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3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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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음식문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주제 중에서도 비중을 너무 많이 차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한국인을 설명하는데 음식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분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을 상징하는 맛’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맛이 있습니다. 네. 바로 ‘매운맛’입니다.
세계적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맛은 김치와 고추장으로 대표되는 매운맛입니다. 김치에서 시작해서, 떡볶이, 짬뽕, 낙지볶음 등등 매운맛을 강조한 먹거리들은 이미 한국에서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맛집들의 대열에 들어선 지 오래입니다.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매운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메뉴에까지도 자연스럽게(?) 가미되면서 한국인의 취향에 맞춤 음식으로 재탄생(?) 하기도 했습니다. 매운 돈가스가 그러했고, 매운 피자가 그러했으며, 매운 갈비찜부터 매운 닭발과 불족발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더 넓고 깊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너튜브 등의 개인 미디어의 발달과 맞물리면서 이른바 불닭볶음면의 먹방에서부터 시작된 ‘매운맛 챌린지’에서부터 외국인들에게 매운 것을 먹이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콘텐츠로 삼는 어리석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매운맛은 콘텐츠의 일부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계인들에게 한국인들이 얼마나 매운맛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진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인의 맵부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매운맛이 맛이 아닌 통각, 즉 고통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는 것이 자부심이라며 서로 매운 것을 잘 먹는다고 서로 경쟁하는 기이한 촌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어리석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매운맛의 종주국은 한국이 아니라는 점이죠.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종주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에도 좁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 그렇게 착각을 하며 살았다고 설명하는 편이 더 낫겠네요.
매운맛의 원조를 설명하자면, 그 베이스가 되는 ‘고추’의 역사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고추는 스스로 매운맛의 종주국이라 여기는 또 다른 나라 멕시코에서 시작됩니다. 현재의 멕시코인이라고 하기 애매한, 멕시코 지대에 살던 1만 년 전의 원주민들이 이미 인류 최초로 고추를 식용작물로 키워서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요. 멕시코 이외에도 중국의 매운맛, 마라로 대표되는 쓰촨 성 사람들 역시 매운맛의 원조에서 빠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뿐인가요? 태국의 이싼 지방에도 맵부심이라면 결코 뒤지 않을 사람들이 음식마다 캡사이신이 듬뿍 담긴 레시피를 매일같이 식탁에 내놓습니다. 베트남은 또 어떤가요?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던 이른바 월남파병 용사들이 그곳에서 고향의 맛을 느껴보겠다고 김치를 담그려고 할 때, 현지에서 발견한 ‘월남고추’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한국의 고추처럼 양념하여 김치를 담았다가 피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당시 파병했던 우리 윗세대 어르신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에 아주 약간 들어가 눈물을 쏟게 하는 ‘페페른치노’ 고추도 빠질 수 없죠.
어차피 매운맛은 나라마다 다 있는 거 아니냐고 한국의 맵부심을 그대로 내밀고 싶으신가요? 아니요. 한국에 고추가 도입된 것은 17세기 되어서의 일이고, 그나마 최근 들어 한국의 가장 매운맛의 원조라고 통하는 청양고추마저도 그 탄생에 대한 다양한 원산지 유래설이 있긴 하지만, 공통된 사실은 청양고추가 한국의 순종이 아닌 신품종으로 개량종으로 개발되었다는 점과 그것이 개발되고 난 뒤, 상용화된 것은 80년도 중후반이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고추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도 깊지도 않다는 점이죠.
영조 42년(1766년)에 유학자 유중림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늘리고 보충하여 간행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농업책을 보면, 김치에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넣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조선의 왕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 살아 장수를 기록한 영조의 경우에도 유독 고추장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매운맛 종주국이니 맵부심이니의 치기 어린 말들은 차치하기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매운맛에 진심이고 매운맛에 열광하는 것인지를 다시 알아보기로 하죠.
전술한 바와 같이, 영조가 매운맛을 즐겼다는 기록은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의 과학적 근거를 찾는데 아주 좋은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매운맛을 중독성까지 느껴가며 즐기는 이면에는 비밀 아닌 비밀인 ‘캡사이신(capsaicin)’이 숨겨져 있습니다. 캡사이신은 우리 몸의 교감신경을 활성화함으로써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힘들면 자신이 엔도르핀을 분비했던 경험을 떠올려 자연스럽게 매운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죠.
매운맛이 통각이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매운맛이 식품영양학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한 번 매운 음식을 섭취한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섭취한 사람보다 사망률이 14%나 더 낮다고 합니다. 고추에 함유된 비만과 노화를 억제해 주는 캡사이신과 비타민C 등 생리활성 물질이 사망률을 낮춘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 해당 연구결과였습니다.
캡사이신은 진통효과까지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체내 신경말단에서 통증전달물질로 알려진 ‘P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저하시키는 원리로 수술상처에 직접 캡사이신을 투여한 환자가 다른 환자에 비해 통증을 덜 느꼈다는 연구 결과가 그 이론을 입증합니다.
왜 갑자기 한국인의 매운맛을 설명하다가 말고 의학프로그램 흉내를 내냐구요? 바로 한국인의 매운맛이 폭발하기 시작했던 역사적 시점들이 한국의 사회적 굴곡과 궤를 같이한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 과학적인 근거를 밑밥으로 까느라고 그랬습니다.
농심의 주력상품이 되어버린 매울 ‘신(辛)’을 전면에 내세운 신라면이 나오던 즈음이던 80년대 중후반은 한국에서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스포츠로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시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의 국민정서 캐치프레이즈는 ‘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전 세계에 알려주자!’였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탄생한 신라면은 청양고추, 후추, 마늘, 양파 등의 매운 식재료를 넣고 본연의 매운맛을 지키면서 소고기, 표고버섯을 넉넉히 넣어 깊고 진한 육수를 완성한 ‘신라면 더 레드’까지 출시하며 매운 국물 라면의 아성을 이어갔습니다. 갑니다. 매운맛의 강도가 높아져 눈물 콧물 쏙 뺄 듯 화끈하게 매운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고도성장과 그로 인한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진화는 혈혈단신 대도시로 올라오기 시작한 농촌 구성원들이 낯선 이익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려다 보니 극심한 고립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 스트레스를 매운 음식을 통해 잠시나마 잊고자 했다는 견해는 위에 설명했던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IMF사태 이후 한국인의 매운맛 열풍이 더욱 강세를 띠며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역시 이와 같은 견해로 설명됩니다.
그와 관련해서 반론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서울토박이들의 김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맵지 않고 색이 붉디붉지 않다는 점등은 김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하면서 뒤에 살펴보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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