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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14. 2024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치킨을 좋아하는 건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8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69

    

  요즘 세계적 문화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K-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국의 식문화에 익숙해진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치맥문화’란, 한국인들의 페스티벌 음식을 대표하는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 음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치킨과 맥주를 먹는 것이 음식의 궁합을 뛰어넘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먹는 서민들만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야구장에서 야구경기를 볼 때 그렇고, 집에서 축구 경기를 볼 때 당연히(?) 시켜서 먹어야 하는 음식의 공식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닭소비량이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1

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년에 19.9kg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인 27.5kg의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이 이렇게 주목받을만한 사실인가 의아하신가요? 제목을 다시 한번 주목해 주세요. 한국인의 닭사랑이 아닌 ‘치킨사랑’이라는 사실에 눈치채셨나요?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을 사실적 통계로 살펴보자면, 코로나 사태 직전이던 2019년에 발표된 KB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치킨 매장은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수(3만 5429개)보다 약 두 배가 더 많은 약 8만 7000개였다고 합니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만 하더라도 4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전체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 치킨집은 21.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외식 소비행태 조사’에서도 치킨은 2015~2020년 6년 연속 배달 음식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수성해 왔습니다. 이 정도 되니 한국인을 ‘치킨의 민족’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치킨이 한국인이 개발해 낸 한국만의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치킨사랑이 이렇게까지 일반화된 것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일까요?


  한국에, 치킨의 ‘시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닭 요리는 1960년에 처음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인들이 주로 먹던 닭 요리는 백숙 등 국물 있는 요리가 전부였습니다. 1960년 서울 명동의 ‘영양센터’가 국내 처음으로 ‘전기구이 통닭’을 팔기 시작하면서 국물에 빠진 닭요리가 아닌, 기름을 둘러 구운 닭 요리의 계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의 통닭은 소금과 후추로 밑간 한 닭을 통째로 구워 내놓는 형태였습니다. 지금 트럭이나 시장에서 파는 구운 통닭의 원조(元祖)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기름에 튀긴 치킨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내놓은 건 ‘림스치킨’이었습니다. 창업자인 유석호 대표는 1975년 미국 KFC에 직접 가서 치킨을 튀기는 기술을 배워왔다고 합니다. 림스치킨은 1977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식품관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닭을 통째로 가 아니라 KFC스타일처럼 조각을 내어 먹기 좋은 사이즈로 만들어 팔았고, 굽지 않고 기름에 튀겨냈다는 점에서 기존 통닭과 확실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비공식적인 기록을 찾아보면, 이른바 프라이드치킨은, 1974년 영국의 요리사 한나 글라세(Hannah Glasse)가 처음으로 그 레시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처음 발표된 프라이드치킨의 겉모양이나 맛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프라이드치킨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KFC가 1952년에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하였고, 커널 샌더스가 영업비밀로 삼았던 압력기를 통한 닭 튀겨내기의 비법은 한국에 새로운 프라이드치킨의 장을 여는데 도움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식용 닭(육계)’가 대량생산을 시작하게 되면서, 식용유 업체 동방유량에서 ‘해표 식용유’를 생산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치킨 대중화의 발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979년 롯데리아에서 조각 치킨을 팔면서 ‘통닭’이 아닌 ‘조각 치킨’이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편화에 일조하게 되죠.  1980년대 초에는 동네에 크고 작은 프라이드치킨집들이 생겨났고, 1984년엔 당시 세계 최대 치킨 브랜드였던 KFC가 드디어 종로에 입점하게 됩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프라이드치킨은 이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만의 치킨 메뉴를 개발해 내기에 이릅니다. 이른바 1980년대 중·후반을 강타했던 ‘양념치킨’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죠. 1985년 대구 계성통닭(現 멕시칸치킨)을 차린 윤종계 씨가 양념치킨을 처음 개발하게 된 것이 그 시초였는데요. 이후 대전의 페리카나를 비롯해, 처갓집양념치킨, 멕시카나, 장모님 치킨 등 양념치킨을 대표 메뉴로 하는 브랜드가 줄지어 등장하며 한국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양념옷을 입은 프라이드치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치킨메뉴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유구한(?) 역사를 거쳐 우리나라가 ‘치킨 공화국’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도 외환 위기를 겪게 되면서였습니다. 당시 BBQ는 외환 위기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을 겨냥해 가맹점 모집 광고를 내게 됩니다. 명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잘리면서 퇴직금이라는 목돈을 손에 쥐게 된 아저씨들이 상대적으로 창업이 쉬운 치킨 업계로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BBQ는 가맹점을 무서운 속도로 늘려가며 2000년대 치킨 프랜차이즈 국내 1위를 유지하며 치고 올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수요가 많아지게 되니 자연스럽게 치킨이 우리나라 외식 메뉴, 좀 더 정확하게는 배달메뉴 1순위에 등극하게 됩니다. 나중에 다루게 될 한국이 배달의 민족으로 불리게 된 이유에도 치킨 배달은 한몫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치킨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축구나 야구경기에는 반드시 치맥을 먹어야 하는 공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2002년 한 해에만 개업한 치킨 가맹점 수가 무려 1만 3707개였다는 통계만으로도 그러한 사실은 입증됩니다. 길거리 응원을 할 때, 집에서 다 같이 모여 경기를 볼 때 치킨을 먹는 건 그때부터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린 거죠. 치킨 업체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져 그즈음을 ‘치킨 춘추전국시대’라 공식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폐업한 가게들도 많았지만, 치킨은 배달문화에 힘입어 오히려 매출을 늘리는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심지어 고물가에 치킨값이 올라가고 배달비까지 압박이 가해져도 한국인들의 치킨사랑은 식지 않고 계속됩니다.


  본래의 프라이드치킨이 가진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해 양념치킨이 나오고, 한국만의 ‘치킨무’가 나오면서 한국인들에게 치킨은,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한 음식궁합으로 탄산음료를 넘어 맥주회사의 마케팅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렇게 치맥은 이젠 한국만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퇴근 후 사 오셔서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먹던 통닭은 이와 같은 역사를 거쳐 한국인들에게 치킨을 ‘치느님’이라 부르게 되고, ‘치렐루야(치킨과 할렐루야의 합성어로, 치킨을 찬양한다는 의미)’ 등으로 부르며 그 영향력을 짐작케 합니다. 한국의 치킨 전문점 시장 규모가 8조 원가량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닭소비량과는 별도로 한국인들의 치킨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먹는 음식이 아닌, 가족이 둘러앉아 손으로 직접 뜯어먹으며 나눠먹는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함께 먹는 식문화와 어울리며 한국인만의 치킨사랑을 완성시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가족과 함께 또 치킨 한 마리 할 생각에 군침부터 흘리고 계신 건 아닌가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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