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자신의 목숨을 끊었던 젊은 학생의 억울한 죽음이 며칠 전 다시 뉴스에서 회자된 부산교육청의 채용비리 사건도 ‘역시나’ 채용비리(?)였다. 강원랜드가 그러했고, KT가 그러했지만, 채용비리는 자격이 안 되는 노력도 하지 않은 자가 자격이 되는 노력한 자의 자리를 박탈하고 권력이나 인맥 등의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꿰차는 범죄였다.
법꾸라지들의 말장난처럼 구체적 청탁을 받지 않았다거나 대가성이 입증이 되지 않았다면서 힘없는(?) 청탁을 받아 처리한 자들은 실형을 받는데 더 권력을 가지고 청탁했던 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내가 그 대단한 채용비리라는 범죄의 내부고발자가 될 줄은 어느 한 때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돈을 펑펑 써대는 국가 기관의 채용 심사과정에 관여하게 되면서 말로만 듣던 채용비리라는 복마전의 뚜껑을 나는 직접 열어 확인하게 되었다.
이른바 한국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어) 학 교수를 국민의 혈세로 파견하는 사업에서 공고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이 채용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학과가 없는 세계 각지 대학에 학과 설립을 촉진하기 위해, 혹은 한국학 강의를 할 교수가 없는 세계 각지 대학에 국민의 혈세로 전액을 지원하여 교수를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의문은 모집공고의 요상한(?) 내용에서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사가 발에 채이고 백수 박사가 널린 전 세계적인 상황에서 교수 채용을 위한 지원사업이라면 선발 자격조건은 당연히 박사학위 소지자여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적인 대학의 교수 채용 풍토상, 석사 학위자는 결국 파견되어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그곳에서 정식 교수로 채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해당 자격을 갖춘 한국의 수많은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지원을 하게 되면 석사학위자와 객관적으로 경쟁이 되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런데, 모집공고에 해당 대학에서 석사 이상을 요구했다는 이상한 조건을 보고 고개가 갸웃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민의 혈세로 비행기 삯에서 하다못해 의료보험까지 지원하는 사업에 교수를 보내준다고 하는데, 석사학위자부터 받겠다고 요청할 대학이 전 세계 도대체 어디 있는가 하는 합리적인 의문이 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석사학위가 최소 조건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박사학위의 경력 지원자들이 많으니 그 이상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 여기고 결과를 예의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상한 일은 터지고 말았다. 석사학위자로 표기된 이들이 최종 면접에 아주 당당히(?) 그 모습을 올렸고, 그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공통점이란, 그들이 이미 해당 나라의 대학에서 보따리 장사(시간강사)로 소위 터를 닦아놓은 인물들이었다. 조금 선발구조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그 의문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졌다. 그들은 박사학위를 없거나 해당 전공을 공부하지 않고서 해당 나라에 갔다가 한국인이라는 기회를 틈타 한국어 강의를 한답시고 터를 잡고서 보따리 장사가 아닌 명백한 ‘교수’라는 신분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심지어 기존에 받던 강사료와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한국의 눈먼 돈’을 노리게 된 것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본래대로라면, 해당 국가지원사업은 한국학 교수를 고용하거나 한국학과를 설립하도록 유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즉, 본래 그쪽에서 어떤 보따리 장사를 썼던 상관없이 그들의 신분세탁이나 월급을 채워주기 위한 별도의 지원사업은 작지만 따로 운영 중이었다. 즉, 그들의 보따리 알바와는 달리 전문적인 한국학 교수를 파견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본래 이 사업의 목적이었으므로 그녀들과는 별개의 한국에서 선발된 전문적인 경력을 갖춘 교수가 파견되는 것이 당연해야만 했다.
