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 호러 판타지 멜로
맑은 늦가을의 하늘이 금세 어두워져 달빛만이 고야산의 정적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이 들락거리지 않는 가장 깊고 높은 곳의 전각으로 하얀빛이 산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가느다랗지만 태어나서부터 산 생활에 익숙해져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을 만큼 예민한 감각을 키워온 소명의 눈에는 너무도 또렷하게 보였다.
“전서구(傳書鳩)다.”
낮에 마을에 내려가서 사 왔던 당고 꼬치를 던지며 소명이 외쳤다. 저녁 공양을 먹고 나서 단 것을 꼭 먹어야 하는 습관 때문에 전에 낮에 사둔 당고를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숨겨두었던 터였다. 전서구가 다이몬(大門) 지나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날랜 다람쥐마냥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한 달음에 거슬러 내려왔다. 그 길로 부적 전서구의 움직임이 향하는 큰스님 공해 선사의 방으로 달려들 듯 문을 열어젖혔다.
“할아버지~!”
이렇게 또렷한 정도의 전서구인 것을 보면 홋카이도로 임무를 나갔던 대사형의 전서구가 틀림없었다. 홋카이도산 대게를 한 아름 사 오겠다는 약속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늘 그렇듯이 멋지게 이번 임무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안겨주고 무사히 귀환 중이라는 보고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소명은 생각했다.
“소명이냐!”
막 손에서 빛나는 전서구는 다시 종이로 화하여 공해 선사의 손에서 한 줌 재로 사그라졌다.
“대사형은 언제 온대요, 할아버지?”
“으음.”
공해 선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네 사형은 돌아오지 못할 것 같구나.”
“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곧바로 다른 임무라도 맡게 된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좀 쉬어가면서 일을 시켜야지. 무슨 이 나라의 요괴들은 우리가 다 잡아서 성불시켜야 하는 거래요?”
“그게, 아무래도 당한 듯싶구나.”
소명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합장을 하고 사라진 부적을 날리는 공해 선사의 말에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휘청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뭔가 울컥하고 올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할아버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사형이 어떤 사람인데···”
“마지막 전서구도 비상시를 위해 남겨두었던 것이지 싶구나.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자신의 영력이 소멸되는 즈음에 자동으로 발동하도록 몸에 새겨둔 종신부(終身符)였던 것 같구나.”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큰스님!”
문 밖에 서 있던 수행승들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긴급 종단회의를 소집해야 할 것 같다. 혜능(慧能)이 어쩌지 못한 상대라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다잡아야 한다. 모두에게 알리도록!”
수행승들이 빠르게 퍼지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도 소명은 다리가 후들거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명!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네 큰 사형도 바라는 바였을 게다.”
어깨를 토닥이려던 공해 선사의 손을 뿌리치고 소명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소명!”
공해 선사의 부름에도 소명은 흐르는 눈물이 바람을 가르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미친 듯이 고야산의 깊은 산중을 내달리고 있었다. 한참 가슴을 뭔가 뚫고 지나간 듯한 느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소명은 뜨는 해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그즈음, 바랑에 이것저것 짐을 꾸리고 그간 모아두었던 돈을 챙기고서야 소명은 조용히 고야산을 내려왔다. 다이몬을 지키고 있던 무도승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늘 당고를 사러 나가던 길을 이용해서 재빠른 걸음을 옮겼다.
속세로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해 선사의 편지가 먼지 귀신을 통해 바랑에 붙어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간사이 공항까지는 어찌 되었든 TV에서 보았던 것처럼 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는 것뿐이라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달랐다. 비행기를 타보는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때 공해 선사를 따라 나왔던 유일한 세상의 외출을 빼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에 지나던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한 시선을 던졌다. 소명은 장삼을 걸치고 삿갓까지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이질적으로 보이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이 부담스러워 삿갓을 더 깊게 눌러썼다.
“자, 손님 어디로 가시지요?”
비행기 티켓을 끊는 항공사 직원 아가씨가 특유의 가면 같은 웃음을 띄우며 그에게 물었다.
“홋카이도요.”
“홋카이도 어디로 가시지요?”
“에?”
