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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26. 2024

왜 한국인들은 꼭 식사할 때 숟가락을 쓰나요? - 2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29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785


  이후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숟가락과 비슷한 형태의 물건은 결국 왕과 귀족들만 사용하는 구조를 취하게 되는데요. 예기(禮器)의 세트를 갖출 수 있는 것은 주(周) 나라의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방 군주들도 경제 사정이 좋을 경우, 천자를 흉내 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식기를 통한 권력의 표현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은 문화인류학이나 역사를 공부한 이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입니다. 


  6~7세기 한반도에서 만들어졌던 청동기 식기 세트는 자연스럽게(?) 일본에 전파되었다는 유적들이 발견된 바 있어, 당시 사용된 청동기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왕이나 귀족들의 특권을 드러내는 도구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왕이나 귀족들은 평상시에는 청동기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주 특별한 때, 그러니까 외국 관리를 맞이하거나 공식 연회가 있을 때만 식사 도구로 사용했다고 기록을 통해 확인할 서 있는데요. 평소에 나뭇가지를 잘라서 만든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데 익숙해 있던 그들은, 연회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그 이후, 숟가락 사용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찰기가 있는 쌀을 재배했기 때문에 굳이 숟가락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좀 더 다각적인 분석을 가하자면,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젓가락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됐을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즉 지배층이나 일반 서민이나 6~7세기 이전에는 모두 식기를 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던 일본의 식문화를 감안하면, 지금까지도 식기를 손에 들고 먹는 일본의 식문화의 특성까지도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단순히 중국과 일본에만 갑자기 밥이 질어지기 시작하고 숟가락이 필요 없어지면서 젓가락만 발달하게 되었다는 견해에 대해 반론 격 견해도 등장합니다. 

  숟가락이 작고 효율적인 그릇역할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 견해에 따르면, 숟가락의 움푹 파인 입의 형태가,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조선왕조 중기까지,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기까지 사용되었다는 공통성을 강조합니다. 숟가락의 움푹 파인 그릇과 같은 구조가 바로 이동용 그릇 기능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설명인데요. 


  중국의 식문화 역사를 살펴보면, 당나라 초기 이전까지 중원에서는 식사를 할 때 식탁이 없었습니다. 공자나 진시황도 도마와 같은 낮은 상에 식기를 놓고 식사를 했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그런데 이때 사용한 식기는 후한(後漢) 이전까지 대부분 무거운 청동기였습니다. 여기에 음식까지 담게 되면 당연히 그 무게는 상당히 무겁게 됩니다. 또 뜨거운 음식을 즐겨 먹었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당시 사람들이 식기를 들고 식사하는 방법은 취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앞서 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찰기가 없는 조나 수수로 지은 밥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젓가락을 사용해 입으로 옮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앞서 설명했던 ‘반비(飯匕)’라고 불리는 숟가락이 필요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이에 비해 청동기나 도자기로 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6~7세기 일본열도의 지배자들에게는 숟가락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간편한 나무로 만든 식기는 뜨거운 밥이든 국이든 열기를 밖으로 쉽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에 들고 먹기도 쉬웠을 것입니다. 식기를 손에 들고 먹을 경우에는 당연히 숟가락이 필요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젓가락만으로 식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청동기로 만든 젓가락은 나무로 만든 것에 비해 무겁기 때문에 그들의 식문화에서 아무리 연회라고는 하지만 청동기 숟가락은 특별한 연회에서 자신들이 중원의 문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됐을 뿐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중국의 청동기 유물

  중국에서 숟가락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면문화로 설명하는 연구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음식에 대한 기반이 되었다고 하는 명나라 음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1504년 송후(宋诩)가 저술한 <송씨양생부(宋氏養生部)>에 소개된 100여 종에 달하는 조리법 중에서 반 이상이 기름을 사용하는 조리법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형태들은 명나라에 들어와 안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기름을 써서 조리한 음식은 가능하면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름이 굳어버리기 시작하니 맛도 없을뿐더러 먹기에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숟가락 문화대로라면 기름을 떠먹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음식의 조리적 특성과 맞물려 숟가락보다 젓가락이 자연스럽게 주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이나 찌개가 주류가 아닌 건더기가 있는 기름으로 튀긴 요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서 따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이 귀찮아지기도 했을 법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미 당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점차 국물 있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일이 적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더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면종류가 그렇게 많은 중국에서 한국처럼 국물을 마시지 않고 면만 건져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숟가락이 젓가락보다 주류가 된 것은 음식의 조리법이나 음식의 종류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한국의 국문화와 탕문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견해인데요. 중국이나 일본의 식문화가 그들의 환경과 문화적 특성에 맞게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1년에 한 번 하는 벼농사를 기반으로 쌀밥을 지어먹고, 거친 보리밥을 먹거나 구황식물로 감자, 고구마등을 먹으면서 식사와 함께 하는 차문화가 발달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탄수화물의 편한 소화를 위해 탕과 국이 반드시 상에 올라오게 되었고, 그것은 식사 중에 물을 마시는 것대신에 자연스럽게 반찬의 역할로 이어지게 됩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탕이나 찌개, 국이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자연스럽게 오르는 것은 그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합니다. 특히, 한국의 국이나 탕은 건더기가 반드시 실하게(?) 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저 마시는 정도로 숟가락이 필요 없어진 중국이나 적당히 미소시루에 미역이나 다시마정도만 곁들여 역시 마시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한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숟가락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국밥이라는 한국만의 식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으며, 비빔밥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밥이 짓뭉개지지 않게 하려고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먹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특히나 나물류의 경우는 숟가락이 아니고서는 적당히 떠서 한 입에 들어가기 좋게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밥 또한 숟가락만 있어도 먹는데 불편함이 없지 않지만, 젓가락만으로는 도저히 각자 분산되어 버린 밥알들을 푸짐하게 떠올릴 수 없으니 숟가락은 필수였던 것이지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왕과 귀족들이 보이기 위해 청동기 식기 세트를 쓴 것에서 굳이 한국만이 왜 그 문화가 발달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통치 이념을 위해 끌고 온 ‘유교(儒敎)’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형식화하며 신분화를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정치논리를 다지기 위한 사대부라는 자들은, 뜬금없이 중국에서도 잘 지키지 않는 주나라의 관습이 기록된, <예기(禮記)>를 그 근거로 들어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으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포기한 바와 같이 청동기로 된 무거운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은 수련도 아니고 지속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필요에 의해 발명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유기(鍮器)’입니다. 청동기의 무게와 정밀도의 문제점을 개선한 유기는 왕실은 물론, 사대부 집안의 각종 제사에 쓰이는 제기(祭器)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릇이 무거우니 그릇을 들고서 먹는 것은 상놈이나 하는 짓이라는 밥상 예절을 강조하게 되었고, 중국이나 일본처럼 그릇을 들고 먹는 문화로 가는 것이 원천봉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까지 구리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고, 그 필요는 다시 백자의 식기화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유기로 된 젓가락은 나무나 상아 젓가락에 비해 거의 4배나 무겁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가 되면서 스테인리스 숟가락과 젓가락이 개발되면서 유기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젓가락을 쓰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쇠나 스테인리스 젓가락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한국인들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손가락 사용의 훈련을 통해 뇌의 활성화 훈련을 충분히 거치게 되어 손재주면에서 탁월한 민족적 천재성을 일반적으로(?) 발휘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젓가락문화와 국문화 탕문화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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