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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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Arndt Anderson’이라는 음식연구가가 쓴 <Breakfast>라는 책을 보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한 끼 식사인 아침식사는 역사·문화·사회적으로 탐구할 것이 많은 문화사의 한 항목으로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의 책에서 설명하는,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침식사인 콘플레이크의 발명에 관한 이야기만 보더라도, 드라이 시리얼을 전 세계인의 아침식사 메뉴로 등극시킨 켈로그라는 회사가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거듭하며 지금의 시리얼 아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화(祕話)가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한국의 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통로라면,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가 일반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외국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인들은 정말 매일 아침을 그렇게 화려한 반찬과 국을 모두 차려 먹고 다니는가?’하는 것이죠.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출근 전 혹은 학교에 가기 전 아침식탁에서 가족들이 식사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간단한 외식으로 식사를 하는 중국문화도 그렇고, 시리얼에 간단하게 우유를 부어서 마시듯이 먹는 정도의 미국 문화도 그렇고 한국식으로 정찬을 차려서 식사를 하는 문화는 역시 왕가나 귀족이 아닌 다음에는 조금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침 식사를 정식으로 차려먹었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 젊은 학생들이나 맞벌이 부부들이 아침식사를 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서양식으로 먹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아침밥상은 드라마에서 보이다시피 저녁 정찬에 못지않은 반찬들과 국까지 제대로 차려서 먹는 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을 텐데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해 보도록 할까요?
첫 번째 이유는 앞서 살짝 언급되었던 것처럼 맞벌이 부부가 많지 않았던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유교 문화에서는 아내가 남편과 가족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책무(?) 중 중요한 임무가 바로 가족들의 식사 준비였습니다. 유교 문화에서 아내는 남편을 보필하고 자식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따로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여자가 직업을 갖는 것은 전통적인 유교문화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요. 남존여비의 사상 때문에도 그랬지만 여성의 더 큰 임무는 사회와 국가의 근간에 되는 가정을 제대로 보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이 일도 하지 않고 차렸던 밥상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정식 명칭은 ‘9첩 반상*’이라고 하는데요.
그 수많은 반찬들을 만들어내는 번거로운 공도 공이지만, 매번 식지 않은 국과 찌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질(?)되기 전까지는 명백하게 밥과 국이 기본이 되는 한식문화였다는 것이고 한식문화의 기본은 한국인은 밥심이라 하여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 보양을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일종의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는 기본정서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서민들이 매번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밥’이란 그저 단순한 주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인데요, 귀족이나 왕족등의 좀 사는 사람들이 3끼나 5끼를 먹을 동안, 하루에 세끼조차 챙겨 먹기 어려운 서민들이 다수였던 시대에는 굳이 한 끼를 챙겨 먹을 정도의 궁핍한 상황에서 아침밥을 챙겨 먹기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 집안이 얼마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갖추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지금 아침밥을 먹느냐 못 먹느냐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가늠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문화의 잔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충분히 증명됩니다.
큰 회사의 재벌이나 사회적으로 위치가 높은 이들은 대개 아침식사를 거대한 주방의 전용 식탁에서 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면, 서민으로 대변되는 이들의 식사장면에 아침식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의외로 적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은연중에 위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아침에 여유 있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경우는 출근시간이 여유롭거나 직접 아침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위 근거는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어느 사이엔가 한국인에게 각인된 이 말,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표어(?)로 설명됩니다. 식품영양학적으로도 그렇고 의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지만, 저녁을 과하게 먹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서양의 문화에서 저녁을 가장 화려하고 든든하게 먹는 것은 하루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것을 식품으로 보충하려는 서구 문화의 영향 탓이 큰데요. 실제 저녁을 과하게 먹는 것은 저녁식사 이후 수면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하루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소비하는 데에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나와있습니다. 아침밥은 뇌 활성화가 높아지며 집중력과 학습력을 향상해 주는 효과가 있다는데요. 또한, 아침밥은 폭식을 예방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고 영양섭취도 돕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조상님들은 이미 그것을 농경사회를 거치며 체득한 탓인지, 아침을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한다고 여겨,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게 됩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바로 하루 활동에 돌입하게 되면 아침밥에서 섭취된 영양분이 저녁에 수면 전까지 충분하게 활용되는 구조인 셈이죠. 특히 밥을 중심으로 한 한식의 경우, 밥만 먹거나 밥을 대신하는 어느 한 가지를 먹는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따르는 국이나 반찬들이 저녁의 기름진 것들과는 별개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침밥이 주는 생활의 활력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이미 인지했던 현명한 조상님들의 영향으로 한국의 아침상을 그렇게 9첩 반상의 화려함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그렇게 아침식사를 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밥의 위력을 밥상문화를 통해 배운 이들은 아침밥을 절대 거르지 않는답니다.
오늘, 아침 든든히 먹고 나오셨나요?
* 9첩 반상 : 밥, 국, 김치, 종지(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세 개에 조치 두 그릇(일반적으로 찌개류 한 그릇과 찜류 한 그릇) 그리고 아홉 가지 반찬을 내는 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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