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0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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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양한, 한국인으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했거나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신기한 것을 넘어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구조사를 하는 것, 그중에서도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의 나이를 묻거나 태어난 해를 묻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나이를 묻거나 태어난 해를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오래된 책들에서 가르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문화에서 다소 생경하고 부자연스럽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처음 만난 이들이 몇 살인지 그가 몇 년에 태어났는지를 그렇게 ‘당당하게’ 묻는 걸까요?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유교문화의 잔재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본래의 원시유학이 가진 본령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유학은 유교의 형태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통치이념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아주 자질구레한 규율규칙이 마치 공자가 강조했던 사소하지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예의범절인 양 둔갑하면서 위에 있는 자가 아래에 있는 자들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둔갑하게 되죠.
예컨대, 양반과 상놈을 나누고 상놈이 윗사람인 양반에게 대해야 하는 태도나 말투를 규정한다던지 하는 것이 이상한 형태로 확대되면서, 상놈들 사이에도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면서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자들은, 양반들이 자신들에게 강조했던 유교껍데기를 뒤집어 씌워 어른에게 해야 하는 태도와 언행을 강조하게 된 것이죠.
본래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반영했다면, 그것이 부모님에 대해서, 나라의 군주에 대해서, 마을의 연장자에 대해서 했던 것이라면 이제는 처음 보는 자라도 서열을 구분하기 가장 쉬운 방식인 나이를 통해 더 나이가 많은 이에게 ‘연장자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논리로 고착화시키게 되었던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연장자에 대한 공경의 문화에 베이스를 둔 유교문화의 흐름은 시대가 바뀌어 달나라에 직접 놀러 가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처음 만난 상대와의 통성명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연장자로서의 공경을 받을 것인가 해야 할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서열을 정하는 것처럼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본능적 확인 과정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죠.
이것은 이후 다루게 될 한국인의 호칭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반말이나 존댓말의 구분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은 영어나 중국어 등과 달리 한국어나 일본어는 존칭 하는 상대에 대한 경어문화가 신분제가 공고하던 시절부터 이미 굉장히 확고해져 왔고 그것이 현대에까지 그렇게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었던 관계로 대화를 지속해 나가는 데 있어 서열정리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냥 모두 높임말을 쓰고 서로 존경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이 젊은 세대를 벗어나버리는 순간, 그들은 그들이 혐오에 마지않던 꼰대로 슬슬 변해갑니다.
이것은 군대의 계급문화나 회사조직의 상하위 관계와는 또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본능적인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문제는 더 강제적인 조직에 속하게 되는 순간 무너져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율성이 강조되는 대학에서는 재수까지는 친구처럼 야자를 하더라도 삼수부터는 엄격하게 언니 오빠로 부른다던가 하는 것으로 정리되던 문화가, 좀 더 강제성을 띄는 군대에 가게 되면,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군대 먼저 와서 나보다 계급이 위라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것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군대를 가지 않는 여자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 회사의 동기로 입사하게 되면, 남자가 나이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기라는 이유로 친구처럼 지낸다던가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고속승진을 한 상사에게는 깍듯하게 사회선배로서의 대접을 해야 한다던가 하는 사회조직 우선 규율이 나이서열을 뒤집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아주 신기한 ‘빠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70년생입니다.”
“아, 죄송한데, 저는 빠른 70입니다.”
“아, 그러면 친구분들이 모두 69년생이겠군요.”
정상적으로는(무엇이 정상이라는 것인지 개념규정에 따라 다르겠으나) 8살에 입학하는 학교를 7살에 혹은 아주 드물게는 6살에 입학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 이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3월이 학기 시작인 한국의 학제에서 1월이나 2월생들은 한 해 빨리 학교를 입학시키는 뭔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교 입학 문화이다. 같은 해에 태어났으면 ‘동갑’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학교를 먼저 들어가 한 살 많은 이들과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학교라는 조직에서 ‘선배’인 형, 누나가 된 것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나이로 보면 동갑이지만 태어나서 처음 속하는 학교라는 조직에서 형과 누나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먼저 공부한 동갑에게 ‘야!, 자!’를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렇게 대한민국의 족보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한국인이 상대의 나이를 먼저 확인하는 가장 큰 본능적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처음 만난 상대에게 만남 이후 상대방에 대한 호칭에서부터 언어사용과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정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스텐스를 가지고 대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나이를 묻는 행위를 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일 때이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입사동기나 바로 위의 사수가 몇 살인지는 묻지만, 부장이나 이사, 사장의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인들이 나이를 왜 묻는지에 대한 이유는 보다 명확해집니다. 어차피 자신이 깍듯이 올려야 하는 서열이 정리된 이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서열을 정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스텐스를 확인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비교문화정서와도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논하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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