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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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 때부터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수학이나 과학올림피아드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차지하는 것도 그러하고, 전 세계의 같은 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정도를 비교해 보더라도 어린 학생들의 교육정도가 한국인들의 수준이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은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자타가 공인하는 팩트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전 세계를 제패하는 최강대국의 대열에 들지 못한 걸까요? 한국인들의 유난한 교육열에 대해서는 이미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수학을 잘하고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같은 동양인들 속에서도, 아니 심지어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한국인의 교육열과 그로 인한 교육 수준의 상향평준화에 대해서는 굳이 새삼스럽게 설명하지 안 해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교육 수준의 현실적용이 성인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지요. 왜 한국의 교육열이 대학생을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그 충분한 자양분으로 작용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제이기 때문에 뒤에서 상세히 원인분석을 하기로 하고, 일단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그 교육열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린 한국의 아이들 교육 수준을 높여놓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로 하죠.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를 설명하면서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과 성실근면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설명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 늘 남과 비교하면서 비교우위를 차지해야 하고 늘 순위를 매겨서 상위 순위에 속해 있지 않으면 낙오될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을 스스로 만드는 점에 대해서도 앞선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어린 학생들의 학습은 결코, 그리고 전혀 자기 주도적이지 않습니다. ‘교육열’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그것은 부모의 희망이 그대로 반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강제적이면서도 100% 부모의 의사가 반영된 일방적인 교육방식의 결과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이미 자신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과정을 공부하지 않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의 진도에 맞춰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를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은 그렇게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학부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과목들도 천편일률적입니다. 피아노와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유아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과목처럼 되어 피아노로 음악을 배우고 음악적인 소양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이 모두 배우기 때문에 피아노를 배우고, 태권도 도장에 가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국기원에 가서 돈을 꼬박꼬박 상납해 가면서 띠를 받아 승급하고 대회의 상장과 트로피를 수집하는 묘한 형태의 학습을 ‘필수’로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어려서 피아노를 배웠던 절대다수의 아이들 중에서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하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피아노를 취미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면서 여가를 보내는 성인은 단 1%도 되지 않습니다. 태권도를 배웠다고 하며 단증을 따서 군대에 가서 태권도 수련시간에 따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어드밴티지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몸을 수련하거나 길에서 불량한 학생들을 만났을 때 참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0.1%조차 되지 않습니다.
한때 전국을 들썩이게 하며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보다 훨씬 럭셔리하게 학부모들의 돈을 짜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등극했던 이른바 ‘영유’로 불리던, ‘영어유치원’도 정작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소통하고 영어로 매일같이 노래를 부르고 다녔음에도 다시 초등학교를 들어가 그 학원을 내내 다닌 경우를 포함하더라도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라 인정받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정도로 줄어들고 맙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러한 철저한 학교 외 사교육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해 말을 떼고 걸음마를 떼고 기저귀를 떼면서 그 사교육 시스템의 굴레에 들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아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노량진을 가득 채웠던 시스템이나 취직한다고 토익점수를 따야 한다고 영어학원을 꽉꽉 채웠던 흑역사들을 살펴보면, 어려서 배웠던 그 사교육의 분위기는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어서도 너무도 익숙하게 내가 더 배워야 할, 필요로 하는 것들은 따로 학원에 가서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정작 그 교육의 성과는 쌓이지 않지만 그렇게 쳇바퀴를 돌았던 이들이 그렇게 넌더리를 내던 교육방식을 이제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들에게 그 첵바퀴를 똑같이 뺑뺑이 돌리는 것으로 대를 이어 피해자를 양산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강요된 세팅에 첵바퀴를 돌면서 한국인들은 특유의 인내심을 학습하게 됩니다.
특목고, 과학고, 외고를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내신을 위해 내신 대비반을 다니고, 대학에 떨어지면 학교를 가지 않으니 그것을 대신해 줄 재수 학원을 다니고, 대학을 가서 다들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하니 외국어 학원을 다니고, 취업을 위해 영어 공인 점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니 고득점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면접을 잘해야 취업이 쉽다고 하니 인터뷰 방식을 알려주는 학원을 다니고, 편한 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찾고, 의료인이나 법조인이 되기 위해 의전원과 로스쿨의 입학을 위한 학원을 다니고, 들어가서는 해당 과목의 점수를 확실하게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최종 시험의 족집게 강사의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일이 반복됩니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시키는 일에 토를 달지 않고 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받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이것은 참아야만 내가 잘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마늘과 쑥을 먹는 곰의 심정으로 그것들을 묵묵히 시키는 대로 해나갈 뿐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시스템에 학습을 체계적으로(?) 조장을 하고, 이 성적으로 서열을 정해서 나중에 잘살고 못하는 것이 정해진다고 가스라이팅을 받는데 공부를 못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은 부의 기준이 학습 능력의 기준이라고 노골적으로 바뀌었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천표’라고 하며 부모가 배우지 못하고 돈 없는 아이들도 공부만 잘한다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다고 사회 전체가 가스라이팅을 하니, 공부를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국에 문맹률이 최저의 최저를 갱신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웃픈 이야기이지만, 노벨상을 받을만한 창의력이나 자기주도학습 능력은 전혀 고양되지 않지만 이유도 모른 채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소떼처럼 그 대열에서 처지게 되면 인생이 쫑 나버리고 만다고 사회적으로 판결을 받아버리는 구조이니, 대학에 가서도 조금 더 나은 학교로 인생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편입학원은 결코 비어있는 강의실이 없고, 멀쩡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이 의전원과 로스쿨을 위해 다시 공부를 하고, 아예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과 방식이 모두 한국사람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한국사람들만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근거로,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10대의 자살 원인 중에 성적이 상위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어린 10대들의 교육 수준이 높은 것, 영미권의 유명 대학에 입학률이 높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 최강 대국의 대열에 오르지 못하고 창의를 요하는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놓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차분하게 분석해 보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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