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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14. 2024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연고를 따지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77     


  가족회사라는 이름으로 최고경영진들이 형제자매들로 구성된 재벌의 독특한 형태는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한국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특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회사의 경영권을 봉건제의 왕권처럼 계승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중세적 사고방식에 유독 한국인들이 강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최고 경영권을 자기 자식에게 그리고 그 자식에게 이어주는 방식으로 현재의 한국 재벌그룹들은 재벌 3세와 4세들의 경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 재벌 회장이 자신은 결코 자신의 자식에게 회사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뉴스가 될 정도의 나라는 아마도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본의 천황이 자신은 천황제를 포기하고 이제 왕세자나 공주로 이어지는 권력계승을 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으니 말입니다.


  회사는 당연히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여기는 대다수의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의 재벌 계승형태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는 굳이 돈이 많은 한국의 재벌그룹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지요.

  하다못해 가내수공업 공장을 하거나 동네 식당을 하더라도, 아니 의원급 병원을 하더라도 데스크에 원장의 아내가 나와 틀어앉아 환자를 상담하고 회계를 관리하거나 식당 사장의 아내가 계산대에서 주문내역과 결제 사항을 칼같이 체크하는 상황이 그렇게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일본에서 대대로 가업을 잇는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을까요?


  아닙니다. 한국의 가족끼리 해 먹자 문화는 일본의 가업을 계승하는 문화와는 그 결이 아주 크게 다릅니다. 기술이 없어도,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경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이 사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혹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전문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고용주보다 더 갑질을 하는 형태를 가업을 잇는 전통이라고 포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니까요.


  가게나 기업을 창업하거나 오너의 입장이어야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가족밖에 없으니 가족기업이 당연히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통이 더 오래된 유럽이나 일찌감치 합리주의적 전문경영형태로 변모한 미국 등의 선진국이 보여주는 형태를 보더라도 초창기 가족경영이나 가족들로 경영진을 꾸리고 2세에게 경영교육을 시키고 가업의 형태로 계승하려고 했던 모습에서 지금은 거의 전문 경영인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는 것은 한국뿐이라는 생각은 저만 하는 걸까요?


  그런데, 오너가 아니면서 한국사회에서 그것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혈연에 이은 학연, 지연 등등의 인연을 찾는 것이 그것입니다.

  고향이 어디인지를 따져 같은 고향출신을 더 가까이 두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를 따져서 같은 학교의 동문 후배이면 또 같은 무리에 섞어두고, 심지어 하다 하다 아이를 낳고 같은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한 이들끼리를 다시 인연이라고 묶어 서로 정보공유를 하고 새로운 조직을 결성해 갑니다.


  대학교 동문보다는 고등학교 동문이 더 끈끈합니다. 대학교는 다른 지역에서도 다닐 수 있지만 고등학교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같은 지역에서 같은 문화를 향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고, 고등학교 시절의 10대 혈기 방장했던 시기의 문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같은 선생님과 같은 교정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끈끈한 인연을 확인하고 무리를 형성합니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최근엔 강남 출신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져 조금 약화되긴 했지만, 한때 지방에서 공부 좀 했다는 이들이 상경하던 그즈음에는 <재경***동문회>라는 이름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동문들끼리 뭉치며 저 위로 10년 이상의 선배들까지 사회에 진출하여 포진한 스크럼을 타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인연을 따지며 자신의 라인을 구축하는 것에 열을 올리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에 대해 역사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조선시대 당쟁과 사화를 연구한 논문들을 분석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서로 간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고 자신들의 무리를 갖게 되는 배경에 그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지역이 가장 기본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살고 공부했던 지역에 기반한 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를 가는 작금의 시대에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확고한 정치색이 달라져 있음을 보면, 그것은 단순히 시대적인 이유만으로 치부하기엔 인간에게 있어 같은 지역에서 살며 그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동물이고,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심리적으로도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무리를 조직하고 자신과 뜻, 혹은 이익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공통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어떤 카테고리든 인연을 중시하고 그것을 인연이라 부르며 공동운명체(?) 임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민족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역설적인 설명이겠지만, OECD가입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자신이 조직에서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라는 설문조사에서 정작 한국인들은 대상국중에서도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 질문이 가장 높은 수치로 나온 국가로 밝혀져 화제가 된 사실이 있습니다. 행여 오해를 할 분들이 있을까 봐 당시 설문조사의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평균적으로 해당 설문에 임했던 다른 OECD회원국의 국민들은 ‘내게 의지할만한 사람이 있다.’라고 답한 평균이 88%로 달했는데, 한국인들의 답변은 72%만이 그렇게 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을 그렇게 따지는 사회인 것 같으면서도 정작 한국인 본인은 자신이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나 조직을 찾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자꾸 처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그것들에 매달리게 된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더 강하게 집착하는 다양한 사회 병리적인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관됩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객관적으로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보다 영향력 있는 사람과 지연이나 학연관계 등으로 엮여 있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그들이 이른바 ‘끈’을 찾고 ‘끈’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끈의 효용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믿지 않는 아이러니가 이 사회에 배태되어 있는 것이죠.

  같은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 한둘일 리가 없고,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한 두 사람일리 없으며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한둘일 리가 없지만, 그 많은 사람을 모두 내 라인으로 묶을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회관계를 간단명료하게 하고 내가 밀어줄 혹은 내가 충성할 대상을 최소화하여 거기에 에너지를 집약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무언가를 결정했을 때 그것을 사회적으로 변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두는 것, 그것이 어찌 보면 한국의 인연 만들기가 보여준 민낯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분석결론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뒤에 분석하게 될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情)’문화와는 약간 색깔을 달리하니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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