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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Feb 16. 2024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다.

《나의 붉은 고래》(大鱼海棠, Big Fish & Begonia)를 보고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다.(君子報讐 十年不晩)


사마천이 《사기》, <범저·채택 열전(范雎蔡澤列傳)>에서 범저(范雎)를 평가하며 사용한 말로, 오래된 중국의 속담처럼 사용되는 문구이다.


한국의 설연휴 기분을 내겠다고 연휴 기간에 부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찾아보았더랬다.


우연히 2017년에 잔뜩 채워 만들어둔 외장하드 하나를 가지고 왔던 것이 생각나서 열어보다가 언젠가 보긴 봐야겠는데,라며 놔두었던 《나의 붉은 고래》(大鱼海棠, Big Fish & Begonia)라는 중국 애니메이션을 본 것은 어찌 보면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실제로 작품의 감동이나 퀄리티면에서는 그 전날 보았던, 작년에 개봉했던 일본의 애니메이션《금의 나라 물의 나라》(金の国 水の国)이 훨씬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었음에도 일식집에 가서 먹는 일식과 중식당에 가서 먹는 중식을 단순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느낌처럼 묘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냥 작품을 단순 관람자가 아닌 평론가 내지는 작가의 입장에서 TMI를 머릿속에 넣으며 내내 분석하는 식으로 해체와 재해석을 거듭하며 내 방식대로 재구성하여 보는 습성때문이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金の国 水の国) 일본의 만화가 이와모토 나오의 로맨스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30여 년 전 쇼각칸과의 인연이 다시금 이번에 이 어설픈 그림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는 애니메이션과 웹툰의 그림이 데생정정도를 보았을 때 일정 수준의 그림체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아예 보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원나블 중에서도 가장 오래 끌었던 <원피스>는 보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의 애니메이션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나만의 그림체 기준으로 볼 때, 그림의 수준이 완성도가 한참은 떨어지는 어설픈 그림이라는 점이었다.

특히나《나의 붉은 고래》(大鱼海棠, Big Fish & Begonia)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16년에 개봉한 이미 8년여의 시간이 지나버린, 게다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짝퉁 버전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애니메이션 계에서 중국의 수준을 비아냥거릴 때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한 사실들을 알면서도 부러 보았는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그 힌트는 위의 소제목에 있다.

먼저 스포를 하자면, 《나의 붉은 고래》(大鱼海棠, Big Fish & Begonia)는 기존의 필모그래피라고는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양선과 장춘이라는 두 젊은이가 제작부터 감독까지 맡은 처녀작이다.

그리고 더 큰 스포는 그 작품이 중국 국내에서만 이미 개봉당시 기준으로 1000억 원이 조금 안 되는 잿팟을 터트렸다는 점이다.


그 재미있는 행간의 TMI는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애니의 초보 제작자와 감독과는 상관없이 만화의 전체 제작은 껍데기는 중국 스튜디오로 포장하고 있으나, 그 제작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전체적인 수준을 올려준 곳은, 바로 당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스튜디오 미르라는 곳에서 맡았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중국스러운 수준의 그림에 힘을 잔뜩 넣었던 웅장한 지브리스러운 음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음악을 맡았던 요시다 키요시가 맡았다.


그림이 왜 지브리 짝퉁스러웠는지에 대해서는, 제작당시의 중국 애니메이션 계의 작화 파트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지브리 출신이거나 그 출신들의 제자 내지는 동료들이었다는 점으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스러움이 묻어나면서 퀄리티를 하향조정시키는 부분은 너무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스토리에서 중국적인 지극히 중국적인 것을 표방한답시고,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서 나오는 '곤'을 캐릭터로 차용하면서 마치 대단한 중국 전통적인 서사를 가지고 온 것처럼 마케팅을 해대고 인터뷰했지만 정작 고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말장난에 그지없을 정도로 철학적인 사유는 얄팍하기 그지없다.


캐릭터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와, 이미 유바바를 떠올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기시감이 가득한 쥐할멈이라던가 영혼관리자의 모습이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며 사라지는 '추'의 모습은 하쿠의 모습을 그대로 베껴냈다고 느낄 정도로, 그야말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중국식 짝퉁으로 만들면 어떤가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우려야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도대체 군자의 복수가 10년이나 걸렸던 것과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답답해서 묻고 싶은가?

