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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외팔목(盤外八目)

당신의 인생에 신박한 훈수 한 점을 더한다면...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053


이번에 등장한 사자성어는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진짜(?) 바둑 격언입니다. ‘반외팔목(盤外八目)’이란,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바둑의 수준이 여덟 집 정도는 유리할 정도의 수준으로 높다는 뜻입니다. 바둑판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인 눈으로 승부를 관조하게 되면 평상시 직접 승부를 하는 입장보다 그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데요.


바둑을 한 번도 두어보지 못한 초보나 이제 막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하수에게는 와닿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조금 바둑의 재미를 느끼며 프로의 바둑이나 특히 주변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두는 바둑을 관전해 본 사람이라면 바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는 격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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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바둑을 직접 둘 때와 옆에서 관전할 때의 수준이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일까요?


바둑판 앞에 있는 사람은 감정이나 승부욕에 휩쓸려 수의 변화를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실제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에 대해 모두가 공감을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합니다. 바둑 둘 때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수가 바둑이 끝난 다음 복기할 때는 쉽게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명료합니다. 이미 승패가 내 손을 떠나 내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수들이라는 프로 바둑기사들이 두는 바둑을 옆에서 구경하는 하수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의 훈수를 떠들어댈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여유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프로도 승부를 위해 반상(盤上) 앞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승부를 앞에 두고 있기에 긴장해서라는 정도의 설명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실전 승부에서 인간의 마음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불길처럼 일어나 자기 스스로가 오롯이 승부에 집중하며 냉정한 평상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감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평정을 잃고는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다는 롯데타워에 올라가면 두바이나 다른 나라의 높은 건물들의 시그니처처럼 바닥을 투명하게 해서 아래 까마득한 아래가 그대로 보이도록 설계해 두어 사람들이 그 체험을 하게 합니다. 분명히 그 높은 곳의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는 설계를 하였고 몇 백명의 사람이 올라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만든 바닥임에도 시각에 의해 저 밑의 사람이 개미보다 작게 보이는 높이를 인지하는 순간, 겁이 나서 그 위로 올라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려 털썩 주저앉는 사람들을 적잖이 보게 됩니다.


체조에 흔히 등장하는 평균대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평균대의 폭만큼 일반 도로에 페인트를 그려놓고 그 페인트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하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그 폭 사이를 걷는 일이 저 높은 롯데타워도 아닌, 허리 높이의 평균대만 되더라도 뒤뚱거리며 균형을 잃고 떨어져 버리기 일쑤이고 그 위에 올라서서 앞으로 걸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이 주는 방해요소이고 그로 인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평상시 혼자서 책을 보면서 공부하던 바둑과 상대방이 앞에 있어 승부를 겨루는 바둑이 크게 다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승부에 들어가게 되면 그 떨리는 마음을 쉽사리 안정시키지 못하고 내 돌이 하나만 잡히더라도 그 평정심을 잃고 상대에게 복수하겠다고 마구 달려들다가 바둑을 망쳐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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