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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13. 2024

한국인은 왜 설날에 떡국을 먹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7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67


  짧지도, 그렇지도 길지도 않는 느낌의 대체휴일까지 쓴 설연휴가 끝이 났네요. 연휴 후유증은 괜찮으신가요?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그렇다고 지금의 한국인들조차 정확한 근거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문화중에서 음식문화는 참 여러가지 복합적인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설날에 먹는 떡국은 아주 대표적인 설음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음력설을 왜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세대들이 더 많아진 요즘 시대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중국에서 마치 설이 중국의 고유한 문화인 것처럼 설명하며 자신들이 ‘춘제’(春節)'라고 부르는 음력설을 영어로 당당하게 'Chinese New Year'라고 고유명사화 하려다가 한국에게 딴지가 걸려 ‘음력설(Lunar New Year)'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는 해프닝이 연전에 UN에서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설과 추석이 오히려 중국의 고유문화를 한국이 따라 하거나 가져온 것처럼 변질되려다가 UN에서 그 명칭을 바로 잡고 '음력설'이 중국의 고유문화가 아닌, 동양의 전통문화라는 것을 이해하고 제대로 명명하도록 한 것이었지요.


  음력은 농경생활을 하던 아주 오랜 시기의 선조들의 생활달력으로 그 절기들은 대개 농사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설이 24 절기 중에서 첫 절기에 해당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력의 1월 1일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첫날이 되는 것이니 그것을 경축하고, 역시나 돌아가신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지내며 그 즐거움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차례에 올리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하는 아주 뜻깊은 자리인 셈이지요.


  설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설명하기 위한 챕터가 아니니, 설날에 왜 한국인들이 떡국을 먹는 것인지 본론에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을 살필 수 없어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조선 후기에 편찬된 『동국세시기』나『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문헌을 살펴보면, 이미 그 당시에도 차례와 세찬(새해에 세배하러 온 분들을 대접하는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설날의 음식으로 떡국을 먹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남선(崔南善)도 『조선상식(朝鮮常識)』이라는 책에서, 떡국을 먹는 식문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매우 오래된 풍속으로 상고시대의 신년축제 시에 먹던 음복적(飮福的) 성격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문헌의 설명을 풀이해 보자면, 설날은 음력이 시작되는 첫날, 즉,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종교적 사상의 배경에서 출발한 의식을 음식에 반영하게 되면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떡국을 한자로는 ‘첨세병(添歲餠)’ 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는 ‘나이를 더해주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떡국을 먹으면 1살 더 먹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실제로는 가래떡을 가지런히 썰어서 만든 것으로 그 기본은 가래떡에서 출발합니다. 가래떡이 갖는 의미는 긴 가래떡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래떡을 그대로 끓이지 않고 가지런히 잘랐을까요? 그것은 새해에 재물운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긴 가래떡을 동그란 동전크기 모양으로 잘라먹었다고 전합니다. 즉, 잘라서 늘어난 동전 같은 떡국떡의 수만큼이나 돈이 늘어나고 불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양을 동전처럼 잘라서 먹었다는 것이죠. 물론 가래떡을 그대로 끓여 먹자니 먹기도 불편하다는 점에서 한입에 넣기 좋고 씹기 좋은 형태로 만든 합리성은 당연히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선조들의 과학이고요.

