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림에는 풍경이 없다. - 3

신년 특집 단편소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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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화벨이 울린다.

오후 강의실에서 만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예상대로 그녀의 전화다. 글쎄. 너무 빠른 건 아닌가. 내 전화번호는 그녀에게 있었지만 난 그녀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하긴 그녀가 늘 전화를 하니까. 알 필요는 없지.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는 놈치고 아직 등단도 제대로 못한 채, 그 흔한 추천 하나 받지 못한 내게 그런 연인이란 행운이다.


나에겐 유일한 독자이고, 늘 달콤함만을 주지는 않는 냉정한 비평가.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건 우연히, 그것도 그녀의 친구를 통해서 알았다. 우린 늘 그랬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서로에 대해 알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비공식의 묵계가 있었다. 그냥. 단지 그냥.


“알았어. 내가 지금 나가면···, 그래. 대학로 거기에서 만나.”


전혀 반대라곤 없다. 그런 것에까지 자질구레 신경을 쓰긴 싫다. 내가 늘 그런 것처럼 그녀의 존재도 나 하나를 볼 뿐 다른 여타는 기대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경우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정도 추호도 없다. 이번엔 꼭 시라도 몇 편 추렴해서 내야지. 늘 소설에만 집착하는 게 병이야. 평론도 좋잖아. 주위의 교수들은 늘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제기랄. 너희들도 그럼 뜨는 소설 쓰면 되잖아. 강의실 밖에선 힘없는 이들이 강단 앞에선 입에 독을 가득 머금은 뱀이 되어 저잣거리에 나온 소문난 개구리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려 든다. 그리곤 우리에게 왜 그런 개구리들처럼 못하냐고 반문한다. 허물을 벗고 나오면 저희들도 개구리인 걸. 약속시간에 늦었다. 나도 모르게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쳐 버렸다. 종로를 지나 방통대 건물이 얼핏 보인다. 늘 이렇다니까요. 오빠가 그렇게 구니까. 내가 늘 늦게 나오고 싶잖아요. 하는 식의 이전에 들을 수 있던 투정은 아예 내색도 하질 않는다.


“꽤 춥죠? 따뜻한 거 마셔요.”


아직까지 내게 존대를 하는 그녀의 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뭘까. 또 다른 생각을 하며 유난히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조응한다. 유달리 희디흰 볼이 이젠 창백해져 있다.


“어디 아픈 거야?”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창백해. 감기라도 걸린 거야? 아니면···”

“아니에요.”


말문이 막힌다. 아까 산 담배가. 아참. 난 담배 끊었지.

담배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늘 찾는 건 버릇이 아니라 내 일부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지. 담배가. 담배가. 앞에 있는 재떨이로 시선을 떨궈 보지만 고개를 젓는다. 보는 것만으로 그냥 관둬야지. 의지력도 약해 터진 놈 같으니라구. 그 사이에도 날 보고 뭐라고 하고 있었나 보다.


“뭐라구? 미안 못 들었어.”

“나 유학간다구 했어요. 유학···”


말끝을 흐리고 울먹이는 듯 기어들어가는 음성을 들으며 문득 그녀의 눈 안에 비친 남자를 본다. 정말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애인 만나러 오면서 어느 정도 신경을 썼어야지. 이런 바보 같은 놈.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 역시 그 정도로 내가 싫다는 게 더더욱 싫다. 데카르트의 책이 들려있던 손에서 그녀의 손이 내 책을 빼앗아 간다.


“뭐예요?”

“응. 그냥 버스에서 읽을까 하고···”


솔직히 버릇처럼 가지고 나오긴 하지만 늘 읽지는 않는다는 거 그녀도 다 안다. 데카르트는 버스 간에서 읽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보 같아 보일 것을 알면서도 난 쓴웃음 짓는다. 아무 뜻 없이 그냥 짓는, 바로 녀석의 그 표정.


“참! 아까 뭐라구 했지?”

“오빠두. 유학··아니···오빠 소설은 어때요? 졸업 전에 오빠가 등단할 수 있다는 거 다른 친구들한테두 자랑했는데···오빤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구요. 느낌이 분명히 그래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저렇게 창백하고 연약한 얘가 피아노에 자신의 몸이 들썩일 정도로 힘을 넣고 건반을 누를 수 있을까? 힘겨울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자, 잠깐! 지금 뭐라구 했지. 유학. 유학이라고 했나? 무슨···?’


이제 겨우 내 곁에 함께 있게 된 연인인데 일 년은 고사하고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구 간다는 거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숨이 탁 막혀 버린다.


<너한테 애인이라는 게 생기게 되면 내가 뭐든지 해줄 테니까 그때 네가 필요하지만 없는 모든 걸 내가 대주마. 정말이라구. 정말.>


녀석의 말이 현실처럼 되어 버린다. 아니, 이 순간 그런 말이 생각난다는 것 자체가 느낌이 안 좋다.


