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단편소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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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지났고,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연락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학교에선 알 길도 없었지만 일종의 냉전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는 것 외엔. 그런데 그 마지막이라는 보루는 그날로 무너졌다.
“편지가 왔더라?”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상 위의 편지봉투를 들었다.
발신인 장 유진.
그녀의 이름이 글로 쓰여 있다는 것이 이렇게 내 가슴을 섬뜩거리게 할 정도일지는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거였다. 왜 이러지 내가. 오히려 그 편지의 내용보다 내 가슴의 이 울림이 두렵다. 둘 다 같은 느낌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지만.
‘지금 내가 무슨 예상을 하는 거지?’
편지지는 은은한 파스텔 스케치로 그려진 에펠탑이 보였고, 그녀에게 느껴지던 향수내음도 약간 느껴졌다.
··················
아마, 이 편지를 오빠가 읽을 때쯤은 절 잊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만나서 말을 하는 건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못쓰는 편지를 써요.
나, 오빠가 참 좋았어요. 오빠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까지요. 내가 오빠 옆에 있어줘 야 한다는 거 알지만···. 고마워요. 내게 있던 아픔은 오빠가 다 아물게 해 줬어요.
다른 말할 게 많지만 막상 쓰려니까 그렇네요.
잘 지내길 바라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또 만나게 될 때 우리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의 숨소리도 잇지 못한다. 난 가슴이 얼어버린 나머지 살얼음이 깨지는 것 같은 아픔을 쩌릿 거리는 울렁임을 느낀다.
‘제기랄. 왜 말을 못 했지? 왜 그랬지? 아니야. 이런 건 아니라구. 뭐라구 얘기를 해줬어야지.’
························
오빠 잘 지내세요. 첫사랑 보다 더 커다란 사랑이 있다는 건 좋은 뜻이죠? 난 그랬으니 까 운이 참 좋았던가 봐요. 친구들은 그런 거···없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꼭 돌아 올 께요. 기다려줄 거죠?
편지는 그렇게 끝을 중간쯤에서 맺었다. 더 이상 쓸 수 없었을 게다. 눈물 자국인지 향수 자욱인지 모를 자욱이 남아 편지지를 얼룩지게 한 것이 눈에 띈다.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당시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에게 떠오른 그녀의 모습.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수그리고 운다. 편지지의 글들이 흐릿해지며 에펠탑 뒤로 보이는 코발트 빛 하늘이 언뜻 스친다.
난 이후 어느 곳에서도 그녀를 보지 못했고, 연락도 못 받았다. 그렇게 졸업을 앞둔 새해를 맞았다. 방학도 아닌 그런 것이 뭔지 모를 일이었다. 난 취직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취직은 고사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습작들을 어느 한 곳으로 보낼 엄두도 못했다. 언제나 그렇긴 했지만 더더욱 난 자신이 없어졌다. 무엇보다 내 작품을 보여줄, 그것들에게 생명을 넣어줄 존재가 이젠 한 명도 내 곁에 남아 있질 않았다.
넋 빠진 사람처럼 그녀와 같이 걸었던 신촌의 뒷골목 구석 끝을 찾는다. 그녀의 웃음이 여기저기 묻어 나와 날 반겨줄 것만 같은데.
‘뭘까? 누군가 내 곁에 없어도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녀석이 언제쯤 제대하더라? 나오기만 해라. 이제까지 세어두었던 것까지 패줄 테니까.’
녀석의 생각이 그냥 났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그리곤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안녕하세요?”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진한 화장 내를 풍기며 날 보고 아는 체한다. 손에 들려 있는 쇼팽의 이름이 들어온다. 그래. 그녀의 단짝 친구였던 민정이다. 얘가 아직도 학교를 다니나? 그렇지만 그녀의 얼굴은 웬만한 술집여자보다도 진한 화장에,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모직 스커트에 긴 가죽 부츠를 신고 있다. 그녀와는 너무도 다른 이미지로 더욱 바싹 다가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형! 어디 가는 길이예요?”
“으응. 아니. 그냥.”
