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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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야 하는 바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이상한 내용을 가르치거나 심지어 가르쳐서는 안 될 내용을 강요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비난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다.
경찰이 버젓이 범죄행위를 인지하고서도 그것을 눈감아주거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게 되면 그 역시 비난을 넘어서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다.
대한민국의 형법에는 버젓이 '직무유기죄'라는 것이 있다.
직무유기죄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형법 122조에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법대로라면, 그리고 상식대로라면 경찰이나 검찰, 혹은 법원에서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인데, 이게 참 애매모호한 것이 이 죄로 인해 처벌받은 공무원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본래 형법 122조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들을 찾아보면 이 죄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의미 그대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직무수행을 거부한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는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를 불문한다. 직무를 유기한다는 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의식적으로 직무를 포기하거나 직무 또는 직장을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태만·분망(奔忙)·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나 형식적으로 또는 소홀하게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대법원 판례 97도 675).
그래서 이 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칼을 들고 선량한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을 막고 체포해야 하는데 자기도 사람이라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던 경찰들이 징계를 받고서도 버젓이 그것이 너무 과한 징계라며 행정소송을 거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김철 씨는 내내 자신이 술을 먹고 울컥해서 경찰에서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건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해서 눈물로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물론 그가 후회하는 것은 그의 행동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전반적인 부정이 아닌 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짊어져야만 했던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세월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정작 자신의 진급이나 승진을 위해 애꿎은 시민을 졸지에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려는 행동을 벌인 경찰은 어떠한 죄로도 처벌받지 않았다. 공판검사랍시고 아직 훌륭한 법조인이 되려면 한참의 수련이 필요했던 그들이 남발한 위증죄 기소에 대한 무책임함에 대해서 역시 검찰에서는 물론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너무도 가벼웠던 그 존재감 떨어지는 행위를 탓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대단하다는 대법원의 대법관들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3 심제의 의미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며 위증죄에 대해서 확정해 놓고서는 자신들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그저 법리적인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만 본다면서 자신들과 선후배로 엮인 전관들과 술자리에서 논의된 사안에 대해서만 자세히 눈길을 주는 행태는 이제까지도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부분은 더 공고해져 가는 것만 같다.
이번 건을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 그나마 잘못 돌아갈뻔한 일을 마지막에 선회하도록 만드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힘을 쏟았던 경우처럼, 재심과 관련된 사건이나 몇몇 묻히거나 잘못 돌아가는 것을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 바로 잡는 경우가 아주 가끔이지만 있기는 하다.
내가 아쉬우면서도 쪽팔린 것은 이제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인터넷 매체들까지 합치면 길에 차이는 것이 기레기들이고 피디이고 방송인이며 언론인들인데 그들이 자신의 제 역할만 하더라도 세상에 잘못 돌아가는 일을 알리고 술자리에서 형님동생하며 자신들의 콘체른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착각하는 법비들에서부터 그들을 보좌하며 저 밑에서 소시민을 빙자하며 언제든 기회만 온다면 그렇게 누리며 살고 싶어 하는 이율배반적인 썩은 자들의 민낯을 감시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바로 그 점이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남길 대작을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한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냄비처럼 달궈지면 뻔한 내용을 가지고 몇 군데씩이나 되는 방송사나 언론사에서 그것을 재탕삼탕 해가면서 시청률이 왜 안 나오나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발에 채일정도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김철 씨가 겪은 이런 억울한 사건들을 보도하고 취재한다면 어떤 판사나 검사도 함부로 그런 짓을 대놓고 저지르지는 못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너무도 쪽팔리고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
수십 년 전 자신의 남편이 겪은 황당한 형사사건을 계기로 박 완서 선생은 경찰이나 검찰, 법원,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법비들의 쓰레기 세상을 단편 하나에 알알이 박아두었다. 박 완서 선생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작품이 중산층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는 자들의 불편한 민낯에 대해서 여지없이 발가벗기는 온유한 듯 하지만 정작 신랄하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개성을 완성시킨 것이 아마도 그런 불편한 현실에서의 경험을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공유하고자 했던, 깨어있는 자로서의 글쓰기 방식이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너무도 슬프고도 가슴아린 사실은, 그녀가 그 작품을 쓰던 그 시기의 썩어 문드러진 작자들의 민낯이 결코 깨끗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9년 그 초여름에 일을 당하고 2019년 대법원의 무죄 선고를 확정받기까지 10여 년에 걸친 김철 씨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2019년을 지나 2023년 이 여름날까지도 법비들을 비롯하여 자기 일을 하지 않고 범죄현장에서 직장인이라고 외치며 도망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경찰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더 좀먹고 썩어 들어갔으면 갔지 결코 조금도 깨끗해지거나 진화하거나 발전한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박 완서 선생의 시퍼렇게 날이 선 풍자가 향한 끝이 정치인이나 국회의원 따위의 썩어 고인 윗물이 아닌 자칭 자신들은 중산층 소시민이고 양심적이며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에 가깝다며 자식들의 이익에 위배되면 언제든 그 커다란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에 다르지 않은 자들에게 향해 있음이 나에게는 더욱 진한 단말마 외침으로 울려온다.
사회가 썩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 짧은 단 시간의 과정만으로 그리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윗에서 거들먹거리며 대놓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시키겠다고 해 먹는 자들에 의해서만 사회가 좀먹어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사회가 좀먹고 썩어가는 데에 일조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넓게 퍼져 우리 곁에서 우리 이웃이고 친구를 자청하며 선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두꺼운 가면 안으로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민낯을 갖춘 자들에 의해서 도태되고 퇴화하며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김철 씨의 사건이 10여 년간 지속되면서 경찰, 검찰, 법원, 하다못해 방송에서조차 그 어느 누구도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분명히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눈감고 귀 막고 내 일이 아니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이가 없었다.
이 모든 전말을 읽고 들은 이들이라면 깜찍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그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겠거니 하며 지나쳐버렸다고 무심하게 말해버리면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무서움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무원이, 자신에게 자신의 조직에, 자신의 직위에 '감히'라는 결코 가져서는 안 될 마음으로 공권력을 자신의 고유권한인 듯 휘두르며 '괘씸죄'라는 것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고 해서는 안될 일일지에 대해서 창피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그뿐이다.
그뿐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넘기는 당신 역시 형법상 규정된 공무원으로서가 아닌 상식에서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직무유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정의로운 경찰이나 검사, 판사를 만나보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