  떡국의 베이스가 되는 탕은 하얗고 맑은 탕이 기본이지요.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백탕' 혹은 '병탕'이라 적고 있는데,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 했다고 합니다.  떡국을 끓일 때는 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 또는 쇠고기를 썰어서 끓인 맑은장국이 쓰인다. 쇠고기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는 꿩고기를 다져서 끓인 맑은장국이 많이 쓰였다도 합니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하얀 떡과 맑은 국물을 먹으면서 그 하얗고 뽀얀 떡을 보며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시작을 생각하며, 지난해 있던 안 좋은 일을 모두 잊고 이제 새해의 첫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위에 설명한 것은 서울기준의 소고기 떡국인데요. 그리 크지도 않은 한국땅이지만, 각 지역마다 떡국이 조금씩 지역특색을 담아 저마다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전국적으로 다른 떡국들의 면모를 살펴보자면, 충청도의 떡국은, 멥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해 만든 떡으로 끓인 떡국으로 미역과 들깨즙을 넣기도 합니다. 강원도의 떡국은 떡국에 보리나 잡곡을 섞거나 만두를 넣어 끓인 떡국으로 북방의 만두 문화가 들어가면서 주머니처럼 생긴 만두가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전라도에서는 '닭장 떡국'이라고 하여 '간장에 조린 닭고기로 육수를 낸 떡국'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전라도 음식의 특유성을 담아 시원하고 감칠맛 좋은 국물 맛이 매력이랍니다. 경상도에서는 '꾸미 떡국'이라고 하여, 두부와 소고기를 볶은 꾸미를 넣은 떡국이 있는데, 멸치 육수에 떡국을 넣어 끓인 뒤 꾸미를 고명으로 사용합니다. 저 남쪽의 제주도 역시 자기 지역만의 떡국으로 '몸 떡국'을 먹었습니다. 겨울철 별미 해초인 몸으로 만든 떡국인데요, 돼지등뼈를 우린 육수에 몸, 떡, 메밀가루를 넣어 만든다고 합니다.

  한국만 새해 음식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세계의 새해 첫날 먹는 음식들을 살펴보면,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듯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새해 음식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미국에서도 새해 음식을 먹습니다.

  바로 '호핑존(Hopping John)'이 그것인데요. 호핑존은 쌀과 검은콩, 채소, 양파, 베이컨 등을 볶아서 만든 음식입니다. 남북전쟁으로 남부지역 주민들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콩과 순무 이파리를 먹으면서 버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호핑존에 들어간 검은콩은 동전을 의미하고, 푸른 채소는 지폐를 상징해서 호핑존은 재물운과 금전운을 비는 의미로 한 해를 풍요롭게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하니 떡국의 동전과 흡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중국에서 설날에 먹는 음식을 '年夜饭'이라는 고유한 명칭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땅이 워낙 넓고 문화가 다양하다 보니 설음식에도 북방 쪽과 남방 쪽이 약간의 문화차이를 보입니다. 남방 쪽 사람들은 문화적 특성상 요리에 담긴 의미를 상당히 중요시하는데, 떡과 탕원은 설날에 반드시 먹어야 되는 음식입니다. 떡(녠까오; 年糕)은 발음이 '年年高(해마다 높아진다)'라는 뜻이 있고, 탕원(탕유엔; 汤圆)은 화목을 뜻하는 '团圆'과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설 밥상엔 꼭 이런 음식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면, 북방 쪽 사람들은 음식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용성에 더 비중을 두는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답니다. 북방에서는 교자(饺子)를 설날에 많이 먹는데, 교자를 만들 때 속에 동전 등을 넣어, '당첨' 된 사람이 행운을 얻는다고 여기고 풍습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국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로 알려진 민스파이도 영국을 대표하는 새해명절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민스파이는 건과일과 향신로, 수이트로 만든 달콤한 민스미트를 반죽에 넣어서 구운 둥근 형태의 파이를 말하는데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국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디저트라고 알려져 있죠.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다음 해 1월 6일인 공현절까지 12일 동안 민스파이를 매일 한 개씩 먹으면 새해에 행운이 온다고 믿는 풍습이 있다고 전한답니다.


  음력설이든 양력설이든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을 모든 인류는 시작의 의미를 담아 새로운 시작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랐고,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희망을 소망으로 담아 음식에 반영했습니다. 한국인들 역시 떡국이라는 형태로 그 소망을 담았고, 그 문화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대로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모든 전통적인 의미를 기억하고 따르고 살릴 수는 없을지라도, 의미 없는 유튜브를 보며 키득거릴 시간에 우리가 먹고 행하는 전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한 번쯤 찾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합니다.


  한국인들이 전통을 공부하고 되살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도 설날 떡국을 먹고, 웃어른들을 찾아 새배를 드리고 한복을 입는 것은 단순히 코스프레를 하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설날 떡국을 먹으면서 소망하고 다짐한 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답니다.

  이제 벌써 설날이 지난 지 4일이고, 양력으로 12개월 중에서 2월의 절반이 다 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신의 소망과 바람이 실천으로 이어져 성과를 이루는 날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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