직원의 질문에 소명이 삿갓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항공사 직원은 아직까지는 이 이상한 승복의 젊은 남자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여유가 있어 보였다.
“홋카이도 어디가 무슨 뜻이지요?”
“홋카이도에 공항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어느 도시로 가시는지요? 아사히카와? 하코다테? 아니면 삿포로?”
“에? 뭐가 그렇게 많아요? 이곳은 간사이 공항 하나잖아요!”
소명이 울상을 지으며 바랑을 뒤적이려고 하자, 뒤에서 굵은 남자의 팔뚝이 쑥 나오며 그를 밀쳤다.
“삿포로, 한 장! 이걸로 결재 바랍니다.”
“어? 방장님!”
눈썹이 굵고 팔뚝이 웬만한 아가씨의 종아리만큼이나 굵어 보이는 남자가 가벼운 노타이 정장 차림으로 카드를 내밀며 소명의 덜미를 잡고 티켓을 낚아채듯이 사람들을 뚫고 나왔다.
“이게 무슨 어설픈 가출인가. 소명! 큰스님이 설마 자네가 이런 짓을 할 줄 모를 거라 생각했나? 내가 도쿄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이렇게 자네의 멍청한 짓을 지원해주라고 하신 걸 보면, 큰스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만.”
“할아버지가 제가 산사(山寺)를 내려올 것까지 알고 계셨다고요?”
“자네 바랑에 붙어 있는 먼지 귀신이 안 보이나?”
“에?”
그제야 소명은 바랑에 붙어 있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먼지 귀신을 확인했다.
“대지진 이후로 국운이 예전 같지 않아. 지금 한 명의 수행승이라도 손이 부족한 마당에 자네같이 경험이 없는 자를 그곳에 보내서 어쩌시겠다는 건지 원. 말씀은 모두 편지에 담았다고 하니, 비행기에 타서 읽어보도록 하고, 혜능의 죽음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과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되는 대로 전서구를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자네를 보내주는 조건이다. 어쩔 텐가? 그리 할 텐가?”
“에? 저는 대사형의 복수를···”
쿵하는 소리와 함께 소명의 머리가 울렸다.
“아! 방장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폭력은···”
“입 다물고. 다시 묻겠다. 이 조건에 약조를 하지 못하겠다면 결코 비행기를 태워 보내지 말라는 큰스님의 엄명이 계셨다. 어쩌겠는가?”
“그건···, 뭐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에서 사건을 맡고 있는 경시청의 형사가 마중 나와 자네를 도와줄 것이다. 나머지는 그에게 모두 전달해두었으니 그와 행동을 함께 하면 될 것이다.”
“신치토세, 신치토세로 출발하는 비행기 승객들은 탑승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의 멘트가 대기실 전체에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혜능이 당했다면 자네가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지금은 나라가 바다에 가라앉을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라 당장 손을 쓸 수 없다만, 자네가 경거망동하게 되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방장이 설교를 늘어놓는 동안 이미 소명은 티켓을 들고서 저만치 앞서 달려 나가 버렸다.
“요즘 젊은것들이란···”
비행기에 올라 먼지 귀신의 눈을 띄우고 열어본 공해 선사의 편지는 마치 소명의 이번 돌발행위를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늘 그렇듯 차분하고 조용했다. 주된 내용은 대사형 혜능을 통해 들어온 그간의 정보와 뉴스를 통해 보았던 사체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원령의 정보를 통해 대상을 파악하고 바로 연락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가장 최근에 살해된 피해자의 사체야.”
사체에서 무언가를 읽기 전에 사체라고 보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흔적이 없는 깨끗한 상태의 미라 같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총 5구의 시체 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사실은 뭐가 있었습니까?”
“뉴스에서 난리를 부려 다 공개된 것이나 다름없기는 한데, 일단 온몸에 한 방울의 피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하고 심장이 부검할 때까지도 얼어있는 냉동보관한 것처럼 쪼그라져 들어 있었다는 것 정도야. 피해자가 모두 남자라는 사실 정도 말고는 나이나 직업 뭐 딱히 공통점이랄 것이 없어. 지금 이 사람도 홋카이도 대학교수라는 작자인데 이것저것 구린 짓을 하고 권력지향에다가 전형적인 정치형 인간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원한 관계랄지 다른 어떤 용의자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네.”
