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47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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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늘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었는데요. 오늘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외국에 나갔을 때 뭐가 그렇게 부러웠는지에 대해서 말하는지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외국에 처음 나갔던 사람부터 외국에서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아주 높은 순위에 자주 나오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얘네(서양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요. 그게 정말 부러워요.”
외국인들이 듣는다면 너무도 어이없어하며 “너희들도 그렇게 지내면 되잖아?”라고 반문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경직되어 뭘 하든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에 비춰본다면 정말로 부러워할만한 미션 임파서블에 해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왜 그렇게 경직되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만드냐고 반문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남한테 피해 주는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끊임없이 외부의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회가 바로 현재 한국사회라고 말이죠.
2019년 <뉴욕 타임즈>에는 <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한국인들이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비밀)>이라는 글을 투고했던 재미교포 유니 홍의 설명에 의하면 그 원인 중에 가장 큰 비중은 바로 ‘눈치(Nunchi)’에 있다고 한국어 발음대로 ‘눈치’라는 용어로 한국사회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눈치’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설명하면서 출간한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눈치가 (한국인들에게) 집단주의와 내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제시간에 퇴근하는 간 큰(?) 직장인은 존재하지 않고, 하다못해 휴가일을 지정하거나 연차를 쓰거나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어느 하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부모님들에 대한 눈치는 물론이거니와 결혼식에 찾아올 사람들의 눈치부터 비슷한 연배에 결혼을 한 친구들의 눈치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눈치는 한둘이 아닙니다.
심각한 것은 아침에 학교를 나서거나 직장에 나서는 이들이 옷과 화장을 생각할 때도 자신의 취향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직장 분위기의 눈치를 보고 결정해야 하는 웃픈 현실이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곤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매일 혹독하게 단련(?)되서일까요? 한국인들은 눈치가 엄청나게 빠른 민족이라고 자부할 만큼 어마어마한 분위기와 상대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고들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것이 한국사회만의 한정된 얘기는 아니지 않으냐고 또 시비를 걸 이들이 있을 테니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한 분석 자료를 좀 살펴볼까요?
미국의 문화 심리학자, 미셸 겔팬드(Michele J. Gelfand) 교수는 10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와 같은 무형의 규범들이 각 국가에서 얼마나 강요되고 있는지를 조사해 꾸준히 논문을 발표해 왔습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이른바 ‘타이트함(tightness)’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요. 사회적 규범이 엄격하게 준수되도록 강요받을수록 ‘타이트한 사회 분위기(tight culture)’쪽이라고 분류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울수록 ‘널널한 사회 분위기(loose culture)’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연구에서 규정하고 있는 용어의 의미를 조금 상세히 풀이하자면, ‘타이트한 사회’가 보이는 특징은, 문자화되어 법규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적 규범들이 매우 강하고, 소위 ‘튀는 행동’에 대한 관용이 낮은 사회라고 설명합니다. 앞서 설명했던 글과 연계하여 풀이하자면, 사회구성원들에게 눈치를 많이 보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얘깁니다. 반면, ‘널널한 사회 분위기’는 규제성 규범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개인의 일탈 행동에 대해서도 관용도가 높은 사회적 분위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자유도가 높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33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한국은 1위 파키스탄, 2위 말레시아, 3위 인도, 4위 싱가포르의 뒤를 이어 5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8위를, 중국은 9위를 차지했습니다. 연구결과만을 본다면,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개인을 옥죄는 문화적 규범들이 더 많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라는 것이죠.
한국사회가 자유민주주의사회라는 사실은 교과서에도 명백하게 적시되어 있습니다만 진정으로 한국사회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발달된 정도의 사회인가에 대해서는 한국인들 자체가 상당히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앞의 글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인의 행복을 옥죄기 때문에 개인의 행복도가 낮아지고, 우울장애가 많아지고,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 데이터에서 그 지적은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고요.
이는 앞에서 몇 번이나 언급했던 한국만의 독특한 집단주의적 성향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타이트한 사회일수록 동질성에서 벗어난 사람을 포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묘한 처세술(?)이 등장합니다. 언어학자들이 모두가 동의하듯이, 모든 언어에 있어 적용되는 공통적인 사실. 언어의 최상급은 드러나는 언어가 아닌 행간을 읽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한국을 제대로 이해한 상급(?)에 해당하는 진정한 한국어 능력자라 불리는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잘 알아듣는 것보다는 한국인들의 침묵이나 분위기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읽어내는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합니다. 한국인과 대화하면서 그가 말한 것만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뒤에 따로 상술하겠지만, 한국인은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면서 눈치를 보고, 남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안절부절 못하며 나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에 휘둘리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인을 인식하는 정도가 강한 민족입니다. 그것은 민족적 DNA 따위가 아닌 한국사회가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만들어온 결과물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눈치’란, 극도로 인간에게 발달된 고도의 센스를 요구합니다.
오늘 글의 주제처럼 한국인들이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는 혹독한 사회적 분위기는 다음과 같은 웃픈 이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한국인을 분석하면서 단 하나의 성향으로 그들을 획일화하거나 일원화할 수 없는 것처럼 이제까지 분석했던 방식과 같이 식민지시기를 살지 않았지만 공통적인 역사 DNA를 드러내는 경우와 세대를 구분하여 특성이 달라지는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뒤에서 더 상세하게 다룰 한국인들의 피해의식의 경우, 이는 식민지 2등 국민, 최빈국 국민, 개발도상국 국민으로 태어났던 혹은 그 역사를 교과서에서 분명히 배워서 아는 세대들에게서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그런 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와 같은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대신 그들은 또 묘한 다른 특징들을 보입니다.
한 민족을 설명한다는 것,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점, 이제는 잘 아시겠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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