“그럼, 어디 가서 커피나 한 잔 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거침없이 날 잡아 끈다. 얘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 같이 커피를 마시지. 무슨 얘기를 하지. 망설이다가 이끌린다.
그러나, 내 고민은 늘 하잘 것 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내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들러 댈 텐데 뭘. 다른 말 중에 날 후려치는 듯한 말이 들려져 나왔다.
“참! 형. 유진이 병문안은 자주 가요?”
병문안?
병문안이라니 유진인 유학 갔잖아? 갑자기 귀국이라도.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리곤 이상한 듯 날 보고 있는 그녀의 말을 다시 뇌쇄김질 한다.
“몰랐다는 사람 같은 눈빛이네요? 형 바람이라도 난 거예요? 아님, 유진이랑 깨진 거예요?”
“무슨 소린지 난···, 유진이가 왜 병원에···”
겨우 말이 나왔는데 나와는 다르게 그녀의 대답은 전혀 막힘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학기 중에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졌다고, 휴학할 새도 없이 병원에 입원했잖아요. 아무리 몰라도 애인인 형이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나 돼요?”
애인. 아직도 그 말이 내 귓가에서 멍멍하게 울려 나오고 있는 기분이었다.
환했던 거리가 휘황찬란한 홍등가로 변할 때까지 난 무작정 걸었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왜. 왜냐구. 뭐가 두려웠지?
그러나 아까 들었던 얘기가 잘못된 것이길 바라면서도, 한편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 나약해 빠진 나에게 회의를 느낀다. 이런 기분은 정말 참을 수 없다. 떨쳐버리고 싶은데···마시지 못하는 술까지 했지만 취한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담배라도 피우면. 담배. 그래. 담배가. 호주머니를 뒤진다. 구겨지는 비닐의 촉감. 비어 있다. 내 텅 빈 머릿속처럼.
용기를 내서 들어서긴 했지만 내 두려움 때문인지 진한 크레졸 향이 먼저 날 밀쳐낸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들어섰던 개인병원에서의 약냄새가 떠오른다. 생전 병원에 와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주저하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안내 데스크로 걸어간다.
“환자를 좀 찾는데요. 여기···장 유진이라고···”
쭈삣거리는 쑥스러움을 억누르며 겨우 말을 꺼냈다.
“그렇게 이름만 대면 여기서 어떻게 알아요? 어느 병실이에요? 그것도 모르고 왔어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 이미 이 여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꽃을 보고는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며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독한 눈매 속에서 능글맞은 그녀의 경력이 느껴진다. 난 다시 민정에게 들었던 병실을 기억해 내고는 겨우 6층으로 가도 된다는 안내와 버리는 척했던 꽃을 몰래 들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엘리베이터까지 쫓아올 생각은 안 하고 뭐라고 뒤에서 욕지거리하는 것이 들린다. 설마 끝까지 따라오기야 하려고.
6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다시 시작되는 두근거림. 그치지 않는다. 유진이에게 줄려고 가져온 임화의 책이 손에 쩔어 들어온다. 이걸 좋아할까. 병실까지 가면서 간호사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걸어간다.
저어···,머뭇거리는 말투는 다 사라지고 손은 단정하게 빗었던 머리를 다시 헝클어 놓고 만다.
“저어···여기가···”
“예. 누굴 찾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자가 날 맞으며 물음을 채 뱉기도 전에 그녀는 날 보고는 사색이 된다. 내가 저승사자쯤으로 보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한켠으로, 별로 건강이 악화되지 않은 것 같은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녀가 놀라는 것까지 오히려 건강하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반가움이 앞선다.
“오, 오빠···”
“유진아··. 안녕하세요. 전 유진이 학교 선뱁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얼굴에 눈물인지 물기가 얼룩을 만든 것이 보인다. 나이는 들어 보이긴 했지만 단번에 유진이에게서 느끼던 것과 같은 분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구나.
“엄마. 자리 좀 비켜 줄래요?”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의 그녀가 말한다. 몸으로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침착해져 있다. 또다시 그녀와 헤어질 때의 모습이 그냥 뜬금없이 떠오른다.
