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최고의 선수가 프로 지명 3순위의 치욕을 맛보다

센터 전성시대에 슈팅가드의 전설을 새로 쓰다

by 발검무적

그의 시작은 아주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소도시인 윌밍턴에서 고등학교까지를 보냈다.

그는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 2학년이 되어 1군에 뽑히기를 기대했으나 당시 178cm의 그리 뛰어나지 않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1군 선수 선발에서 탈락했고, 코치는 201cm의 키를 가진 그의 친구를 주전으로 발탁했다.


이유?

당시 그에게 농구는 야구와 풋볼에 더해 함께 하던 그저 취미 스포츠였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했던 운동은 아버지 역시 좋아했던 야구였다.

심지어 그는 투수이자 중견수로 주목을 받던 시점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농구부의 멤버 중 가드만 8명이었고 저학년에 키 작은 그는 당연히 선발 멤버 축에도 못 끼었다.

그렇게 1군에서 떨어지던 날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자존심에 굉장한 상처를 입고, 상당한 좌절감과 질투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이후 스타가 된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당시 '집에 가자마자 통곡을 했다.'라고 한다.


다음날 그는 바로 풋볼을 그만두고 야구도 1년만 더 하다 그만두면서 농구에 올인한다.

농구에 올인하기 시작한 이후 2군 소속이면서도 1군 연습까지 뛰었으며, 1군에 올라간 이후에도 1군/2군 연습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독하게 연습했다고 한다.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으로 넘어가는 여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그의 키가 무려 6인치(약 15cm)나 자란 것이다.

193cm의 장신이 되고 피나는 훈련으로 뛰어난 실력자가 된 그는 바로 1군에 발탁된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35점을 포함해 3학년 시즌 동안 25.4점 12 리바운드 5.3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어 4학년 시즌에 무려 26.8점 11.6 리바운드 10.1 어시스트로 평균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모교를 노스캐롤라이나 주 랭킹 1위로 이끈다.

미국을 넘어 농구를 대표하는 전설이자, 야구선수였고, 현재는 現 NBA 팀 샬럿 호네츠와 NBA G리그 그린즈브로 스웜의 구단주 겸 사업가인, 마이클 제프리 조던(Michael Jeffrey Jordan)의 이야기이다.


NBA를 포함한 비롯하여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독보적인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에 선정된 선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중 한 명이다.

조던은 농구를 넘어 1980년대와 1990년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대중음악계의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미국의 인종차별 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는 1군에 떨어지고 눈물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했다.

그의 분노와 노력만큼이나 1년이 채 되지 않아 178센티에서 15센티나 자라는 반전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있는 스포츠계의 전설인 된 조던이 이후에 무슨 실패나 좌절이 있었느냐고?

먼저 그의 말을 인용한다.

"9000번 이상 슛을 놓치고
300번 패배를 하고
승패를 결정한 슛을 26번이나 놓쳤다."

모교를 노스캐롤라이나 주 1위로 만들고서도 그는 주 챔피언쉽 결승전에서 아쉽게 뉴 하노버 고등학교에 56대 52로 패하고 만다.


이후 조던은 4학년의 신분으로 1981년 맥도널드 올 아메리칸 게임에서 무려 30점을 올리는데, 이 기록은 1999년 MVP 조나단 벤더가 31점으로 깨기 전까지 18년 동안 남아있었다. 이 경기에서 야투 19개 중 13개를 성공시킨 조던은 경기 종료 11초를 앞두고 자유투 두 개를 성공시키며 동부가 96대 95로 승리하게 되는 결승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6개의 스틸과 4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와 같이 괴물 같은 활약을 했음에도 그는 MVP 수상을 하지 못한다.

당시 MVP를 수상한 두 선수는 프로 시즌 시작 전에 잘리고 수모를 겪는다.

객관적으로 그가 얼만큼 뛰어났는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도 증명된 것이다.

대학시절의 풋풋했던 조던의 모습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진학한 조던은 1학년 새내기의 신분으로 결승 샷을 날리며 2학년에 바로 올해의 대학 선수로 선정되며, 대학시절 전설의 기반을 마련하듯 전미 대학 랭킹 1위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1984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에 참가, '3순위'로 시카고 불스의 지명을 받아 시카고 불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 최고의 선수로 불렸던 그가 3순위로 지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당시 농구 역사의 흐름을 조금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에이스는 10명 중에서 7명 이상이 센터였다. 실제로 1980년대에 1순위로 뽑힌 10명의 선수들 중 7명이 센터였으며 나머지 세명은 포워드였다. 79년에 가드 매직 존슨이 1순위로 뽑히긴 했지만 매직은 그 중요도가 입증된 포인트가드였다. 또한 매직이 뽑히던 해에는 압도적인 센터가 없었으며, 반면에 조던이 뽑힌 84년엔 특급 센터 유망주가 하킴 올라주원, 샘 부위까지 두 명이나 있었으니 이들을 제치고 슈팅가드인 조던이 뽑힐 리가 없었다.