<네가 원하는 건 애초부터도 존재하지도 않는지도 몰라.>


‘아니야. 이제 마음을 붙박였는데 다시 떠난다니. 어디로. 왜. 또 간다구? 모두가 날 떠나겠다는 건가. 갈 수 없어. 말도 안된다구.’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떻게 만류를 해야 하지? 아직 왜 가는지도 모른다. 일단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유학은 갑자기···,어디로 가는데···,전공공부하러···?”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물었던 걸까. 다시 아까 날 비추었던 것이 눈에서 바닥에 떨어진다. 고개를 숙여버리고 그녀가 흐느끼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물은 건가. 담배가.


“이봐요. 여기 담배 하나만 줘요.”


결국에는 카운터에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고개를 바짝 들고 내 얼굴을 본다. 웃는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까 우는 것 같았는데.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엉켜 버린다. 마약환자의 떨리는 듯한 손으로 담배의 겉봉을 급히 뜯는다. 내 무의식적인 마네킹 같은 손이 그녀의 따스함에 감싸인다.


“담배 끊었잖아요. 우리 이제 그만 나가요. 여기 공기가 너무 탁한 것 같아요.”


담배가 그녀의 손으로 건너갔다. 아이처럼 그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나간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멍한 나의 뇌리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후려친다. 외관상의 이상이 아니라면 내 머릿속엔 거대한 플라스틱 폭탄의 뇌관이 들어 있는 게 틀림없어. 곧 터지고 말 거야. 엄청난 굉음을 울리고 흔적도 없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카페의 어두운 벽 쪽으로 걸려 있는 풍경화가 눈 안에 들어온다. 은은한 파스텔 톤이 날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풍경을 바쳐주는 맑은 초저녁 하늘이.


8


하늘이 유난히도 맑다. 오랜만에,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으로, 노을 지는 늦가을을 4년 동안의 무의식적인 무결강이라는 내 이력을 깨고서 멍하니 그의 사랑인지 슬픔인지 모를 그 이야기를 다시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와 같이 호흡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오래된 얘기는 아니었다 싶은 느낌인데.


내가 국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 혹시라도, 아주 작지만 혹시라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말도 안 되는 회상을 한다. 고등학교 때 그 더부룩한 수염의 국어 선생이 나에게 준 것이 뭐였는지 난 아직도 확실히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줬다? 주긴 뭘 줬었나?


“저, 문과로 전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뭐, 뭐? 너 지금 제정신이야? 말이라고 해? 지금?”


이공계였던 내가 고3을 올라가면서 국문학을 하겠다고 전과를 희망했을 때도 그는 지나가며 오히려 차분한 어조의 나와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져 버린 담임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였던 것 같다. 그가 설명하려 했던, 그 멍청하고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그 웃음이. 내 입가에 지금 그것과 비슷한 것이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아닐 거야. 이건.


그 사람은 분명히 아직도 그녀 생각을 하겠지? 아닐까. 한 번쯤 세월에 의해 변해 있을 그를 만나보고 싶다. 마지막 사랑을 갈구하던 젊은 날의 그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그의 웃음 같은 노을이 캠퍼스 언덕을 보듬으며 내 가슴으로 안겨 온다.


9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왜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다짜고짜 그런 말을 내뱉고. 그렇게 밖에 안될 것이었나. 내가 뭘 잘못했었나?’


밥을 먹고 영화를 같이 볼 때까지도 나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 것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을 게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그녀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이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걸 신춘문예에 응모할 거라고. 그 시시한 학교 문예가 아니라 신춘문예에 내놓을 정도로 다듬어져 있다고. 반드시 될 거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날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뭘 어쩌겠다는 거지? 넌 정말 그런 식으로밖에 살지 못하는 거였어?’


푸른색 화면 앞에 앉아서 미친 듯이 창작욕에 불타서 자판을 두들기던 때가 생각났다. 난 내가 천부적인 소설가인줄 알았다. 분명히 그런 신념이 있었다. 그런 의욕까지도 없어져 버린 것은 녀석이 내 곁을 마지막으로 떠나고, 모든 이들이 날 떠났다고 절망할 기운조차 빼앗겼을 때였다.


몇 시나 됐지?

시계가 없다. 벌써 날이 샐 때가 되어가겠지. 상념을 파고들며 전화벨이 울린다.

컴퓨터 옆에 둔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이다. 전화기가 바로 옆에 있어서. 이 시간에 전화라니 도대체 어떤 놈이냐고 당장 어머니의 호령이 떨어지실 텐데. 후배 녀석이라면 욕이라도 해서 지금 기분을 풀 요량으로 거칠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두 번.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나도 모르게 같이 숨을 죽인다. 분명히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닌데. 누굴까. 속으로 뭐라고 중얼대려다가 그만둔다. 혹시, 혹시, 유진이다. 유진이가 분명해.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거의 치유불가능한 고질적인.


“유진아 너, 너지?”


흐느끼는 소리가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져 들려온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난 그때까지도 그 흐느낌의 여운을 가슴에 꽂힌 화살마냥 안고서 파문처럼 더욱 커지는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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