지금 얇은 천으로 된 모자를 눈까지 눌러쓴 그녀의 모습이 이상스럽다. 우습다. 귀여운 그녀의 모습을 보니 미소가 지어진다. 분명히 괜찮을 거야.
“오빠.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이젠 올 필요 없어요. 가세요.”
“유, 유진아. 그게···, 나도 민정이한테 듣고 나서···”
뭐라고 변명을 할 틈이 없다. 어떻게 말해야 했을까. 병실을 잘못 찾은 것 같은 어색함이 맴돈다.
“나··· 이런 모습 보이기 싫어요. 당분간··아니 이제 오지 말아요. 곧 다 나아서 나갈 거니까. 그때 내가 연락할게요. 됐죠? 나가 줘요. 빨리!”
거기서, 내 앞에서, 그녀는 악을 쓰고 있었다. 목이 쉬어 버린 사람의 목소리처럼 소리가 거의 갈라져 나올 때까지.
“알았어. 이거 받아줘. 건강해지면 꼭 전화해. 무슨 일이 있던지···”
“알았으니까···, 빨리 나가 줘요.”
애원한다. 가슴이 또다시 망치질하기 시작한다.
‘이건 또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
녀석이 군대 갈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또다시 울림이 파문을 만든다. 불길한 느낌인 것은 같았다. 얼핏 나오며 보이는 모자 안의 그녀의 파르스름한 머리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비구니의 청아하고 절제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땐 몰랐지만, 내게 소리 지르던 그녀의 모습이 슬프다 못해 애절해 보였던 것 같다. 그 소리에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고, 난 그저 놀란 눈을 하고 꽃을 두고 나왔다. 손에 배어 땀에 찌든 책과 함께.
나오며 문득 내가 함께 했던 춘천 여행 끝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넌 참, 긴 머리가 아름다워 보여.>
난 그것도 부족해서 탐스러워 보인다는 말까지 했었다. 그런 내 말들이 너무 싫다. 그건 내가 싫다는 것에 대한 나의 자기 방어였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화를 냈었던 건 아마도 그것 때문이었을 거야. 바보 같은 놈.’
전화벨이 울린다.
지금 대학에서 국어 강사를 하고 있던 선배다. 내게 고등학교 국어선생자리를 추천해 줄 테니 해볼 거냐고 묻는다. 이번 여름에 들어가서 가을부터 근무를 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마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유진이 전화가 올 거니까 다른 사람과의 통화를 오래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꼭 올 거야.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결국은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유진이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다 들을 각오를 한채, 그 따스한 봄날에 병원으로 갔다. 아직도 겨울인 줄 알고 입고 나온 거위털 파카가 목으로 눌어붙는다. 옷을 벗어 팔꿈치에 끼고는 병실로 들어섰다.
없다. 그 층에 있던 데스크로 달려가 묻는다.
“저어 혹시 1062 병실의 환자가 어디로 갔는지···”
사무적인 모습의 그녀의 말에 귀찮다는 뜻이 역력히 배어져 있다. 모른단다. 혹시 모르니까 아래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곤 자판을 두들겨 조회해 본다.
“여기 있네요. 중환자실로 옮긴 지 3일 지났네요.”
“중환자실이 어디죠?”
불안한 예감은 없었다. 불안한 예감은 없어야 했다.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이내 소리를 지르고 만다. 엘리베이터 쪽은 보지도 않고 곧장 비상구로 내려가며 소리를 높여간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뛰어 내려가며 몇 명과 부딪쳤던 것 같았지만 확실치는 않다.
<중환자실>이라는 글자에 하얀 불이 켜져 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뛰쳐 들어갔다. 당장 그 안의 몇몇 시선들이 날 정신병자로 내몬다. 한 켠에서 빈 침대의 시트를 개키는 간호사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심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호, 혹시 여기 장 유진이라고···”
“장 유진 환자요····?”
밖으로 나오니 완연한 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미 겨우내 살아남지 못하고 얼어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새로운 묘목을 심고 있었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실려가는 죽은 나무는 분명히 살아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병원을 내려오던 길 앞은 이미 저녁 놀이 지고 있는 봄날의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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