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복잡화된 인간의 내면 심리를 그려낸 것으로 유명했다.
기존의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는 과도기 러시아의 시대적 모순을 작품에 투영하였으며,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의사였고, 어머니는 러시아의 잘 나가는 상인 집안의 딸이었다.
병원 부속 아파트에 살 정도의 잘 나가는 집안에서 일곱 형제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행복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진리를 전제로 한다면,
그는 환경은 그가 얼마나 유복한 가정인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병원 뜰에 회복기의 환자들이 나타났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 중에서 특히 나이 어린 환자들과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가난하고 핍박받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이때부터 다듬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사귐을 엄격하게 금지했고 도스토옙스키 가문의 아이들에게는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그의 전체 생에 있어 가장 강렬하고 그의 인생 전체를 뒤바뀌게 하는 사건은, 그가 유복한 집안의 자식으로 편안하게 공부하고 문학을 다루고 글을 쓰던 젊은 날에 있지 않았다.
1848년에 유럽 전체에 불어온 혁명의 바람에 이끌려 도스토옙스키가 몸담고 있던 페트라솁스키 클럽이 주민 봉기를 계획했다. 도스토옙스키도 농노들의 자유를 위해 가담했으나, 그 독선적인 성격은 여전해서 곧 모임에서 왕따 당하고 빚은 빚대로 늘어났다.
차르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는 이런 개혁 모임들에 여러 스파이를 두고 있었으며 1849년 도스토옙스키와 그가 가담한 그룹 23명이 체포된다. 8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에야 형 선고를 받기 위해 꺼내졌으며, 이전에는 보통 이 정도 죄는 몇 개월 간 유배가 고작이었으므로 이들은 '이제야 끝나는구나'하고 안심했다.
그렇게 안도했던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신부, 수십 명의 병사들과 수천 명의 군중, 그리고 관들이었다. 그들 앞에 한 장교가 나와 '죄인들은 모두 반역죄로 총살'이라 선고했다. 장교가 형수들의 죄명과 형을 낭독하는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정신이 멍해지면서 근처 교회의 종탑에서 쏟아내리는 금색 햇빛이 차차 구름에 가려지며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그 또한 곧 영원히 어둠의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만약 산다면 나의 삶은 끊임없는, 영원처럼 느껴지며 1분이 백 년과 같으리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인생의 단 1초를 소홀히 하지 않을 텐데...
마지막으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 후, 첫 번째 줄 죄수들의 머리에 두건이 덮이고 병사들이 총을 발사하기 직전, 갑자기 형장에 마차가 급히 난입해 황제가 특사로 그들의 형을 감형하였음을 알렸다.
사실 황제는 정말로 처형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혁명 놀음'을 하겠다고 설치는 젊은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처형 쇼를 한 거였다.
실제로 니콜라이 1세는 소위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이런 처형 연극을 즐겼고,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대신 4년간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중노동 후 군입대를 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1844년 중위로 제대한 상태였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끔찍한 재입대였다. 게다가 이번엔 사병이었다. 4년간 군 복무 평이 좋았는지 하사관으로 진급하기도 했다. 이후 1854년 석방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5년 뒤인 1859년 해배령이 내려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임사체험을 하면 사람이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유서를 쓰고 잘 짜인 관에 들어가 뚜껑을 닫고 죽음을 체험하는 코스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하게 된 후,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중노동 4년간은 머릿속으로만 글을 썼다고 한다.
겨우 군에 들어가고 나서 집필을 허락받아, 그 뒤 그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내게 만약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이라는 쓸모없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생각이 오갈 것이다.
특히 자연적으로 살만큼 살아서 노쇠하여 죽는 경우가 아닌
자의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는 순간
사람에게는 수많은 후회와 번민이 교차할 것이다.
연극이긴 했지만
그에게 있어 그것은 사실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얻은 그는
새로운 작품들을 집필해냈다.
그러나 인간은 교활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다시 그는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유부녀와의 결혼.
간질발작과 생활고.
그의 삶은 어느 한때도 평온하지 않았다.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기 때문에 그의 후기 소설들은 굉장히 길다. 왜냐하면 그 시절 러시아에서는 글자 수대로 원고료를 책정했고, 따라서 소설의 길이가 늘어나면 원고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이 대작인 이유조차 초라하다. 그나마 돈이 조금 남으면 도박장에서 날리고 빚만 더 벌어왔다. 이렇게 돈에 쪼들리다 보니 쓰고 있던 <죄와 벌>을 급하게 완성했으며 <노름꾼>은 26일 만에, 그것도 <죄와 벌>을 쓰는 중에 구두로 완성했다.
그가 도박에 빠졌던 것에 대한 자기변명은 이랬다.
다시 한번 죽다 살아난 그 기가 막힌 체험을 하려면, 있는 돈을 다 날리는 충격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희생적인 조수였던 어린 아내를 다시 맞이했으나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아니 더 어렵고 힘겨웠다.
형수와 조카를 부양해야 했음에도 그들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카 파벨은 원하는 돈을 내놓지 않으면 숙부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물고문을 할 정도로 패륜아였으나 마음 약한 그는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심약한 작가는 후배 천재 작가 톨스토이에 대한 열등감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후배를 질투하고 질시했다.
나중에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나서 '이 사람은 천재다!'라고 소리 지르며 거리를 활보했다는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