그러한 사실을, 한 해에 100% 국민혈세로 지원되는, 2000억 이상의 예산을 펑펑 써대는 국가기관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현지 대학들에게서 지원을 받아 실적을 늘리려는 얼빠진 공무원들의 뻔한 의도까지는 알겠으나, 현지 공관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 현지의 그녀들(남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긴 했다)은 자신들이 어차피 보따리 장사를 하는 현지 대학에서,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의 명의로 한국의 눈먼 돈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고 자발적으로 버젓이(?) 해당 교수직에 지원을 하고 최종면접을 거쳐 당당히(?) 석사학위로 그 자리를 꿰찼다.
대학교수들을 외부 심사위원으로 초빙하여 공명정대하게(?) 치르는 ‘척’하는 심사과정에서 그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결코 빈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면접을 원활하게 한다는 목적하게 면접에 투입(?)된 기관의 내부 부장급 이상되는 인물들이 면접이 이루어지기 전이나 심지어 현장에서 흐름을 유도(?)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해당 지역의 언어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들어온 경력교수에게 내부 인물이 다른 면접위원보다 앞서 ‘어차피 한국어로 강의해도 아무런 문제없는데 그 나라 말로 강의하는 게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사인을 노골적으로 주다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전공도 유관하지 않은 석사 출신의 인물을 뽑기 위해서 다른 박사학위 경력 면접자에게 ‘해당 나라에서 유학하거나 강의를 한 경험이 전혀 없으시네요.’라고 말하며 전혀 모순되는 트집을 잡아 선발하지 않도록 낙인을 찍는 방식을 스스럼없이 자행(?)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수년간을 그런 식의 행동을 자행한 기관의 전횡을 알게 된 입장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나중에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국가기관이랍시고 버젓이 기관 내 감사실이 있고, 감사실장이 있으니 그녀에게 직접 독대하여 해당 문제를 직접 제기하였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외부에 고발 조치하고 싶지 않으니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하루빨리 개선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라’고.
이미 십수년을 해당 기관에서 잔뼈가 굵어가며 감사실장까지 올라간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차분한 척 말했다.
“뭐 잘못된 것이 있어야 바로잡죠? 아시다시피 저희는 외부 면접위원을 통해 선발을 했기 때문에 내부에서 조종하거나 해서 문제 될 것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하시는 건, 해당 대학들이 그런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에 저희는 그들의 요구와 입맛에 맞춰 선발해주었을 뿐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외부 심사위원을 초빙했다는 둥 어쩌고 하지만, 결국 자격요건에 부합하지 않거나 부족한 이들의 서류전형은 해당 기관과 부서의 책임이라는 것을 그녀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되물었다.
“기본 지원자격에 4년제졸 이상이라고 적었는데 2년제졸업자가 최종면접까지 오르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버젓이 선발까지 된다면 그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듯 대꾸했다.
“요즘은 2년제 4년제 같은 제한 기준을 쓰지 않습니다.”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비유한 거잖아요! 왜 딴소리를 합니까?”
내가 언성을 높여 일갈하자 그녀가 다시 당황하지 않은 척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기본 자격조건은 그냥 여러 조건 중에 하나이고 대학에서 ‘해당 나라식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되어 있으니 그 조건에 맞게 그쪽에서 강의하던 분을 뽑은 것뿐입니다.”
“기본 자격조건은 말 그대로 ‘기본’을 통과해야 하는 거고, 그 대학에서 보내왔다는 그 해괴망측한 ‘해당 나라식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건 특수어도 아니고 미국 영어도 아닌, 영국 영어도 아닌 해당 나라식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유치하고 티가 나지만, 결정적으로 그건 우대조건이잖아요. 기본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으면서 우대조건이 절대적인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변명하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논리에서 몰린 감사실장이라는 그녀가 마지막에 한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정 그러시면, 정식으로 해당 본부 기관의 감찰실에 감사 요청을 하던 정식으로 감찰 요청을 하시지요. 그러면 되겠네요.”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믿고 있는 구석이, 수년간 벌여온 그 채용비리가 그녀 한 명이 아닌 그 조직 전체가 당연시하면서 시행(?)해왔고,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그들의 힘으로 무마하고 덮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