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8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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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식문화에 대해서 이미 몇 가지 살펴보긴 했지만,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를 구성하는데 의식주의 특징만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두꺼운 책이 완성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특성은 의식주에서도 도드라집니다. 그중에서도 음식문화와 관련된 밥상에서 출발하는 분석대상 중에서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숟가락이 그것입니다.
서양문화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같은 동양권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아무 생각 없이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하거나 그곳에서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한국인의 숟가락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중국과 일본과 아울러, 동양권의 젓가락 문화는 공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숟가락 문화만은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이라는 사실에 대해 시원하게 분석자료를 내놓은 연구자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일본 민족학자라고 하는 자들이 한국인의 숟가락 사용에 대해 중국 고대문화를 배우려고 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긴 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고대 주나라 때의 관습을 조선에서 문헌을 통해 배웠고, 그래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해 한반도의 조선인들이 식사하기 시작했다는 견해인데요. 이미 그 훨씬 이전 시대부터 숟가락을 젓가락보다 더 우선시하여 사용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연구라고도 할 것 없는 헛소리를 귀담아들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숟가락 사용에 대한 분석 연구들을 살펴보면, 밥이 주된 주식이던 동양권에서는 거친 탄수화물을 잘 먹기 위해 자연스럽게 국물이 필요했고, 밥과 국물 두 가지를 동시에 먹는 데는 숟가락보다 더 좋은 것이 도구가 없었다는 설명을 합니다. 뒤에 상술하겠지만, 이것은 한국만의 국문화와 탕문화가 발달한 정도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숟가락의 사용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적인 설명을 성립시켜 주는 주요한 단서로 작용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숟가락의 용도가 반드시 국물음식을 먹는 데만 있지 않고, 곡물인 밥을 먹는 데도 있다는 점을 동시에 설명하기 위한 논리로는 부족하며,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국물음식이 있는 다른 나라도 적지 않은데 그들은 왜 주된 식사도구로 숟가락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깊이 들어가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동아시아 음식문화의 특징은 젓가락 문화이지,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인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서양인들은 물론, 한국인들 자신조차 명확하게 그 근거를 분석해내지 못했던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중국을 처음 여행하는 이들은 식당에 갔을 때나 혹여 중국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한국과 똑같이 젓가락과 숟가락을 세팅해 줄 것을 기대했다가 젓가락만 세팅된 것을 보고 당혹스러워하곤 합니다. 그 문화 충격에 대해서는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 청나라에서 밥상을 차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과실과 나물이 먼저 오르고 다음에 떡, 그다음에는 볶은 돼지고기와 지진 달걀 등이 오르고, 밥은 가장 뒤에 올랐다. 하얀 쌀로 지은 밥과 양곱창으로 끓인 국도 올랐다. 중국 음식은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고 숟가락은 없었으며, 권하거니 받거니 하며 작은 잔으로 기쁨을 나눈다. 우리나라처럼 긴 숟가락으로 밥을 둥글둥글 뭉쳐 한꺼번에 배를 채우고 끝내지 않는다. 가끔 작은 국자로 국물을 떴을 뿐이다. 국자는 마치 숟가락과 비슷하면서도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기도 하다.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의 한쪽과 닮았다. 나는 국자를 집어서 한 공기 밥을 떠보려 하였으나,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 없기에, “빨리 월왕(越王)을 불러오시오”라며 무심코 웃었다. 이에 학성이 나더러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월왕의 생김새가 목이 죽 길고 입부리가 까마귀처럼 길었답니다.” 하였더니, 학성은 왕민호의 팔을 잡고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알이 튀어나오며 재채기를 수없이 한다. 학성은 이내 “귀국 풍속에는 밥을 뜰 때에 무엇을 쓰십니까?” 하고 물어 “숟가락을 쓴답니다” 했다. 이에 학성은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묻는다. 나는 “작은 가지〔茄子〕의 잎 같습니다” 하고 곧장 탁자 위에다 그려 보였다. 이에 둘은 배꼽을 움켜쥐고 졸도하듯이 웃는다.
이어서 학성은 “어떻게 생긴 물건이기에 가지의 이파리 모양인 숟가락이, 저 밥 속에 구멍을 뚫었을까” 하고 시를 지어 읊조렸다. 이에 왕민호가 대응하여 “많고 적은 영웅의 손이, 마치 한나라의 장량(張良)처럼 임금에게 젓가락을 빌린다고 바빴으랴” 한다. 이에 연암이 “기장밥은 젓가락으로 먹지 않고 남과 함께 먹을 때는 손을 국물에 적시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들어와서 숟가락을 구경하지 못하겠으니, 옛사람들이 기장밥 자실 때 손으로 뭉쳐서 잡수셨던가요” 하였다. 왕민호가 “숟가락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기장밥이고 쌀밥이고 젓가락을 쓰는 것이 관습으로 굳었답니다. 아침에 배우면 습관이 된다는 말도 옛말이라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하고 답했다. 즉 예전에는 숟가락을 사용했는데 당시에는 그렇지 않다는 답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송나라 때 주자(朱子)가 정리한 책으로 알려진 <가례(家禮)>에도 조상의 제사에는 반드시 밥 옆에 ‘시저(匙箸)’를 놓도록 그림으로 표시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시저(匙箸)’란,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리킵니다. 위 긴 인용글을 담은 이유는 바로 그 점을 여러분들이 발견하라고 쓴 것입니다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연암의 말에 의하면 그는, ‘중국 땅에 들어온 이후에 밥상에서 숟가락을 보지 못했다.’라고 한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숟가락이 아닌 ‘사오쯔(勺子)’라는 죽이나 국물을 떠먹는 손잡이가 짧고 입이 움푹 파인 수저 비슷한 것을 씁니다. 심지어 사기로 만든 것도 있어 밥을 떠먹기에 아주 불편하기 이를 없지요. 사실 ‘사오쯔’는 밥을 먹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중국의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을 찾아보면, ‘사오(勺)’는 어떤 것을 떠낼 때 사용하는 기구로 자루가 있으며, 고대에는 주로 술 단지에서 술을 떠낼 때 사용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오쯔’를 한국어로 굳이 의역하자면, 수저가 아닌 ‘국자’에 가까운 것이죠.
그래서 진(秦) 나라 이전의 기록을 보면, ‘사오쯔’는 ‘비(匕)’라는 한자로 쓰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이 고대형 ‘비’는 수없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의 숟가락과는 다른 용도로 탄생한 물건입니다. 신석기시대 황하유역에서 재배됐던 주요 농작물은 좁쌀(粟)이었는데요. 조는 낟알곡식으로 이것을 갈돌에 갈아서 가루를 낸 후 토기에 넣고 물에 반죽해 익혀 먹었습니다. 이렇게 익힌 음식은 죽과 떡의 중간 상태였는데요. 막 요리한 뜨거운 상태의 그것을 맨손으로는 당연히 먹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발명된 도구가 바로 중국 화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편평한 형태의 ‘비’였습니다. 이에 비해 쌀을 주식으로 먹던 지금의 창장(長江) 이남에 살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걱 모양으로 생긴 도구로 밥을 먹었는데요. 좁쌀에 비해 좀 더 차진 멥쌀을 쪄서 먹는 데는 주걱과 닮은 도구가 효과적이었다고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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