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45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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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경청’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논어(論語)>에서 공자께서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과 같이 말만 익숙한 이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강한 가르침 중에서 하나였습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가르침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가르침이지요. 하지만, 그 가르침과 달리 요즘은 자기 PR시대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대세여서인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실제로 아이들에 대한 교육도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간 지 한참이 된 듯합니다.
서양의 교육이 엉뚱하다고 비난하거나 말을 못 하게 하는 것보다 먼저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는 문화라서 인지 서양은 일찌감치 그들의 토론문화와 토론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칼 없이 말로 전투를 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있는 것을 명문대학의 캠퍼스, 강의실에서는 종종 확인하고는 합니다. 상대적으로 동양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겸손에 겸손을 더한 미덕(?)을 발휘하며 부러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상대방과 격렬한 논쟁까지 이어지는 토론을 하려 들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경청’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제에서 미리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분명히 지난 몇 차례의 글에서 한국인들은 기묘한(?) ‘집단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주변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더 중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간다고 설명해 놓고 왜 이번에는 전혀 다른, 모순적인 설명을 펴는 것이냐고 꼬집고 싶은 근질거림을 참을 수 없어하는 분이 분명히 계시겠죠?
한국인만이 아니라 인간은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게 한 개의 두뇌를 가지고 한 개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모순된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한국인의 ‘문해력’에 대한 부분인데요.
수년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온 ‘문해(文解, literacy)’라는 용어는, 본래의 의미는 ‘문맹의 반의어로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문해한 정도를 통칭 ‘문해력(文解力)’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다만, 본래의 의미와는 별개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음성적 읽기'를 넘어서 '의미적 읽기'까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아울러 문해력의 척도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용어를 설명하면서 굳이 ‘통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를 조금 전문적인 용어로 구분하자면, ‘실질적 문해’ 또는 ‘문해 능숙도’라고 합니다.
문해 능숙도(文解能熟度, literacy proficiency) 또는 실질적 문해율이란, 한 사회에서 문서를 읽고 그 의도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원의 비율을 말하는데요. 이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을 말하는 문맹률과는 구별됩니다. 이러한 능력이 낮은 것을 ‘실질적 문맹’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요. 최근에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국어 영역, 영어 영역)이나 PSAT(언어 논리), LEET 등에서 바로 이 능력을 측정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설명도 하기 전에 묻고 따질 겨를도 없이 문해력 타령은 웬 말인가, 조금은 황당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혹시나 한국인들이 유독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근 시험에 그런 부분들이 강조되는 것이냐고 우문(愚問)을 던질 분도 더러 계시긴 하겠네요.
아니요. 말 그대로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남들이 주식이 돈이 된다고 하니까 혹해서 공부도 하지 않고 세력이 어쩌니 고급정보가 어쩌니 해서 덜컥 빚까지 내서 투자하고 나서 그걸로 쫄딱 망한 것도 모자라 집안을 거덜 낸 사람들의 경우처럼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지 않냐고 반문하신다면, 그 원인과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다시 한번 그가 과연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돈이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걸로 돈을 벌고 요즘은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니 나만 그런 거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그 콤플렉스와 물욕이 그를 탐욕의 타락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보시라고 일러드리고 싶네요.
한국인들이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 역시 이전의 다른 성향과 마찬가지로 그 원인을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여 풀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학자들의 연구분석에 따르면, 그 주된 원인으로 손꼽히는 한 가지 묘한 정서가 있습니다.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 바로 그것인데요.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존의 신념 혹은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심리로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여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입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 확증편향을 정보의 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지 편향 가운데 하나라고 분류하고 있습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위에 예를 들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주식에 빠져 전재산을 날린 사람의 경우도 넓은 의미에서는 결국은 이 경우의 사례에 해당됩니다.
이 성향은 간절히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바랄 때, 어떤 사건을 접하고 감정이 앞설 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싫을 때, 개인이든 조직이든 같은 뿌리 깊은 신념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자 할 때 나타납니다. 따라서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생각은 듣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거나, 어떤 것을 설명, 해석, 주장할 때 편향된 방법을 동원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기존의 정보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객관적 자료들과 함께 제시되더라도 이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에 대해 근거 없는 과신을 갖게 하며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다른 사실에 대해 불신하며, 과학적 사실에 반해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려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과학적 탐구를 비롯한 학술적인 분야에서 확증 편향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귀납적 방법을 통한 연구에서 원하는 결론에 유리한 결과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그것은 전체 오류로 귀결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설명하면서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이러한 경향은 정치와 관련해서 특히나 심하게 진영논리로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을까요? 무조건 남의 이야기를 듣기를 거부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배워왔으면서도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이렇게 안 좋은 특징을 갖게 된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살펴본 심리학적 원인분석 외에도 역사적인 면과 사회학적 면의 다각도의 분석을 통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까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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