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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45

일본 언론 사회부 기자를 만나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36


이제 블러핑이 아닌, 정말로 언론을, 일본인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그 매스컴을 직접 찾을 순간이 왔다고 동민은 생각했다. 처음 NHK 기자들을 이끌고 왔노라고 총장과 부학장을 다잡기 위해 블러핑 할 때 느낀 것이긴 하지만 매스컴에 대한 반응은 자신들이 악행을 하고 있다는 소심한 일본 악인들에게는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증거도 모두 가지고 있었고 부당한 학교 측의 행위에 대해서 이미 학교 측도 묵인하고 있는 터라 이제 거칠 것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얼굴도 이 일본 대륙에 팔릴 것이라는 위험부담은 스스로 감수해야만 하는 필수사안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찾아갔던 아사히 신문사의 그 지역 지사에서 동민은 매스컴을 끌어들이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체감해야만 했다. 지역신문이 가장 영향력이 빠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지방 국립대학에서 20여 년 이상 버텨온 간부급 교수들이 지역에서 인맥을 촘촘히 형성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그나마 일본 현 사회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가지고, 냉정하게 보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찾은 것이 아사히 신문이었고 나름 그 역할을 하기엔 적합하다고 판단에서였다.


지사라고는 했지만 제법 널찍한 로비의 경비실에서 사회부를 찾아왔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동민의 예상 시나리오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들이 여기저기에서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 사회부를 찾는다는 동민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데스크의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방이 상당히 건조한, 기계적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기사제보를 하려고 왔습니다만···사회부십니까?”

“아니요. 저희는 사회부에서 직접 기사제보를 받지 않습니다. 저는 홍보부 직원입니다. 만약 기사 제보를 하시려면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사회부에서 보고 판단할 것입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겁니까?”

“일단 그렇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릴까요?”

“됐습니다.”


모든 매스컴이 같은 반응이라면 승산이 없었다. 큰 맘을 먹고 가장 큰 건물에 자리 잡고 있던 NHK 보도국을 들어섰다. 역시나 홍보부 직원이라는 명함을 내미는 남자 직원이 먼저 데스크로 나왔다. 그렇다고 그대로 빈손으로 아무런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국립대학의 교수에 대한 비리제보입니다. 사회부의 데스크를 직접 만나게 해 주십시오.”


단호한 동민의 표정에 홍보부 직원이 다시 사회부로 전화를 넣는 듯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전화를 끊고 그가 동민에게 사회부의 데스크는 아니지만 기자라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다시 1분쯤 지났을까. 누가 봐도 사회부 기자로 보이는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먼저 동민을 알아보고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다케나카라고 합니다. 국립대학의 비리에 대한 제보를 하신다,라고···”

“예.”

“그럼 회의실로 가서 얘기를 천천히 들어보기로 할까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그리 넓은 것은 아니었지만,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회의용 탁자가 이전에 회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잘 치우지 않은 탓인지 산만하게 비대칭 모양으로 퍼져있었다.


“중국어 전공 연구실에 중국인이 유학을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선을 제압하는 듯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동민이 질문의 활시위를 당겼다. 그가 어떤 기자인지 의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네? 그런 일이 있습니까?”


예상했던 대로 학교, 그것도 대학, 아니, 그 지역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구 제국대학에서는 당연하다고 벌어지는 일이 외부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쉽사리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중국 여학생이 자신의 몸을 무기로 교수들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면서 취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유학비자를 이용해 장학금을 청구하는 등 학교에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런 행태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네?”


놀란 다케나카는 계속해서 동민의 충격적인 발언들을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하며 메모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고 동민은 약간의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정말로 사람들이 놀랄만한 일은 아직 설명을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국인이 일본의 구 제국대학에 있는 중국문화론 연구실에 입학해서 논문을 중국어로 써서 학위를 취득하는 일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지방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는 마치 아침 방송 방청객 알바 아줌마마냥 눈이 똥그래지며 반응해 보였다.


