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어떤 결과를 도출하기까지는 어느 한 사람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완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오십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얻은 이들의 결과는 결코 그들의 피와 땀만으로 일군 것이 아니다.
그들의 피와 땀은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요소이자 조건인 것이고, 그들을 이끌어준 스승, 코치, 뒤에서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가족들에서 시작해서,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 그들이 준비를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해 주는 스폰서의 노력 등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사소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수많은 요소들이 결합하여 겨우 그 성과를 이뤄낸다. 거기에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운이라는 요소도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좀먹고 썩어 들어가는 것 역시, 어느 몰지각한 정치인이나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리더 하나 때문에 그리 쉽게 한 사회나 국가, 혹은 조직이 곪아터져버리지는 않는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공식이 적용된다.
내가 얼마 전 사례로 소개했던 외교부 산하 재단의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기사가 지난 금요일 또 한 건 터져 나왔다. 맨 처음 그 재단의 변명을 그대로 실어주는 찌라시 역할을 했던 인터넷 기사의 후속보도였다.
지난 6월 말 방송사 단독 보도가 자료를 제공받은 대로 공개하는 바람에 정확한 수치가 아니었다는 반론이 나오자 정확하게 다시 중복되는 이들의 자료를 정리해서 퍼센티지로 나눴더니, 무려 40%에 육박하는 채용비리가 버젓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위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문제의 파견 기간 자료가 2018년부터 현재까지라고 하자, (실제로는 2019년부터 3년치자료인데 기자가 그렇게 써버렸다) 해당 기간이 문재인 정권의 집권기였다며 문재인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썩은 부분이라고 바람을 잡는 정신 나간 키보드 워리어의 멘트에 실소가 튀어나왔다.
해당 비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자료를 분석해 주고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 기사에 나온 기간만으로 심지어 '해당 재단이 제주도에 있던데 빨갱이 냄새가 난다'는 식의 멘트로 바람을 잡는 무뇌아적인 발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조만간 방송사를 통해 그 전말이 공개되긴 하겠지만, 해당 채용비리에 대해서는 이미 1년 전 여름 외교부 본부의 감사실과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증거자료와 함께 감사요청이 제기된 바 있다.
1년 전이라 함은 댓글 바람잡이들이 그렇게 옹립하고 추앙해 마지않는 현 정권이 들어선 지 한참이 지난 시기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내가 우리 동네 지역구 의원을 겸직하고 있다고 하여 직접 그 의원실에 찾아가 직보를 하도록 하게 한 외교부 장관이 빨간당 다선 의원이다. 외교부 수장이면서 해당 증거자료를 모두 제공받고서도 진실을 은폐하고 언론에 기사가 터지는지를 4개월이나 지켜보고 있다가 이 사실을 덮은 장본인이 외교부 감사실과 장관이라는 점은 전 정권을 씹고 싶은 빨간당 바람잽이들의 타케팅이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 엉성한 바람잡이들의 정치적 해석대로, 이 십수년에 걸친 외교부 자체의 썩어빠진 비리가, 문재인 정권하에서 벌어진 채용비리라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바로 곁에서 듣고서도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충성심을 과다하게 보인 바로 그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외교부에서 과연 그 비리를 덮으려고 그리 안간힘을 섰을까? 전 정권의 색깔이 남아있다며 국민권익위원장을 내치겠다고 법리고 뭐고 뭉개는 현 정권이 이걸 물어뜯지 않고 덮었을까?
현재 증거가 모두 만천하에 공개되어 일반인이 보더라도 말도 안 된다고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버젓이 '우리가 4개월 동안 특별감사를 했지만 비리나 부정은 없었다'라고 하는 대한민국 외교부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처음 단독보도를 하겠다고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던 기자는 분석과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놀라움에 혀를 차며 내게 물었더랬다.
"아니! 어떻게 한 두 명도 아니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퍼센티지를 이런 무자격자들로 채울 수 있죠? 그리고 이제까지 그 조직은 물론이고 외교부 감사까지 했다면서 어느 누구도 이걸 문제라고 바로잡지 않을 수가 있죠?"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보다 훨씬 더 살았다는 나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렇게 버젓이 증거가 다 터져 나왔는데도, 그 일이 어느 한 개인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몇몇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져 왔음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경찰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음에도 그들은 버젓이 뻔뻔한 반박보도자료까지 내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최대한 물밑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무마할지에 대해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못을 했을 때 가장 현명하고도 올바른 대처는 그 잘못을 인지하는 그 순간, 잘못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고 손해입은 상대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처럼 거대해서 수습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일 때는 최대한 빨리 썩은 곳을 도려내고 모든 것을 스톱하고서 원점에서부터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작년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아픈 엄마가 혼자서 주차장에 가게 할 수 없다며 따라나섰던 중학생 아들의 황망한 죽음을 겪고서도 핼러윈이라고 떠들며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명을 달리하였고, 충북 오송에서는 지하차도에서 또 애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태원 참사의 피의자라고 적시되고 기소된 구청장, 경찰서장 등등이 모두 보석으로 풀려나오고 공황장애니 어쩌니 핑계를 댔던 구청장이 버젓이 월급 챙기며 업무를 보겠다고 나오는 블랙코미디가 이 나라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경찰이, 구청이, 소방관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문두에 설명했던 것처럼 그 큰 참사는 어느 한 두 사람의 몰지각함만으로 그리 간단히 한 방에 터져버리지 않는다.
비가 그리 많이 와서 오송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올 것을 알았으면서 왜 관공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느냐는 지적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그 지적에 대고, 지난 몇 년간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오거나 그런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헛소리를 해대는 관공서 관계자의 망발에 분노가 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태원 참사 때에도 확인한 바 있듯이, 경찰도 뭣도 아닌 한 시민이 사람들이 깔려 죽어나가기 직전 소리를 지르며 좌우 통제를 외쳤고, 참사가 조금 더 빨리 일어날 뻔했던 그 순간을 그 몇몇 사람의 양식이, 외침이 잠시였지만 소통을 원활하게 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가 그렇게 많이 오면 지하차도가 잠길 수 있다는 사실을 관공서의 있는 이들만 인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차기 전의 그 위험한 상황을 인지한 누군가가 지하차도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차를 세우고 뒤에 차들이 들어갈 수 없게 막고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들을 대비하도록 했다면, 모래로 물을 막던 이들이 도저히 모래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지하차도 입구로 달려가 그 앞에 팔을 벌려 차들을 막아 세우고 통제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이들이 황망하게 비명횡사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터지고, 누군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면 감정적으로 경도되고 누구든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그 책임을 지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당연한 심리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전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반성하고 공부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지능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능과 경험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그것을 바로잡는 것에 쓰지 아니하고, 잘못을 감추고 변명하고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은폐하고서 그것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려는 것은 결국 더 큰 거짓말을 양산하고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점을 그들이 과연 머리가 모자라서 모를까?
당신은 제삼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언제든 당신은 당사자이고, 지금도 당신은 이 모든 일에 있어 관련 당사자가 맞다. 그저 당신이 당신의 양심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제삼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뿐, 이 사회가 조금씩 좀먹는데 당신이 일조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