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48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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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집에 놀러 온 외국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한국인들의 살림살이를 보며 놀라곤 합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외국인의 집에 가서 겪게 되는 문화충돌 내지는 문화 충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한국인들이 외국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놀라는 부분들은, 크게 보면, 집의 구조에서부터 세세하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을 선호하되 1층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침실은 모두 2층에 있다던가 하는 등등의 차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가정을 방문에서 놀라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도 조금은 신기한(?) 포인트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냉장고를 두 대이상 두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외국 가정에서도 집의 규모가 크거나 편의를 위해서 2대를 두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한국 가정에서 냉장고를 2대 이상 쓰는 것은 이미 한국인이 사는 집이라는 일종의 인증과도 같은 양식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심지어 해외에 나가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가정에 마저 냉장고가 2대 이상 비치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먼저, 왜 한국가정에 냉장고가 2대 이상인지에 대해서 그 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장고는 생활가전입니다. 가전제품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가전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처음 냉장고를 구매하는 것은 대개 가족을 이루는 결혼 혼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1인 가정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버린 현실을 살펴보자면,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도 냉장고는 필수입니다.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냉장고가 없이 지낼 수는 없는 거죠. 즉, 이미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집에는 기본적으로 냉장고가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1대가 아닌가? 처음 시작은 당연히 가족과 함께 있기 때문에 소가족이라도 가족을 이루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태어나자마자 1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내가 태어났을 즈음부터 이미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커서 냉장고가 10년 이상의 수명이 되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는 식사량이 많아진 성장기의 나와 내 형제를 생각하며 음식들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고 새로운 기능을 갖춘 새로운 냉장고 제품이 나왔다는 것을 묘하게(?) 신경 쓰기 시작합니다.
살림을 전업으로 하는 주부든 밖에서 일을 하는 워킹맘이든 그것은 똑같습니다. 살림을 전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살림살이의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한국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김치’라는 것을 보관한 특별한 전자제품이 출시됩니다.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략하게나마 김치냉장고에 대해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김치냉장고가 처음 출시된 것은 지금의 LG가 무려 ‘금성사’라 불리던 시절인 1984년의 일입니다. 이른바 모델명 ‘GR-063’이 한국 최초의 김치냉장고로 출시되아ᅠ갔죠. 그리고 당시 가전사의 라이벌이던 대우에서 탱크주의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이듬해인 1985년에 ‘스위트홈’이라는 브랜드로 소형 김치냉장고를 출시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당시에는 판매량이 너무도 저조하여 1년 만에 단종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김치냉장고가 처음 출시된 1980년대 중반 이후, 그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1992년 이후의 일입니다. 김치냉장고의 대명사가 된 만도의 ‘딤채’가 출시한 것이 1995년 12월의 일이니 한국 가정에 김치냉장고가 플러스 냉장고에 일조한 것은 30여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지요. 오늘은 김치냉장고의 역사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니 주석 격 설명은 이 정도로 하죠.
'김장'이라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가진 한국에서 겨울이 오기 직전 김치를 대량으로 담그게 되면 그것을 담아둘 곳은 냉장고밖에 없었습니다. 일반주택에서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어 그 안에 김치를 보관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아파트가 일반 주거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항아리를 묻을만한 공간은 없었고, 시어 빠진 김치를 먹고 싶지 않다면 김치를 쉬지 않게 제대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은 필수였던 것이죠. 그렇게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가정에서는 김치를 보관하기 위한 김치냉장고가 냉장고와는 별개로 반드시 필요한 생활가전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인가요? 아까 10년 이상된 냉장고를 오래된 남편 보듯 하던 아내를 잊지는 않으셨겠죠? 아이가 사춘기를 맞을 즈음의 어머니는 기존의 낡고 작은 냉장고를 대체할 크고 최신 기능이 탑재된 대형 냉장고를 주방에 영접하는 데 성공하고야 맙니다. 한국에서의 생활가전 중에서 아빠가 TV에 진심이라면 엄마는 냉장고에 진심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세탁기나 에어컨 등과는 분명히 다른 성별로 구분된 명확한 영역개념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서 한국인의 독특한 특징은 발현됩니다. 기존의 낡고 작은 냉장고를 버리지 않고 베란다나 기존 냉장고의 한켠에 보관용으로 사용하게 되는 거죠. 즉, 아직 쓸만하다는 이유와 냉장고와 냉동고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보관물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기존 냉장고는 당당히(?) 생존하여 그 존재가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미니멀라이프가 한때 유행하며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대세인 듯했는데요. 그 대세의 흐름에서도 엄마들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냉장고입니다. 자연상태에서 보관하면 안 될 것 같은 물건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10년 넘게 사용해서 애정이 묻어나서인지는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냉장고는 그렇게 김치냉장고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2대의 냉장고로 공간을 차지하게 됩니다.
냉장고를 늘린 엄마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생활 패턴이 변화하게 되면서 시장이 아닌 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대형마트에서 대량의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마케팅에 속아 장바구니가 대형화되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을 모두 넣어 보관할 냉장, 냉동 공간은 필수가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냉장 공간보다 냉동 공간을 더 필요로 하는 경향도 한국인들에게 보이는 특이성인데요. 즉, 바로 꺼내서 먹고 순환하는 냉장상품이 아닌 일단 넣어두고 오래 보관해야 한다는 식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리는 신선한 재료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요리를 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인들이 냉장고의 공간을 순환하기 위해 이른바 ‘냉장고 털이(냉장고의 쟁여져 있던 상품들을 모두 꺼내 요리를 만드는 것)’를 하는 것이 신기하기에 이를 데 없는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먹는 것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풍족했던 시기보다 더 길었던 한국인의 역사적 DNA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고기를 대량으로 냉동고에 종류별(?)로 구입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간단한 메인디쉬 한 가지만으로 식탁을 꾸리지 않고 다양한 밑반찬이 있어야 하는 음식문화의 특성도 그 밑반찬들을 매번 신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작용합니다. 반찬통에 밑반찬이 대여섯 가지는 있어야 바로 메인 디쉬 한 가지 정도 차려서 밥을 먹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여기에 한국요리의 특성상 여러 가지 재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간단한 인스턴트 요리보다는 반가공되어 있거나 냉동상태에서 오래 보관해도 괜찮을만한(정말로 괜찮을지와는 상관없이) 재료들을 갖추고 있어야 심리적으로 마음이 편하다는 심리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컨대, 김치냉장고에 가득한 각종 김치와 냉장고의 밑반찬만 있다면, 그것들을 꺼내 국이나 찌개류 하나만 있으면 근사한 9첩 반상이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당장 냉동고의 삼겹살만 꺼내 김치와 구워내 놓는다면 썩 나쁘지 않은 집밥이 되는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 부분들과 연계하여 한국인들이 왜 넝마주이 다람쥐처럼 물건을 챙겨두려고 하는지에 대한 심리와 생활가전으로 대표되는 혼수를 강조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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