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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14. 2023

한국인들은 왜 폭탄주를 좋아하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41


  한국을 처음 찾아 한국문화를 접하게 된 외국 학생들은, 폭탄주 문화는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준으로 그저 그렇게 단정지어버리고 얘기하기 전에 폭탄주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인가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단정지을 것만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어요. 

              

  한국인의 폭탄주 문화를 제대로 살펴보자면, 그 기원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폭탄주는 법조계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가장 빨리 취하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소 가혹하다싶은 판결을 냉정하게 내리고 구형을 하는 등 자신이 결정한 안 좋은 일과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음날 새롭게 포맷된 정신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염원이 강해져서 업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싹 잊어버리기 위해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술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인 '망각'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입니다.


  또 다른 일설로는, 개인의 주량이나 선호도를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줄이어 마셔야 하니 군사정권에서 출발했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술 문화에 대한 강제성에 대한 것이지 폭탄주에 대한 설명으로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다양한 기원과 설에 근거하자면 한국인이 술을 마시는 목적이 술의 향이나 맛을 즐기는 데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기이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도 맥주 안에 독한 술을 집어넣고 먹는 폭탄주 문화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답니다. 대표적인 것이 ‘Boiler Maker’라고 해서 1920년대 미국 노동자들이 맥주와 값싼 독주를 섞어 마시며 유행한 술로 한국에서는 따로 ‘원자폭탄주’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 폭탄주가 나온 이유는 숙면을 위한 것과 시베리아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나왔다는 맥주와 보드카를 섞어 마셨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을 찾거나 한국인과 사업을 외국인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한국식 음주법’이라고 해서 폭탄주가 이름 높지요. 그래서 영어로도 ‘Boiler Maker’라고 부르는 대신, 폭탄주를 직역한 ‘Bomb Shot’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동양에서 폭탄주의 유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술의 향이 강하고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주도(酒道)라고 생각하는 중국의 경우도 폭탄주 문화는 없고, 일본의 청주(淸酒)는 역시 다른 술과 섞으면 맛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술맛에 집착하는 일본인에게도 폭탄주는 문화는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굳이 한국 폭탄주의 기원을 찾자면 18세기에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는 ‘혼돈주’도 역사적 기록에는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왜 한국인들에게 폭탄주 문화가 이렇게 깊게 자리 잡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인데요.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은 경쟁의식과 평등에 대한 욕구가 다른 국가의 사람들보다 높다고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같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자신과는 달리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서로 술에 취해서 먼저 헤롱거리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문제가 되고 같이 헤롱거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급하게 술을 권하고 강권하여 빨리 취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어느 선을 넘으면서 폭음으로 달리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앞서 한국인들이 술맛에 대한 부분을 포기했다고 표현했는데, 그 의견에 반하여, 오히려 소주만 마시는 것이 부담스럽고 맛을 훨씬 부드럽게 하기 위해 소맥이 나왔다는 일설도 있습니다. 비율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소맥이 그냥 소주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이지요. (술술 잘 넘어가라고 또다른 목적 해명설도 있긴 하지만요.^^;)

  사실 폭탄주의 알코올 함량도, 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엉터리 상식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데요. 

  예전에 한국의 모 방송에서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는 20%’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받아쓰기 기사들이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가 보다 하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떤 술 전문가도 “40% 짜리 위스키와 4~5%의 맥주를 섞어 먹으면 19%쯤의 알코올 함량이 되니 거의 소주(옛날에는 소주 하면 25%였지만, 요사이는 21%짜리가 대부분이지요)를 맥주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셈”이라는 글까지 쓴 것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석은 명백하게 틀린 정보제공이었습니다. 

  40% 짜리 위스키와 4.5% 짜리 맥주를 섞는 건 맞지만, 들어가는 맥주의 양이 훨씬 많기 때문에 대체로 알코올 함량 11~13% 정도의 칵테일이 된다는 것이 정확한 분석입니다. 그러니까 소주처럼 독한 술을 맥주 컵에 마시는 것은 아니고, 백세주 정도의 술을 한 컵 마시는 셈이 됩니다. 특히 요사이 유행처럼 양주를 적게 타고, 또 맥주잔의 반 정도만 채우는 폭탄주의 경우, 알코올 함량 10% 미만의 술을 반 글라스 정도 마시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폭탄주를 마실 때 정말로 독주를 마신다고 너무 위축되시지 말고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지요. 물론 도수와는 상관없이 맥주의 탄산 성분이 취기를 더 빨리 오게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불렸던 삼성전자의 황모 전 사장은 언론인터뷰에서 너무도 당당히(?) “한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에 이길 수 있었던 원인으로, 팀워크를 살리는 폭탄주를 뺄 수 없다”라는 다소 황당한(?) 멘트를 시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의 평상시 술에 대한 생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즈니스 문화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영업문화의 강력함을 제대로 강조한 말이지요. 

  그의 말처럼 술을 마시면서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특수한 술자리 문화에서 폭탄주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지요. 전투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맛있게 만들어 술술 넘어가게 하려는 의도나 자주 술을 따라주고받고 하는 번거로움을 줄인다는 좋은 점도 있으니 잘 운용(?)만 한다면 외국인들도 한국인들의 틈으로 파고들어 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인처럼 지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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