 오래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뼈에 새기며 스승을 추억하고 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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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의 수장을 포함하여 공자의 당대 위정자들 역시 정말로 똑똑하고 현명하며 수양이 깊은 자들이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중세 봉건제의 경우 아버지가 왕이었기에 그저 자연스럽게 그 왕위를 이어받거나 자신이 선양을 받지 않았음에도 정치적인 사욕을 위해 칼을 들고 피를 보겠다며 왕위를 찬탈한 이들 중에서 현명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사욕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왕은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랐는가에 대한 과정도 중요하지만, 일단 그 자리에 오른 자라면 그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그 자리에 맞는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이들을 보면, 정작 위에 오르기 전에는 그나마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정작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초심을 잃고 망령되어 사욕을 챙기겠다며 혈안이 되어 꼴불견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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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으로 얼룩진 비민주화적인 정권에 젊은 혈기에 화염병을 들고 가투에 나섰던 자들이, 전과를 당당히 말하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판에 들어선 것까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작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을 챙기겠다며 불법을 자행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꼼수란 꼼수는 다 부려놓고서 자신의 그릇된 행위로 아무도 피해보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고개를 쳐드는 세상이 과연 그들이 만들겠다던 더 나은 세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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