  

맞다.

이 작품은 제작기간만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실제로 12년이나 걸릴 정도의 한 땀 한 땀 제작에만 오롯이 12년이 들었다는 말은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경험이라고는 없는 두 촌스러운 젊은이들이 이것을 작품화하겠다고, 그들이 애니에 빠지게 된 원동력이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음악감독을 자신들의 작품에 직접 음악감독을 해달라고 데려오기까지 그리고 그 허접한 기획에 옷을 입히고 세계적인 수준의 애니를 만들어내며 한국의 작품도 아닌 세계 작품만을 만들던 한국의 애니 스튜디오를 설득하여 데리고 오는데 무려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공부하던 중국의 젊은이 두 명이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며 자신들도 한 번쯤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갈망과 소망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애니메이션 작품화하면서 뚝심 있게 밀고 나간 12년이 바로 이 작품을 중국에서 1000억에 가까운 잭팟을 터트리게 만들어준 것이다.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눈높이가 이미 저 꼭대기에 있다고 해도 당시 중국의 눈높이에는 충분히 자국의 수준으로 이 정도 베끼기로도 만족도를 줄 수 있다고 만든 애니메이션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정작 허접한 작품의 철학이나 어설픈 작화에 그저 일본의 어느 한 작품에 쓰려던 음악을 적당히 다시 중국의 어마어마한 위안화를 받으며 넘겼을 것 같은 음악은 그렇게 이 작품의 포장을 그럴싸하게 해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국내의 성공만으로도 충분히 '잭팟'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이 애니를 보면서 내내 심각한 표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작품에 오롯이 집중해서가 아니라 그 프레임들의 행간에 녹아들어 간 그들의 억지스러울 정도의 고집과 뚝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만든 이 작품이 엎어져버렸다면 그들의 인생은 그대로 바닥으로 침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인생 최초의 최대 도박을 이 작품에 모두 올인했던 것이다.


이 어설픈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지브리에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2004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를 뒤흔들고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그것을 보고서도 두 젊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돌입하여 12년이라는 세월을 덮어 2016년에 기어코 이 작품을 극장에 올린다.



인생에 그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라고는 없다.


해보지 않고, 세상에 펼쳐 보이지 않고서는 그 답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70 평생을 촌부로 지내던 강태공을 70이 되어서야 일자로 펴진 낚싯대를 접고 출사표를 낸다. 그를 구박하고 무시하며 집을 뛰쳐나갔던 그의 아내는 결국 그의 행차길을 막아서고 다시 자신을 받아달라고 구걸한다.


그녀의 앞에 가차 없이 항아리를 깨뜨렸던 강태공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느 타이밍에 어떤 것으로 잿팟을 터트리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확인하고 돌아와 인생을 사는 자는 없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갑질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당신의 뚝심을 세상은 결코 쉽게 배척하지 못한다.


그것은 강태공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속의 기록이 증명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나?


어차피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번 보면서 영화가 아닌 그 영화를 만든 이들의 떨리고 두근거렸을 그 프레임의 행간을 읽어보라.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힘겨움이 죽고 사는 일보다 더 큰가?


그렇게 힘겹고 이제까지 되는 것 하나도 없는 것 같았을지라도 그것 또한 지나간다.

정작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것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폄하하지 마라.


당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그 모든 실패는 단 한 번의, 앞으로 오래될 잿팟을 위한 발동이었음을.

그 성공의 순간에 한꺼번에 느끼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버티고 버티는 이들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성공하는 이들이 적어 보이는 것이다.

머리로 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코인으로 계속해서 넣는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이고 그것이 대가로 사용되고 있기에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코인을 넣지 못하고 몇 개 남지 않은 코인을 보며 좌절하는 것뿐이다.


젊던 아니면 늙었든 간에

당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일 것이라 단정 짓지 마라.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 대가를 치르지 않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신이 치른 그 많은 대가들에 대한 성과를 거두지도 못한 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이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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