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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15. 2024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는 건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9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70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서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 중의 하나는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동남아의 여행지를 가보더라도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라고는 없는 현지인들이 할 줄 아는 한국어라고 물어보면, ‘안녕하세요’와 ‘빨리빨리’가 나올 정도이기도 하지요.

  도대체 한국인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길래 그들이 한국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언어로 ‘빨리빨리’를 꼽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실제로 한국인들은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빨리빨리’를 선호하게 되었을까요?


  인터넷상에서 우스갯소리로 한국인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전자레인지의 시간이 몇 초 남아 있을 때 그것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취소버튼을 누르거나 바로 몇 초가 남았음에도 문을 열어버린다면 그것은 100% 한국인이다.’라는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공공장소에서 여간해서는 누르지 않는다는 닫힘 버튼을 끊임없이 누르는 행동으로도 설명되곤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퀵서비스 속도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총알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전날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 출근 전에 아침상에 올릴 재료들이 배송된다던지 그야말로 오토바이 총알배송으로 바로 사람이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서류나 물건을 배송해 주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고, 한가롭게 한강에서 음식을 배달시키더라도 음식이 식기 전에 배송할 정도로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는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의 지하철 환승역에서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항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는 이동 벨트 위에서 여전히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보면서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의 사람들이 발걸음이 빠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의 역사적 배경과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피상적인 이해일뿐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문화전공 학자인 Geert Hofstedt 교수는 전 세계의 문화를 비교문화적 시각에서 분석하기 위한 비교 틀을 제시한 바 있는데요. 이 연구에서 Hofstedt 교수는 세계 문화를 비교문화적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제시한 비교문화 지표 중에 장기적 안목 성향(long-term orientation)과 단기적 안목 성향(short-term orientation) 지표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이 이 지표에 있어서는 장기적 안목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추론은 언뜻 보기에는 빨리빨리 문화와 상충되는 모순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겠습니다. 일을 빨리 해결하려는 욕구의 바탕에는 단기적인 안목으로 일을 보는 성향이 연결되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 지표에서 관건이 되는 기준은, 이러한 성향이 바로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 먼 미래를 보면서 얼마나 고생과 노력으로 인내할 줄 아는가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Hofstedt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 다시 말해 ‘Avoiding Uncertainty(불확정적인 것을 피하려는)’경향이 매우 강한 민족성과 연결되면서 현재의 ‘빨리빨리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합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 덕분에 일단 눈앞에 닥친 일을 빨리빨리 신속히 처리하려는 본능이 작동한다는 것인데요. 이와 동시에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참는 힘 또한 대단한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오래지 않은, 우리의 부모 세대가 가난하고 척박하던 시절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희생해 온 그 인내와 인고의 정신이 바로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원래부터 이렇게 ‘빨리빨리 문화’의 DNA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실제로 ‘빨리빨리 문화’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영국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였던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하면서 느꼈던 점을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기술한 바 있는데요. 그 책에 한국인들을 묘사하면서 ‘게으르고 느리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조선이 개혁이 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두 계급, 바로,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5분의 4는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아주 적확하게 한국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계급제는 없어졌지만 훨씬 더 옹고한 계층이 나눠진 현대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분석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전쟁과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추진된 중앙집권식 경제개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요. 서구의 역사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국가들은 산업화에 비례해서 삶의 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경제가 빨리 성장하고 발전하다 보니 ‘빨리빨리 문화’는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화처럼 우리 삶에 녹아들게 되었다는 것이 그 설명입니다. 


  물론, 모든 산업화를 거친 민족들이 모두 같은 ‘빨리빨리 문화’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은 복합적인 다른 원인들을 거기에 더해 이것을 한국만의 특징으로 안착시키게 되는데요. 

  예컨대, ‘빨리빨리 문화’를 완성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민한 두뇌회전이 그 첫 번째 조건, 되시겠습니다.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데 그저 ‘빨리빨리’를 외친다고 그것이 민족성으로 대별되는 특징으로 자리 잡을 수는 없지요. 기본적으로 일을 파악하고 그것을 습득할 수 있는 빠른 두뇌회전이 가능해야 ‘빨리빨리 문화’는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환경적으로 절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러한 것입니다. 예컨대, 농경사회로 대표되는 사회에서도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에는, 때를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아 시기를 놓치게 되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농경사회가 안착되어 현대화되었다고 하던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는 ‘보릿고개’라는 절박한 시기가 여전히 존재했을 정도로 농경이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런 절박한 상황을 매년 맞이하며 끼니를 걱정하게 되는 상황들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모든 일들을 빠르게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의 절박함에 늘 쫓겨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4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의 변화가 빠르고 단일민족 구성으로 외적의 침략이 잦았다는 환경과 역사적 요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초고속 인터넷이 어디에서도 빵빵 터지게 만들며 우리 경제와 문화 등을 발전시킨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속도만을 강조한 나머지 ‘대충대충’해서 결과적으로 ‘졸속’이 되어버리는 경우입니다. ‘빨리빨리’ 하다 보면 아무래도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기보다는 ‘대강대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것은 한국만의 또 다른 독특한 기현상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대강철저’입니다. 대강대강하지만 나중에 문제는 되지 않게 만들라는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요구인 것입니다.(이 부분은 또 이야기가 길어지지 뒤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지요.)

  한국은 서구에 대한 개방이 늦었지만, 서양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그만큼, 전통문화를 없애는 속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랐지요. 197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천 년 이상 내려온 초가지붕을 없애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싹 바꾸어버리는 속도전을 벌였더랬습니다. 한국에서 초가집은 이제 민속촌에야 가야만 볼 수 있으니까요.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급되는 교육정책은 또 어떤가요?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해서 문제가 있더라도 그 부작용 때문에 조금씩 보완해 가야 한다고 입만 열면 떠들면서도, 집권하는 정부마다 교육정책을 매번 바꿔대서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그것에 따라가기조차 버거워할 정도입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조그만 도로공사부터 국가의 중대한 정책 결정까지 너무나도 졸속으로 조급하게 추진된 사례는 주변에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것이 사실이지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업무가 대처가 가능하고 외국에 나가 있어도 통화가 가능하다 보니 ‘빨리빨리’의 조급증도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메일뿐만 아니라 문자 또는 SNS에서 확인을 하지 않거나 확인을 하고도 대답을 늦게 하면 한국인들은 ‘바로 확인하고 즉시 답을 줘야지, 왜 빨리빨리 답을 하지 않느냐,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핀잔을 쏟아내기 일쑤지요.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국문화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당황을 넘어서 공격성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니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것이 서비스업계통,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내가 요구하는 분야에서 좀 더 강화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이러한 특징들은 한국인의 진면모를 분석하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연구자료들이랍니다. 이 이야기는 차차 또 풀어가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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