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4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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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미라고 하더라도 나라별로 그것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한국어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의성어, 개 짖는 소리 ‘멍멍’은 외국인들에게 당연한 표현이 ‘당연히’ 아닙니다. 영어로는 ‘바우와우’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완완’이라고 하듯이 말이지요.
소리를 듣고서 그대로 표현하는 의성어도 이렇게 언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자세히 살펴보면 보편적인 정서라고 여겼던 것들도 저마다 다른 것들은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생일을 맞은 이에게 생일축하노래를 해주는 것도 그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지금은 영어권의 지대한 영향으로 한 가지 멜로디로 각 나라의 언어를 가사로 붙여 부르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생일 노래는 그 나라만의 정서를 드러내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는 ‘생일’이라는 용어를 다르게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귀 빠진 날’이라는 표현이 그것인데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 한국 드라마의 전성시대라고 하던 공중파만의 시대에 드라마에서 생일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귀 빠진 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태어나다’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표현하지만, 사전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는 단어가 맞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왜 태어난 날을 귀가 빠졌다고 하는지 의아하기 그지없는 셈이죠.
생일을 ‘귀 빠진 날’이라고 부르게 된 연원을 알아보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일반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귀의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는 견해인데요. 엄마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이 마치 사람의 귀 모양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와 닮은 모양의 아이가 나오는 것이니 귀가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꼬박 채우고 귀의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온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아기를 출산하는 그 과정 자체를 묘사하면서 나왔다는 설명입니다. 지금처럼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를 출산하기 시작한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에서 기존의 출산 방식은 동네에서 경험이 많은 산파가 집으로 왕진하듯이 찾아와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는 형태였는데요. 아이를 낳아본 여자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듯이 아기를 낳는 출산의 고통은 그야말로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가 바로 아기가 출산하기 직전 머리가 나오면서 귀가 빠져나오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니고 하필이면 귀였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시피 자궁 안에 있던 아기의 형태 중에서 가장 큰 부위는 바로 머리입니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너비보다 크기 때문에 그 머리가 좁디좁은 엄마의 안에서 빠져나오는데 가장 도드라진 부분인 귀는 그야말로 표면적이 가장 넓어져 고통을 자아내게 만드는 상황을 벌어지는 겁니다.
의학기술이 발달한 지금이야 체계적으로, 약물까지 투약해서 고통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출산과정을 거치지만 산파에 의해, 혹은 그저 경험이 없는 가정에서 출산을 했던 상황에서는 경험칙상 아이의 머리가 멀쩡하게 나오면서 울음이 터지지 않으면, 다시 말해, 귀가 온전히 나오지 않으면 출산이 고비를 넘지 못했다고 할 정도의 기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귀가 빠진 것은 건강한 출산을 의미했고, 그것은 아기는 물론이고 산모인 엄마의 상태까지도 안전하다는 싸인이었기 때문에 귀가 빠진 날이라는 말까지 강조해서 붙이며 축하를 했던 것이죠.
앞에서 한국인들이 왜 생일날에 미역국을 먹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는 했지만, 정작 귀가 빠진 것을 축하하는 것은 태어난 본인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보다는 아이를 출산한 산모, 즉, 어머니에게 더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가 미역국을 먹지 않고, 태어난 아기가 귀가 빠져나온 것을 알 리가 없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확장해서 설명하자면, 뒤에서 언급하게 될 한국인의 잔치문화에서 생애 가장 최초의 잔치라 할 수 있는 백일에서부터 1주년 생일인 돌에 이르기까지 성대한(?) 잔치를 엽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유별나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문화인류학적 공통성에서도 설명하고 있는데요.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의료기술은 물론이고 왜 아이들이 일찍 죽는지에 대한 원인분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경우 출생 과정에서 온전히 생명을 보존하는 확률이 낮았고, 백일이나 1년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도 상당히 희박했습니다. 돌 이후 사망률은 그 1년까지의 사망률보다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인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생일에서부터 백일과 첫돌은 큰 의미를 갖는 잔치를 벌이면서까지 경축했던 것이죠.
귀가 빠져나왔다는 의미 자체는, 산모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노동력이 우선이었던 농경사회에서부터는 아이가 건강하게 또 한 명의 노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후세를 출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성인 어머니가 그 사회에서 자신의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생명이 태어나고 자신의 자식을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귀가 빠진 날이라는 표현이 속된 표현일까요? 이는 앞에서 잠깐 설명한 바와 같이, 첫 번째 이유로 보면 출산의 형태이기 때문에 여성의 생식기와 관련된 표현을 금기하였던 언어의 특성상 그러할 것이라는 추정과 귀한 것에 대한 것을 오히려 속되게 표현하여 귀신이 시샘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무속신앙적인 발상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중에는, 아이의 이름을 귀한 이름으로 지으면 귀신이 샘을 내어 일찍 저승으로 데려간다고 믿어 ‘이름을 천하게 지어야 장수할 수 있다’고 하는 다소 황당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실제 이름이 아니고 아명(兒名;어릴 때 부르는 이름)이었기에 실제 이름과는 달랐지만, 그러한 의도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예컨대, 조선 고종 황제의 아명은 그 흔하디 흔하고 천하게 인식되는 ‘개똥이’였습니다. 조금 성장한 이후에는 이미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자랐는데 대놓고 임금이 될 이를 ‘개똥이’라고 부르기가 뭐 했던지 장수하라는 뜻으로 ‘명복(命福)’이라고 불렀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이는 중국의 유교문화에서 건너온 자(字)나 호(號)를 짓는 관습과는 명백히 다른 한국만의 방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어난 사실 자체를 귀신이 시샘하여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여겨 속된 표현으로 불렀다고 말하는 견해도 있긴 합니다. 즉,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말만으로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죠. 물론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산부인과에 가서 편하게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 역시 수긍이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문득 오늘이 귀 빠진 날임을 상기하고는, 원래 쓰려던 주제를 후딱 바꾸어 쓴 발검무적이었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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