쿠와노의 설명을 들으며 소명이 조용히 사체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한 손을 이마 쪽에 두고 다른 한 손을 합장하듯 염주와 함께 들어 올려 염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체의 이마 쪽에서 작은 빛이 일어나기 시작하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보였다.
“뭘 어떻게 한 거야?”
“음. 생각했던 대로예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특히 이 사람은 영혼이 아주 탁한 사람이에요. 대학교수라면서요? 무슨 범죄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악한 기운들이 가득해요. 이건 요괴에게 당하기 이전부터 그런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오랜동안 그렇게 지내온 걸 테고. 그래서 타깃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거고요.”
“그럼 굳이 다른 사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일단 보여주세요.”
그렇게 나머지 3구의 사체와 그 전 해에 처리된 2구의 사체 보고서를 모두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소명은 검시소를 빠져나왔다.
“예. 오늘은 아무래도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팀장님께도 그렇게 전해주세요.”
핸드폰을 끊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고 쿠와노가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태 아무것도 못 먹고 시체만 봤잖아. 늦은 점심, 아니 이제 저녁이겠군. 저녁이라도 해야지. 비행기에서 속을 모두 게워냈다며···”
“아, 그러고 보니 좀 어지럽네요. 그런데 또 차를 타야 하는 건가요?”
“홋카이도에서 차가 없이 움직이는 건 무식한 짓이라고. 더군다나 눈이 내리기 시작한 즈음부터는 더더욱.”
소명이 기운 없이 웃으며 쿠와노를 따랐다.
‘대장(大將)’이라고 쓰인 큰 천을 치우며 쿠와노와 소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젊은 점원의 큰 목소리가 두 사람을 맞았다. 차를 계속 타는 것이 어지러웠는지 소명은 계속해서 속이 메슥거리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웬일로 이런 이른 시간에 오나?”
주방 쪽에 있던 매서운 흰 눈썹의 노인이 쿠와노를 보며 물었다.
“영감님도 참!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고명 듬뿍 얹어서 돈코츠 한 그릇하고 나는 늘 먹던 쇼유로!”
가게를 두리번거리는 소명을 보며 노인이 소리쳤다.
“이젠 수행하는 중놈까지 데리고 다니는 거냐? 가게 안 무너지니까 냉큼 앉아 이 촌놈아.”
“아, 네.”
소명이 멋쩍은 듯이 노인을 보았다. 노인도 말투를 들어보니 간사이 쪽 사투리가 배어 있는 것이 다혈질의 간사이 쪽 사람인 듯했다.
“이 양반이 오사카에서 유명한 쿠미의 야쿠자였다네. 자네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겠지만 그쪽으로 보면 전설 같은 인물이었지.”
쿠와노가 젓가락을 매만지며 노인을 눈치를 슬쩍 보듯 말했다.
“야쿠자요?···”
“꼬마 중 녀석에게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그건 그렇고 그 얼어 죽을 연쇄살인마는 잡을 수 있긴 한 거냐?”
“그렇지 않아도 탁월한 영력을 가진 고명하신 소명 스님께서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야산에서 내려오셨다는 거 아니겠소?”
“고야? 그럼 공해(空海)가 보냈냐?”
“어, 할아버지를 아세요?”
소명이 놀라 되물었다.
“하여간 우리 영감은 발이 안 닿아 있는 곳이 없다니까···”
쿠와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자아, 주문하신 라멘 나왔습니다.”
젊은 점원이 뜨거운 국물을 가득 채운 라멘 두 그릇을 두 사람의 앞에 올렸다.
“우와. 이게 그 유명한 삿포로 라멘···이군요.”
“일단 먹어라. 네 할아비라면 날 이곳으로 처박아버린 장본인이기도 하니까 오늘 라멘은 내가 쏘는 것으로 하지. 든든히 먹어라. 여기 고명 좀 두툼하게 더 올려줘라.”
노인은 둥근 의자에 대작하듯 앉으며 커다란 정종병을 꺼내 들어 컵에 따랐다.
“한잔 할 텐가?”