“요즘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터진 중국 농약만두 건으로 일본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중국을 힐난하는 분위기로 알고 있는데 이런 뉴스들이 터지면 국민여론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네요. 막무가내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기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박상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충격인데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동민이 그간 겪은 말도 안 되는 사건까지 포함하여 중간 휴식조차 없이 장장 3시간의 인터뷰를 녹음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정도면 특종보도가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한번 밀어붙여보겠습니다. 와키타 부학장이든 총장이든 쳐들어가서 협박인터뷰라도 하면 그쪽에서도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제가 기자로서 박상을 전격적으로 돕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악수라도 힘차게 한번 할까요?”


다케나카와의 인터뷰는 그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다소나마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3시간 동안의 열변에 기운이 없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개운했다. 그간의 자료들을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다케나카의 말을 동민은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고 다케나카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어렵사리 그에게 전화를 건 동민은 다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공기를 공유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박입니다. 지난번 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아,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사건들도 많이 취재가 밀려있고 해서 지난번에 부학장 와키타를 찾아갔습니다만, 자리에 없어서 못 만났습니다. 요즘 제가 바빠서 정신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이 사건에만 매달릴 수도 없고 해서···”


그렇게 다케나카와의 연락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데스크에게라도 듣고 싶다고 했을 때 다케나카는 마침 기숙사 근처라면서 동민을 카페로 불러내 진지한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잃지 않고 이렇게 설명했다.

"박상.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네?"

"사토 선생의 부인은 이미 이 지역에서 정치를 해온 지 오래된 인물이에요. 제가 이 촌까지 떨려 나오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곳은 유배지 같은 촌이었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처음엔..."

"지역의 유지에 해당하는, 그 할아버지가 정부요직의 검도 선생이었던 사람, 원래 명문 동경대 출신은 아니지만 나중에 편입을 통해 기어코 그 명패를 달고 구 제국대학의 교수가 된 사람, 그 지역에서 경찰들의 검도 사범으로 지역 유지들에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람, 그 영향력으로 초등학교 선생이나 하던 아내를 시의원으로 만들고 이제 정당의 공천을 노리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학생, 그것도 외국인 유학생, 게다가 우리가 점령했던 한국이라는 땅에서 온 사람이라면, 이건 이미 싸우기도 전에 승부는 결정 나 있는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떻게 사회부 기자가..."

"제가 정의 나부랭이 어쩌고 떠들다가 여기까지 날려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저도 쪽팔리고 쪽팔려서 그래서 연락을 못 드리고 있었던 겁니다. 도쿄가 아니라고 일본의 중심이 아니라고 이 촌에서는 뭔가 다를 거라고 저나 박상은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현실은 냉혹한 겁니다. 제가 이렇게 구차하게 꺾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박상에게 얼마나 좌절감을 줄지 알기 때문에 피했던 겁니다.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다못해 연구비 횡령 같은 명백한 건 하나라도 터트려보려고 노력했는데 제 캐리어까지 다 밟아 끊어버리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을 다수의 다양한 출처도 모를 곳으로부터까지 받았습니다. 저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그렇게 모쪼록 이해해 주길,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주문했던 커피에서는 더 이상 뜨거운 김이 올라오지 않는 듯 눈앞이 그저 뿌옇게만 보였다.


다음 날,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느니만 낫겠다는 생각에, 가장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었던 지역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를 만나서 제보를 하고 힘차게 시작을 했지만 그에게서 온 답변은 이메일 한 통뿐이었다.


박 동민님에게


 연락이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 신문사의 시노하라입니다.

대학 측에 공식적으로 이번 건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하였습니다.

대학으로부터 회답이 있었습니다만, 유감스럽지만 ‘역시나’ 착실한 회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에 대해, ‘조사 중이기 때문에, 회답은 삼간다’라고 하는 짧은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납득할만한 것은 아닙니다만, 본래 폐쇄적인 대학으로부터 현 단계에서 그 이상의 답변을 얻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조사의 결과가 나왔을 경우, 박상 본인에게 그 결과가 통지됩니다.

그 내용으로 나름대로 판단할 수 없을까요?


진행 중이라고 하므로, 현 단계로서 취재는 한계입니다.

단지, 대학 측은 우리가 취재하고 있다는 움직임을 감지하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상한 조사 결과를 내어

박상을 곤란하게 할 가능성은 적어졌다고 봅니다.

조사 결과는 가능한 한 빨리 낸다고 하면서, 박상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런저런 조율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중에 대학 측으로부터 연락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노하라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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