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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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교수랍시고 가족들과 알차게 일본을 만끽하며 맞이하게 된 겨울방학을 앞둔 이틀 전의 일이었다.
4월에 다시 돌아갈 기약을 하고 있다는 동민의 마지막 연락을 받으며 나는 입맛이 썼다. 내가 직접 소매를 걷고나서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관계도 아닌 것이 분하고 답답했지만 그렇게까지 막 되먹은 행동을 한 사토 렌코쿠라는 교수를 포함한 다른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응징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이 쓴 맛을 자아낸 것이었다.
동민도 그 나름대로, 자신의 인맥을 통해 한국에 나와 있는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과 연락을 취해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국 특파원들에게도 연락을 취해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PD수첩’이나 ‘뉴스추적’등과도 교섭중이라고 했다. 자신이 당한 일을 일본의 어느 곳에선가 더욱 심한 형태로 당한 한국 유학생들이 분명히 더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 국립대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으로서 동민에게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조언할 수 없는 무력한 나의 모습과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정식으로 대학 측에게 항의를 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생하고 있는 학생에게 한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뭔가 대처를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행동이겠으나, 그들의 얽히고설킨 지저분하고 끈쩍해서 먼지와 오물이 잔뜩 묻어난 이야기들을 자료로 확인하면서 그것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인지 한국에서 벌어진 일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문득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금도 현해탄 너머 어디선가는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억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저마다 분투하는 것을 보면서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한국민들이 겪었을 억울함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4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전쟁터로 혼자서 들어가게 될 동민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결코 불의에 타협하거나 쓰러지지 말고 그들에게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라고, 절대 지지치 말고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뿐이었다.
이 끝나지 않은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는 현해탄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 있다.
그가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이라면서 전화를 걸어 내게 다시한번 자기 의지를 또박또박 전달해왔다.
“이 모든 과정을 글로 남겼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보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반드시 이겨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켠에서 화악하며 뜨거운 불기운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열기를 느꼈다.
벌써 이 글을 쓴 지가 15년이 훌쩍 넘어 있더군요.
한국을 떠나 이 곳에 와서 워밍업겸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수정하면서 오히려 원고 분량이 늘어버려 장편소설 2권 분량을 꽉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고구마 몇 개나 연속으로 먹이면서 사이다는 고사하고 물 한 잔주지 못하는 우울한 글이 이제 겨우 매듭을 짓습니다.
그간 재미도 없는 글을 꾸준히 읽어내려가주셨던 독자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명색이 인문교양 크리에이터면서 왜 소설같은 걸(?) 연재하냐고 묻는 듣보잡이 없길 바랍니다.
1700여편이 넘는 글을 속에, 인문교양서부터 에세이, 동화, 그림책, 영화평론, 단편소설, 중편소설, 심리분석, 악마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차곡차곡 먼지와 함께 쌓여 있음을 확인하고나서 질문, 던지시길.
그러고보니 매일같이 연재한 장편소설 2권의 분량만큼이나 이 곳에 온 날들도 벌써 두 달을 넘어섰군요.
본래의 일정을 소화하는 틈틈이 호된 감기를 두 번이나 앓으면서도 펑크는 내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음엔 어떤 글을 올릴 지 조금 쉬어갈지 아직 정하진 않았습니다.
15년이나 지난 현해탄 넘어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정리하면서....
과연 그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우리나라는...
우리는...
그때의 그들과 다른지...
가만히 눈감고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생각에서 그치지 말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갖자고, 그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발검무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