쿠와노는 라멘을 입 안 가득 넣으며 손을 들어 사양했다.
“그럼 땡중 자네는?”
“예? 저는···”
소명이 거대한 라멘 그릇에 놀라 정종을 보며 잔을 내밀려는 순간 전기가 오듯 찌릿거리며 그의 바랑이 작게 흔들렸다.
“근처에 있습니다.”
소명이 반사적으로 몸을 퉁겨내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찌나 빨랐던지 노인이 입에 댄 술잔이 채 다 넘어가기도 전의 찰나였다.
“이런!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쿠와노가 심드렁 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인간이 한 짓이 아니라니까.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원.”
노인은 두 사람이 뛰어나간 자리에 가만히 앉아 다시 정종병을 잔에 기울였다.
가게 밖으로 달려 나온 소명은 팔괘 나침반이 미친 듯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늘 끝이 멈춘 방향으로 내달렸다. 쿠와노는 다시 쏜살같이 사라지는 소명의 뒷모습을 따르기에 그지없었다. 도심이 아닌 홋카이도 대학 근처의 삿포로역 북쪽은 이미 어두워져 길을 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차도 한적해져 있었다.
겨우 차에 올라 한참을 달려가니 차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날아가듯 내달리는 소명이 보였다.
“얼른 타!”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열고 외치는 쿠와노를 보고 소명이 지프차의 위로 고양이처럼 날아 붙었다.
“이 아래로 쭉 내려가면 됩니다.”
“이런 차에 타라고 했지, 누가 지붕 위로 올라가라고 했냐? 어쨌거나 달려보자고!”
지프가 남쪽으로 향하면서 시계탑을 지나 오오도리 공원 쪽으로 가까워지자 팔괘 나침반은 아예 강한 힘에 이끌려 제대로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세요.”
지프가 멈추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송신 시계탑 위로 소명이 날아올랐다. 송신탑의 꼭대기로 올라가 다시 한번 팔괘 나침반을 봤다. 이번엔 남쪽을 향하던 바늘이 미친 듯이 헛돌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쿠와노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그저 위에 올라간 소명의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침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아 소명의 그런 모습에 놀랄 일은 없을 듯했다. 마구 춤을 추던 나침반이 이번엔 북동쪽을 향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저쪽엔 뭐가 있죠?”
송신탑에서 내려온 소명이 물었다.
“저쪽은 ‘아카렌카(赤レンガ)’라고 옛날 청사 건물이···”
“빨리 그쪽으로 가야겠어요. 그리로 이동한 것 같아요.”
소명이 말하기가 무섭게 오오도리 공원을 동쪽으로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쿠와노도 다시 차에 올라 그를 뒤따랐다.
공원의 끝 쪽에서 삿포로 역 쪽으로 조금 올라가자, 붉은 벽돌의 건물이 보였다. 소명이 급한 마음에 봐주라를 꺼내 들고 손에 염주를 칭칭 감아 묶었다.
“옴 아모···”
그의 염불이 가해지면서 청사가 심장박동이 울리듯이 크게 한번 울렸다.
“갈(喝)!”
봐주라의 끝에서 빛 덩어리가 청사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마치 폭죽이 터지듯이 청사의 한가운데에서 빛의 확 번지는 것이 막 도착한 지프의 정면에서도 보였다.
“뭐지? 넌?”
폭죽 속에서 보라색 빛이 오르며 날카로운 인상을 한 여자가 공중에 날아올라 소명을 막아섰다.
“너였구나. 사람들을 죽이고 그 정기를 빨아먹은 것이···”
“오호! 내가 숨어든 곳을 찾아낼 정도라니··· 젊고 탱탱한 땡중이 제 발로 걸어오셨네.”
흰 천가락이 사방에 날리며 붉은색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 요괴의 모습이 이렇게 화려한 얼굴을 한 여자라는 것은 책에서나 읽어보았을 뿐 소명도 직접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접하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인간과 분명히 다른 길을 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계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죄. 그 죄를 묻겠다. 암만라 카세 시베홈···”
소명이 다시 한번 손에 묶인 염주를 움켜쥐고 합장한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봐주라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그녀를 향해 일갈을 내뿜었다.
“갈(喝)!”