그렇다. 주목받지 못하는 포지션인 가드였던 것이다.

실제로 유망주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치로 보면 슈팅 가드는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낮다. 지금도 선호도가 높은 포지션은 센터(현재 거물급 센터가 없는 것은 유망주 풀이 고갈된 것에 따른 것이 크며 2007년에 정통센터인 그렉 오든이 등장했을 때는 객관적인 실력과 대학에서 활약에서 그와 동갑인 케빈 듀란트가 훨씬 앞섰음에도 오든이 압도적인 1순위 후보로 꼽혔다.)와 포인트 가드이며, 그다음이 포워드 포지션이고 마지막이 슈팅 가드이다. 조던이 드래프트 되던 84년에는 NBA 역사가 이미 40년에 가까웠음에도 모든 포지션 중 슈팅 가드만 유일하게 MVP를 배출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3순위로 뽑힌 프로.

데뷔 경기에서 조던의 첫 슛은 실패했으며, 슛 16개를 던져 고작 5개 성공하며 7 어시스트 6 리바운드 5 파울로 기대치에 비해 평범한 경기를 선보였다.


다만!

어마어마한 운동능력을 선보이며 블록을 4개나 해낸다.

실제로 득점보다 블록을 먼저 했다. 또한 첫 득점을 보면 조던스러운데, 헤지테이션 드리블 후 크로스오버, 스핀무브 후 더블클러치 점프슛이란 엄청난 동작으로 성공시켰다.


그러나 조던은 세 번째 경기만에 자신의 잠재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총 37점 득점, 9번째 경기에서 무려 45점을 터뜨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그의 임팩트를 잘 나타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척 데일리 감독의 코멘트

"너무 잘해서 리그 전체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어요.
(He's embarassing the league, he's that good)."

그는 마침내 90-91년 시즌, 매직 존슨이 이끄는 LA 레이커스를 4:1로 꺾고 불스에 우승컵을 안겨주며 MVP에 오르게 된다. 락커룸에서 우승컵을 소중히 껴안고 펑펑 우는 조던의 모습이 지상파를 타며 완벽한 괴물이라고 여겼던 그의 모습을 보며 모두 그 역시 인간이었다며 감동을 받게 된다.

이때 조던은 펑펑 울면서 거의 흐느끼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닥부터 시작해서 우승한 거예요. 너무 길었어요. 7년이나 걸렸다고요. 한 계단 한 계단,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포기한 적 없어요. 전 언제나 믿고 있었어요."


그 눈물의 인터뷰 이후 그는 시카고 불스를 NBA 3연패 달성이라는 역사에 장식하게 된다.

앞선 인용했던 그의 인터뷰 말처럼 "9000번 이상 슛을 놓치고 300번 패배를 하고 승패를 결정한 슛을 26번이나 놓쳤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자신에게 혹독했다.

그가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가 쌓은 성적이나 우승 트로피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1군에서 떨어지고, 우승을 하지 못하고, MVP에 선정되지 못하고, 전미 대학 1위 선수를 하고서도 1순위로 지명되지 못하고, 그 수많은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번 이를 악물고 올라가고 또 올라섰다.

그는 지는 것을 싫어하여 승부욕을 불태웠고 사소한 실수도 반성의 계기로 삼아 극복해 나갔다.

그는 그렇게 '농구의 신'이 되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전설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한 게임에 졌다고 해서 그 게임 때문에 인생을 바꿀 정도의 분개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은 읽지 못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흘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구를 잘 모르는 이조차도 조던의 경기를 보면 금세 그의 움직임에 매료되고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는 몸의 에너지와 언어가 그가 쌓은 수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못할 것은 아니다.

당신 역시 취미로 하던 운동부에서 잘린 경험 정도는 있을 것이며 정작 운동을 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한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조던이 되지 못한 이유는, 당신이 당신의 모멘트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있었음에도 모르고 지나쳤을 확률이 크다.


돈이 많은 슈퍼스타를 보며 동경하고

나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며 침을 흘리는 당신에게,

저들이 저렇게 되기까지 어떤 좌절을 딛고

이를 악물고 일어섰는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이 우연히, 혹은 어쩌다가 그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 아님을.


그렇기 때문에 당신 역시 그들을 부러워하는 입장이 아니라 당신이 겪은 어떤 수모나 모멸감을 극복하고 더 위에 올라서기 위한 모멘트를 맞이하였다면 당당하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 자체를 극복하여 어느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 자신이 수긍할만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노력하고 노력하길 바란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당신이 어떤 모멘트를 만나 그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되었는지...

하지만 그들도 언제가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이 그 이전의 당신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당신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모멘트는

당신이 실패하였다고 쓰러져 주먹을 움켜쥔

바로 지금이다.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