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30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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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은 일찍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에게 ‘이제는 일본의 시대가 아니라 미국의 시대이니 영어를 배우라.’라는 희대의 웃픈 유언을 남겼습니다.(비하인드 스토리이긴 하지만, 이완용은 처음 영어에 능통한 친미파였고,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고 더 큰 세력에 들러붙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그의 예언(?)처럼 이후 한반도는 미국을 등에 업고 영어만 잘하면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참 우스운 나라로 성장(?) 해왔습니다.(불과 몇 년 전에 벌어진, 외교적 경험이나 성과가 없이 그저 외교무대에서 영어 통역만 하던 인물이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상황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영어에 목을 매는 나라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일찍이 식민지 시대의 매국노마저도 미리 영어 공부에 매진하라고 유언을 남기고 아직도 동네마다 가장 많은 보습학원에서는 영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주요 과목에 항상 국어, 수학만큼이나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십 년간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하는 영어성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외국인들, 특히 영미권의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에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실제로, 스웨덴의 교육 기업 ‘에듀케이션퍼스트(EF)’가 최근 발표한 ‘2023 영어능력지수(EPI·English Proficiency Index)’에서 한국의 영어실력은 49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36위에서 무려 13 계단이나 하락한 수치입니다. 참고로, 이웃나라인 중국은 82위, 일본은 87위로 각각 지난해보다 20위, 7위나 떨어져 일제히 동반하락을 기록하기는 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영어 실력이 훨씬 더 상위에 있으니 그 정도면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자위하는 얼빠진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의 어느 대도시 한복판에서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당당하게 영어로 물어봤을 때 한국인과 영어로 소통하거나 길안내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대학가 근처라 하더라도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면, 한국이 그들 나라보다 상위에 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EF는 자체 개발한 영어 능력 평가 시험 EF SET(EF Standard English Test)이라는 것을 2011년부터 실시해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능력지수 순위를 발표해 왔는데요. 1∼12위는 '매우 높은 능력', 13∼30위는 '높은 능력'으로 평가되는데, 한국의 49위는 그야말로 ‘보통 능력’으로 구분되고, 중국, 일본이 속한 64∼90위는 ‘낮은 능력’에 속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1위는 네덜란드, 2위는 싱가포르, 3위는 오스트리아가 차지했습니다.
작년 한중일 삼국이 유독 영어실력이 떨어진 것과 관련하여, 해당 기관에서는, “지난 4년간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어 실력이 계속 약화했다. 특히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영어 실력이 떨어졌다.”라고 지적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교류 제한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어 실력이 하락하는 데 영향을 줬다. 그러나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서구의 문화적 패권에 반기를 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신감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라고도 분석했습니다.
그들의 분석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한국의 영어실력이 뜬금없이 최근에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전체적인 학력과 지식의 하향평준화에 기대어 설명할지라도 한국인의 영어사랑과 영어성적 지상주의에 비해 한국인의 영어실력이 터무니없이 형편없다는 외국인들의 지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데이터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의 연령별 영어실력을 분석한 자료가 그것입니다. 한국인의 영어실력은 입시와 취업 준비를 하는 고교생과 대학생 연령대에서 가장 높고, 직장생활을 하는 30~40대에서는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데이터의 행간을 분석해 보자면, 한국인들의 영어능력은 시험성적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정작 그 언어의 구사능력에는 집중되어 있지 못하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석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인들의 영어는 실제적인 해당 언어의 구사능력과는 별개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매기는 전형적인 등급테스트에 한정될 뿐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여 언어를 원활하게 구사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기형적인 교육형태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뒤에 더 상세하게 다룰 한국인들의 등급 매기기 특수성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영어교육 자체가 원활하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과의 대화나 업무, 혹은 그들의 언어로 적혀 있는 전공서적등의 책을 읽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어려운 문법이나 시험, 혹은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들을 외우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명백한 증거로, 한국에서 그나마 아주 쉽다는 시험에 속하는 영어 수능문제를 영어 원어민들에게 풀어보라고 줬을 때, 그들조차 만점을 맞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이는 이미 학력고사 시절부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기형적인 영어시험문제 행태로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영어 문법책을 그대로 번역하기만 했던 서적이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의 영어학원 메인 교재로 활용되며 저자를 돈방석에 앉혀놓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쯤 되면 영어뿐만이 아니라 수학도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듯합니다.
이쯤 되면, 한때 한반도를 휩쓸었던 영유(이른바 영어유치원) 열풍을 언급하며 실질적인 영어교육이 왜 없었냐고 반문할 어리석은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유의 한계는 아주 뻔했습니다. 영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저 영어를 쓰는 아프리카부터 다양한 나라에서 온, 혹은 미국에서 국어교사자격증이라고는 구경도 못했던 이들을 이제 한국어를 막 뗀 아이들의 선생님이라고 붙여놓고 말도 안 되는 교재를 ‘0’ 하나 더 붙여가며 그저 달달 외우라고 시켰던 것이 바로 영유의 정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으면서 국제학교라고 자처하는 곳 출신의 아이들은 좀 나았을까요? 아니요. 한국인들이 셋 이상 모인, 껍데기만 국제학교라 불렸던 그곳에서는 선생님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뿐, 아이들은 여전히 한국어로 떠들고, 해석을 한국어로 적어가며 서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묻습니다. 토론수업은 기본적인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일쑤였죠.
그나마 영미권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만이 생활자체가 영어적 환경으로 둘러싸여 영어로 소통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본토 영어를 몸에 익히게 됩니다. 이것이 외교적 경험이 풍부하지만 촌스러운 영어밖에 되지 않는 이들을 대신하여 영어통역을 하던 이가 버젓이 외교부장관자리에 오르는 블랙코미디가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맞추기 어려운 문제를 내서 점수로 차등을 두기 위한 과목 중 하나로 전락한 영어를 공부하는 아이들은 문제를 맞히기 위한 영어공부만에 매진하여, 실질적으로 편하게 영어로 된 책을 읽는 독해공부나 자신의 의견을 격렬하게 영어로 토론하는 능력을 키우기는 또 따로 듣기와 말하기, 쓰기를 공부해야 하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국노 이완용이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했던 형태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죠.
이 부분은 한국의 교육방식이 왜 점수 매기기를 통한 형태로 전락되었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알만한 똑똑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도 왜 계속 그 형태를 바꾸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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