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4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42
한국에는 정말 여러 가지 방이 많습니다. 노래방에서부터 찜질방, 피시방 등등. 심지어 카톡으로 단체톡을 해도 그것을 ‘단톡방’이라고 부르지요. 공간에 대해 ‘방’이라고 이름 짓는 것에 아주 익숙해있지요. 외국인들이 그 단어를 처음 듣는 경우에는, ‘방’이라는 개념이 아주 독특하게 느껴져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방’은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설명만으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방’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한참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방’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격리된 공간만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 ‘방’의 의미는 여럿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갖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공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누군가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의 ‘공동’ 혹은 ‘함께’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여럿이 있는 방의 원조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방’입니다.
사랑방이란 동네의 사회적 공간이었습니다. 한자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은 사랑은 ‘love’의 의미가 아닌 한자어 ‘舍廊’과 ‘방’이 합쳐진 말로 사랑으로 사용하는 방이라는 의미입니다. 원래 ‘舍廊’은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손님을 접대하던 곳, 즉 주인이 손님을 맞아 함께 있던 공간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친교가 이루어졌고, 좀 더 확장되면서 정보 교환이나 공유가 이루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사랑방 같은 곳에서 아는 사람끼리만 모여 개인적인 친밀감을 느끼면서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불쑥 사랑방에 등장하여 섞이는 경우는 없었다는 뜻이지요. 서양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친교라는 목적으로 가지고 파티에 참석하여 큰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사교하는 것을 한국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익숙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은 모르는 사람과 1대 1로 자연스럽게 대화하거나 사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내집단끼리만 오순도순 모여 친밀감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면식이 없는 외집단과 같이 있는 것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국인이 아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교분을 나눌만한 장소가 점차 사라지고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공간을 만들고, 혹은 그것이 상업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친밀감 있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 위해 그 장소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 ‘방’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방’이라는, 본래는 공간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한국인들에게는 정서적 안정감과 상호 간의 교감이 충만한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공간이라는 정서를 담고 있는 단어가 된 셈인 것이지요.
예컨대 찜질방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되어 버린 지 오래지요. 이 찜질방은 1990년대 초 부산에서 시작되어 급속도로 전국에 퍼졌는데 200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어 전국적으로 일반화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찜질방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의외로 아주 단순했습니다. 기존 목욕탕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아주 뜨거운 방을 접목시킨 것이 전부입니다.
본래 목욕탕의 단골이던 아줌마 부대들이 나이가 노령화되면서 특히 날이 추워지면 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눕히고 지지는(?) 문화가 집에서 연탄을 때거나 장작을 때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기 힘들면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아랫목을 마련하게 된 것이지요. 어차피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을 계속해서 끓여야 한다는 연료발생 차원의 생각이 한증막을 만드는 것에서 뜨거운 아랫목이 전체인 ‘방’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목욕탕에 온천이나 사우나의 형태는 있었지만 그 안에 있던 한증막이 자연스럽게 아랫목 문화에 더해지고, 그것이 집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현대화를 거치면서 공동의 공간이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목욕, 사우나, 한증막 등의 모든 서비스들을 받으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야 됐는데 찜질방이 나온 뒤로는 한 군데에서 이 서비스들을 다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아주 편해지게 된 것이지요. 일설에는 IMF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저렴하게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되어 이런 멀티 형의 목욕탕이 생겨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떤 유행이 발생하고 자리 잡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양한 원인과 배경들이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막상 이 찜질방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니, 혼자서 찜질방을 가는 이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가족 전체가 가거나 심지어 대낮에는 아줌마들의 모임 장소로 아주 딱인 곳이 되어 버렸지요. 목욕을 하고 운동을 하고 땀을 쭉 뺄 수 있으면서도 식사도 아무런 문제 없이 뜨끈한 방에 앉아서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생긴 것이지요. 아줌마들은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하며, 식사를 하고, 스스럼없이 화투패를 꺼내 듭니다. 젊은이들이 커플로 가서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뜨거운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빼고 함께 만화책을 보고 귤을 까먹고 식혜를 마십니다. 흡사 우리 집에서 누워서 하던 행동들을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끼리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피시방도 마찬가지지요. 컴퓨터 게임들은 점점 고사양의 컴퓨터를 요구했고 더 큰 모니터를 요구하지만 집 컴퓨터를 매번 그렇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안되던 터에, 온라인으로 서로 팀으로 편을 먹고 해야 하는 게임이 나오자 피시방은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게임을 하면서 제멋대로 떠들어도 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으로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노래방도 마찬가지지요. 술을 거나하게 먹고 그렇게 여럿이서 가정집에 들어가 그렇게 떠들고 고성방가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래서 공식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화려한 조명과 빵빵 터지는 음향에 시끄럽게 해도 괜찮은 놀이터가 된 것이지요. 지금은 조금 유행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다소 문제가 되었던 비디오방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의 ‘방’ 문화는 그렇게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동질감을 줄 수 있는 심리적 범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현화된 것으로 실제적인 방의 형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공간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고,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어쩌면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문화의 하나로 형성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