“아악!”
마치 번개가 내려치듯 빛줄기가 그녀의 옆을 스치듯이 검으로 배인 듯 그녀의 얼굴에 긴 상흔을 냈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치어들어 그녀가 천천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훗. 지난번 죽였던 놈과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너도 고야산에서 온 놈일 테구나. 그 정도로는 작은 다람쥐 한마디로 죽이지 못한단다. 꼬마 중아.”
놀랍게도 그녀의 얼굴의 긴 상흔이 다시 이어 붙으며 아무렇지 않게 깨끗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가 천천히 소명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탕-
총성이 그녀의 몸을 스치듯 울렸다. 아래쪽에서 쿠와노가 권총을 들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제길! 뭐가 보여야지. 이봐 스님. 내가 제대로 쏘고 있는 거야?”
소명에게 달려들던 그녀는 쿠와노의 모습을 보고 방향을 틀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앗! 쿠와노 씨! 위험해요!”
그녀의 긴 손톱이 점점 길어지며 쿠와노의 총에 거의 맞닿을 지경이었다.
꽈쾅-
“아악!”
그녀가 정전기가 튀는 것처럼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 것이 소명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푸른빛을 띤 도깨비가 그녀의 앞을 삐죽거리는 방망이를 들고서 막아섰다.
“이 자를 건드리는 것은 내가 용서 못한다.”
낮에 봤던 호귀였다. 낮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사납고 훨씬 거대한 모습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살기는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뭐야! 왜 요괴가 사람을 돕는 거지?”
여자가 물었다.
“너 같은 피라미에게 그런 것 하나하나 말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그만둬라. 이 자에게 손댄다면 넌 오늘 내 방망이에 죽는다.”
“인간의 노예가 된 요괴인 게냐?”
어흥-
어느새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바뀐 도깨비는 쿠와노의 앞을 막아서며 그녀를 향해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흐흐흑”
“웁!”
그때 다시 뒤에 울리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소명의 귀를 찢을 듯 파고들었다. 갑자기 맑던 하늘에서 다시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 두고 보자. 이 재수 없는 도깨비 녀석! 언제고 저 녀석은 내가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먹어주도록 하지.”
여자의 울음소리에 귀를 막고 쿠와노의 곁으로 소명이 내려오자 호랑이가 다시 거대한 도깨비의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쿠와노의 뒤에 섰다.
“어떻게 된 거야? 아까 내 앞에 뭔가 있었던 게 맞지?”
쿠와노가 총을 넣으며 물었다.
“저기, 어, 저기···”
소명이 쿠와노의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도깨비를 가리켰다. 쿠와노가 뒤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였다.
“또 내 뒤에 호랑이 귀신이 서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거라면 그만두자고. 난 배고프고 춥고 피곤하니까···”
호귀가 손가락을 들어 가만히 조용하라는 표시를 소명에게 보였다.
“이 흐흐 흐흑~!”
다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에 소명은 귀를 막으며 팔괘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다시 저쪽이네요. 저긴 뭐가···”
“또야? 아까 난리 쳤던 시계탑이 있는 쪽이잖아.”
소명이 달려 나가려는 것을 쿠와노가 잡았다.
“그만하자고 오늘은. 도대체 왜 이렇게 뛰어다니는지 말을 해야 알지!”
- 저것은 요괴긴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녀석이 아니다. 남자를 사모하는 여인의 마음이 담긴 울음소리다.
호귀의 갑작스러운 굵은 울림에 소명이 발걸음을 멈췄다. 쿠와노는 자신의 제지를 알아듣고 소명이 멈춘 줄 알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자를 사모하는 여자의 울음소리?”
“그렇다. 넌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너로서는 무리다. 스스키노의 용을 찾아가라. 그럼 알게 될 게다. 너라면···”
그렇게 알지 못할 말을 남기고 호귀는 이내 공중의 눈보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소명의 홋카이도에서의 첫날은 대소란으로 속으로 그렇게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소명의 뇌리에는 호귀의 말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울리는 듯했다.
‘스스키노의 용(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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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전서구(傳書鳩)
통신에 이용하기 위해 훈련된 비둘기를 말한다.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한 것이다.
-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